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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은 Aug 07. 2020

정신 차려. 이 각박한 세상 속에


 “잘 지내셨어요?”

  7개월 만의 인사가 오간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과 뜨끈한 기름 냄새가 뒤섞인 집안. 오늘은 시댁 제삿날이다.


 구정 이후 집안 어른들을 뵙는 게 처음이다. 제사가 여름에 몰려있기도 하고 올해는 윤달이 끼여서 제사 날짜가 미뤄진 탓도 있다. 물론 코로나도 한 몫해서 집안 행사가 일절 없었다.

 오랜만에 만났지만 정겨운 인사와 따뜻한 안부를 주고받으며 앞치마를 입었다. 내가 시집와 7년째, 여자 5명은 부엌에서의 호흡이 척척이다. 결혼해 처음 음식 장만에 참석한 날은 ‘여긴 어디? 난 누구?’의 늪에 깊이 빠졌었는데 이젠 큰집 살림 구석구석이 훤하다. 익숙하게 일을 해나가다가 덜컥! 나의 고질병이 튀어나온다.

 “나는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풍요로운 기름 냄새에 걸맞지 않은 자기 성찰에 나는 발목을 잡힌다.


 큰어머니 댁은 새 아파트다. 넓고 쾌적하다. 시스템에어컨이 더위를 잡아주고 무진장 큰 TV가 아이들을 돌봐준다. 어른들은 나를 예뻐하고 손위 동서는 재밌고 친절하다. 평화롭고 평화로운 가운데 나는 내 기분에 집중해본다.

 “나는 지금 행복한가?”


|| 낯설고 불만족스러운

 개학 기약은커녕 확진자 발생과 동선에 촉각을 세우던 코로나 방학 기간에 나는 브런치에 글을 하나도 쓰지 못했다. 그때 나는 텅 빈 집에서 마음껏 글 쓰고 청소하는 게 소원이었다.

 쓸고 닦는 일에 마음이 얽매이자 ‘청소를 기록하자-> 청소 유튜브를 해보자’로 생각이 동하게 되었다. 격일 등원을 지나 매일 등원의 기쁨이 이어진 뒤에는 빨래와 반찬, 간식까지 영상으로 찍고 있다. 찍어 둔 영상을 확인할 때 화면 속 내가 낯설다. ‘알뜰한 주부, 다정한 엄마. 저 여자는 누구지?’ 그럴 때면 또다시 자기 성찰의 시간.

 “나는 내 삶에 만족하고 있는가?”


 다시 20대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전문직을 가지겠다. 절대 결혼하지 않고 출산하지 않을 것이다. 강아지 한 마리, 화분 하나도 키우지 않으며 내 밥줄 아닌 모든 것에 책임감 없이 살 것이다. 내 일에 충실하고 내 집을 깔끔하고 감각적으로 유지하리라.


 지나온 시간을 후회할수록 현재의 만족도는 떨어진다. 지금 아는걸 그때도 알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목소리를 팔아버린 인어공주만큼이나 간절하게 나는 시간을 되돌리고 싶지만 변덕이 심하고 낯선 것에 호기심이 강한 내 성격이 바뀌지 않는다면 나는 어떤 삶에서도 갈증을 느낄 것이다.


|| 솔직함에 대한 집착

 나는 영상을 편집할 때 혹시라도 내가 좋은 엄마로 보일까 걱정이 된다. 집안일은 현재 내가 잘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일 뿐 내가 좋은 엄마라서 아이들을 위해 희생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학생이 공부하고 직장인이 일하는 것만큼 전업주부가 식구들 밥 챙기고 집안을 단정케 정리하는 건 당연하다. 나는 당연한 일을 하는데 그걸 영상으로 찍어 올리니 스스로 생각해도 참 별스럽다. 이렇게 스스로에 대한 불만이 생성된다.

 스스로를 꾸짖고 불만을 토해내며 나를 다져나갈 때 반골기질이 슬며시 흘러나온다.

 “내가 뭐라고 고매한 척 자기 성찰인가”

 나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게으르고 미련한 게 나의 본질인데 자꾸 고상한 사람들과 어울려 다녀서 내가 꽤 괜찮은 사람인척 해 보이는 게 싫다.

 더 솔직히는 정토회에서 배운 대로 행복을 전하는 수행자이고 싶고 아이들에게 더없이 자상한 엄마이고 싶은데 나는 진실로 내가 바뀌길 원하지 겉모습만 ‘척’하는 게 싫다. ‘척’은 결국 다 들키고 만다.


|| 행복에 대한 고찰

 나는 얼마나 운이 좋은지 부족한 노력에도 거저 얻은 게 많다. 그중 최고는 남편이다. 그냥 좋은 사람 같아서 결혼한 남자인데 같이 살아보니 남편으로 아빠로 참 괜찮은 사람이더라. 간혹 잘 생기고 돈 잘 벌고 집안까지 좋은 남의 남편을 보면 내가 선택을 잘 못했나 싶을 때도 있다. 그러나 다시 돌이켜 생각하면 내 주제에 비해 내 남편은 몹시 훌륭하다. 남편을 잘 얻었다는 것은 인생에 두 번째 단추를 잘 채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남편이 주는 생활비는 곧 안락함이고 남편이 주는 자유시간은 육아 해방이며 남편이 주는 사랑은 내 자존감이 된다.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미련과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욕심을 멍에로 안고 사는 멍청이가 되지 않기 위해 현재를 인정하고 이 정도 사는 것에 감지덕지한다. 나는 ‘지금 내 인생’을 바로 보고 거기 맞춰 살겠다.


|| 병풍 앞에서

 제사가 시작되었다. 낮에 음식 하던 5명의 여자는 물러서고 남자 열댓 명이 제사상 앞에 섰다. 밥그릇에 숟가락을 꼽고 술잔을 올릴 때마다 젓가락을 옮겨드리며 제사를 모신다. 병풍 앞에 두 번 절하는 모습이 우스꽝스럽다면 집안 어른들 모두를 욕보이는 말이 되겠어서 참는다. 그분들은 모두 진지하고 경건했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고인과 언제까지 유효할지 모르는 시간을 사는 사람들이 화려한 제사상을 마주하고 있다. 나는 제사상에서 조금 물러나 그 의식을 관찰할 수 있음에 감사와 안도가 나왔다. 나는 살아있다. 죽지 않았다. 심지어 정신이 깨어있다. 지금에 깨어있다.


 마음이 동 하는 무언가에 최선을 다하는 지금. 절대 먼 미래의 꿈으로, 이루지 못했다고 자책해야 할 미련으로 남기지 않고, 지금을 살뿐. 밤이면 꾸벅꾸벅 졸음이 쏟아지도록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살뿐. 


#유튜브 #정가득


https://youtu.be/Xn1yQVIXmn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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