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라도 '후회'로 사전을 찾/거나 검색을 하실 양이면 첫빠로 척 나오는 말은 regret이다.
하지만 '걱정'이라는 감정에서처럼, '후회'라는 것은 사실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왜, 후회를 하는 거냐는 거에 따라 상당히 복잡하고 깊은 감정이다.
양념통닭이 도착하는 순간 튀김통닭 시킬 걸 그랬다 생각하는 정도와, 깨끗이 빨아 다린 영혼을 당근 마켓에 잘 찍어 올려 팔아서라도 타임머신 티켓과 바꾸고 싶은 정도는 다르니까 말이다.
후회라고 말하는 그 감정의 정황을 살펴보면,
실망 disappointment, 불만족 dissatisfaction에서 올 수 있다.
도착한 양념치킨에서 기대했던 '그 맛'이 안 나는 것이다. 다리는 없고 모가지만 다섯개다. 아 돈 아까와, 이 집에서 시키지 말걸 그랬나 후회한다.
uneasiness일 수도 있다. 마음이 불편하고 찜찜하다. 신년 계획으로 체중조절이라고 써 붙인 것의 잉크가 마르지도 않았다. 인생 한 번인데 이럴 것 없다고 호기 있게 먹긴 헸을지 모르지만 먹고 나면 반드시 후회한다.
conscience 양심에 걸려서 그럴 수도 있다. 없는 고향에 안 계신 노모는 모르지만, 친구에게 이번 달은 힘드니 다음 달에 갚는다고 한 돈을 생각하면 양념통닭이 좀 퍽퍽해진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돈거래는 하지 맙시다. 어머 얘 나 만원만 보태 줘 집에 가서 줄게, 도 하지 말자. 투 플러스원은 안 사도 안 죽지만 집에 도착해서 깜빡 잊고 안 주면 원 친구 마이너스다.)
하지만, 모든 실망이나 불만족이 치킨 구매로 인한 것에 불과하다면 얼마나 좋으랴.
사람은 살면서 후회를 한다. 뭐 어쩔 수 없다. 인생에 피할 수 없는 것 두 가지가 죽음과 세금이라지만 후회와 실패도 그중 하나다.
그러니 우리는 살면서 후회할 짓을 하고, 후회를 하고, 돌이켜 보고 reflect upon 반성을 한다.
사실 반추를 하고, 돌이켜 보는 작업이 반성이라고 볼 수 있지만, 후회를 한다는 것은 아무튼 반성으로 이어진다는 을 한다는 것이니까 반성을 검색해도 또 regret이 나오게 마련이다. (잠시 확인 후: 역시 맞군)
하지만, 반성에 해당하는 말 중 remorse는 단순히 특정 선택에 대한 후회, 파닭 시킬 걸, 보다는 조금 더 나아간, feeling guilty 죄의식을 가지고, '잘못했다'는 느낌이 들어있는 말이다. repentance, contrition 참회 쪽이다.
잘못했으면 반성을 해야 하고, 반성은 나쁠 것이 없지만, 먼저 죄책감에서 살짝 살펴보았듯이, 자기혐오나 자기 학대 self condemnation, self-disgust, self-accusation, self-reproach, 로 이어지면 건설적이지가 않다.
그저,
'필요하다면' 바로바로 apology 사과를 하고 ( 미안, 다음에는 니가 시키자는데서 시킬게),
잘못한 일로 일어난 문제가 있다면 전력을 다해 해결하고 fix the problem, (에어프라이어에 만두라도 좀 돌릴까?)
다시는 그런 문제가 안 일어나도록 노력하려고 애를 쓰려고 좌우지간 발버둥을 치는 게 가장 중요하다. (그 집 별점 팍 깎아서 리뷰 써)
(+ '해결'을 solve라고 외우셨겠지만 망가진 걸 고친다는 말로 쓰는 fix를 문제 해결에도 많이 쓴다. fix는 밥 한다고 할 때도 많이 쓴다. e.g, I have to help my mom fix lunch. 나 엄마 점심하시는 거 도와야 해. 점심을 고치다니 어머님 밥에다 무슨 짓을 하셨나고 생각할 필요 없다),
하기야 후회의 법칙은, 꼭 후회 좀 했으면 싶은 사람은 늘 남 탓, 환경 탓으로 둘러대며 잘도 살고, 자기 탓은 이젠 그만 좀 했으면 싶은 사람만 소심하게 자꾸 반성하고 후회하며 산다는 것일 것이다.
