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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은 May 18. 2021

시골이 뭐가 좋아서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지.

훈육은계속되어야한다.

 

 “이럴 거면 학교 가지 마!”

 인가 2채를 사이에 둔 골목길. 새순이 올라오는 나뭇가지에 앉아 우두커니 햇살을 맞던 새들이 푸드덕 날아갈 만큼 나는 냅다 소리를 질렀다. 겁먹은 아이의 눈망울에 눈물이 가득 고였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이를 훈육할 때 내 감정과 입이 따로 놀 때가 있다. 나의 상한 감정을 온전히 아이에게 쏟아붓지 않도록 입은 이성적이려 노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가끔은 바로 그날처럼 내 감정보다 더 크게 내질러서 아이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려 하는 경우도 생긴다. 


 사실 소리를 지르기 며칠 전부터 나는 벼르고 있었다. 시골로 이사한 후 아이는 계속 들떠있고 노는데 모든 정신을 팔고 있었다. 짧은 일정으로 여행을 가거나 캠핑을 갔을 때 붕 떠서 발발거리는 상태가 두어달째 계속되고 있었던 것이다. “일상으로 돌아와!”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8세 수준에 알아들을 거 같지 않았다. 

 “학교는 공부하러 가는 곳이야”

 라고 몇 차례 힘주어 말했지만 아이는 계속해서 유치원 다니는 느낌으로 오직 노는데만 집중했다.  ‘그래 놀아라’하고 얼마간은 내버려 두었지만 내 안에서는 화가 쌓여갔다. 그저 노는데만 집중했으면 천진해 보이고 말았을 테지만 아이들은 놀다 보니 제 멋대로가 될 때가 있다. 

 예를 들면 이렇다. 하교 후 책가방을 마당에 내던지고 놀기를 시작하는데 '추우니까 문을 닫고 다녀라', '운동화를 구겨 신지 마라', '빨랫줄에 매달리지 마라' 하는 엄마의 잔소리는 아예 귓등으로 들어 넘겼다. 이번에 같이 이사 온 윗채 친구네 집을 제집 드나들듯 하면서 그 집 서랍장을 휙휙 열어 뒤지거나 그 집 냉장고를 벌컥 여는 모습에 나는 참기 힘든 훈육 욕구를 불태웠다. 등굣길에 만나 취침 전까지 같이 노는 5명의 아이들은 어느새 천하무적이 되어있었고 그들은 타인에게 유독 엄격한 내 못된 성질머리를 건드렸다. 


 코로나로 인해 아이들과 집에만 있을 때는 나는 무척 허용적이고 부드러운 엄마였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집콕 생활에는 '원만한 관계'가 가장 중요하다는 게 내 생각이어서 넥플릭스 만화도 실컷 보여주고 쿠키, 만두, 케이크 등을 아이들과 함께 만들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사실 아이들이 크게 잘 못된 행동을 하는 게 없었기 때문에 내가 부드러울 수 있었다. 가끔 놀이터에 나가거나 한살림에 장을 보러 가면 아이들은 나의 통제에 순응했고 나는 친절하게 아이들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그런데 시골에 와서는 나도 아이들도 변했다. 아이들은 통제가 되지 않았다. 나는 한동안 끊었던 육아책을 다시 읽고 '금쪽같은 내 새끼'도 보았다. 이제 초등학생이 되었으니 공부를 시켜야 한다는 생각도 커서 초등학습 관련 유튜브도 찾아보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일기장에 적어 나갔다. 일기를 쓰며 확실히 알게 된 게 나는 '기본 생활 습관'을 잘 잡아주고 싶은 욕구가 대단하다는 점이다. 나는 평소 게으르고 느슨한 스스로를 못마땅해하고 있어서 자식들에게는 그 끈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나도 변화하지 못하면서 아이들에게만 요구한다는 게 너무 비겁해서 참고 생활습관이라는 주관적인 기준이 나만의 잣대가 너무 촘촘한 것 같아 또 참았지만 바로 그날 아침엔 폭발하고 말았다.


