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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채 Aug 22. 2019

시작은 바이에른, 지금은 NRW

이름도 길어요,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 Nordrhein-Westfalen

 Warum Deutschland?

 왜 독일인가?


 독일로 가기로 결심한 그때부터 한국에서도, 그리고 이곳 독일에서도 자주 듣는 질문이다. "여기 왜 왔어?"라는 식의 시비가 아니라, "왜 하필 독일이냐"에 방점이 찍힌 질문인데, 그도 그럴 것이 음악이나 미술처럼 내 전공(영화)이 여기서 공부한다고 딱히 이득이 되는 전공도 아니고, IT 같은 이공계처럼 수요가 많은 직업군도 아닌 데다가 심지어 시장도 한국 영화 시장 규모가 독일보다 크다. 그러니 당연히 물어볼 수밖에.

 최근에 이 질문에 대한 아주 간단하고도 핵심적인 대답을 찾았는데 그건 바로 "가성비"였다. 한국에서 일하고 싶지 않고(이렇게 된 데에는 또 긴 사연이 있지만.. 생략하겠다.), 그렇다고 공부를 더 하기엔 학비가 많이 들고, 조금이라도 어릴 때 낯선 곳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다는 생각과 기왕 낯선 곳으로 갈 거면 탈아시아 하고 인권 의식과 젠더 감수성이 더 좋은 곳으로 가보는 게 어떨까 하는 마음, 이것저것 다 충족시키기에 의외로 독일이 가성비가 꽤 괜찮았던 것이다. 모두가 그렇듯 돈이 많았다면, 미국을 가거나 하다못해 영국으로 갔겠지만, 나는 돈보다는 빚이 더 많은 사람이라 독일행을 차선책으로 선택했다.

 그렇다고 경제적인 부분만 따져서 독일을 선택한 건 아니었다. 이것은 내가 고등학생일 때부터 이어져 온(현재 진행형을 써도 될지 의문입니다만) 독일이라는 나라에 대한 호감도 크게 작용했다.


 내가 다닌 ㄱ고등학교에는 제2외국어 과목으로 일본어와 독일어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다. 당연히 대다수의 학생들이 익숙하고 한국어와 문법적으로 비슷한 부분이 많은 일본어를 골랐다. 하지만 나는 한자에 무척 취약한 데다가(지금도 잘 못한다) 돌아서면 까먹게 되는 히라가나와 가타카나 때문에, 망설임 없이 독일어를 선택했다. 일본어는 글자를 알지 못하면 아예 읽을 수도 없지만, 독일어는 알파벳을 쓰는 데다가 적힌 대로 읽으면 된다는 게 나에겐 큰 장점으로 작용했다.(그 무렵 음악시간에 배웠던 독일 가곡 Ich liebe dich도 큰 역할을 하였다. 읽기가 너무 쉬웠기 때문에.) 여기서 부터... 잘못된 것이었을까요...?


 독일어 선생님은 "전혜린" 세대로, 독일에서 유학도 한 적이 있으신 분이셨다. 선생님이 해주시는 독일 얘기가 재미있었고, 자연스럽게 독일이 어떤 나라인지 궁금해졌는데, 그 무렵 우연히 읽은 정숙영 작가의 "노플랜 사차원 유럽여행"이라는 책이 이 호기심에 불을 왕창 질러버렸다. 사진 하나 없이도 누군가가 쓴 여행기가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구나, 하는 걸 처음 느꼈는데, 독자로 하여금 당장 유럽 여행을 떠나고 싶게 만드는 힘이 있는 책이다. 유럽은커녕 옆 나라 일본, 중국조차도 심지어는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기 전엔 비행기조차도 타 본 적이 없었던 나는 유럽여행을 열망하게 되었다. 지금도 있는 네이버 카페 '유랑'에도 가입하여 유럽의 크고 작은 도시들의 사진을 보며, 가본 적도 없는 그곳을 그리워하는 게 나의 취미가 되었다.

 그중에서도 나의 눈길을 끈 것은 독일의 도시들이었다. 뮌헨, 퓌센, 로텐부르크... 멋들어진 광장과, 아름다운 성, 장난감 같은 집들이 있는 곳. 나는 꼭 이곳에 가야겠다고, 당시 싸이월드에 그렇게 써 놨더라.(이거 쓰면서 오랜만에 찾아봤다.)


 그로부터 대략 6년 뒤, 나는 정말로 그곳에 가게 되었다. 2013년 1월, 나의 첫 유럽여행! 그 처음의 첫 도시가 바로 독일 뮌헨이었다. 뮌헨에서부터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 로텐부르크, 뉘른베르크, 밤베르크, 뷔르츠부르크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이델베르크까지, 여행의 절반을 독일에서 보내다 파리로 넘어갔다. 처음으로 와 본 유럽여행, 몇 년 동안 꿈꿔 왔던 곳. 그곳에서 너무나 행복한 시간을 보냈고, 아직까지도 밤베르크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독일 도시다.(다시 가면 감상 바뀔까 봐 다시 못 가겠을 정도로.) 이때에 나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여기서 한 번 살아보고 싶다고. 그리고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자, 여기서 독일에 대해 어느 정도 아는 사람이라면 눈치챘겠지만, 내가 간 도시는 모두 독일 남부에 있고, 하이델베르크를 제외하면 모두 바이에른주에 속한다. 사람들이 "독일" 하면 떠올리는 전형적인 그런 풍경들을 간직한 도시들이 모여있는.


 그러나, 지금 내가 있는 곳은 어디?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 Nordrhein-Westfalen. 이름이 너무 길어 보통 NRW라고 줄여 쓰고 읽으며, 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으로 많은 유적지와 건물들이 전소되어 보통 사람들이 독일 하면 기대하는 중세시대 동화 마을 같은 풍경보다는, 그냥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현대식 건물과 70년대 성황이었던 철강, 석탄 산업의 흔적인 폐공장지대를 보기가 더 쉬운 곳. 그러니까... 내가 "아~ 여기서 한 번 살아보고 싶다~"라고 생각했던 바이에른주와는 거리가 먼, 아주 다른 그런 곳이다.


 나와 작년에 함께 살았던 구하메는 이 NRW의 못생김에 치를 떨며 요새 '힙'하다는 라이프치히로 이사를 갔다.(심지어 나보고 너는 예술을 하면서 왜 이곳에 있냐며 여기는 예술적 영감을 단 하나도 줄 수 없는 곳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이미 NRW에 묶여 있는 몸(학교를 다녀야 하니까) 적어도 2년간은 여기를 떠날 수 없는 사람. 그럼 어떡해, 열심히 여기에 정 붙여 봐야지. 여기도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러운 곳일 수도 있잖아?


 그런 마음으로 나는, 작년부터 NRW의 여기저기를 쏘다니기 시작했다. 독일에 온 지 1년 6개월 정도 된 지금, 다녀온 도시가 꽤 많이 쌓였기에, 여기에 기록해두고자 한다. NRW 말고 다른 도시도 다녀올 기회가 생겼는데.. 확실히 거기가 더 예쁘긴 했다(오열) 헤센주로만 넘어 가도 예뻐짐.. 베를린보다 가까운 옆 나라 수도 암스테르담은 또 어찌나 좋던지!


 그래도 NRW 얘기를 할 거예요. 여기 얘긴 다들 잘 안 하니까.. 나라도 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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