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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채 Oct 05. 2021

페니스꼴라Peñíscola

혹은 페니스콜라

역시나 예상대로-정말이지 예상을 벗어나는 사람이고 싶다- 꾸준히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에 실패하고 그냥 방치하다가 뜬금없이 스페인의 어느 작은 도시 얘기를 하는 이유는,


최근에 스페인 발렌시아로 4박 5일간의 늦은 여름휴가를 다녀왔는데,  

일정 중 하나였던 발렌시아 근교 페니스꼴라가 아직 한국에는 많이 알려진 곳은 아니어서 그런 것인지 가는 방법이 잘 안 나와 있어서, 혹시나 이후에 페니스꼴라를 방문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봐.


그리고 겸사겸사 여행 기록도 남길 겸 해서 오랜만에 브런치에 들어왔습니다.

구구절절맨이라 페니스꼴라 가는 방법을 길게도 써 놨는데, 중요한 부분은 굵게 표시해 두었습니다.

페니스꼴라 사진만 보시려거든 스크롤을 아래로 훅 내려주세요!


페니스꼴라는 스페인 동쪽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발렌시아에서 위로 2시간가량 기차를 타고 가야 하는 아주 작은 도시다. 바다가 있는 만큼 유럽 사람들에겐 여름 휴양지로 인기가 많은 곳이고, 해변에서 보이는 언덕 위 성곽에서는 <왕좌의 게임> 촬영도 했다는데, 정작 내가 <왕좌의 게임>을 안 본 지라..


다만, 발렌시아 근교 도시들에 대한 정보를 찾을 때 페니스꼴라의 성곽과 성곽 주변 마을의 풍광이 마음에 들어서, 귀한 5일 중의 하루를 페니스꼴라에 투자하기로 했다.


발렌시아는 현지에 3년째 살고 있는 친구가 거의 내내 동행을 해줄 예정이었기 때문에 딱히 내가 정보를 더 찾을 필요는 없었지만, 페니스꼴라는 혼자서 가는 일정이었기에 일단 어떻게 발렌시아에서 페니스꼴라까지 가느냐부터 알아야 했다. 검색해보니 가는 방법을 자세히 안내 한 블로그를 두어 개 발견할 수 있었다. 도움이 많이 되었던 블로그 링크를 첨부한다.


https://blog.naver.com/yje4345/221336644562


너무나 감사하게도 페니스꼴라까지 가는 방법을 상당히 상세히 써두셨는데 다만 날짜가 3년 전인 것이 불안했다. 코로나로 너무 많은 게 바뀌었지 않은가.


그리하여, 저렇게 자세한 블로그 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가 이 브런치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위의 블로그 내용과 엄청 큰 차이는 없지만 좀 더 디테일하고, 최신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2021년 9월 버전, 발렌시아에서 페니스꼴라(혹은 페니스콜라) 가는 법!


1. 스페인 기차, 렌페 예약부터.

https://www.renfe.com/es/en

렌페는 앱도 있지만, 앱에서 티켓을 사는 것보다는 사이트에서 결제 한 뒤 큐알코드가 담긴 티켓을 폰에 저장해두거나 따로 프린트해두는 것을 추천한다. 현지인에 따르면 렌페 앱은 오류가 많다고...


앞서 말한 대로, 발렌시아에서 페니스꼴라까지는 렌페로 2시간가량 소요된다. 고속열차를 타면 1시간 20분밖에 안 걸리지만, 당연히 더 비싸다. 2021년 9월 기준, 일반 기차는 9.85유로, 고속열차는 31.8유로다.

페니스꼴라로 가는 열차는 발렌시아 북역에서 출발한다. "València-Estació del Nord"가 바로 발렌시아 북역이다. 그리고 페니스꼴라는 워낙 작은 곳이라 인근 도시와 역을 같이 쓰고 있는데, 그래서 역 이름이 페니스꼴라 역이 아닌, 베니카를로-페니스꼴라 Benicarlo-Peñíscola 역이다.

페니스꼴라에 가려면 버스를 타고 다시 내려와야 한다.

출도착 역 이름을 입력한 뒤, 검색하면 아래와 같은 결과가 나온다.

배차 간격이 실로 놀랍다(..) 페니스꼴라에서 얼마나 머물지 고려한 뒤에 출발할 시간을 정해야 한다. 뒤에 더 말하겠지만, 베니카를로-페니스꼴라 역에서 페니스꼴라까지는 버스나 택시를 타고 가야 하기에 사실상 기차 2시간 + a의 시간이 걸린다. 그러하니 미리 계획을 잘 짜둬야 아깝게 흘리는 시간이 없을 것이다.


