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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은 Apr 19. 2020

봄내음 가득한 땅에 태반을 묻다.

포레스트 태반



 “벚꽃이 지고 있어”

 출근을 위해 매일 나가는 남편이 봄소식을 전해왔다.

 ‘그...그렇구나..’

 나는 너무 오래 셀프 자가격리 상태로 있었다. 주말에 드라이브라도 하자고 약속을 하고 어디로 가볼까 고민해보는데 냉장고가 눈에 들어왔다. 냉동실에는 아직 그것이 있다! 가정 출산으로 태어난 둘째의 태반이 2년 넘게 냉동실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고향땅에 묻겠다며 숙제로 가지고 있던 일이었다.



 첫 아이 때는 고향에 할머니가 계시니 찾아뵐 기회가 많았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반출된 태반을 밀폐용기에 담아 냉동실에 넣어두었다가 생후 7개월 무렵 멀고 먼 고향 땅에 묻어 주었다.

 시금치 농사를 끝내고 한번 갈아엎은 땅에 태반을 묻어주었을 때 첫째는 앙! 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아기띠에 안겨있던 아기가 갑갑해서 울었다는 게 누가 봐도 사실이었지만 우리 부부는 아기가 ‘자기 살던 집’을 알아보고 그리워 울었다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생명의 신비란 사람을 바보로 만들기도 한다. 임신테스트기에 2줄을 보고 너무 좋아서 소변 묻은 그것을 가슴에 안아보는 일이나 꿀렁거리는 태아의 태동에 축구선수되야겠다며 미래를 점 쳐보는 일들이 그렇다.


 그날 우리가 쓴 소설도 그랬다. 산부인과 첫 초음파 때

 “아기집 보이시죠?”

 했던 그 작은 주머니가 우리 아이 크기에 맞춰 쑥쑥 자라주었고 든든하게 아기를 지켜주었다! 도시에 산다는 사정 때문에 냉동실 신세로 지내다가 드디어 자연으로 돌아가는 순간, 엄마의 달콤한 젓과 아빠의 다정한 손길에 잊고 있던 옛 집, 아기의 고향과 같은 곳, 그것을 본 아기는 울음을 터트린 것이다!


 (임신 초기 아기집과 태반은 다르다거나 태반이 ‘아기 살던 집’이 아니라는 말은 여기서 필요치 않다. 우린 이미 바보가 돼버렸으니까.)

 

 

 둘째의 태반도 첫째의 태반이 묻힌 밭에 묻어주었다. 돌아가신 할머니를 대신해 이웃분이 지으시는 밭에는 구멍이 숭숭 난 검은 비닐이 덮여있었다. 비닐과 비닐 사이 이랑에 태반을 묻을까 하다가 제일 구석 자리, 농부의 발길이 이따금 다녀갈 곳으로 자리를 정했다. 태반이 흙으로 돌아가는 동안 방해를 받지도 끼치지도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다.


 곡괭이로 땅을 깊게 파서 태반을 툭 던져 넣고 다시 흙을 덮은 뒤 아이들에게 꾹꾹 밟아달라고 했다. 아이들의 발길이 지나간 흙은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입을 앙다물고 조용했다. 순식간에 2년을 벼른 일을 끝내고 비닐과 비닐 사이 이랑을 걸어 나왔다.

 “너 살던 집을 묻은 거야”

 나는 힘주어 말했지만 둘째는 미동도 없었다. 첫째 때 썼던 소설은 정말 소설일 뿐인가 보다.


 

 언젠가부터 탯줄의 일부를 부모가 기념으로 보관하는 일이 많은데 사실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 어디서 들은 말로는 아이의 생명이 위중할 때 보관해둔 탯줄을 먹이면 산다고 하던데 실제 그런 이유로 탯줄을 보관하는 이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다만 10개월간 엄마와 아기의 연결고리였으니 그 일부를 간직하려는 게 아닐지..

 

 연결고리를 보관하고픈 감성을 가진 부모라면 태반에도 맘을 뺏기기 쉬울 것이다. 태반은 아름답기까지 하니까!



 4kg의 아기를 지지하고 있었던 태반이니 그 크기가 꽤 크다. 바람 빠진 풍선같이 쭈글쭈글해진 상태이지만 붉고 진한 피를 뒤집어쓰고 있어서인지 여전히 생명력이 느껴졌다.

 회색빛의 탯줄도 싱그럽기는 마찬가지다. 갓 낳은 아이를 품에 안았을 때 탯줄을 만져보니 태맥이 빠르게 쿵쾅거리고 있었다. 2년을 넘게 묵혔음에도 싱그러운 그 줄을 보자 미끈하고 따뜻한 감촉이 다시금 떠올랐다.


 조선 왕실에서는 태반을 보관하는 태실이 있었고 백성들도 태반에는 아기의 생명이 있다고 믿었다고 한다. 소설 ‘토지’에 보면 용정(만주) 땅으로 이주한 평사리 사람들이 고향을 가리켜 ‘태 묻은 자리’라고 말하기도 한다.

 태반이 지금처럼 의료 폐기물로 처리되는 시대가 아닐 때에는 생명의 산실로 아기의 고향으로 대접받기도 했던 것이다.


 사실 첫째 때는 태반을 땅에 묻는 일에 크게 의미를 두고 간절한 염원을 담아 기도했다.

  “아가 너는 태반마저 함부로 버릴 수 없는 소중한 사람이란다.”

 로 시작하는 기도였으니 뒤로 갈수록 오글거리는 이야기가 줄줄이 이어졌겠지.

 그러나 둘째의 태반은 무심하게 땅에 묻었다. 육아 7년 차가 되니 ‘평범’보다 더 감사한 게 없어서 미룬 숙제 하듯이 처리해버렸다.


 최근 뉴스를 통해 코로나 19로 사망자가 몇 명이다 혹은 공무원과 의료진이 애쓰고 있다 하는 소식을 들으면 집에 갇혀있는 나의 처지가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출산방법, 태반 처리 방법, 육아방식이 무엇이 중요하랴. 평범한 일상보다 더 소중한 게 없다. 쌕쌕 거리며 자는 아이에게서 봄볕의 향기가 난다. 살짝 열려 파들 거리는 아이의 입술에 생명력이 가득하다.

 그거면 됐다. 내 곁에 잠들어 있는 지금 이 순간 우리는 건강하고 안전하니 그거면 됐다.

 인연을 다하고 흙으로 돌아간 태반처럼 언젠가 우리도 흙이 되자. 흙이 되는 날까지 평범하고 자유롭게,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지 않고 그냥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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