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omadic Jan 24. 2020

자존심은 세우는 게 아니라 '스스로’ 서는 것

공격도 안 들어왔는데 수비를 할 필요가 있나요.

자존심

남에게 굽히지 않고 스스로의 품위를 지키려는 마음.  

자부심

자기 자신 또는 자기와 관련되어 있는 것에 대하여 스스로 그 가치나 능력을 믿고 당당히 여기는 마음.

자존감(자아존중감自我尊重感)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소중한 존재이고 어떤 성과를 이루어낼 만한 유능한 사람이라고 믿는 마음이다.

자존감이라는 개념은 자존심과 혼동되어 쓰이는 경우가 있다.


보통 일반적으로, 자존심은 pride, 자부심은 proud, 자존감은 self esteem을 쓰는 편이긴 하다.

왜 '편이라고 하냐 하면,

영어 pride의 정의는 남에게 굽히지 않는다는 말은 없고, 스스로나 가까운 사람들이 이룬 것에 대해 자랑스럽게 여기다(be proud of), 소속집단에 의해 인정받은 자신감과 자기 존중감 self-respect을 말하기 때문이다.

또한, 자부심이라고 하지만 proud에는 교만하다는 뜻도 있으며 pride를 자부심이라는 의미로 쓸 수 있기도 하고, 또한 남에게 아쉬운 소리 안 하고 자신만만하게 pride 강한 사람을 부정적인 의미 없이 'proud'이라고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You wouldn’t expect hime to ask your help. He is one very proud man.

그 사람이 도움을  청할 거라고 생각하긴 힘들어. 자부심이 강한 사람이거든.


그러니까 결국,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라는 점에서 이 단어들은 모두 자존감 self-esteem과 얽혀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언어는 살아있는 것이고 늘 일대일 대응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번역일은 다 아는 단어라 할지라도  하나를 제대로 옮기기 위해 날밤을 샐 수 있는 욕 나오는 정말 극한 직업이다.-절대 노동은 말할 것도 없고-)

그러니, 감感이니 심心이니 를 쓰지만, 사실 자존감, 자존심, 자부심 모두, '감'정이라기보다는 

 사람이 살아가는 태도를 보여주는 말이라고 보겠다.


(남에게 굽히지 않고) 스스로의 품위를 지키는 마음(자존심)을 가지는 것은 좋은 일일 텐데도 보통 자존심을 세운다, 고들 할 때는 어쩐지 약간의 부정적인 의미가 있게 마련이다.

사과를 해야 할 때 사과를 안 한다거나, 남의 도움을 받거나 함께 일해도 될 때 괜히 거부할 때, ‘자존심을 세운다’는 말을 쓰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자존심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자존심이 약해서 일어나는 일이다.

물론 뭐든 결국 자기가 결정하는 것이긴 하지만, 정말 자존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에 대한 기준이 높기 때문에 자신이 명백한 잘못을 했다면 자신의 기준에 못 미치는 것에 대해 제일 먼저 실망할 줄 알 것이다.

그래서, 사과할 때 사과하고 필요할 때 도움받는 것을 '자존심 상해'하지 않을 것이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는 사람이야 말로 정말 아는 것이 확실한 사람이라는 것 같은 일이다.

그러므로 자존심 pride 은 '세울'일이 아니라 그 사람이 가진 질 자체로 존재할 일이다.


자신이 알아달라고 해서 알아주는 가치가 아니라 남이 알아주는 가치.

self image 자아상 문제라면, 본인이 고양이라면 굳이 사자로 자기를 볼 필요는 없다고 본다. 고양이면 고양이로 보면 되잖을까. 나도 고양이로소이다.

남이 ‘알아주기’는 것으로 말하자면 상만 한 것이 없다.

상은 다들 아시다시피 award, prize지만, '알아본다'는 뜻의 'acknowledgement라는 말도 쓰는 이유가 바로 성취가 '인식'되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상이란, 그의 achievement성취를 '알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니까. 박수갈채와 트로피 그 자체가 아니라, 알아주는 것이 중요한 것이니까 말이다,

라고 말은 하지만 역시 상금도 중요하다!

어려서는 상장 쪼가리 을 받지만, 어른이 되면 상 받을 일이 없는 것 같아도 대충 그 상은 ‘돈’으로 발현된다. (내가 다닌 ‘국민’ 학교에서는 ‘상 카드’라는 것을 남발, 웁스, 나눠줬는데, 그걸 열개 모으면 상장이 되곤 했으니 이건 치킨집 쿠폰도 아니고 뭐. 하지만 받으면 여전히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노벨상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미국에서는 상금이 없는 상은 사실 별 의미가 없다. 그저 honor영광으로 여기고, 스스로의 성취에 만족을 느끼는 것도 물론 좋지만 진짜 '영양가' 있는 상금이 있어야 한다. 한국에서 재능기부,라고 쓰고 나중에 잘 되면 드릴게요 노동력 착취라고 읽는, 글이나 그림을 거저먹으려는 행위처럼, 그냥 날 '칭찬'은 좀 저렴하다.(실제로 최고 상 외에 이른바 '장려상'조로 주는 상을 'honor', 'honorary mention'이라고도 한다)

