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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제나 Sep 22. 2022

# 27. 나는 아직 이혼녀가 아니다

경단녀 이혼녀, 3주만에 백수탈출하다.

이혼서류에 사인을 하고 법원에 제출을 했지만,

나는 아직 이혼녀는 아니다.

대한민국의 민법에서는 협의이혼  미성년 자녀가 있는 부부의 경우 3개월의 숙려 기간을 갖도록 한다.

쉽게 말해, 자식이 있으니 이혼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는 얘기다. 숙려 기간 3개월이 지나면 법원에서는 출석 요청을 한다.


너네 3개월 동안 생각해 봤니?

아무리 생각해도 너희는 이혼해야겠니?


당사자들의 의사결정 번복이 없을 경우, 판사는 그 자리에서 이혼을 확정한다.

그리고 나눠주는 결정문을 전해 받아 부부   사람이 관할 구청에 이혼신고를 하면, 그것으로  사람의 법적 인연은 완전히 소멸된다.


때문에 나는 아직 숙려 기간 중이므로 법적으론 유부녀이다. 그게 뭐 중요하겠냐만은.


그렇게 이혼서류를 접수하고 홀로 지낸 지 2주.

이력서를 넣었던 xx 대학교에선 아직까지 면접 보란 연락이 없다. 이력서를 넣은  3일이나 되었는데...

자리를 소개해 준 언니는, 추석이 껴서 그런 거니 조금 기다려보라고 마음을 위로한다.

그래. 기다려보자.

안되면 어디 아르바이트 자리라도 알아보면 되겠지.


혼자가 되고 2 만에 올해도 어김없이 추석 명절은 돌아왔다.

난 이제 찾아갈 시댁이 없다.

아 이 해방감!!!

더 이상 명절마다 좁아터진 서재 한 귀퉁이에서 쪽잠을 자지 않아도 된다.

더 이상 쌀 한 포대를 등짝에 짊어지고 방앗간에 가는 일도 없다.

 이상 요리를 하다 말고 밤나무에 가서 갈비찜에 넣을 밤을 따오거나, 부추밭에 가서 잡채에 넣을 부추를 따지 않아도 된다.


- 아무개 집에는 복덩이 며느리가 들어왔다는데, 우리 집은 정신이상한 애가 들어와서는.


이런 말 같지도 않은 타박을 더 이상 듣지 않아도 된다.

난 자유다.

누구도 나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며, 내 자존감을 짓밟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자유로운 해방감이 마냥 행복하지 않았던 까닭은.

눈을 감아도, 떠도 떠오르는  동그란 얼굴이  옆에 없기 때문이겠지.

 평생의 십자가.


여하튼 나의 이런 상실감과 마음 상태를 고려한 친정 식구들은 추석을 맞아 명절을 보내는  대신 가까운 곳으로 12 여행을 갔다.


이제 막 가을로 접어든 계절은 눈부시게 아름답다.

붉고 노란 자연의 아름다움 속에 멍하니 앉아서  눈치를 보고 있는 가족들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뜨거워진다.

아버지가 부쩍 많이 늙으셨고,

가뜩이나 숱이 없어 고민하던 오빠도 머리가 더 빠져 보인다.

새언니는 가만히  손을 잡으며, 나를 다독인다.


- 우린 모두 아가씨 편이에요.


결혼 전, 오랜 연애 후 헤어짐을 겪을 때도 참 오랜 시간 아파하던 나였다.

2년을 만났던 남자친구와 헤어지면 3년을 힘들어하고, 반년을 만났던 남자친구와 헤어져도 1년은 아파했던.

유독 사람과의 헤어짐을  견뎌하던 외로움 많고 마음 여린 나였다. 그런데 이제 나는  누구와 헤어져도 아프지 않을  같다.

내 심장 같은 아들과도 떨어져 지내는데 내가 그깟 남자들과의 이별로 마음 아파할 리는 만무하다.

빨갛고 노란 낙엽을 보아도,

물감을 칠해놓은 듯한 황홀한 푸른색의 가을 하늘 속에서도 엄마 엄마를 부르며 아장아장 걷는

통통한 내 아들의 사랑스러운 모습만 떠오른다.

