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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비아띠 Jul 21. 2023

서피비치에서 고무신을 신고 춤을 추는 여자

"다음은 없어. 지금만 있는거야. 지금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거야"



"어머 어머 저거 고무신이야?"


중년의 여자가 놀란 음성으로 말한다.


그 옆에 있던 내 동생이 웃으면서 답한다.


"네, 저희 엄마예요!



-

젊은 사람들이 바다를 보면서 맥주 한 잔을 즐기고 신난게 몸을 흔드는 이곳은 서피비치다.

엄마를 모시고 오랜만에 동생과 셋이 여행을 떠났다. 우리가 엄마의 고무신을 마주한 건 아마 내가 고등학교 때인 걸로 기억한다.


엄마가 물어봤다.

"엄마가 고무신을 신으니까 좀 그렇지? 창피해?"라고. 친구들을 마주칠 일도 없었지만 사회라는 것을 학습하고 있던 어린나이의 우리 남매는 선뜻 "안 창피해"라고 말하기가 어려웠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왜냐하면 어느 음식점을 가거나 가게에 들어가도 사람들은 엄마의 차림새를 훑고는 말투가 변하기 일쑤였으니 말이다. 사실 엄마가 물어보기 전까지는 몰랐는데 어른들이 이렇게 반응하니 '고무신이 창피한 편에 속하는 거구나'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사람의 고정된 편견이 이렇게나 무섭다니.

엄마에게 몇 번 값 나가는 신발 선물도 해봤지만 엄마는 일하다보면 금방 더러워진다며 선물한 신발을 신지 않았다. 조금 서운한 마음도 들었지만 이해도 되서 그 다음에는 신발을 선물하지 않았다.



그런 엄마가 이번 여행에도 고무신을 신고 왔다. 흐린 날 속초 바다에 도착해 모래사장으로 밀려들어오는 파도의 부스러기에 발을 적실 때, 엄마가 신고 온 신발이 고무신이라는 걸 까맣게 잊고 있었다. 어쩌면 고무신 위의 꽃무늬 그림이 예뻐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

아주 갑자기 떠난 여행이라 계획을 철저하게 세우지 못했거니와 양양에는 서피비치가 가장 큰 볼거리라 엄마를 모시고 갔는데. 디제이의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서피비치의 맥주집을 등지고 앉아 들어가지도 못하는 물살 센 바다를 구경하고 있었다.


갑자기 엄마가 "나 춤추고 올게"라고 해서,

'젊은 사람들이 이제 춤을 추기 시작했나보다'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저 말 한마디가 엄마의 그루브를 꺼내는 시작일 줄이야.


한참이 지나도 오지 않아서 뒤를 돌아보았을 때 텅빈 서피비치 공터가 사람들로 가득 메워져있었다. 혼자 있기 심심해서 다가가보니 사람들이 둘러싼 정 가운데에 엄마가 땡땡이무늬 바지를 입고 신나게 몸을 흔들고 있었다.

엄마 어딨게요:)

한바탕 춤을 추고 땀에 흠뻑 젖은 엄마가 우리를 향해 왔을 때 동생이랑 나는 "엄마 대박이다!"라며 신나서 웃었다. 우리는 엄마가 멋지다고 생각했고 엄마가 자랑스러웠다. 엄마는 남들 눈치보느라 현재를 즐기지 못하는 건 바보같은 거라며, 그걸 알려주고 싶었다고 했다.


이 말은 크게 여운이 남아서, 숙소로 돌아가는 30분 내내 동생과 나에게 큰 영감이 됐다. 60을 향해가고 있는 나이에 아무도 없는 공터에서 한 아줌마가 춤을 추니 처음에는 키득키득 거리던 젊은이들이 같이 나와 춤을 시작하는 일이라니. 너무 멋지다.


엄마는 말했다.

"다음은 없어. 지금만 있는거야. 지금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거야"


그날밤 엄마는 누구보다 강한 여운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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