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케아에 대해 ‘쓰기로’ 했다
1.
사는 것이 답답하고 인생이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고 느껴진다면 역시, 사주를 볼 일이다.
최근 사주를 보고 5년 안에 대작가에 등극할 것이라는 계시를 받은 J는 마침내 애정해 마지않던 마파두부에 대해 써야 할 때가 왔다는 것을 직감했다.
아직 바람이 찬 2월 어느 날 삼각지 인근의 태국 음식점에서 오랜만에 J를 만났다.
한동안 다이어트 중이었던 나는 메뉴 선정에 신중을 기하다가 공심채 볶음을 주문했는데 거기엔 밥 한 공기가 포함되어 있었다. 역시 탄수화물의 효과는 즉각적이고 강력하다. 3주 만에 처음으로 씹어 넘긴 새하얀 쌀밥 한 술에 눈이 번쩍 뜨이는 걸 느꼈다. 우리는 하얀 쌀밥 위에 공심채 볶음을 올려 먹으며 그 맛에 감탄하다가 느닷없이 글쓰기 모임을 결성했다.
글쓰기를 늘 선망해 온 마음과 그렇지 못한 태도(게으름) 사이에서 갈등하던 나는 최근 뭐라도 써야겠다는 마음으로 책 쓰기 모임을 찾던 중이었다.
"그럼 저랑 하시겠어요?"
예상치 못한 J의 제안은 공복에 섭취한 탄수화물 마냥 또 한 번 내 눈이 번쩍 뜨이게 만들었다.
느닷없어 보였지만 적절한 타이밍이었는지도 모른다.
J는 대작가가 되어야 했고, 나는 그냥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글을 쓰는 일은 나의 직업도 무엇도 아니었지만 어째서인지 글을 써야 된다는 생각은 늘 시작조차 못한 숙제처럼 마음 한 구석에서 나를 불편하게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혼자서 쓴다는 건 힘든 일이었다.
우리는 E와 함께하는 카톡방에 글쓰기 모임이 결성되었음을 알렸다. 예상했던 것처럼 E는 흔쾌히 수락했고 또 한 명의 K가 뒤늦게 합류했다.
2.
써야겠다는 마음은 충만했고 글쓰기 모임까지 결성했으나 어떻게는 커녕 무엇을 쓸지도 정하지 못했다.
잭슨피자 한 판을 시켜놓고 모인 저녁, 어처구니없었던 그날의 회사생활에 대한 성토가 끝나고 각자 무엇을 쓰면 좋을지에 관한 얘기가 오가던 중이었다. 내 방을 둘러보던 J가 말한다.
"이케아에 대해 쓰면 어때요?"
침대부터 소파와 테이블 마시고 있던 와인잔까지 10평 남짓되는 나의 작은 집이자, 방은 이케아로 가득 차 있었다. 이케아 제품이 아닌 것이 드물었다.
이케아라니... 어쩐지 적당해 보였다.
이케아를 좋아하느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딱히 그런 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무엇을 써야 할지 내내 고민하던 중에도 이케아를 떠올리지 못한 건 아마 그런 이유일 것이다. 그냥 내 방에 이케아 제품이 많을 뿐이고, 보통의 경우 보다 이케아에 자주 갈 뿐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이케아에 대해 쓰기로 해 놓고 이케아를 좋아하는 건 아니라니... 어쩐지 김이 새는 기분이지만 그럼에도 이케아에 대해 쓰기로 결심한 이유는
이케아의 제품들이 우리집에 이렇게나 많다는 것 자체로 스스로도 돌보지 않은 이야기들이 거기에 숨어 있을 것 같다는 호기심이 순간 발동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래서 '쓰기로 했다.'
내 방에 가득 찬 이케아에 관한, 이케아로 가득 찬 내 방에 관한 이야기를 말이다.
이케아를 좋아하는 건 아니라고 주장하는 자의 이케아 이야기라니, 그 전개가 스스로도 사뭇 궁금해진다.
일단 무엇을 쓸지는 정했으니, 어떻게 쓸지는 다음 편을 쓰는 내게 바통을 넘겨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