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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madic Dec 20. 2019

사랑, 그 쓸쓸하면 안됨에 관하여

좋아야 좋지, 좋은게 좋은거 아니죠

나는 좀 미지근 한 편이다. 일단 무엇이 좋으면, '좋다'는 감정에 먼저 온도계를 찔러 넣고 얼마나 좋은지 생각해보고, 끓어넘쳐 밑불을 꺼트리지 않도록 불 조절을 하는 사람이다, 나는.

네 남매 중의 중간으로 자라서 내 몫을 찾아먹기 힘들었던 이유도 있을 것이고, 심드렁한 부모님의 유전자도 작용했을 것이고, 살아오면서 겪은 크고 작은 실망 같은 것들이 아마도 나를 이렇게 만들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늘 가슴보다 머리가 먼저고, 어떤 감정을 느껴도 늘 그것에 뛰어들기보다는, 가만있자, 이것은 무슨 느낌인가, 하고 팔짱을 끼고 뒤로 한걸음 물러나 비스듬하게 기대 서게 된다.

틀림없이 좀 재미없는 사람처럼 보인다. 하지만, 양철냄비같은 사람들을 보면, 쉽게 빠지고 쉽게 버리는 사람들을 보면 이 볼품없는 뚝배기를 다시 반들반들 손질하는 수 밖에 없다. 좋다는 감정에도 책임이 따르는 것 같아서.

그래서 지금 이 매거진도 시작한 지 모른다, 늘 감정을 저울질하고 evaluate 평가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like


'나는' 사랑보다는 이 '좋아한다'는 감정의 가치를 중하게 여긴다.

좋아한다 like, be fond of,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 친근감을 가지고 있다 have affection for 는 감정은, 얼핏 love 싸랑 싸랑 내 싸랑이야 만은 못 한 것 같지만, 덕질하는 사람들이 뭔가를 '좋아한다'고 말할 때 처럼 사실 꽤나 순수한 감정이다.

I have a soft spot for her/ice cream/cat이라는 말이 있다. 그것/사람만 보면 사족을 못 쓴다는 말이다. 마음 한가운데 좋아하는 대상을 보면 모찌떡처럼 말랑말랑 해지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면 그야말로 마음이 쫄깃해진다.


누군가 찌릿 통하는 것을 have chemystry with someone  라고도 하듯이, 어떤 사랑의 감정은 뭔가 화학적이고 신체 역학적인 반응이 관련되지 싶기도 하지만, 연인이라면 그렇게 사랑하다가, 그러다가 자칫 결혼이라도 하면(?), 잘못하면 평생을 같이 살 수도 있는데(!), 섹시한 것도 좋지만 이왕이면 구체적으로 뭔가 좋아하는 점이 있는 사람과 사는 편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결혼이 양쪽 집안의 행사인 것은 이미 지나간 시대의 유물이지만, 그래도 누군가와 평생을 함께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살아온 역사와 함께하는 것이니 말이다. 그리고 50 넘어가면 외모는 이미 망이야. 이런 저런 멋있는 배우들 모델들 자꾸 보고 ‘멋진 노년’이라 그러지 마 다 손 댄거 알잖아 그런 사진 보면 이렇게 늙어가야지 싶은 게 아니라 나만 홀로 천연 무공해 노년으로 남을까봐 더 우울해진다구 난 아플까봐 귀도 못 뚫었단 말이야.


개인 의견이지만 동의하실 분도 많을 걸 아는데 솔까 누군가, 그냥 친구로 지내자. 나 너 정말 ‘좋아하는 데 사랑하지는 않아’,라고 말하면, 그냥 하는 말이지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길고양이도 좋으면 털 알러지가 있어도 들고 오고 싶고, 연필깎기도 마음에 들면 도저히 안 사고 돌아올 수 없는데 정말 좋아봐, 매일매일 하루 종일 함께 하고 싶지 않겠어요?

그런 경우 보통, 그냥 친구로 지내자, 나는 너와 사랑하는 관계가 될 수는 없을 것 같아, 이렇게 얼버무려 끝내지만, 영어로는

it’s not you, it’s me. 너가 문제가 아니라 내가 문제야.

라고 한다. 지금 내가 사랑할  없어. 내가 너한테 부족해서 사랑하니까 헤어지는 거야 어쩌구 저쩌구, 그런 말이다.

대놓고 헤어지자고 하면 상당히 어색해지거나, 세상에는 하도 이상하고 찌질한 사람들이 많아서 위험해지니까(!) 그렇게 일단 말하는 건 동서양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서글프다.


물론 사랑이라는 말이 흔해지기도 했다.

