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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채 Aug 22. 2019

#1 몬샤우 Monschau

2019. 8. 17

 오늘은 몬샤우에 갈 거야,라고 말했을 때, 친구들은 이름이 어째 독일 도시 같지 않다고 했었다. 어쩌구베르크, 저쩌고부르크가 아닌 몬샤우라는 이름이 프랑스어처럼 들릴 수도 있겠다 싶었다. 몬샤우는 이걸 도시라고 해도 될까 싶을 정도로 진짜 진짜 작은 도시다. 나에겐 독일의 큰 도시와 작은 도시를 가르는 기준이 있다.


 1. 중앙역(Hauptbahnhof)이 있는가

 2. 스타벅스가 있는가

 3. 지하철이 다니는가 


 세 항목 모두 충족한다면 대도시, 두 개만 만족한다면 중간 규모의 도시, 하나만 만족, 혹은 하나도 만족하지 못한다면 소도시로 치고 있다. 몬샤우는 이 세 개를 당연히 충족하지 못할뿐더러 심지어 중앙역도 아니고 그냥 역(Bahnhof)도 없다. 철도 교통이 잘 되어있는 독일에서 기차로는 갈 수 없는 도시다. 2만 명이 채 안 되는 인구가 사는 NRW에서도 가장 서쪽 그리고 저 남쪽에 위치한, 내가 사는 도시에서도 아주 멀어서 기차와 버스를 몇 번이고 갈아타야만 갈 수 있는 곳. 가보고 싶다고 구글 지도에 표시해둔지는 한참 되었는데, 가볍게 다녀올 거리는 아니어서 쉽사리 떠나질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올여름에 아르바이트 구하느라(글을 쓰는 이 시점까지도 못 구했따흐흑) 어디 멀리 휴가 가지도 못하는데, 몬샤우라도 가자!!!라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도대체 이 작은 도시에서 뭘 한단 건진 모르겠지만 나름대로 휴양지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숙박비가 굉장히 비쌌고, 나는 몬샤우가 아닌 근교 아헨에서 하루 묵기로 했다. 



아헨에서 몬샤우로 가는 방법

아헨 중앙역 앞에 있는 버스 정류장에서, SB63번 버스를 타고, 아헨 Königsberg 정류장에서 내려 내린 그 자리에서 SB66번으로 갈아타서 종점인 Monschau Parkhaus에서 내리면 된다. 나는 아헨 중앙역 앞에 있는 A&O 호스텔에서 묶었던 지라 이렇게 갔지만, 아헨 Hansemannplatz에서 SB66이 출발하니 여기서부터 이걸 쭉 타고 가도 된다. 어떤 방법이든 구글맵과 함께라면.. 두렵지 않다...


 

 아헨에서는 날이 맑더니, 몬샤우에 가려고 하니까 비가 미스트처럼 흩뿌려지기 시작했다. 차라리 주룩주룩 내리면 운치라도 있을 텐데, 미스트처럼 비가 얼굴에 살포시 내려앉는 것이 아주.. 촉촉하게 불쾌했다... 독일에서는 비 맞는 거에 유난인 사람을 "aus Zucker sein"하다고 하는데, 설탕으로 만들어졌다는 뜻이다. 이런 표현이 있을 정도로 가랑비에는 물론이고 폭풍처럼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지 않는 이상 여기 사람들은 우산을 잘 쓰지 않지만, 나는 설탕은 아니고 아이스크림으로 만들어진 사람이라 더워도 녹고 비 맞아도 녹기 때문에 반드시 우산을 쓴다..   


 아무리 토요일이라지만 날씨도 안 좋은데도 불구하고 여러 나라에서 온 관광객이 꽤 많았다. 요렇게 작은 도시에서 이토록 다양한 언어가 들려온 건 처음이었다. 진짜 휴양지 맞나 봐...

 투어리스트 인포에 들러 지도를 받아왔지만, 구시가지는 워낙에 작아서 사실 지도가 필요 없다. 그냥 발 닫는 대로 걷다 보면 저절로 구석구석 다 돌아다니게 된다.

 몬샤우는 NRW에서 귀한 도시인데, 왜냐면 NRW에서 보기 힘든, 중세시대 목조건물들이 있는 구시가지가 잘 보존되어 있기 때문.. 아래의 풍경을 보고자 총 네 시간이 넘게 걸리는 여기까지 온 것이다. 