나는 이 날 7시 55분에 출발하는 기차를 타기로 했다. 그런데, 7시 55분에 출발하는 열차가 두 대다. 출발 시간, 도착 시간 모두 똑같은데 가격만 다르다. 무슨 차이인가 싶어 찾아보니 더 비싼 열차가 좀 더 멀리까지 간다. 어차피 페니스꼴라까지 가는 건 똑같으니 더 싼 티켓을 사면 된다. 해당 티켓을 누르면 아래와 같이 뜬다.

렌페 사이트가 구리다는 게 이런 데서 느껴지는데, 영어 모드로 해놨는데도 이런 디테일이 스페인어로 뜬다. 언어를 영어로 선택해도 페이지만 새로고침 되지 바뀌지 않기 때문에 침착하게 번역기를 돌리자. ida y Vuelta는 왕복이고, ida는 편도라는 뜻인데 그냥 ida y Vuelta를 선택하면 된다. 그리고 NEXT를 누르면 승객 정보와 결제 정보를 적는 페이지로 넘어간다.


2. 발렌시아 북역에서 렌페 타기

독일의 기차역에 익숙해진 나는 스페인 기차역 시스템에 적잖이 당황하였다. 독일은 그냥 기차를 타고 있으면 검표원이 지나다니며 검표를 하는데, 스페인은 우리나라 지하철 역처럼 일단 개찰구에 티켓을 찍어야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게 아닌가. 내가 갖고 있는 티켓은 큐알코드인데 당황해서인지 큐알코드를 찍는 기기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개찰구 근처에 서 있는 역무원에게로 가 티켓을 보여주니 휠체어용 개찰구(문이 그냥 열려있었다)로 지나갈 수 있게 해 주었다. 참고로, (적어도 발렌시아 쪽은) 스페인 사람들은 영어를 그다지 잘하는 편이 아니다. 나도 물론 영어를 못한다... 내가 "Where should i to go?"라고 물었을 때 역무원은 스페인어로 열심히 설명해주었다... 아니다, 그는 영어를 썼을지도 몰라. 근데 너무나도 스페인 억양이 섞인... 일단 손짓으로 개찰구 너머 왼쪽으로 가라는 것까지는 이해를 했지만, 플랫폼 번호를 모르겠어서 다시 한번 "Platform Number..?" 하고 물으니 21번 플랫폼이라고 스페인어로 얘기해줬다.. 근데 어떻게 21번인지 알아들었냐면 스페인어로 21이 Veintiuno인데 발음이 "베인티 우노"라서.. 사실 나는 "트웬티 우노"라고 한 줄 알고 이 무슨 서영(西英) 혼이냐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비엔티 우노였다.

암튼, 비엔티우노 플랫폼으로 가니 내 티켓에 적힌 열차와는 다른 번호의 열차가 떡하니 서 있었다. 출발 시간은 5분밖에 안 남았고.. 나는 초조해졌다. 그러다 문득, 전날 렌페 예약을 하면서 봤던 똑같은 출발 시간의 좀 더 비쌌던 티켓이 생각났다. '혹시 그 열차인 건 아닐까?' 하고 찾아보니 맞았다! 어쨌든 이 열차도 페니스꼴라까진 가는 것이다. 출발 시간도 도착 시간도 똑같다면 그냥 이 열차를 타도 되지 않을까? 아니면 혹시 모르니 뒤로 더 가볼까? 고민을 하다가 나는 일단 눈앞에 있는 열차를 타기로 했다.


그리고 그냥 타도 상관이 없는 것 같습니다. 기차 타고 가는 중에 검표원이 제 표를 검사했는데 별 말이 없었거든요. 그럼 도대체 가격 차이는 왜 있는 건지.. 이것은 여전히 의문이고.. 현지인도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검표원이 지나간 뒤에야 나는 비로소 마음 놓고 창밖 풍경을 구경할 수 있었다.

역 이름이 적힌 간판이 예뻐서 찍었다. Mar는 스페인어로 바다라는 뜻이다.