사랑이 뭔지도 모르고 쉽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단점이 있어도 '사랑'할 수는 있다고 하고, 사랑에는 이유가 없다고도 말들 하는데, 참아서는 안 되는 것도 소위 사랑의 이름으로 참고 있다고 쓰고 나중에 벗겨질 불행한 콩깎지라고 읽는다는 것도 많이 보았기 때문에, 실제로 좋아하는 이유를 댈 수 있어야 관계가 단단하고 오래간다고 나는 생각하는 것이다.

참고로 눈에 콩깎지는 나중에 벗겨질 것을 암시하지만, she is the apple of my eyes 라고 하면 내 눈에 캔디가 아니라 사과, 즉, 너무 사랑해서 눈에 넣어도  아프다는 말과 비슷해진다. 사과는 너무 클 것 같지만 사탕도 뭐 만만찮으니까 아무려나 좋아하는 것을...눈에 넣고 그래 왜.



reciprocity


그리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데는 reciprocity 돌려 받는 것,도 중요하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중요하냐 내가 사랑하는게 중요하냐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긴 하지만 동서고금 남녀노소 가족 친구 연인 모두 한쪽만 자꾸 주는 관계는 건강하지 못한 관계다. 그런 관계를 지속하는 것은 둘 중에 하나가 힘들어진다. 막말로 돈도 안 드는 마음인데, 만약 갚지 못할 정도로 받고 있어 ‘부담스럽다’는 느낌이 다 들면 그야말로 빚이니까 행복하지 못할 것이다. 내리사랑, 부모사랑 포함 가끔 감동담으로 눈물 짓는 아름다운 미화가 보이는 데, 그걸 감동할 줄 알면 이미 갚은 것이다. 감사한 일에 미안하다고 하지 말자.

마음을 그만큼 못 써서? 그럼 조금 더 쓰면 된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말로만 하지 말고.

사랑이 지치기 전에.


반대로, 사랑했으므로 행복하였네라, 라는 시구도,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면서, 라는 노래 가사도 있긴 하지만, 사랑은 하는 것도 좋지만 사랑을 받는 것도, 받는다는 느낌이 확실히 드는 것도 상당히 중요하다는 의견이다.

실제로 사랑이 넘쳐흘러 저절로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 솟구치는 마음은 좋긴 할 것이다.

사랑한다고 마음을 담아 말했는데 사랑한다는 말이 되돌아오지 않은 그 순간까지는. (음향효과:레코드 지지직)

그러니까 착한 척하지 말고, 나를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과 어떤 이유로든 대충 settle down 주저 않지 말자.

You are worth more than that!

You deserve better than that!

그거보다는 당신은 가치가 있습니다.


약간 다른 각도지만 이건 심지어 가족도 마찬가지다. 핏줄만으로는 정당화되지 않는 것들이 많이 있다. 부모나 자식이기 전에 우리 모두 인간 아닌가. 초등학교 운동회 줄다리기도 아니고 핏줄이 땡기면 어디까지 땡겨,


하아, 사랑 사랑 사랑 뭐길래 그 많은 막장 드라마가 생산되어 온갖 아이돌 출신 연예인들이 바디프렌ㄷ에 앉아 서브웨ㅇ를 먹고 있는지 잠시 묵상에 잠겨보자.


(이윽고 부시시. 음 묵상을 하자더니 잠이 들었나)


love


좋아하는 것에서 사랑하는 게 되려면 일단 사랑에 빠져야 fall in love with 겠죠.

여기서 나의 조그마한 불만은, 혼자서 누군가를 좋아하는데도 with를 쓰는 것이다. 누구'와'라고 말하고 있지만 상대방은 심지어 싫어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제발 맥락을 가지고 말을 써주면 좋겠지만 미국인들이 내 말을 들어줄 리는 없다.

완전히 정신없이 빠져버리면 He fell head over heels for her.

머리가 아래로 곤두박질치는 모습이다.

I am mad about you. 너 때문에 미치겠어 =미치도록 사랑해.

infatuate도 비슷한 감정인데, 딱히 lasting 지속되는 것을 예상할 것 없이 일단은 일순 홀렸다? 는 느낌이다. infatuation을 사랑이라고 하기는 힘들 것 같지만 물론 사랑으로 발전할 수는 있겠죠. (으쓱) 사랑으로 가는 길이 하나는 아니니까.

사랑을 하고 있는 중이면 I am in  love이다.

매우 사랑하면 madly/passionately in love라고 하면 된다.

I am in love라는 말은 I love her/him와 미묘하게 조금 다르게 더 짙은 느낌이다.

