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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은 Mar 23. 2021

시골이 뭐가 좋아서 다정하지 못한 순간들 2편

아버님 당신은...


 "앉아봐"

 남편이 쭈뼛쭈뼛 다가왔다. 그는 내 말을 듣기도 전에 나에게 사과했다. 시부모님은 이런 당신의 아들을 아실까? 그 순간만큼을 부모님을 창피해하는 아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상상하실까?

 "여기서 더 최악의 경우는 네가 부모님과 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일일 거야."

 나는 내가 느낀 불쾌와 모욕이 어느 정도인지 한 문장으로 그에게 설명했다.


 그 후로 또 며칠이 지나는 동안 나는 내 아이들을 보면 속으로 되뇌었다. '나는 자식에게 집착하지 않고 내 인생을 살 거야." 남편도 같은 생각인지 우리의 노후를 기대한다는 말로 내 눈치를 살폈다. 시부모님 사랑은 못 받아도 남편에게 사랑을 듬뿍 받으니 그거면 되었다 하는 순간 다시 시어머니께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을까 말까부터 고민되었다. 마침 남편은 아이들을 데리고 밖에 나가서 집에는 나 혼자 있었기에 만약 어머니가 맹공을 쏟아부으시면 나 역시 참지 못하고 선을 넘어 버릴 것 같아서 겁이 났다. 그래도 전화를 받았고 어머니는 같은 말씀을 계속하셨다.

 "저희 부부가 많이 생각해보고 결정한 일이에요."

 "생각 많이 했겠지. 그래도 엄마는 너무 걱정이 된다."

 정말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걱정된다는 말로 도배된 대화를 어떻게 끝을 내는 거지?

 '걱정이 된다. 밤에 한 숨도 못 잤다. 잠이 안 온다. 너무너무 걱정이 된다. 가지 마라. 이해를 못하겠다....' 계속적인 반복.. 


 그러다 대화가 풀린 건 뜻밖에도 예전에 읽었던 책 '당신이 옳다'에 나왔던 심리적 cpr 덕분이었다. 어머니의 반복된 '걱정된다'는 나의 '불안'과 같은 모습이라는 것이 느껴지자 대화를 하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저도 걱정 많이 돼요."

 이 말을 하기까지 나는 정말 힘들었다. 자신 있어 보여야 한다는 생각을 내려놓고 나도 얼마나 불안한지 어머니께 먼저 말씀드렸다. 

 "저도 아이들 키우다 보니 어머니 마음 조금은 알 것 같아요. 얼마나 걱정되시겠어요. 저라도 걱정 많이 할 것 같아요."

 무심코 뱉은 말인지 정말 진심인지 나는 아직도 이 부분이 헷갈린다. 준비했던 말도 아닌데 술술 '걱정된다. 이해한다'는 말이 나왔고 마음이 조금 아리기도 했다. 돌아올 대답은 뻔했다. '걱정되는데 왜 가느냐? 가지 마라'하시기에 또 너무 솔직한 얘기를 꺼내게 되었다.

 "다녀오고 싶어요. 시골에서 아이들 키우고 싶었어요. 근데 어머니께서 너무 반대하시니까 더 걱정이 되고 그 점 때문에 그이가 많이 힘들어해요."

 나 때문이 아닌 어머니 때문에 남편이 힘들어한다는 말에 어머니는 깜짝 놀라셨다.

 "그이는 집안의 가장으로 든든하게 보이고 싶어 해요. 본인이 결정한 일에 제가 토를 달면 싫어하고요, 누구에게 걱정 끼치지 않는 멋진 사람이고 싶어 하는데 아직도 어머니 눈에는 어린애로 보이는 게 못 견디게 싫은가 봐요. 그래서 요즘 힘들어해요."

 비록 통화 중이긴 했지만 물음표로 가득 차 있을 어머니가 눈 앞에 보이는 듯했다. 어머니는 정말 이 점을 염두하지는 않으셨던 것 같다. 걱정이 되니까 걱정된다고 표현하셨을 뿐 당신의 모든 것인 내 남편이 속상해하 할 거라는 점은 전혀 생각을 못하셨나 보다. 

 "저는 자식을 키우니까 어머니 마음 알 것 같은데 남자들은 또 다른가 봐요. 왜 아직도 성인으로 인정받지 못하냐며 속상해해요."

 "그건 몰랐네..."

 어머니는 꼬리를 팍 내리셨다. 나는 어쩐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어찌어찌 통화를 마무리하고 나는 텅 빈 집에 혼자 앉아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방금 전까지 아이들이 어지럽히고 놀던 거실이 휑하니 서글퍼 보였다. 자식들이 집을 떠나 다른 보금자리를 찾아가면 부모는 휑한 거실을 바라볼 때마다 서글플까? 방금까지 내 곁에 있던 아이가 학생이 되고 성인이 되었다는 게 실감이 날까? 나는 내 아이의 성장을 인정할 수 있을까?

 이번 통화는 어쩌면 둘 다 자식을 둔 어미로서 나눈 첫 번째 대화였을지도 모르겠다. 지난 몇 번의 통화 후에는 항상 새로운 분노가 내 마음에 자리 잡는 듯했는데 꼬리를 내린 어머니를 보며 나는 그간의 미움은 싹 사라지고 감사와 연민을 느꼈다. 그토록 강하게 만류해오시다가 자식이 속상해한다는 말에 바로 태도를 바꾸시는 모습은 평생을 엄마로 살아가게 될 나에게 크나 큰 교훈이 될 것이다. 


 그렇게 또 며칠이 흘러 구정이 되었다. 5인 이상 집합 금지 명령으로 큰댁에 가지는 못하고 시댁에만 잠시 다녀왔다. 우린 웃었고 먹었다. 명절에 가족이 모여 웃고 먹으면 그걸로 된 거지. 불과 며칠 전에는 '최악의 경우 부모님과 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거야'하고 의절 드립까지 쳐야 했지만 결국엔 어머니의 사랑으로 우린 웃고 먹을 수 있었다.  

  

 우린 3월 1일에 시골로 이사했다. 비가 억수 같이 내렸다. 갈등과 원망을 싹 씻어내는 비라고 생각했다. 날씨가 더 풀리면 시골로 시부모님을 모셔와서 맛있는 음식도 대접하고 구경도 시켜드려야 했다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이사 첫날 아버님께 전화가 왔다.

 "시골살이를 딱 1년만 허락한다."

 허락?? 성인으로 인정받길 원한다 말씀드렸는데 허락이라니... 시골집에 시부모님을 초대하는 것은 다시 생각해봐야겠다. 시골에 와보시면 더 큰 걱정을 하게 되실 테니까. 



다음편도 꼭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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