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요커지에서 오려두었던 시를 일기장 사이에서 발견했다.
읽을 때마다 어쩐지 아득해지는 시. 중역이지만, 나누고 싶어 번역하면서, 폴란드어 zdań에 해당하는 sentence라는 말이 영어로는, 문장이라는 뜻 외에 (형) 선고라는 뜻도 있어서, 그 sentence문장이 나의 sentence선고라는 느낌도 들었다.
*5연의, 삶을 소설로 쓴다는 말의 원문은 ‘Novel of your life’라는 말로, 삶의 역작이라고 번역할 수도 있는데, 역작을 쓴다는 것이 문맥상 중요한 것이 아닐 것 같고 폴란드어 원문을 몰라서 단순히 그대로 옮기는 것이 마땅할 것 같았다.
문장
그건 마치, 네가 깨어난 곳이 감방이었고 그곳에서 너는
주머니에서 종잇조각 하나를 발견했고, 거기 적힌 문장 한 개는
네가 모르는 언어로 쓰인 것이었던 같다고나 할까.
그리고 너는 확신이 가는 거지, 이 문장이 열쇠라는 것을,
너의 삶과, 이 감방을 벗어날 수 있게 해 주는.
그리고, 너는 몇 년이고를 들여서 그 문장을 해독하려 하는 거야,
드디어 의미를 깨달을 때까지. 하지만 얼마가 지나자
너는 깨닫지, 네가 틀렸다는 것을, 그리고 그 문장의 의미는,
완전히 다른 것이라는 것을. 그래서 이제 너는 문장 두 개를 가지게 된 거지.
그리고 세 개, 그리고 네가, 그리고 열 개로 늘어나지.
마침내 네가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 낼 때까지.
그리고 그 새로운 언어로 너는 네 삶을 소설로 써.
그러다 노년이 되어서야 감방 문이 열려있다는 것을 눈치채는 거야. 너는 세상으로 나가지. 온 세상의 길이와 폭을 가로질러 걸어 다니지.
그러다 거대한 나무 그늘에 들어,
애타게 그리워하게 되고 마는 거야,
네가 모르는 언어로 쓰여 있던, 그 하나의 문장을.
타데우시 동 브로프스키 Tadeusz Dąbrowski
폴란드어-영역 Antonia Lloyed-Jones / 영한 역 Story Alaska
어쩌면 우리는 그렇게 없는 것만을 찾아 헤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가슴이 아리기도 했지만, 어쩌면, 살면서 많은 게 이해가 가게 되더라도, 그 최초의 미지의 문장만은 영원히 다른 나라 언어로 남아있는 것은 아닌가,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쓰고 읽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