어느덧 역에 도착할 시간을 10분 남겨둔 시점에서 나는 불안감에 휩싸였는데, 대체로 유럽의 기차들은 우리나라랑은 달리 버튼을 눌러야 문이 열린다는 사실이 그제야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문 쪽을 살펴봤는데... 독일의 기차라면 문 바로 옆 혹은 문에 붙어있을 열림 버튼이 없다. 사람이 많으면 나 말고도 내릴 사람이 있겠거니 할 텐데 하필 평일이라 기차 안에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부랴부랴 친구에게 SOS를 쳤고, 친구는 문 옆 위쪽에 있는 버튼이 문을 여는 버튼일 거라고 했다. 그런데 문제는 버튼이 빨간색, 초록색으로 두 개였다... 내가 구글에 How can i까지 쳤을 때쯤 친구가 스페인어로 검색을 한 끝에 초록색 버튼이 열림, 빨간색 버튼이 닫힘임을 알려줬다, 휴. 독일엔 열림 버튼만 있지 닫힘 버튼은 따로 없는데 여기는 왜인지 둘 다 있어서 사람을 진땀 빼게 한다냐. 그리고 베니 카를로-페니스꼴라 역에서 한 여성분이 나보다 먼저 초록 버튼을 누르고 나랑 같이 내렸답니다 랄라...


이건 내 추측인데, 내가 페니스꼴라 갈 때 탔던 기차는 좀 오래된 기차인 것 같았다. 발렌시아로 돌아올 때 탄 열차는 더 최신식(?) 기차였는데, 문에 딱 누가 봐도 열림이라는 걸 알 수 있게 버튼이 붙어있었답니다.


3. 베니카를로-페니스꼴라 역에서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가기

역에 무사히 내려 역 밖으로 나오니 정말 아무것도 없는 휑한 도로가 보인다. 택시 정류장은 있지만 평일이어서인지 택시는 어디에도 보이질 않아, 나는 블로그에서 본 대로 버스 정류장까지 그냥 걸어가기로 했다. 베니카를로도, 페니스꼴라도 작은 도시라 그런지 구글맵에서 대중교통 안내를 해주지 않는다. 그러므로 버스 정류장까지 가는 것도, 버스를 타는 것도 알아서 해야 한다. 일단 구글맵에 이 주소를 찍고 걸어가다 보면 아래의 스트릿뷰에 보이는 버스 정류장이 나올 것이다. 나의 느린 걸음으로 넉넉하게 20분 정도 걸렸다.

Plaça Convent, 85, 12580 Benicarló, Castelló, 스페인

https://goo.gl/maps/HaSeYKnsYmxHgU1MA

내가 적은 주소지는 정류장 뒤편 오른쪽에 보이는 바 주소이다.

4. 페니스꼴라로 가는 버스 타기

여기에 오는 버스는 한대뿐인 것 같긴 했지만 혹시 모르니 번호를 말하자면 1번이었고, 추측컨대 30분마다 오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정각으로부터 30분마다. 예를 들면 10시, 10반, 11시 이런 식으로 말이다. 다른 블로그에는 1시간에 한대, 그러니까 10시 반, 11시 반, 12시 반 이런 식으로 온다고 쓰여 있었는데 투어리스트 인포 직원이 나에게 해준 설명과, 버스 정류장 앞에서 본 안내를 보건대, 30분 마다가 맞는 것 같다.

전체 루트는 아래의 링크에서 HORARIOS AUTOBÚS VINARÒS – BENICARLÓ – PEÑÍSCOLA를 누르면 된다.

https://www.autosmediterraneo.com/lineas-regulares/

여기에 적힌 cada가 ~마다라는 뜻이다. 하지만 내가 탔던 버스는 28분에 왔으므로 오차범위를 +-10분 정도로 두는 것이 안전하리라 생각된다. 마찬가지로 페니스꼴라에서 다시 베니카를로로 돌아가는 버스 역시 30분마다 한 대씩 있다. 내가 탄 버스는 35분쯤 왔으니, 역시나 10분 정도 여유를 두는 것이 좋다. 페니스꼴라에서 타는 버스정류장은 투어리스트 인포 바로 앞에 있다. 그리고 페니스꼴라로 갈 때 탔던 그 정류장 반대편에서 내리면 된다. 투어리스트 인포 직원은 영어를 잘하고, 설명도 친절하게 잘해준다.

이 스트릿 뷰에서 왼쪽 뒤편에 작은 하얀 건물이 투어리스트 인포다.

아, 그리고 버스 요금은 편도 1.5유로다. 버스에 탈 때 기사에게 표를 끊으면 된다. 그리고 다른 블로그엔 15분 정도 걸린다고 쓰여 있었지만, 내가 탔을 땐 20~25분 정도 소요되었다.


