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쓰는가? ‘무엇을 쓰는가’가 아닌 ‘왜’에 대한 물음은 글쓰기의 이유를 묻는 것이다. 글을 쓰는 이유는 즐겁기 때문일 수도 있고 나를 알기 위한 여정이기 때문일 수도 있고, 또 때로는 정치적인 투쟁을 목적으로 할 때도 있다. 아마도 그것은 각각의 목적에 따라 즐겁기 위해 쓴 글이 되기도 하고 나를 알기 위해 쓴 글이 되기도 하고 정치적인 발언을 공론화시키기 위해 쓴 글이 될 것이다. 글쓰기에는 하나의 목적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한 사람의 이름 아래 귀속되지만 다양한 목적에 따라 각기의 글이 생산된다.
따라서 글쓰기는 분열적이다. 한 편의 글은 나의 전체를 대변하지 않고 그 뒤로 말해지지 않은 것을 남긴다. 글을 쓰면서 나는 계속해서 분열된다. 문장 하나가 덧붙여질 때마다 전체로서의 글은 조금씩 변형되어 나간다. 완성된 결과물은 내가 의도했던 것에서 아주 조금 빗겨 나 있고 그래서 그것은 나의 의도를 온전히 반영하지 못한 것인 동시에 나의 작품으로, 나를 분열시킨다. 글을 쓰는 동안 몰입의 형태로 자아는 망각되고 나는 다시 수많은 문장들로 갈라진다. ‘나중에’ 다시 읽었을 때 내가 쓰지 않은 것만 같은 문장들이 튀어나와 나를 당혹시키는 방식으로, 글쓰기는 나를 타자화시킨다. 나를 나로 만드는 동시에 나에게 속하지 않는 것이 생산물로써의 글이다. 나는 분열되고 자아를 잃기 위해 글을 쓴다. 나에게 있어 글쓰기는 자아를 잃는 여정이다.
하나 이상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어떤 글을 쓰고 난 후 그것을 내가 가지고 있는, 내가 내세우고 있는 이름들 중 어느 것에 귀속시켜 내보일지를 고민한다. 어떤 글은 명확히 구분되어 하나의 이름으로 내세울 수 있는 반면 어떤 글은 그 경계가 모호하여 하나 이상의 이름을 대변하기도 한다. 글쓰기는 나를 분열시키는 동시에 중첩시키고 그리하여 또 다른 이름을 만들어낼 것을 요구한다.
글을 쓰는 행위 이면에는 욕망이 있다. 수많은 이유와 목적을 가져다 붙여도 궁극적으로는 ‘쓰고 싶기’ 때문에 글을 쓰며 그것은 존재의 드러남에 대한 욕망이기도 하다. 한 편의 글은 자기 주장인 동시에 자기 변호인 것으로, 나의 일면을 포획하여 드러내는 행위이다. 분열되고 갈라진 문장과 글 사이의 틈새로 존재가 새어 나온다. 표현되지 못한 부분은 말해지기를 끊임없이 요구한다. 그리고 글을 쓰게 만드는 힘으로 작동하는 소거된 부분은 새로운 나를 출현시킴과 함께 나를 지워 버린다.
또한 글쓰기는 독자를 가정한다. 읽어 줄 사람이 없다고 할지라도, 쓴 글을 읽는 최초의 독자로서 내가 있다. 쓰는 이가 읽는 이에게 기표를 건네는 것처럼, 과거에 글의 형태로 남겨두고 온 내가 읽는 시점의 나에게 기표를 건넨다. 거기에는 시간 상의 차이가 있다. 그것은 하나의 암호문이 되어 나에게 해독할 것을 요구한다. 글을 쓴 시점의 어떤 부분은 재현되지만 어떤 부분은 망각되어 버리기 때문에 그 안에는 항상 미지의 무언가가 있다. 글을 쓸 당시의 나는 독자가(미래의 내가)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미지의 것을 담아 메시지를 보낸다.
다른 분들의 글은 아래 사이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