내 아이가 수상한 에세이 콘테스트나 수학 경진대회 등 학생들의 경연대회에도, 정말 알아주는 상은 상장이나 상패에서 끝나지 않고 소정의 상금이 있었고, 일부 상금이 천불 이상의 '장학금'인 것은 당시에는 주지 않고 대학에 입학하면서 직접 학교로 지급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므로, 마찬가지로, 어디에 invited'초대를 받았다'라고 하려면, 일부 ‘학위 공구’ 정치인들처럼, 자비로 유람 목적으로 우연히 그 기간에 그 학교 언저리를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강의료뿐 아니라 초대 측에서 비행기나 숙박비등의 비용을 대 줘서 가야 '초대를 받았다'라고 할 수 있다.


자존심을 자주 내 세우는, 그러므로 사실은 자존감이 약한 사람의 특징은, 외려 인간이라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자신의 부족한 점을 조금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가 그걸 알거나 지적하는 것을 참지 못한다.

이런 태도를 defensive라고 한다.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얼핏 내가 나 하나 '방어하자'는데 나쁠 것이 없을 것 같지만 쉽게 발끈한다는 부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사실을 확인하거나 지적(지적질이 아니라 명백한 사실을 가리키는 지적 point out)했을 뿐이지 criticize 비판하자고 한 게 아닌데도 변명을 늘어놓거나, 남 탓을 한다거나 일단 이기려고 드는 것이다.


defensive라는 단어에 부연 설명을 하자면,

defence디펜스는 스포츠 경기나 전쟁 시의 수비/방어 ( 안식년일 때 한국에서 농구 경기 보러 가니, 전광판에 '디펜'이라고 뜨던데, 외래어라는 것도 있고 언어는 진화하는 것이지만 그 '스' 하나 더 못 붙여 주는 것은 관중을 뭘로 보는 철학인가 불만이다)를 말하고, 재판에서 피고 측을 말하기도 한다.

반대로 공격은 offence/offense(s나 c 둘 다 맞음)다. 오펜스는 또한 반칙, 위법행위, 전쟁 시의 공격이라는 말로도 쓰인다.


best offence는 deffence라는 말도 있듯이 공격이 들어오면 방어를 하는 것은 당연하고 불이익이 있으면 먼저 공격을 할 수도 있지만, 공격이 들어오지도 않았는데 파르르 하는 것은, 주로 실제로 죄를 지은 사람들이 명예훼손이라며 되려 맞고소를 일삼는 것과도 비슷하다.

공격 offence이 들어오지도 않았는데 수비 deffence를 하는 것은 반칙 offence이라고나 할까 뭐라고나 할까.


참고로, 살살 웃으면서 할 말 다하는, 알고 보면 공격을 하는 ‘수동적 공격’은 defensive를 쓰는 게 아니라

‘passive’ aggressive라고 한다. (형용사형이지만 명사로도 쓴다)

사실 이런 방식은 정면충돌을 두려워하는 서양에서 많이 하는 화법인데, 당장의 충돌을 피한다는 면에서 그 필요성은 분명 있으나, 이른바 조근조근 맥인다,는 것과 비슷하고, 비아냥거리거나 비꼬는 것과도 비슷해지므로 당하고 나면 생각할수록 더 기분이 나쁘다는 단점이 있으니, 웬만하면 ‘화 내지’ 말고 좋게 직접적으로 얘기하는 것이 좋겠다.


자존감이 낮아서, 매사에 자신 없고, 인간관계에 자신감이 없거나 불안한 것 insecure이라 한다. (명사는 insecurity) secure은 뭔가를 단단히 잡아 둔다는 말이고, 그의 반대말이니까 그냥 느슨하다는 뜻도 되지만, 정신적으로 어딘가에 단단히 붙들고 있는 것이 없으니 불안하다는 뜻이 된다.


이렇게 자신감 없는 , 자격지심을 self conscious라고도 한다. 자신을 self 항상 의식하고 conscious 있는 상태라고 생각하면 된다.

I am self conscious about my height.

내 키에 대해 자격지심이 있어. 키가 나에게 신경 쓰이는 부분이야.


건강의 정의 중 하나가 자기 몸을 인식하지 않는 것이라듯이(팔은 평소에는 거기 없는 것처럼 살다가 팔이 아프면 비로소 팔이 거기 있는지 알게 된다는 말) 스스로의 존재에 늘 부담스럽게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은 자신이 없다는 말이다.

스스로의 존재가 아프다는 말이다.

반대로 실제로 멋지게 자신만만한 것은 pride  아니라 'self confident'라고 한다.

자기를 정말 존중한다면 자존심을 높이 세울 일이 아니라 self standard 자기 기준을 높이 세울 일이다.