이리하여, 7시 55분에 기차를 타고, 10시쯤 도착, 10시 반쯤에 버스를 타고 11시쯤 나는.. 드디어 페니스꼴라에 당도하였다!


버스 루트 중에 해변이 보이는 구간이 있어 창밖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시간이 넉넉하다면 버스 타고서 곧장 페니스꼴라 성으로 가지 말고, 중간에 내려서 산책 삼아 걸어가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바다가 정말 예쁜데.. 여유롭게 구경하지 못한 게 좀 아쉬웠다.


좌) 페니스꼴라에 처음 도착해서 찍은 사진 / 우) 페니스꼴라를 떠나기 전, 한번 더 찍은 사진
좀 더 가까이서!


페니스꼴라 성은 티켓을 끊어야만 입장할 수 있다. 성 자체는 크게 볼 건 없지만, 성 위에서 바라본 바다와 마을 풍경이 환상적이니 꼭 성에 오르는 걸 추천한다! 티켓은 5유로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하고 이 티켓으로 성 아래에 있는 정원 관람도 가능하니, 정원도 구경하고 싶다면 티켓은 버리지 말고 가지고 있어야 한다. 티켓 매표소는 정원보다 위에 있으므로, 위에서 티켓을 사서 성을 보고 난 뒤 마을을 둘러보고 내려가는 길에 정원을 구경하는 루트라고 생각하면 된다.

좌) 정원 / 우) 정원에 있는, 아마도 옛날에는 대포를 쏘려고 만들어둔 구멍으로 보이는 페니스꼴라 해변
페니스꼴라 성에서 본 풍경

이날 기온이 30도까지 오르고, 딱 정오쯤이라 햇빛이 머리 바로 위에서 내리쬐었지만, 성 위에서 보는 풍경이 너무 예뻐서 몸이 정말 녹아내릴 것 같은데도 내려갈 수가 없었다(그리고 다 탔다). 바다색이... 정말... 태어나서 처음 본 색이라.. 아니, 보긴 봤는데 바다가 아니라 보석에서나 보던 색이라, '진짜로 바다 색깔이 이럴 수도 있구나'하며, 한참을 바라보았다.

바다를 보는 건 좋아해도, 해수욕에 대한 욕망은 별로 없는데.. 이 바다에는 나도 뛰어들고 싶었다
보정을 하나도 하지 않은 동영상이다. 정말로 바다 색이 저렇다.. 믿겨지시나요!!


나는 아직도 그리스 산토리니(언제 적 산토리니!)에 대한 로망이 있는데, 산토리니가 여기와 비슷하지 않을까 하고.. 감히 가보지도 않은 주제에 추측을 해봤다. 집의 하얀색, 하늘의 파란색 그리고 식물의 초록색이 너무 조화롭고 예쁜 풍경을 만들어낸다. 사실 페니스꼴라는 이미 관광지화가 된 곳이라, 식당, 호텔, 기념품 가게가 즐비해 있어서 일부러 사람이 별로 없는 안쪽 골목으로 발 가는 대로 걸어 다녔다.

미로 같은 골목을 걷다보면 이렇게 예쁜 풍경을 만나게 된다
가로로 봐도, 세로로 봐도 예쁘다

페니스꼴라에는 길냥이들이 많았다. 사람을 다소 경계해 가까이 가진 못했지만. 고양이들의 생김새가 한국의 길고양이들과 많이 닮았다.

페니스꼴라 성과 마을은 정말 작다. 나도 고작 3시간 남짓한 시간만에 다 돌아봤으니까. 하지만 바다와 풍경을 더 여유롭게 즐기고 싶다면 돌아보는 데 걸리는 시간은 무한히 더 길어질 수 있다. 나는 3시간만으론 너무 아쉬웠어. 마음 같아선 1박 하고 이곳의 일출과 일몰 그리고 야경까지 다 보고 싶었지만.. 이건 다음에 하는 걸로. 언젠가 다시 또 올 수 있겠지? 지금까지 바라는 것들을 아주 느리지만 조금씩 이뤄오고 있었으니까.

이렇게 그냥 걷다, 걷다, 걷다보면 항상 그 끝에는 바다가 있다
이 예쁜 마그넷이 3유로 밖에 안 한다. 뒤에 있는 건물과 문 색깔이 똑같기에 함께 찍었다
페니스꼴라 성 위에서 찍은 파노라마

#페니스꼴라 #페니스콜라 #스페인 #Peniscola #Sp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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