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omadic Dec 13. 2019

네 편이 되어줄게

늘 여기서 기다려 줄게

얼마 전에 트위터에서 누군가가, '그런데 기다려 준다는 말이 대체 무슨 말인가' 의문을 했고, 나도 문득, 그러게, 약속 장소에서 좀 늦어도 기다려 주는 게 아니라면, '기다려 준다'는 건 무슨 뜻일까,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동시에 이런 씁쓸한 말도 보았다. '기다려 주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사실 그저 그 당시에 자기도 바빴든가 내 일을 상관할 에너지가 부족해서 나를 '내버려 두었을' 뿐이다'


다시 말하지만, 기다려 준다는 것은 무슨 말이기에, 우리는 이런 말들을 하는 것일까.

기다리고 참아줄 수 있는 것은 나를 믿는다는 걸 거다. 지금은 내가 어떤 이유로든 조금 마음에 안 드는 모습이나 행동을 할지 모르지만 원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믿어준다는 것. 그래서, 내가 연락을 당분간 좀 안 하거나 못해도, 혹은 만나서 좀 짜증을 내도 어느 정도는 참아준다는 말일 것이다.

그래서 내 본모습을 보일 수 있고, 아무리 세상에 힘든 일이 있어도 무조건 내 편이 되어줄 것이라 믿을 수 있는 것


영어로는 아무나 친구라고 한다고 하지만, 그건 나이 상관없이 그저 동료 colleague나 이웃 neighbor이라고 하기에는 보다 가까우면 친구라 한다는 거지, 분명 지인 acquaintance이라는 말이 있다. 내가 한국 나온 이후로 부쩍 한국인들이 ‘지인’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 느낌이기도 한데, 아마도 서양식 ‘친구’로 넘어가는 과도기지 싶다. 친구, 우정 friend, friendship이라는 말은 쉽게 하지만 ‘우정’이란 감정의 정체는 뭘까.

다정한게 좋다고 하지만 다정한 게 뭘까.

일단, 기본적으로 '누군가의 편이 된다'는 말은 take side이다.

한 쪽 side을 선택 take 하는 것.

하지만 '내 편이 되어준다'는 말에서의 편이라는 말은 실제로 편을 갈라서 적(?)에 대응한다기보다는, 주로 나를 이해 understand   주고,  상황에 협조 cooperate 하는 것일 게다. 의리를 지킨다 being loyal (royal 은 왕족) 는 것은 혹 누군가가 나를 ‘억울하게’ 헐뜯더라도 나를 방어 defend  주고, 보호 protect 해주는 것일 게다. 하지만 친구가 나쁜 짓을 해도 무조건 감춰주고 덮어주는 게 아니라 바른 말을 해주는 것도 의리다. 

나쁜 짓에 동조하는 것은 의리가 아니라 accomplice공범이다!


nice 와 kind의 차이는 미묘하다. 먼저 글에서 말했듯이, 그저 예를 갖추어 친절하게 하는 것은 nice고 마음에서 우러나는 다정한 마음은 kind다. nice person이라는 말은 그 사람 괜찮다,는 말이지만 일단 개인적인 감정은 들어가지 않는 칭찬이고, kind person 이라고 하면 감사하다는 마음이 들어간다.

누군가 별 자랑같지도 않은 자랑을 하면 ‘how nice!’하고 거의 비웃기도 한다. 뭔가 날카로운 공격을 받으면, 아이구 한대 맞았네 라는 뜻으로 아야ouch!하고 말하기도 하는데 많은 how nice!는 ouch 감이다. 칭찬같지만 칭찬이 아닌. 나중에 겸손에 대해 말할 때 얘기 하겠지만 미국 아니라 달나라에서도 나대는 사람은 옥토끼도 좋아하지 않는다.


confident는 가장 많이 쓰이는 자신감을 가졌다는 뜻 외에도, 비밀을 털어놓는다는 confiding의 파생어로 신뢰한다는 뜻으로도 쓰였고, 그래서 비밀을 털어놓을  있을 만큼 신뢰하는 사람을  confidant(e)(컨피''트,라고 읽는다)라고 하는데, 늘 만나서 비밀 얘기만 한다는 것이 아니니까, 속내까지  얘기할  있는 친한 친구를 말하기도 한다. She is my confidante. 걔는 내 비밀까지 다 알고 있어.

하지만, 먼저 글들에서, 지나친 관심은 좋지 않다고 했고, 너무 솔직한 것도 좋지 않다고 말 한 바 있듯이, 실제로 가까운 사이, 소위 막역한 사이는 '못하는 말이 없는 사이'가 아니다.


They are like 5 minutes of 11.이라는 말이 있다.

요즘은 핏빗이며 애플 와치가 나와서 다시 다들 팔목에 뭔가 차고 다니고는 있으나 디지털 세대는 이 시계 바늘 위치 때문에 나온 말이 문득 와 닿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둘이 11 5 같다, 는 매우 가까운 사이라는 말이다.

주목할 것은 가깝다고 해서 12시 정각 같다고 말하지 않는 것이다. 조금은 떨어져 있을 줄 아는 것이 정말 가까울 수 있는 사이라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정말 내 편이 되어 주는 사이, 내가 힘들 때 나를 기다려 줄 수 있을 거라고 믿을 수 있는 사이는 오히려, 서로의 영역을 아주 잘 알고 있어서  knowing each other's boundary '해서는 안 되는 말을 하지 않을 줄 아는 사이'라고 하겠다.

그러니 나를 기다려 주는 사람이라면 나도 함부로 대하지 않을 줄 알아야 한다.

agree는 단순히 동의하다는 말이지만, agreeable이라는 말은 물론 쉽게 동의한다는 뜻도 있고, 그래서 함께하기 편하고 좋은, 이라는 뜻도 있다. 지금 그대에게 문득 떠오르는, 그 '성격 좋은 친구', '늘 내 얘기를 잘 들어주는 친구', '내가 힘들 때 늘 나를 기다려 준 친구'가 있다면 그 친구가 그저 성격이 좋아서, 착해서는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삶은 한 편의 연극 같다는 말도 있듯이, 사람은 모두 서로에게 어떤 역할을 가지고 존재한다. 누군가에겐 나쁜 X이 나에게는 은인이 될 수도 있고, 나와는 문제없었던 사람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못되게 굴 수도 있으니 '그 형 알고 보면 좋은 사람이야'도 니한테나 좋은 형인지 모르지만 내한테는 아니니까 그 좋은 형 니나 많이 해라 늘 통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 필요할 때만 연락하는 사람도, 참는 것도 한두 번이지 신경질 난다고 화풀이를 해대는 사람도 '어느 정도의 기간 동안' 참아주는 거지 마냥 '성격 좋은' 사람은 없다.



그러니까, 내 편이 되어준다는 것, 서로를 기다려준다는 것의 정의는 서로 기다리게 하지 않는 것이 될 것이다.




'우정'을 말하면 언제나 우정과 사랑의 차이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것이 글 하나로 끝날 감정은 아니다. 그래서 나도 무의식적으로 계속 미루고 있었는지도 모르지만, 그러니 다음에는 그저 일단 '좋아하는 감정' 전반에 대해서 살펴보는 것으로 시작해보도록 하자.

매거진의 이전글 관심이라는 이름의 폭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