하지만 나는 가족들과 함께 있을  아픈 티를 내지 않는다. 사진도 찍어주고, 깔깔대며 큰소리로 웃기도 하고 쉬지 않고 재잘거리며 나는 아무렇지 않다는 것을 시끄럽고 정신없는 수다로 대신 표현한다.


하지만 밤에는 그마저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가족들이 모두 잠든 밤,

나는 슬리퍼를 신고 몰래 펜션 밖으로 나와 바닥에 주저앉아 울며 지내는 우울 증세를 보이게 되었다.

우울증의 시작이다.


명절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정말 오랜만에 기쁜 소식이 들려왔다.


- 안제나 씨. xx 대학교 ooo 팀입니다.

면접 일정 때문에 전화드렸어요. 면접 가능하신가요?


올레!!! 면접 연락이 오다니.

어두컴컴한 내 삶에 한 가닥 가느다란 희망의 끈이 보인다.

면접 때 뭘 입지?

옷장을 아무리 뒤져봐도 경단녀 아기 엄마였던 나의 옷장엔 면접  입을만한 차림이 없다.

한 푼이 아쉬운 상황에서 면접용 정장을 사기엔 경제적 대미지가 너무 크다.

한참동안 옷장을 뒤지고 뒤져 짙은 보라색의 심플한 원피스를 발견했다.

그래! 이거면 돼!!

단정히 차려입고 면접장으로 향했다.

긴장감 가득한 마음으로 대기장소로 들어갔는데

누가 봐도  면접 보러 왔소~하는 차림의 젊은 총각이 면접장에 먼저 와있는 것이 아닌가.

두근두근.

내가 면접관이어도 나보단 쟤를 뽑겠네.

들고 있는 이력서를 살짝 훔쳐보니, 저 젊은 총각은 무려 서울대를 졸업했다!

서울대 무슨 무슨 공학과 졸업.

훔쳐보는 마당이라 정확한 전공까지 보이지는 않았으나 나의 경쟁자인  총각은 서울대 출신이 확실했다.

하아...

면접용 정장 안 사길 잘했네.

얼른 면접 보고 집에 가서 구직 사이트나 훔쳐봐야겠다.


내가 지원했던 팀은 대학 내의 PC 소프트웨어를 관리하는 업무를 진행해야 했는데 나는 그때까지 

PC 포맷 경험은 물론 한글과컴퓨터 같은 기본 소프트웨어 설치도 해본  없는 완벽한 컴맹이었다.

인터넷만 대충 끄적이는 수준의 의류학 출신인 나이 많은 경단녀와, 서울대. 그것도 공대 출신의 젊은 청년  누굴 뽑을지는 18개월  우리 아들도   같았다.


모든 걸 내려놓고, 면접장으로 향했다.

완전히 포기하는 마음으로 면접에 임하긴장조차 되지 않는다.

묻는 말에 성실히 대답을 하고 면접을 마치고선 자리를 소개해 준 언니와 근처에서 저녁을 먹으며

신세한탄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 언니 다른 자리 나오면 또 알려줘,

오늘은  건너갔어. 무려 서울대야 서울대!

얼마나 반듯하게 생긴 총각인지.

면접관들도 바보가 아니면  친구 뽑을 거야 ㅎㅎ


- 그래, 걔가 되겠네, 오늘 맛있는  먹고 기운 ! 다른 자리 나오면  알려줄게.


그렇게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띠리링 리링.

오후 6시가 넘어 이미 관계자들은 모두 퇴근하고 남았을 시간에 대학교 구내 번호가 핸드폰 액정에 떠오른다.


- 안제나 님, xx 대학교 oo 팀인데요.

최종 면접 합격하셨습니다.

다음  월요일부터 출근 가능하신가요?


어머나.


- 그럼요 그럼요 출근하다마다요! 감사합니다.

진짜 열심히 할게요! 고맙습니다.


기적처럼 나는 이혼녀가   3만에 백수를 탈출해 대학교 계약직 교직원으로 취업을 하게 되었다.


홀로서기의 첫걸음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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