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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서은 Feb 17. 2023

정신적 기능의 두 가지 원칙

*프로이트 전집 11권, <정신분석학의 근본 개념> 개정 전 구판 기준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정신분석학의 근본 개념>의 첫 번째 챕터인 <정신적 기능의 두 가지 원칙>은 쾌락 원칙과 현실 원칙을 구별하고 그것들을 규명하기 위한 소논문이다. 이전 글인 <과학적 심리학을 위한 구상>과 <꿈의 해석>에서 주로 그 내용을 이끌어 내었으며 꿈의 초심리학에 관한 논문으로 이어지는 과도기적인 성격을 띤다.


본 챕터는 임상 사례에서 다시 이론적 작업으로 들어서는 계기가 된 소논문이며, 주로 현실원칙의 수용으로 일어날 수 있는 여러 정신적인 결과들을 짤막하게 언급하고 있다.






프로이트는 신경증 환자의 특징을 현실 기능의 상실로 규정한다. 신경증 환자들이 현실에 등을 돌리는 이유는 현실 전체 혹은 현실의 어떤 부분을 견뎌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신경증의 발병과 현실로부터 등을 돌리는 것에는 어떤 상관이 있는가? 프로이트는 ‘억압’이라는 기전을 통해 이것을 설명하고자 한다. 즉 신경증의 발생 과정에 억압을 도입함으로써 현실 기능의 상실과 신경증을 결정하는 요인 사이의 관계를 규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억압은 무엇이고 현실성이란 무엇인가? 먼저 억압의 과정이란, 불쾌한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 사건으로부터 물러서는 정신 과정을 의미한다. 이러한 과정, 즉 억압은 “쾌락원칙 때문에 생기는 결과”(13p)이다. 그러나 쾌락 원칙의 기능에 억압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유아기 시절의 아이는 쾌락 원칙에 의해 환각 속에서 만족을 추구할 수도 있다. “유아들은 대개 내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는 환상을 지니”는데, 환각 속에서 만족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외부 세계와 단절되어야 한다. “외부의 자극을 차단시켜 주는 역할을 하는 장치는 내부의 불쾌한 자극을 외부의 자극인 양 취급하고 그 자극들을 외부 세계로 밀어내는 <억압>과 상관관계가 있”(14p)다.


그러나 이 환각을 통한 만족은 곧 포기되어야 할 대상이다. 여기에서 바로 현실이 출현하게 된다. 우리가 환각을 통한 만족 대신 외부 세계에서 현실적인 상황을 설정하고 그 상황 속에서 현실적인 변화를 꾀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 과정은 현실 원칙의 도입으로 가능해진다. 이로써 인간은 정신에 제시되는 것이 불쾌한 것일지라도 현실성이 있는 것을 추구할 수 있게 된다.



(1) 현실원칙의 결과: 의식 / 주의력 / 기억 / 판단 / 행동 / 사고 과정

외부 현실이 중요해질수록 외부 세계를 지향하는 감각 기관, 그리고 감각 기관과 관련된 의식이 중요해진다. 의식은 쾌와 불쾌만 가리는 것이 아니라 감각적 특질들까지 배우게 되는 것을 말한다. 어떤 긴급한 내적 욕구가 일어나더라도 외부 세계에 익숙해지기 위해서, 외부 세계를 탐색하는 특수한 기능이 시작되는데 이것을 프로이트는 “주의력”이라고 부른다. 이 기능은 감각 인상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그 감각 인상이 나타날 곳을 미리 찾아가서 맞이하는 기능이다. 주의력과 더불어 기록 체계가 도입되었을 것이고 이 기록은 우리가 기억이라고 부르는 것의 한 부분을 이룬다. 주의력과 기억이 서로 연관되는 이유는 감각 인상이 나타날 곳에 미리 찾아가기 위해서는 나타날 감각 인상이 무엇인지 우리가 기억하고 있어야하기 때문이다. 

이어서 쾌와 불쾌를 구분하던 “억압의 자리에 <공정한 판단>이 자리 잡는다. 그 판단 과정은 주어진 표상이 진실인지 아닌지, 즉 그 표상이 현실에 부합되는 것인지 아닌지의 여부를 판별한다.”(15p)[1] 즉 현실 원칙에 의해 외부의 현실 세계가 중요해짐으로써 내 안에 있는 표상이 외부의 현실 세계에도 존재하는지 아닌지를 판별하게 된다는 말로 바꾸어 써볼 수 있다. 이 판단 역시도 기억과의 비교를 통해 가능해진다.