혈액형, 별자리, 무슨 무슨 알파벳으로 된 '인간 유형'은 나는 관심도 없고, 믿지도 않고, 알지도 못하지만, 단순히 말해 사람이 기본 성향이라는 것도 있고, 그 사람이 그렇게 만들어진 배경도 관련이 있긴 할 게다. 사람 팔자가 태어난 시로 결정될 리가 없다는 거지 개인 성향이 없다는 것은 아니니까.
연구결과에 의하면, 사람의 기분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잘 알려진 테스토스테론이나 세로토닌 등도, 이런 호르몬의 분비와 더불어 환경적인 요인이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하니까. 가령, 남자에게 같은 양의 남성 호르몬이 분비된다고 해도 남자들과 있으면 괜히 난동을 피우게 할 수 있고, 여자와 함께 있으면 잘 보이기 위해 멋진 신사적인 행동을 하게 하는 식이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지만, 자꾸 술김에 어쩌고 하는 얄궂은 핑계 대지 말고, 남에게 잘못했다면 사과할 건 하고, 오늘부터 잘 하자, 고 마음을 먹는 게 최선이다.
혹시라도, 현재 후회가 발전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삶에 방해가 된다면, 이 두 가지 중 한 방법을 써서 그 수렁에서 헤어 나오시길 바란다.
1. 니 잘못이 아니야
ㅈ마켓 추천 목록이나, 추천 유튜브 채널만이 아니라, 인생도 알고리듬으로 이루어져 있다.
보통 뭔가를 선택하면 그걸로 인해 새로운 문이 열린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은 선택의 폭이 줄어드는 것이다.
가령 내가 원하는 옷을 찾기 위해 사이즈를 선택하는 순간, 그에 해당하는 상품 수가 한번 줄어들고, 색을 선택하면 더 줄고, 가격대를 선택하면 더 줄어드는 것처럼 말이다. 즉 하나의 선택 option은 그 선택으로 인해 조금 더 좁아진 선택의 폭을 주고, 그 안에서 나는 다시 선택을 하게 되므로 사실은 자유의지라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궤변일까도 있다.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는 비유가 그래서 나오는 것이다.
문제는, 그것이 나 자신이 선택한 것이 아닐 수도 있을 때다.
집안 여건이 안 좋아서 여러 가지로 불리한 조건일 수도 있고, 가슴에 손을 얹고 맹세하건대 정말 코피터지게 열심히 했는데도 이상하게 영 결과가 잘 나오지 않았을 수도 있다. 신체적인 장애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고, 심지어 아니할 말로 코리안으로 태어난 것도 좋든 싫든 내가 원한 것은 아니다.
나름대로 신중하게 좋아하는 스타일의 선택을 하고, 예산을 뙇! 넣었더니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가 떴던 기억은 다 있으실 것 아닌가.
그러니 우리는 언제나 그 안에서 최대한,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뿐이다.
열심히 바르게만 살려고 노력하며 살고 있다면 (중요 : 같은 것을 보고도 혹자는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를 배우는데 혹자는 나도 그렇게 해서 남을 등쳐먹어야지,를 배우듯, 아무리 데고 베어도 놀랍게도!! 세상이 돈짝만 한 사람이 있다!!), 내가 선택한 것들은 모두 그 순간에서 최선을 다한 것일 것이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공부를 좀 열심히 할 걸, 돈을 좀 모을 걸, 그거 먹지 말걸, 에서부터 시작해서, 그때 그 사람에게 그 말을 하지 말걸, 그런 행동을 하지 말걸, 에 이르기까지 정말 냉정하게 이 잡듯 나 자신을 살펴봐서,
내가 그때는 정황상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결론이 나오면,
고마, 털어버리자.
불법적인 일만 아니라면, 어리석은 짓도, 후에 제대로 파악하고 반복을 안 할 생각이 굳다면 '정말 몰랐다'는 것도 충분한 이유다.
한국은 가부장적이고 아직까지 기본적으로 위계사회기 때문에, 반복되는 죄책감을 심는 사람이 있다면 때로는 냉정하게 관계를 끊어야 할지도 모른다.
과연 내가 이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를 생각하고,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바뀌지 않은 관계라면 set the boundary 각자의 영역을 정해서 선을 긋는 게 좋다.
번번히 말하지만, 가족도 마찬가지다. 평등하지 못한 관계에서 한쪽만 항상 고생하는 것을 주변에서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선을 긋고 나면 처음에는 힘들지 모르지만 오히려 관계도 개선될 수 있고 '미움'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더라.