 드르륵 윗채 현관문 여는 소리가 들리자 겉옷을 입던 첫째가 밖으로 튀어 나갔다. 나는 둘째 아이의 옷을 입히며 "가방이랑 마스크 챙겨야지"하고 말했지만 첫째는 "오빠 잘 잤어?" 하며 이미 마당으로 나간 뒤였다. 둘째를 챙겨 나가 보니 윗채 이모 손을 잡고 스쿨버스를 타러 가는 첫째의 뒷모습이 보였다. 나는 한 손에 둘째의 손을 한 손엔 첫째의 가방을 들고 따라가며 결심했다. 

 '난 오늘 너의 버릇을 고치고 만다!'

 결심과 동시에 마음 깊은 곳에서 미움과 분노가 올라왔다. 화가 부글부글 끓었다. 마음은 냉정하고 침착했지만 목구멍으로는 불같은 화가 준비되었다. 그리고 외쳤다. “이럴 거면 학교 가지 마!”


 “가방도 안 챙기고 마스크도 안 하고 학교 갈 수 있다고 생각해? 학교에 놀러 가는 거야?”

 느슨해진 긴장이 순식간에 팽팽해진 아이는 어쩔 줄 몰라했다.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차량 선생님과 윗채 이모는 안절부절. 그 모든 시선을 한꺼번에 불태워 버릴 만한 화력으로 나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가방 없이 마스크 없이 학교 갈 수 있어?!"

 아이에게 이렇게까지 큰 소리를 질러본 것은 처음인데 고함을 치는 중에도 속으로 ‘이 훈육 방식은 마지막이 되어야 한다. 또 하면 효과 없다.’라고 느꼈으므로 나는 퇴로를 주지 않고 애를 잡았다. 정말 학교를 안 보낼 마음이었다. 이 순간 이 문제는 끝을 본다는 마음이었다.


 어찌어찌 아이는 스쿨버스에 탔다. 내가 소리친 시간은 1~2분여 밖에 되지 않았지만 집에 돌아와서도 흥분이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히스테릭하게 끌어올린 감정은 잔상을 오래 남겼다. 훈육을 이렇게밖에 못한 나 스스로에 대한 혐오와 불쾌의 감정이 깊었다. 

 같은 시간 아이는 어떤 마음일까? 내가 아이였다면 그 순간의 엄마가 얼마나 무서웠을까? 하교 후 아이를 불러 앉혔더니 아침에 너무 무서웠고 학교에서도 엄마 생각 많이 했다며 아이는 울음을 터트렸다. 다행히 엄마가 왜 화를 냈는지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확실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제야 나는 무섭게 만들어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리고 약속을 했다. 

 '학교를 다녀오면 책가방과 겉옷은 라탄 의자에 올려두고 놀기'

 '아침에 스스로 마스크와 책가방을 챙겨서 현관 나서기'

 그 약속은 지금까지 100% 지켜지고 있다. 물론 "~해야지"라고 잔소리를 해야 하는 경우가 많지만 아이는 엄마와의 약속을 인지하고 있고 그 날 이후 좀 평정심을 찾은듯하다. 

 얼마 뒤 우연히 첫째 아이 담임선생님과 잠시 얘기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아이가 3월 한 달간은 적응하기 위해 흥분도가 높았지만 최근에 와서는 차분해진 것 같다고 하셨다. 마당 있는 집에 이사와 천하무적 친구들과 하루 종일 놀게 되니 더욱 들떴을 것이다. 그 모습이 거슬린 나는 아이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생각에 감정을 정당화했다. 훈육이 미숙했음에도 효과가 있어 결과적으로는 다행이다. 이번처럼 큰 소리 낼 일이 다시는 없기를 바랐지만 며칠 뒤 이번엔 둘째 아이가 나를 폭발시켰다. 




다음 편도 꼭 봐주세요:)


#시골학교 #훈육 #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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