현실원칙의 지배를 받게 되면서 운동을 통한 발산 역시도 쾌락원칙의 지배 하에 있을 때와는 다른 새로운 기능을 하게 된다. 쾌락 원칙의 지배 하에 있었을 때에는 자극을 신체 내부로 보냄으로써 자극의 증가를 낮추는 역할을 했다면, 현실 원칙이 도입된 이후부터 운동을 통한 발산은 현실의 적절한 변화에 이용되게 된다. 이로써 운동을 통한 발산은 행동으로 전환이 된다. (운동을 통한 발산 -> 행동) 시간이 흐를수록 이 행동 또한 규제할 필요성이 대두되는데(학교 수업 때 학생들이 멋대로 행동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어야 하는 예를 들 수 있을 듯하다) 이 규제의 역할을 <사고> 과정이 담당하게 된다. 자극의 증가로 생기는 긴장을 견뎌내고 행동을 지연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2) 현실 원칙의 실패

그러나 우리 인간은 쾌락의 근원을 포기하려 들지 않는다. 현실 원칙이 도입되지만 그와 동시에 사고 활동의 한 부류가 떨어져 나가가게 되는데, 이 떨어져 나간 부분은 현실성 검사에서 벗어나 오로지 쾌락만을 추구하게 된다. 이것이 백일몽으로 이어지다가, 현실 대상에 대한 의존을 포기하게 만드는 <환상>이 된다.



(3) 성적 본능의 발달 지연, 신경증의 발병

쾌락 원칙을 현실원칙으로 대체하는 일이 자아 본능에서 진행되는 동안, 성적 본능이 자아 본능에서 이탈하는 과정이 시작된다. 처음에 성적 본능은 자가 성애Autoerotik적인 태도를 보이며 주체 자신의 신체에서 만족을 얻는다. 따라서 현실 원칙의 도입으로 인한 좌절을 성적 본능은 겪지 않는다.  그러다 외부 대상이 찾는 과정이 시작되면서 성적 본능은 잠재기에 들어가게 되고, 사춘기까지 성적 발달은 지연된다. 자가 성애와 긴 잠재기의 결과로 성적 본능은 그 발달이 지연되고 쾌락 원칙의 지배를 오랫동안 받게 되는 것이다. 이로써 성적 본능과 환상, 그리고 자아본능과 의식의 활동 사이에 연관관계가 형성된다.


자가 성애가 지속되는 기간 동안, 기다림을 요구하는 현실적인 만족보다는(만족의 지연) 좀 더 쉬운 순간적이고 상상적인 만족을 얻으려는 성향이 유지된다. 즉 자가 성애의 기간 동안 성적 본능은 쾌락 원칙의 지배를 받게 되고, 이 기간 동안 쾌락 원칙의 기능이라고 할 수 있는 억압이 전권을 행사하게 된다. 억압이란 어떤 표상의 리비도 집중이 불쾌감을 조장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 의식에 그 표상이 감지되기 전 표상을 <원상태 그대로> 억제하는 과정을 일컫는다. 여기서 현실에서부터 등을 돌리는 신경증 발병의 원인이 밝혀지게 된다. 성적 본능으로 하여금 현실을 존중하도록 가르치는 교육이 지연되는 것에서, 또는 그와 같은 지연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4) 쾌락원칙 극복의 실패: 종교와 학문


쾌락원칙을 현실원칙으로 대체한다고 해서 쾌락 원칙을 완전히 폐기하는 것은 아니다. 현실 원칙을 도입함으로써 인간은 불확실한 순간적인 쾌락은 포기하게 되지만, 나중에 더욱 확실한 쾌락을 보장받게 된다. 예컨대, 세속적 쾌락을 포기하면 내세에서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종교적인 교리가 정신의 원칙을 신화적으로 투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쾌락원칙을 극복하는 일에 가장 근접해 있는 것이 학문인데, 학문 역시 지적 쾌락을 제공하고 실제적인 이득을 준다는 점에서 쾌락 원칙을 철저히 극복했다고 할 수는 없다.



(5) 교육


교육은 쾌락 원칙을 극복하고 현실 원칙으로 대체하도록 하는 동기와도 같다.



(6) 예술에서 쾌락원칙과 현실원칙의 화해


예술가란 처음부터 현실이 요구한 본능적 만족의 포기를 받아들일 수 없어 현실에서 등을 돌린 사람들이다. 따라서 그는 자신의 작품 속에서 환상과 소망을 구현하게 되는데, 엄밀히 말해 예술가가 그렇게 될 수 있는 것은 예술가 역시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현실에 의해 강요된 포기로 불만을 느끼기 때문이다.



(7)


쾌락 자아에서 현실 자아로 변화하는 동안, 성적 본능은 최초의 자기 성애에서 대상애로의 전환을 겪는다. 자아와 리비도 발달의 어떤 국면에서 어떤 억제가 일어나느냐에 따라 신경증의 형태가 달라질 수 있지만 프로이트는 아직 연구되지 않은 부분이라고 하며 논의를 더 전개시키지 않는다.


억압(무의식) 과정의 특징은 현실성 검사를 완전히 거부한다는 것이다. 상상으로 만들어낸 현실을 실제 외부 현실과 동일시하기 때문에 무의식의 환상과 무의식적인 것이 된 기억을 구별하는 일은 어렵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현실의 기준을 억압된 정신 구조에 적용시켜서는 안 된다. 현실성이 없다는 이유로 증상 형성 과정에서 환상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과소평가해서도 안 된다.




[1] <부인>에 언급되는 존재판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지 추정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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