몬샤우 포토스팟 중 하나
딱 여기가 포토스팟인데 안타깝게도 저 붉은색 건물이 공사 중이라, 다리를 건너서 교회 앞에서 찍었다.
날씨가 맑았다면 더 예뻤을...
골목 사이사이에 이렇게 작은 천이 흐른다

 그런데, 여기 작아도 너어무 작다. 대략 한 시간 반 정도 산책하듯 걸었더니 어느새 아까 갔던 그 길이 또 나오고, 또 나오고... 그래도 대충 여기에 대여섯 시간은 머무르려고 했기에 어디서 시간을 때울까 하다가 비도 오고 하니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이 작은 곳에 카페는 또 되게 많다. 독일의 카페에 대한 기대치가 그다지 높지 않기에 그냥 대충 구글 평범 높은 카페의 야외테이블에 앉았다. 카푸치노랑, 몬샤우의 이름이 들어가 있는 처음 보는 디저트를 시켰는데, 맛은 그냥.. 눅눅한.. 쿠기 같아.. 그럭저럭 커피랑 잘 어울려서 먹을 만은 했지만 4유로 정도 했던 가격에는 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는.... 비추한다는 말을 한번 길게 해 보았습니다. 아무튼, 시간도 많고 해서 카페에 앉아 쉬려고 했는데, 이놈의 벌들이 계속 날아드는 것이다. 독일엔 유난히 벌이 많다는 느낌인데, 꿀벌이면 환경에도 이롭고 차라리 낫지, 베스퍼(Wespe)라 불리는 말벌이 진짜 많다. 쏘일까 봐 적극적으로 쫓아내지도 못하겠고, 달달한 냄새를 풍기니 벌은 자꾸 달려들고.. 결국 내가 졌다. 서둘러 커피와 디저트를 해치우고 자리를 떴다.


크리스마스 시즌엔 여기서 크리스마스 마켓도 열린다
Monschauer Dütschen이라는 이름의 디저트. 양 옆의 저 열매는 무엇일까요? 제보 바랍니다..

 몬샤우의 전경이 보고 싶으면 Panoramaweg에 오르면 된다. 언덕에 오를 줄 모르고 워커를 신고 온 어리석은 나.. 하지만 언덕이 그다지 높지 않아서 오르는 게 힘들지는 않았다. 


언덕에 살고 있던 염소들
신기하게도 강아지처럼 사람에게 다가와서 매앰매앰 울었지만 나는 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몬샤우 구시가지 전경

 언덕에서 내려와 다시 할 일이 없어진 나는 아까 돌았던 길을 또 걸으며 이번에는 가게들을 꼼꼼히 구경했다. 뭘 파는지 들여다보고, 관심이 생기면 가게 안으로 들어가 보기도 하고.(원래 안 살 거면 구경도 하지 않는 사람..) 그러다가 어린이들이 꺄르르 거리며 웃고 즐거워하는 소리가 들리기에 그쪽으로 갔다가 나는, 운명의 장난감을 만나게 되었다.. 그건 바로 말을 따라 하는 토킹 토이! 그중에서도 압도적 크기와 현란한 목놀림을 자랑하는 플라밍고에게 나는 마음을 빼앗겨버렸다. 원래 24.95유로 하는 플라밍고를 14.95유로에 팔고 있다는 것을 안 순간 나는 구시가지 어귀에 있는 슈파카세로 내달렸다. 

 주인아저씨에게 플라밍고를 보여주며 Ich möchte das kaufen(저 이거 사고 싶어요)라고 하자 플라밍고도 내 말을 따라 했다. 주인아저씨는 내 장난을 무시하지 않고 같이 맞춰주면서, 플라밍고의 발을 잡고 흔들며 Auf Wiedersehen!(안녕!)하고 작별인사를 하셨다. 너무 귀여운 경험이었어! 예쁜 풍경, 맛있는 음식 이런 것들도 좋지만 이런 작은 기억 조각들이 이 도시를 더 사랑스럽게 만든다. 


플라밍고와의 첫 만남
세로라서 짤리네ㅜㅜ 목놀림을 주목해주세요.

 플라밍고를 갖고 놀다 보니 어느덧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구시가지를 한 번 더 둘러보는데 귀여운 셔틀버스가 지나갔다. 이걸 떠날 때가 돼서야 보다니! 원통하였지만, 이런 아쉬움이 있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내가 독일에 있는 한, 여기에 또 올 수 있을 테니까. 

기차의 탈을 쓴 셔틀버스. 다음에 오면 꼭 타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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