문법적으로 틀린 것은 아니지만 잘 쓰지 않는 I am loving 같은, 생활 속에서 지속적으로, 그 감정에 젖어서 살고 있다는 말이 된다. 가족이나 친구 간에도 love her/him/you 를 쓰지만 in love 는 거의 연인관계에서만 쓰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거의'라고 하는 이유는 프레이저 쇼의 주인공인 켈시 그래이험이 'You don't just love your kids, You fall in love with them'  아이는 그냥 사랑하는  아니다. 사랑에 빠지는 것이다'고 한 적이 있기 때문인데, 이것은 표현적인 것이고 정말 대개는 연인관계로 쓴다.)


*참고로 passion은 기독교에서 Jesus의 '수난/고난'을 말하기도 하는데, 처음에 '십자가의 길'을 Passion of Christ이라고 해서  응? 지저스가 웬 열정? 하고 어리둥절했던 기억이다.


relationship


좋아하는 감정이 사랑이 되는 것을 한국어로 감정이 발전한다고 하는데, 영어로는 관계를 발전시킨다 develop한다고 하면 ( 좋았을  있는) 관계를 좋게 만든다는 말이다.

relationship은 그냥 '관계'라는 뜻이지만 보통 having a relationship을 가진다고 하면 연인관계를 말한다. 하지만 다시 한국말로 '관계를 가진다'라고 하면 또 다른 뜻이 된다. 그러니까 여기서 관계는 그 관계가 아니고 저 관계는 그 관계가 아니고 그런 관계이고 그렇다. 그러니 그게 그러면 그렇고 그런 관계가 되는 것이다. (응?)

관계의 이름 


요즘에는 한국에서도 애인이라는 말도 많이 쓰는 것 같던데, 그에 대응하는 lover이라는 말은 그냥 몇 번 만난 관계라기보다는 육체적인 관계도 암시하는 사실 문어체에서나 쓰이는 좀 느끼한(?) 말이라서 일부러 무슨 이유에서든 작정을 하고 쓰지 않고는 일상생활에서는 잘 쓰이지 않는다. 약간 tmi느낌.

적어도 미국인들은 나이가 아무리 많아도 그저 남자 친구/여자 친구 boy/girl friend를 선호하고, 요즘은 성소수자들도 있으니까 significant other, partner도 많이 쓰인다. 결혼을 해도 significant other, partner를 계속 쓰는 수도 있지만 결혼하면 물론 husband/wife/spouse을 쓸 수 있다. 동성의 남편/아내도 husband/wife이다. 뭐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다.


좋아하고 사랑한다는 감정은 적극적인 active 표현을 요하는 감정일 수도 있지만, 뚝배기처럼 진드근하니 가지는 친밀감일 수도 있다. attachment, intimacy. intimacy 일반적(?) 친밀감에도 쓰이긴 쓰이는데 성적인 친밀감에도 자주 쓰이므로 애착을 의미하는 attachment 사용하기에 보다 안전(?)하다.


남녀노소, 어떤 관계이든 지속적인 바람직한 관계는 뭐니뭐니 해도 companionship이다. 동반자, 동지애라고 번역하면 좀 드라이 해 보이지만, 언제든 믿고 찾을  있는 함께가는 관계보다 더 따뜻한 게 어디있겠나. 연인으로 처음부터 이런 관계를 찾으면 당연히 재미없으니까 사랑한다는 달콤한 기분과 ‘함께’, 이 사람이라면 살면서 힘들고 외로울 때 무조건 내 편이 되어줄 수 있겠다, 싶은 사람을 찾아보기 바란다.

사실 그런 사람이 두근두근 하게도 하는 법이다.

괜히 풍선 사서 트렁크에 넣는 짓 하지 말고 필요할 때 있어주세요.

   

compare to what?


그런데, 틀림없이 긍정적인 말인데 생각해보면 뜻밖에 조금 안 예쁜 말이 a보다 b  좋아하다. prefer a to b이다. 그 기능이 있는 말이지만 사람을 말할 때 비교대상이 있다는 것은 조금 치사하다.

누군가를 누구보다 더 좋다고 하는 것은 comparance비교로 깎여나간 그쪽과 함께 우위를 점한 쪽도 100퍼센트의 호의를 받는 것도 아니라는 글을 읽고 동의한 적이 있다. 그냥 좋아한다고, 사랑한다고 하면 되는데 비교급밖에 안됨으로써, 아니함만 못하는 감정이 된다. 누가 나를 누구보다 좋다고 해도 마냥 좋은 것이 아니라 그 누구를 볼 때마다 나는 미안해지기나 할 것이다.

사랑도 좋고 좋아하는 것도 좋으니, 그 사람을 그 사람으로 그냥 좋아해 주세요, 비교급으로 누구 '보다' 말고. 






좋아한다는 말의 반대말인 싫어한다는 말은 제일 먼저 다루었고, 다음에는 좋아하는데 올려다 보며 좋아하는 감정, 존경한다고 하는 감정의 실체(?)를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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