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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bridKIM Mar 02. 2023

02 거실이 된 가구

스트란드몬 STRANDMON 윙체어

1.

이 윙체어는 20년을 이어온 내 유구한 자취의 역사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소파이다.

20년이라니, 이렇게 오래된 연차의 1인 생활자를 자취생이라 불러도 좋은지 모르겠다.

자취라는 단어에는 어쩐지 ‘갓 독립한 젊은이들이 하는 것'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 것 같아서다.

가족이나 동거인 없이 혼자 살고 있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니 틀린 말은 아니겠지.


최근 25평 아파트에서 10평 오피스텔로 사는 곳의 규모를 줄이는 이사를 했다.

많은 것들을 버리거나 당근 마켓을 통해 처분해야 했는데 이 소파는 그런 와중에 살아남아 나와 함께 지금의 우리집으로 이사 온 몇 안 되는 가구 중 하나다.


2.

어느 날 문득, 소파를 갖고 싶었다.

하지만 그 꿈은 가당치 않아 보였다.  

소파를 구입했던 당시, 그러니까 자취 15년 차에도 여전히 나의 거실은 매우 작고 소박한 크기였는데,

거기에는 얼마 전 구입한 '커다란' 테이블이 이미 거실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소파'라는 단어를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생각한 이미지는 거실 TV를 마주 보고 놓인 가로로 긴 형태의 어떤 것이었다. 일단, 누워야 될 테니까 말이다.


일반적인 소파의 크기는 2인용 기준으로도 0.9m x 2.0m 정도이다.

그에 반해 나의 거실 크기는 일반적이라고 하기 힘들었는데, 줄 자로 재어보니 대략 2.3m x 3m 정도.

거기에 이미 1.8m x 0.6m 크기의 테이블이 놓여 있으니까...

입추의 여지가 없다는 말은 이럴 때 써야겠지... 이러다가는 나의 거실을 가구들에 점령당하고 말 것 같았다.


소파를 갖기 전, 집에서의 내 행동 패턴을 떠올려보면 의자에 앉거나 침대에 드러눕는 것 둘 중 하나였다.

식탁에 놓인 의자에 앉아서 밥을 먹거나 일을 하다가 피로를 느낄 때쯤 곧장 침대로 가서 누운 채로 쉬거나 잠들었다.

일과 식사 등의 일상적 행위와 잠을 자는 행위 사이, 의자에 앉는 것과 침대에 눕는 것 사이에 전이공간이 필요했다.

집안으로 들어오기 위해 엘리베이터 홀이나 복도나 현관이 필요한 것처럼 말이다.

도로에서 현관문을 열었는데 바로 거실이 나타난다면 좀 어색한 것처럼 말이다.  

물론 그런 당위를 실현하기 위한 굳은 결심으로 소파를 산 건 아니다.

그저 널브러져 있는 기분, 그것에 꼭 어울리는 자세, 그 자세를 수용할만한 가구가 필요했다.


3.

소파를 갖고 싶은 마음과 어찌할 수 없는 공간의 한계는 1인용 소파를 사는 것으로 타협점을 찾았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스트란드몬 Strandmon 윙체어.

©IKEA


이케아 매장은 물론, 이케아 카탈로그에서 심심찮게 눈에 띄던 소파였다.

이케아를 아는 사람이라면 스트란드몬이라는 이름은 낯설어도 이 의자의 형태만은 매우 익숙할 텐데, 스트란드몬은 이케아의 상징 같은 제품이다.

1951년 출시한 MK 체어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리뉴얼했는데, MK체어는 IKEA의 창립자도 즐겨 앉던 의자였고, 이케아의 첫 번째 카탈로그 표지를 장식한 것도 바로 이 의자다.


https://ikeamuseum.com/


이 소파의 최대 장점은 의자에 앉았을 때 깊숙이 파묻혀 있는 느낌이 들 만큼 공간이 충분하다는 거다.

다리를 뻗고 누울 수 있을 만큼 크지는 않지만 등받이가 높아 목을 안정적으로 받쳐 준다.

소파의 팔걸이는 내 다리를 걸치기 적당한 높이이고 양쪽 윙은 거의 누운 듯이 앉을 때 내 머리를 잘 받쳐준다.


4.

널브러져 있고 싶어서 샀다지만 소파는 예상보다 훨씬 쓰임이 다양했다.

창밖의 풍경과 나의 작은 집구석구석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거나 커피나 간식을 먹을 때 애용하는 장소가 바로 이 소파이다. 하던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노트북을 들고 책상에서 소파로 서너 걸음 걸어가 국면전환을 시도하기도 하고, 가끔은 새벽까지 넷플릭스 시리즈물을 연속으로 보다가 소파에서 그냥 잠드는 일탈을 하기도 한다.

소파 없이도 일어났을 법한 일이지만 소파가 생긴 덕에 원룸이라는 단조로운 공간이 더욱 풍부해졌다.


로알드 달.  소파에 앉아 일만 하신 건 아니겠죠?


5.

지친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무엇이 혼자 사는 우리를 위로해 줄까?

고양이나 강아지가 없다면? 야식을 즐기지도 않는다면?

그것은 푹신하고 편안한 소파가 될 가능성이 크다. 미세먼지 속을 헤매다 돌아와 외투를 입은 채 가서 안겨도 군말 없이 받아 줄 거다.


모든 원룸 생활자의 소파 구매를 응원하는 바이다.


 그리고 우리집에 온 스트란드몬 ©hybridKIM

이 공간에서의 경험을 풍부하게 해주는 데는 몇 가지 액세서리의 도움이 필요하다.


먼저, 풋스툴.

스트란드몬은 묘하게도 생긴 모양대로 등을 기대고 정자세로 앉으면 이 소파가 가진 잠재력을 전부 경험하기 힘들다. 좀 치명적인 단점 같지만 어쨌든 더욱 편하게 이 의자를 이용하고 싶다면 스툴이 필요하다.

윙체어와 세트로 나온 스트란드몬 스툴, 숙련된 공예전문가가 바나나잎을 직접 엮어 만들었다는 알세다 ALSEDA 스툴 등을 활용할 수 있다.

둘 다 구입해서 써 본 결과, 허무하게도 소파의 팔걸이에 다리를 걸치고 구겨져 있는 것이 나에게는 가장 편한 자세였다.

그렇지만 스트란드몬 스툴은 윙체어 옆에서 소파테이블로 사용하기 적당한 높이이고, 손님이 와서 의자가 부족할 때에는 의자로 활용할 수도 있다. 알세다 스툴은 좌식 다과상 또는 거실 장식용 등으로 나름의 쓰임을 찾았다.


다음, 플로어 스탠드.

식사를 마치고 소파에서 휴식을 취하다가 졸음이 몰려올 때의 달콤함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손을 뻗어서 불을 끌 수 있는 플로어 스탠드를 소파 옆에 두는 것을 추천한다.

잠은 침대에서 자야겠지만, 그냥 소파에서 잠들고 싶은 밤도 있으니까 말이다.


쿠션은 내 몸과 소파 사이의 빈 공간을 채워 쿠션감을 높여주고, 무릎 위에 두고 노트북이나 아이패드로 넷플릭스 등을 볼 때 유용하므로 하나로는 부족하다. 가끔 쌀쌀할 때를 대비해 무릎 담요도 곁에 두면 좋다.

과감함은 쿠션과, 무릎 담요 같은 패브릭 제품을 고를 때 발휘해도 좋다. 일단 가구에 비해 과감해도 될 만큼 저렴하고, 공간에 생기를 부여하기도 해서 기분 전환에도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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