30일 챌린지
첫 번째 글쓰기 수업 이후 A4용지 한쪽 분량의 글을 써오는 과제를 받았다. 몇 시간이고 자리에 앉아 진득하게 글을 쓰는 모습을 상상했지만, 바쁜 회사생활 중에 글쓰기 시간을 마련하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출근하기 전, 퇴근 후 30분씩 짬짬이 시간을 내어 기한에 맞춰 글을 완성했다. 원고를 제출하고 나니, 일주일 동안 글쓰기로 끙끙대던 시간이 떠올라 후련하기도 하고 조금만 더 고쳐 보낼 걸 하는 미련이 남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이 이 글을 어떻게 평가할까?’ 생각하며 첫 번째 수업에 가기 전과 같이 긴장되는 마음이 느껴졌다. 최종 원고를 발송하기 전 애인에게 글을 보여주고 나름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았다. 하지만 애인이 글쓰기와 책 읽기를 자주 하는 사람도 아니었거니와 애정 어린 마음이 가득한 피드백이라 생각했기에 그의 말에 신뢰가 가지 않았다.
두 번째 글쓰기 수업 날이 되었다. 첫 수업 때보다는 긴장감이 덜했지만, 여전히 어색한 입꼬리를 장착하고 천천히 서점 문을 열고 들어갔다. 먼저 와 계신 작가님과 인사를 나눈 뒤 자리에 앉았다. "글 너무 재밌게 읽었어요!" 가방을 정리하고 있는데, 작가님이 건넨 말이었다. 예상치 못한 말에 놀란 토끼 눈을 하고 되물었다. "진짜요? 진짜 제 글이 재밌었나요?" 작가님은 다시 재밌게 읽었다고 미소 띤 얼굴로 대답했다. 글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기에 두 번이나 내가 쓴 글을 재밌게 읽었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그냥 인사치레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뒤늦게 들어온 수강생들에게는 글을 재밌게 읽었다는 말을 곧장 건네지 않는 작가님을 보고 나서야 의심 없이 칭찬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수업에서는 각자 써온 글을 읽고 글의 좋은 점과 고쳐야 할 부분에 대해 합평하는 시간을 가졌다. 다른 사람의 글을 읽는 시간이 되었을 때 한 자 한 자 꼼꼼히 읽으려 노력했지만 실은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글을 재밌게 읽었다는 작가님의 말이 머릿속을 온통 헤집고 다녔다. TV 속 이상형이 집 앞에 갑자기 찾아와 냅다 고백을 던지고 간 것 같은 상상할 수 없는 고백을 받은 기분이었다. 수업 내내 아드레날린이 퐁퐁 솟아올라 크게 웃고 싶은 걸 참으려 뜨거운 티를 홀짝홀짝 마셔줘야 했다.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애인에게 곧장 전화를 걸었다. “작가님이 내 글이 재밌대!” 인사를 생략하고 금방이라도 방방 뛸 것 같은 목소리로 첫마디를 툭 뱉었다. 그 뒤로 성이 찰 때까지 받았던 칭찬에 대해 자랑하고 나서야 전화를 끊을 수 있었다.
집에 돌아와 널 뛴 마음을 진정시키고자 오랜 샤워를 하고 집안을 정리했다. 할 일을 마치고 시간을 확인하니 11시를 조금 넘겼다. 이 시간이면 다음 날 출근을 위해 바로 잠자리에 눕지만 어쩐지 글을 쓰고 싶었다. 캄캄한 방에 스탠드 조명 하나만 켜놓고 의자 위에 앉았다. 글쓰기에 집중하다 보니 새벽 1시가 훌쩍 넘어갔다. 다음 수업 때 더 좋은 글을 가지고 가겠다는 의지로, 화요일을 금방 수요일로 넘겨버린 것이다. 작가님은 아셨을까. 그때의 칭찬 한마디가 더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의지를 갖게 했다는 사실을.
글쓰기 수업을 듣던 한 달간은 새벽까지 글을 쓰는 날들이 많아졌다. 글에 투자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합평 때 더 좋은 평가를 받았고 글쓰기에 흥미와 자신감이 채워졌다. 마지막 수업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던 날, 계속 글 쓰는 사람으로 성장하고 싶다는 다짐을 했고 그래서 지금도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