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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은 Jun 17. 2021

시골이 뭐가 좋아서 그 어린것을 울렸다.

통제가 되어야 하는 나이!




 둘째는 올해 5살이다. 말문이 늦게 트인 탓인지  오랫동안 아기 같은 느낌이 있다. 똘똘한 첫째의 5 시절과 비교하면 더욱더 어리게 느껴지는데 그것은 순둥한 말투 탓도 있지만 코로나로 인해 사회생활을 적게 하다 보니 가족의 품에서 아기 취급을 오래 받은 이유도 있었다. 어린이집에 잠시 다닐 때는 선비 버금가게 점잖고 지나치게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기에 우리 부부는 아이의 사회적 성격이 내성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때문에 시골행을 결정 한 후 시골 유치원은 원아 수가 적다는 점이 조금 염려되기도 했다. 친구를 사귀어 상호작용하며 노는  사회적 인간의  번째 배움일 텐데 아이에게  기회를 주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강렬한 시골행 열망에 걱정을 구겨 넣고 우리는 이사를 했다.


 3월 초입에는 꽤 추운 날들이 계속되었지만 아이들은 마당놀이를 쉬지 않았다. 학교나 유치원 생활도 즐거워하고 윗채 아이들과도 잘 지냈다. 내성적인 줄 알았던 둘째는 운동화를 신고 마당을 밟으면 한 마리 똥강아지로 변신하여 사방팔방 정신없이 뛰어 논다. 6시 조금 넘어 저녁밥을 먹이면 샤워할 틈도 없이 뻗어 잠들 정도로 아이들은 밖에서 에너지를 쓰고 있었다. 혹여 씻지 못한 채 잠든다 하여도 나는 아이들이 너무 예뻤다. 자식을 키워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실컷 놀다가 방전되어 잠든 아이의 평화로운 얼굴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아이들을 이불에 옮겨와 눕힐 때 내 코가 아이 얼굴에 맞닿을 정도로 가까워지만 콤콤한 흙내음과 차가운 봄바람의 향기가 황홀하게 좋아서 나는 잠든 아이들 옆에서 킁킁거리고 냄새를 맡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4월로 넘어가면서 조금씩 평화가 깨어졌다. 해가 길어져서 바깥놀이 시간도 덩달아 길어졌는데 7시쯤 저녁을 먹이고 샤워를 시켜도 좀 더 놀다가 잘 정도로 아이들의 체력이 좋아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겁도 좀 없어져서 엄마가 정해준 바운더리를 넘어가 놀거나 불러도 오지 않는 일도 있었다.

 그날도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아이들 5명이 마당을 누비며 놀고 있었는데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먼저 귀촌한 친구가 4살 둘째 아이를 데리고 8살 첫째를 데리러 왔다.

 "5분 있다가 출발할 거야!"

  귀촌한 친구가 제 아이를 향해 소리치자 "응!" 하는 경쾌한 대답이 날아들었다. 윗채 친구와 귀촌한 친구, 그리고 나까지 셋은 잠시 모여 얘기를 나누다가 5분이 지나자

 "이제 헤어질 시간!" 하며 아이들을 불렀는데

 "1분만 더!!"를 외치며 아이들이 우르르 달려갔다.

 그 순간 우리 집 둘째도 누나들과 형들을 따라가고 싶었는지 제 앞을 가로막고 있던 4살 동생을 살짝 밀었다. 현장을 목격한 나는 바로 아이를 불러들이려고 "이리 와!"하고 외쳤지만 둘째는 나를 잠깐 바라 볼뿐 내 곁으로 오지 않았다. "지금 안 오면 넌 집에 못 들어와!" 나는 강경하게 소리쳤다. 그럼에도 아이는 누나들과 형들이 있는 방향으로 달려갔다.


 훈육의 순간이 찾아왔음을 느꼈다. 저녁을 못 먹어 배도 고픈데 아이를 무섭게 잡아야 할 일이 생기다니.. 나는 시작도 전에 지쳤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금 안 오면 집에 못 들어온다'라고 외쳤으니 현관에서부터 훈육을 시작해야겠다 생각하고 자리를 잡고 섰다.

 이번 일은 간단하게 말하면 '명령 불복종'. 거기에 어린 동생을 밀었으니 가중처벌 감이다. 화가 난다고 누군가를 때리는 것이 '단순히 안 되는 행동'이라면 자기보다 어리거나 작거나 약한 사람을 때리는 것은 '비겁한 행동'이기까지 하다는 걸 가르쳐야 할 시간이 왔다.


