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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bridKIM Mar 09. 2023

03 식당이자 거실, 근데 이제 서재를 곁들인

에크바켄 EKBACKEN 주방상판

1.

카페에 혼자 갈 때면 커다란 테이블 자리에 앉는 편이다.

거기엔 대체로 충전기를 꽂을 수 있는 콘센트가 있기도 하고 테이블 면이 커서 노트북 같은 걸 올려두고 무언가를 하기에 편하다.

특별한 작업을 하지 않더라도 주로 큰 테이블로 가는데, 혼자 와서 4인용 테이블을 차지하기엔 좀 미안하고 2인용 테이블은 대체로 테이블 면이 너무 작고 옹색하기 때문이다.

손님이 적은 카페에서 8인용 정도 되는 커다란 테이블을 혼자 차지하고 있으면 한가로운 기분은 배가된다.

우리집에도 이런 테이블이 있으면 좋겠다고 종종 생각하곤했다.


2.

2017년쯤 영종도로 근무지를 옮기면서 출퇴근 문제로 하계동에서 신수동으로 이사를 갔다.

거의 7년 만에 하는 이사였다.

집주인은 건축설계를 업으로 삼고 있는 분으로 내가 이사하게 된 집은 본인이 직접 설계해서 지은 첫 번째 집이라고 했다.

자신의 첫 작품인 만큼 애정이 곳곳에서 엿보였다.

소위 집장사들의 집과는 만듦새가 다른 집이었는데

일단, 루프탑이 있었고, 그곳에는 우드 데크가 깔려있었다.

창호에는 새시(샷시) 중에서도 고가에 해당하는 LG Z:IN의 상표가 붙어 있었다.

붙박이장 형식의 옷장, 책장 역할을 해 줄 원목 선반은 물론 스테인리스 냉장고까지 빌트인으로 설치되어 있는 집이었다.

12,3평 정도의 집이었을 뿐인데 말이다.

어쨌든 완전히 빈 공간이 아니라 어느 정도 틀이 갖춰진 집이었기 때문에 이사를 오며 침대 매트리스를 제외한 대부분의 것들은 버리거나 중고로 팔아야했다.


3.

우선 필요한 것은 책상과 식탁.

그렇지만 자취생활 15년 차에도 우리집은 여전히 작았기 때문에 필요한 것들을 들이기에 앞서 어떻게 작은 공간을 알차게 쓸 것인지에 대한 궁리가 선행되어야 했다.

좁은 집이라면 어쩔 수 없이 더더욱 다양한 기능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당연히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가구 말고 나도 이 공간을 함께 써야 하니까 말이다.

책상과 식탁을 겸하는 테이블을 사야 된다는 사실에는 재고의 여지가 없었다.

건축 설계를 업으로 삼고 있는 내가 테이블을 책상으로 쓸 때에는 노트북과 노트, 도면 등을 함께 올려 두고 사용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작업공간이 충분해야 했고, 식탁으로 사용할 경우에는 친구들이 놀러 올 때를 대비해 서너 명 정도가 둘러앉을 수 있는 크기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역시, 카페에 있는 그런 ‘커다란’ 테이블을 사야겠단 결론에 이르렀다.

집에 혼자 차지할 수 있는 큰 테이블이 있다면, 카페에 덜 가게 되는 경제적 효용도 있지 않을까?

라는 궁색한 변명이 필요하기도 했지만, 여러 가지 면에서 큰 테이블을 갖고 싶은 내 욕망을 굳이 말릴 이유가 없어 보였다.


4.

이사를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침 이케아 고양점이 생겼다.(2017년 10월 19일 개점)

이케아 고양점은 영종도와 우리 집의 중간 정도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나는 자주 이케아로 퇴근을 했다.

평일 저녁의 이케아는 한산해서 혼자 한가로이 저녁을 보내기에 알맞았고, 집에 돌아와서도 매장에서 가져온 이케아 카탈로그를 한 장 한 장 넘기며 어떤 가구를 들이면 좋을지를 상상해 보는 것은 당시의 즐거움이었다.

인터넷으로 검색할 수 있는 많은 브랜드의 가구들이 있었지만, 내 입장에선 이케아 정도면 매장 접근성이 좋았고, 매장 디스플레이나 카탈로그를 통해 퍼니싱 아이디어를 참고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집에서 차로 30분 정도의 거리였으니, 꼭 퇴근하는 길이 아니더라도 부담되지 않는 거리에 이케아가 있었다.


5.

집이 작다는 것 말고도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 있었다.

나는 혼자 살고 있고, 가구배치를 바꿔보는 것에 관한 한 넘치는 의욕과 금세 지치는 허약한 체력을 동시에 보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2년이라는 계약기간이 지나면 또 이사를 해야 할 수 있다는 점도 생각해야 할 부분이었다.


여러 고민 끝에 테이블 상판을 사기로 했다.

나에게는 이미 이케아 LERBERG 테이블 다리가 있으니, 상판을 사서 그냥 얹으면 되겠지.


그런데 이번엔 1.8m의 상판을 구하는 게 쉽지 않았다.

테이블 상판의 크기는 대부분 1.5m였는데 이 사이즈는 나의 거실에는 적당해 보였지만 '커다란'의 기준을 만족시키기 어려운 크기였다.

결국 내가 구매한 것은 에크바켄 EKBACKEN이라는 이름의 주방조리대 상판이다.

이케아 주방 쪽을 어슬렁거리다 콘크리트 느낌이 나는 상판을 발견했다. 모던한 느낌이라 좋았는데 주방상판이 마침 내가 원하던 1.8m 단위로 판매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유레카.

테이블을 꼭 테이블 코너에서 살 필요는 없지 않은가.


러베르그 LERBERG 다리 위에 놓인 에크바켄 EKBACKEN 주방상판. 거실 폭을 꽉 채우고 말았다. ©hybridKIM


6.

어느 날 부턴가는 이케아에서 사 온 과일상자처럼 생긴 수납함을 테이블 다리로 활용해 좌식으로 쓰기 시작했다. 거실이 좁았기 때문에 의자를 두지 않고 좌식으로 사용하니 의자가 차지하는 부피만큼 공간에 여유가 생겼다.

나무상자에 올려두고 좌식으로도 사용했다. 너저분... ©hybridKIM


지금은 그때와는 또 다른 집에서 LERBERG 다리 위에 상판을 올려두고 입식으로 사용 중이다.

이 글을 쓰는 책상이자 식탁, 기타 등등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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