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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은 Jan 24. 2021

시골이 뭐가 좋아서 시골살이 준비 중 2편

곧 5촌 2도


'정말 괜찮은 땅이 나왔어!'

 전화를 끊기 무섭게 토지대장을 떼어봤다. 200여 평 중 일부는 이미 대지 전환이 되어있었다. 네모 반듯한 땅에 믿을 수 없는 가격. 나는 다음날 바로 시골로 달려갔다. 

 땅은 결코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남쪽 전방에 축사가 자리하고 사과밭이 가까이 있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비교적 농약을 많이 치는 사과밭과 축사 뷰는 피하는 것이 귀농귀촌 상식이 아닌가. 게다가 나는 자꾸 땅을 보러 다니다 보니 나름의 취향이 생겨서 웬만하면 마을과 좀 떨어진 언덕 위에 집을 짓고 싶었다. 그날 본 땅은 내 욕심에는 차지 않았다. 

집에서 나설 때는 '되면 되고 말면 만다.'는 마음을 먹었지만 막상 땅을 보고 나니 실망감이 대단했다. '왜 이렇게 어려울까?' 속이 상했다.


  코로나로 인해 아이들과 하루 종일 집에 있다 보니 마당 있는 시골은 더욱 간절하게 다가왔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인구분산과 자연보호 없이는 코로나가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귀농 귀촌한 친구에게 더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지만 시골 땅은 도시의 아파트만큼 매물이 자주 나오는 게 아니었다. 그럼에도 마음이 급했다. 해가 바뀌면 첫째를 초등학교에 입학시켜야 하는데 그전에 땅을 사고 집을 지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집 지을 땅이 도저히 구해지지 않는다면 낡은 빈집을 고치는 방법도 있었다. 그러나 폐가 수준의 집도 자식들 간에 재산정리가 안되어서 매물로 나오지 않고 있었다. 건너 건너 인맥으로 당장 들어가 살 수 있는 빈집을 보기도 했는데 그것도 도시인의 눈에는 차지 않았다. 마치 아파트 구조인 듯 지어진 주택이었는데 화장실도 2개고 붙박이장도 있었지만 방방마다 추위와 싸운 흔적이 역력했다. 집안 모든 유리창에 뽁뽁이와 방풍비닐이 시공된 모습에 내 마음에도 한파가 부는 듯했다. 

 공짜로 내 줄 수도 있다며 어느 마을 부녀회장님이 보여주신 빈집은 더욱 우울했다. 얼마 전까지 사람이 살았었기에 많이 낡지 않았다 하셨지만 바닥 타일 위에 설치된 싱크대나 여러 색깔, 여러 모양의 타일이 모자이크 된 화장실은 쥐 나 뱀이 곧 튀어나올 것처럼 무서웠다. 

 "도시 사람은 오면 못 살아요."

 집을 소개하시는 분들은 모두 같은 말씀을 하셨다. 그렇지 않다고 말씀드리고 싶었지만 막상 집을 보고 나면 시골살이에 점점 자신이 없어졌다.


 나는 너무 큰 착각을 품고 있었다. 넓은 마당에 소담스럽게 앉은 집에는 벌레도 쥐도 뱀도 없고 이웃의 간섭도 없고 인근 밭에서 날아오는 농약 피해도 없었다. 작은 텃밭에서 소소하게 먹을거리를 거두는 행복을 꿈꾸었을 뿐 멧돼지나 고라니의 습격은 상상도 못 했고 아파트 수준의 단열이 당연한 것이라 난방비 걱정은 계획에 없던 일이다. 여러 시골집들을 보면서 시골살이가 달콤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낙담해서 도시로 돌아갈 적마다 나는 초심을 되새겨보았다. 사실 시골행은 100% 내 욕심이고 바람이다. 나는 소위 말하는 '자연주의 육아'를 하며 '자연 사교육'을 하고 있다고 느꼈고 사교육 아닌 진짜 자연 속에서 살고 싶었다. 헬렌 니어링의 '조화로운 삶'을 읽은 후에 그 마음은 가속화되었다. 그러나 시골에서는 남편이 만족할 직장을 구할 수 없었고 나는 반쯤 포기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시골로 먼저 간 친구가 말하길 스쿨버스가 오전 한번 오후 한번 전교생을 싣고 다니므로 유치원생부터 초6까지 8시 30분 등교, 16시 30분 하교한다는 것이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나는 하루 8시간의 자유시간, 온전한 내 시간을 가지게 된다. '별도의 비용 없이 안전한 공교육 안에서 8시간의 자유' 나는 귀가 팔랑거렸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들이 행복한 법 아닌가? 


 실은 나는 초등 입학을 앞둔 첫째를 생각하면 여러 고민이 있었던 차였다. 난 아이를 교실마다 학생수가 과밀인 학교에 보내고 싶지 않았다. 사교를 목적으로 학원에 다니는 보통의 경우도 맘에 들지 않았다. 교사당 학생수가 적어서 아이가 교사의 관심을 충분히 받는다면 학교 수업만으로도 충분한 학습이 될 거라고 믿는다. 수업시간 외에는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를 바란다.

 운 좋게도 시골학교의 교장, 교감 선생님과 면담할 수가 있었는데 그때의 이미지가 무척 좋았다. 교장 교감 선생님 설명에 따르면 친환경은 물론이고 non-GMO식품으로 급식을 제공하고 있는데 이것은 학부모들의 요구였다고 하셨다.

 '학부모회가 이렇게 잘 돌아간다고?'  

 고학력 귀농귀촌 부모들이 늘어나면서 합리적이고 진보적인 제안이 늘어나는 추세이고 교사들도 협조에 적극적이라는 말씀에 나는 물개 박수라도 치고 싶었다. 

 게다가 운동장에서 우연히 마주친 학생들이 나를 향해 공손히 인사하는 모습은 혁명적이었다. 우리 집 옆집 사는 아이는 내가 몇 번이고 자전거를 들어주고 먼저 인사하고 엘리베이터를 잡아줬는데도 나에 대한 경계를 풀지 않았는데 시골학교 아이들은 처음 본 나에게 아무런 경계심 없이 허리 숙여 인사하고는 자기들끼리 깔깔거리며 저쪽으로 걸어갔다. 나는 그 아이들이 너무 예뻐서 가슴이 벅찼다. 나는 지독한 꼰대, 유교 맘인지라 인사만 잘해도 '어머 쟤는 인성이 됐구나!' 감탄하게 되는 것이다.

  

 집 지을 땅 구하기가 어려워 문제지 학교는 100% 만족이었다. 그러다 마침내 기회가 왔다. 마을 소유의 낡은 펜션을 군청이 일정 금액 지원해 수리해주겠다고 하신 것이다. 시골은 인구유입이 필요했고 우리는 집이 필요했으니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았다. 사실 이 일은 간단히 쓰기에는 어려울 정도로 많은 분들의 관심과 노력이 있었다. 온 우주가 도와서 이루어졌다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수많은 도움의 결과로 넓은 마당이 있는 한옥집에 우리가 살게 되었다! 마지막 해결과제는 남편. 나는 남편을 사랑하지만 과감하게 도시에 두고 가기로 결정했다. 



 


3편도 꼭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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