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이 언덕을 함께 오르고 있는 지친 표정의 J가 불현듯 떠올랐다. (잊었을지 모르지만 이 추운데 바젤에 왜 가냐던 그 J 말이다.) J와 이 곳에 함께 오지 않은 것은 얼마나 다행한 결정이었던가. (물론 재빠르고 단호한 거절력의 소유자 J의 결정이었다.) 나는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10시 30분이 조금 넘은 시각, 드디어 롱샹의 게이트하우스 Gate House 앞에 도착했다.
잠에서 덜 깬 듯한 표정의 직원은 입장권을 건네주며 우리가 오늘의 첫 게스트임을 알려주었다.
우리가 롱샹성당을 독점할 수 있다니! 1.8km를 등산한 보람이 있었네!
입장권을 샀다고 해서 이제 드디어 롱샹성당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롱샹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한번 더 언덕을 오르고(1.8km는 아니니 안심하시길) 길을 따라 늘어선 울타리와 나무를 지나서야 온전히 그 모습을 보여준다.
대여섯 명의 일본인 단체 관광객이 잠시 다녀갔고, 건축을 하는 '냄새가 나는' 한 명이 오기 전까지 오래오래 이곳을 독점하며 이 공간을 이루고 있는 수많은 요소 하나하나를 마음에 새겼다.
기차 안에서 혹은 등산길에서 건축물을 인지하고, 접근하고, 주변을 거닐고, 문을 열고 다시 내부를 거니는 이 과정을 르 코르뷔제는 건축적 산책로 Architectural Promenade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이 일련의 과정을 통해 공간을 인식하고 향유하게 하는 하나의 건축적 장치인 것인데, 오늘 그 의도에 너무도 충실하게 롱샹성당을 감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