 먼저 귀촌한 친구가 제 아이들을 데리고 출발하고 윗채 아이들도 집으로 들어갔다. 시끌벅적하던 마당에 혼자 남아 현관 문턱을 못 넘은 것은 우리 둘째 밖에 없었다.

 "넌 못 들어와. 엄마가 아까 얘기했지. 지금 안 오면 집에 못 들어간다고!"

 아이는 내 다리를 붙잡고 울며 힘으로 현관 진입을 시도했으나 나는 딱 막고 섰다. 동네에 어른들밖에 없다 보니 아이들이 떠난 마당은 무척 조용해서 우리 아이 우는 소리만 가득해지자 나는 못 이기는 척 현관 안으로 아이를 들였지만 중문으로 들어가지는 못하게 막았다.

 "엄마가 부르면 달려오는 거야. 신나게 놀다가도 엄마가 부르면 와야 해"

 "동생을 밀면 안돼. 절대로 안 되는 거야"

 눈물과 설움, 공포에 가득 찬 아이가 바지에 소변을 봤지만 나는 아랑곳 않고 계속해서 말했다. 다음 기회라는 것은 없다. 일이 벌어진 김에 반드시 가르치고 넘어가야 한다. 담벼락에 올라가서 걸어 다니기, 운동화 구겨 신기 등 잘못을 꼽으라면 더 있었지만 잘못을 지적하는 시간이 아니라 경계를 가르치는 시간이 되도록 나는 두 가지만 강조해서 아이에게 말했다.

 "안아줘. 안아줘"만 외치던 아이도 10분쯤 흐르자 조금 진정하고 내 얘기를 듣기 시작했다.

 "엄마가 부르면 와야 해. 동생을 밀면 안돼. 약속하면 안아줄 거야"

 ... 약속을 안 할 5세가 있을까?   

 아이들을 씻기고 자리에 눕히자 둘 다 금세 잠이 들었다. 주황색 수면등 아래 포근한 이불을 덮고 있는 평화로운 두 아이. 불과 한 시간 전에는 서러운 눈물을 흘리던 둘째의 말간 얼굴이 유독 평화로워 보였다. 다음 날, 전날 혼난 기억은 잊었는지 사랑스러운 몸짓으로 달려와 안기는 둘째를 품에 꼭 안았다.

 

 훈육은 상호 신뢰에서 나옴을 실감한다. 나는 일이 터졌을 때 반드시 가르치고 넘어간다는 육아 소신을 가지고 있다. 물론 그 한 번으로 아이가 바뀌지 않는다. 같은 잘못을 반복하는 것이 어린아이니까. 그러나 다음에 같은 잘못을 또 할지라도 '무엇이 잘못인지 무엇이 옳은지' 분명하게 알려주는 훈육에 두려움은 없다. 아이들을 향한 내 마음의 애정 농도가 얼마나 깊고 진한지 스스로 자신 있기 때문이다. 분명히 해야 할 것은 부모의 권위는 훈육으로 세워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아이들은 자유로움 속에 경계를 배워야 하고 너그럽다가도 경계를 가르칠 수 있는 능력이 부모의 권위가 되어야 한다. 

 저녁 7시가 넘어가면 세명의 엄마들은 소리친다.

"이제 헤어질 시간!"

 시계를 멈추고 싶은 아이들은

"1분만!"

"30초만!"

 하고 외치지만 오래지 않아 각자의 집으로 돌아간다. 내일 만나서 또 놀면 된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이런 것이 부모와 아이 간의 신뢰가 된다. 제때에 헤어지면 또 놀게 해 준다는 믿음! 그런 매일의 반복 속에 피어나는 신뢰. 또 '헤어질 시간'이라는 엄마의 말을 허투루 듣는 순간 엄마가 정한 경계를 넘는 것이고 그렇다면 틀림없이 혼난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도 학습된 신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나중에 사회적 약속을 지키는데 밑거름이 될 것이므로 매우 중요하다.


 나는 협조가 잘 되는 아이들 덕분에 순조로운 시골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어느 틈에 시골의 봄은 다 가버리고 아쉬울 틈도 없이 초여름이 되었다. 무섭게 자라는 잡초와 아무리 죽여도 줄어들지 않는 파리의 개체 수는 내가 시골에 있음을 실감하게 해 준다. 아.. 실로 시골의 꽃은 여름이어라...!



다음 편도 꼭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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