여기서 잠깐,

내가 무엇이 바람직하다고 할 때는, 믿거나 말거나 대개 내가 그렇게 하도록 노력하며 살고 있다고 믿고 있어서  하는 말인 것은 사실이지만, 나도 내가 반드시 자존감 분야에 전혀 문제가 없다, 고 자신할 수는 없다는 것을 말해두고 싶다. 내가 뭐라고 그럴 리가!

나도 밴댕이 소갈딱지 속 좁고, 그래서 싫은 사람은 안 만나고, 당연히 자신 없는 insecure 한 부분도, 자격지심도 있다. 그래서 뭐든 내가 못하는 걸 할 줄 아는 사람을 보면 주눅이 들기도 하고 intimidated, 때로는 농담이라도 같은 것으로 여러 번 기분이 상하면 좀 너그러워지지 못하고서 부끄럽게도 감정적으로 지레 defensive 방어적으로 굴기도 한다. 알래스카에서 개썰매 안 타고 다닌다고요. 재미없어요 그런 농담 엉엉

얘기하는 사람만 재미있는 농담은 농담이 아니라는 의견을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 아무튼 농담도 여러 번 들으면 불쾌한 게 언젠가는 터지고 마니 허허 나이가 무색하다. 너는 한 젓가락 밖에 안 빼앗아 먹었는데 먹는 애는 남은 게 없달까  이를 나는 sotukung effect 솥뚜껑 현상이라고도 부른다.

(얼핏 이른바 '속 넓은' 사람처럼 보이는 사람 중에는 물론 도통한 사람도 있으시겠지만, 도무지 생각을 많이 안 하는 타입일 뿐이라서 자기가 어떻게 하든 남도 '속 넓을'것을 기대하는 경향을 보이는 사람도 있지만, 그것 또한, 어느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이나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 따로 할 얘기겠다..(먼산))


하지만,

폐가 되고 싶지 않아서 도움을 청하는 건 좋아하지 않아도, 나는 내가 못하는 것은 못한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솔직히 말하며, 틀린 것은 틀렸다 인정하고, 사과할 일이 있으면 즉 사과한다. 물론 그렇게 하는 게 순간적으로는 속상하고 부끄러울 수 있지만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가장 빠른 회복 방법이라고 믿는다. 아이를 키우는 것도, 부모는 처음이라서 그렇다, 고 다 설명할 수 없는 잘못(실수라는 말은 참으로 애매한 말이다. 이왕 사과를 할 정도면 잘못이라고 인정을 하자)을 했다고 생각되면 아이에게도 핑계 대지 않고 분명히 사과했고, 사과하고 있다. 물론 입으로 가볍게 닦는 게 아니라 다시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다.


'모두'가 '다' 알 수는 없듯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뜻밖에 무식하다'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고 한다. 나도 그중의 하나고, 그것이 들킬까 봐 두려워하거나 가리려고 하느냐, 인정하느냐는 본인의 삶의 형태의 선택이다.


세상에서 가장 속이기 쉬운 것이 자신이기도 하듯이, 나는, 나를 가장 잘 아는 게 내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래서 더더욱 적어도 지키고 싶은 내 일말의 기준이 있고, 그건 남 앞에서 체면을 살리는 saving face 게 아니라 아무리 사막 한가운데 홀로 있어도 피할 수 없는 나 자신의 존엄성 dignity를 지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게 한밤 중에 깨어서 부끄러웠던 일에 배겟닛이 따땃해오는 일이 있었다면 십중팔구, 남들 앞에서 부끄러웠던 것보다 나 스스로에게 부끄러웠던 일이었다.


*제가 글을 쓸 때도, 나름 경험에 의해 확실히 ‘안다'라고 믿는 것만 쓰고, 혹시 자료 인용 상 100% 확실하지 않은 것은 fact check도 열심히 하고 있지만, 혹시 틀린 것이 있으면 지적해주시면, 검토해서 수정할 것이 있으면 분명히 오류를 밝히고 수정하겠습니다. '어쩌라고'의 의견만 아니면 환영합니다. 나이가 들면서 오타도 늘고요 흑. 트위터에서 스페니쉬 스펠링 틀린 거 한번 자상하게 지적해주신 스페인 사시는 트친분 분 감사했고(저 스페니쉬는 잘 몰라요. 번역된 좋은 내용을 인용하다 원문에 오타가 그만) 밥 안치는 걸 무식하게 ‘앉힌다’고 쓴 거 (오타 아니었습니다. 몰랐어요) 아무도 지적 안 해주셔서 나중에 알고 더 부끄러웠습니다. 트친님들 너무 착해)





쓸데없는 '자존심이나 세우고 있는' 사람들은 외려 그게 더 부끄러운 일인 줄도 모르기 쉽다.

다음에는 부끄럽다는 감정에 대해서 알아보자.

매거진의 이전글 그런데, 대체 자랑을 해서 얻어지는 게 뭐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