가족 다 버리자는 캠패인이 아니다. 그러니 소중한 관계는 잘 지켜야 '후회'가 없다는 말이다. 나부터 가족에게도 '평등한 관계'로 예를 갖추어 잘하자. 괜히 '기라'는 게 아니라, 가까운 사이일 수록 먼저 의사를 물어보고, 약속은 반드시 지키고, 부탁은 정중하게 하자. 최근에 제이디 스미스의 ' White Teeth'라는 책에서, "그 '사랑'이 문제지."하고는, '사랑타령' 얘기가 나오나 했더니,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잘못하거든."이라는 말이 이어져, 끄덕끄덕한 일이 있다.
반성할 것이 아닌 것을 반성하지 말자.
Move on!
딱히 잊어버리라는 것도 아니고 forget about it, 움직여 간다, 즉 다음 일로 그냥 넘어간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대가 명백한 잘못을 반복한다면, 혹은 똑같은 지적을 '이상하게'(!!!) 자주 받는다면,
2. 니가 잘못했네!
자기 탓하지 말라고 해놓고 이건 또 뭔가 할지 모르지만, 때로는 결국 내 탓이라고 생각하고 인정을 함으로써 변화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내가 가진 게 부족해서 못 가진 것도 못 한 것도 있지만, 거기다 더해서 내가 노력이 부족했든 실력이 부족해서 이루지 못한 것도 분명 있다.
나쁜 습관이 있을 수도 있고, 너무 힘들어서라도 노력도 하지 않고 쉽게 해보려고 한 적도,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기분대로 행동하고 어떻게 되겠지 하고 근거 없는 낙관을 보인 적도, 맨날 저질 체력이라고 징징거리지만 분명 한밤중에 그 치킨을 먹고 운동도 안 한 것은 너고, 누군가 나만 미워하는 게 아니라 분명 그 사람이 싫다고 한 것, 하지 말라고 한 것을 무시하고 한 적도 있을 수 있다.
불법주차 해놓고 나만 재수가 없었다고 하지 말자. 가령, 미성년자가 술 마시면 안된다는 건 보통 '몰랐다'기 보다는 호기심이 나서, 그런 법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는 것을 인정하는게 중요하다. (가족들하고 맥주 한 캔 갈라 먹고, 친구들하고 한 번 먹어본 것 정도를 가지고 얘기하는 게 아니라, 불법 구매를 하고, 상습적으로 마시고, 학교에 가져가서 일을 만드는 것은 기본질서 존중이 안되는 태도라는 얘기라는 거 아시죠.)
나쁜 짓을 하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지옥에 가니까 '착하게' 살아야 하는 게 아니잖나. 유대인과 무슬림과 크리스천은 정확히 같은 유일신을 믿고 있지만(구약은 거의 일치함), 그 둘 중 천국의 개념을 가진 것은 크리스천뿐이고 그 신의 이름으로 그 많은 전쟁과 죽음이 일어났다. 세상은 요지경
사후는 모른다. 단순히, 더불어 '사는' 사회기 때문이다.
작든 크든 잘못을 했으면 후회를 하자. 통한을 하자. 자괴감에 빠지자. 그때는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자기를 잘도 봐주지 말자. 자기애는 그런 데 쓰는 게 아니다.
인정을 해야 바뀐다.
내 탓하지 말라고들 하지만 적확한 내 탓은 중요하다.
그렇게, 때로는 완전한 내 탓을 인정해야 거기서 나에 대한 forgiveness용서도 시작된다.
어마, 후회할 것이 하나도 없으시다고요? 어머 그런 사람들일수록 2번을 참조해야 하던데, 아무튼,
Good for you. How nice. (이전 어느 글에 썼는데, 'good for you' 'How nice!'는 대개 ' 너한테 좋구나(직역), '멋지구나' 이런 칭찬이 아니라, 아이구 그러셔요? 좋으시겄수, 같은 약간 놀리는 어감이다. '대개'라고 했다.)
*참고로, 향수 nostalgia도 전혀 다른 동네 얘기 같지만, 고향을 그리워한다는 것도, 아련하게 돌이킬 수 없는 과거를 돌아보는 것이니까 뭔가 아쉬움이 있어서 생기는 감정일 것이다.
늘 나도 안고 사는, '떠나왔음'에 대한 잔잔한 회한.
아무려나, 사람 사는데 후회를 피할 수는 없는 모양이다.
후회라는 감정은, '누구 잘못인가',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감정이다.
그러다 보면 분노와 아픔으로 이어지기 쉽다. 제일 먼저 '미움'의 감정을 다루었지만 그 또한 물론 분노와 아픔에서 만들어지는 감정이다. 바른 후회와 용서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미움으로 이어지기 쉽고, 그래서 뒤틀린 인간의 감정은 가해자가 피해자를 미워하게 만들기도 한다.
다음에는 이, 분노와 아픔에 대해 차례로 생각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