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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채 Aug 24. 2019

#2 아헨 Aachen

2019. 7. 18 / 8. 16 

 독일에서 워킹홀리데이를 했던 절친 ㅎ이 추천했던 도시, 아헨. 아헨은 벨기에, 네덜란드와 인접한 국경 도시인데, 세 나라의 국경이 만나는 지점을 Three-Countrty Point라고 한다. 미리 조사해 보니 별 다른 게 있는 건 아니고, 단지 이 지점이 세 나라가 만나는 곳이라는 표식만 있는 것 같은데, 그럼에도 한 번 가보고 싶다. 한 발만 내디디면 다른 나라가 된다는 건, 한국에 살면서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고, 언제 해볼 수 있을지 모르는 것이니까. 지금까지 아헨에 두 번 갔는데 두 번 다 저 Three-Country Point까지 갈 시간이 없어서(중심지에서 버스를 타고 나가야 한다) 다음으로 미뤄 둔 상태다. 


오른쪽이 독일, 좌측 상단이 네덜란드, 하단이 벨기에다.

 그럼 아헨에서 무얼 했느냐, 첫 방문은 언어 교환 파트너인 ㅌ과 함께 였다. ㅌ은 크로아티아에서 온 친구인데, 아헨에 크로아티아 식당이 있어 이전에 아버지와 함께 방문을 한 적이 있다고 했다. 아헨이 사실 관광을 위해서 몇 번이고 갈 정도의 규모의 도시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아헨을 가보고 싶다는 나를 위해 흔쾌히 동행을 해주었다.

 아헨까지 가려면 기차로 2시간 반을 가야 한다. 나도 ㅌ도 배가 너무 고픈 상태여서, 일단 관광보다는 식사를 먼저 하기로 합의했다. 이 경우를 두고 한국에선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한다고 가르쳐주었다. ㅌ은 대학교에서 한국어는 물론이고, 중국어도 같이 배우고 있기 때문에 한자어에 대한 이해가 빠른 편이다.(한자는 나보다 더 잘 알듯..)


 "금강산이 북한에 있는 아주아주 아름다운 산인데, 이거 구경하고 싶어도 일단 밥 먹고 나서(식후) 구경한다는(경) 뜻이야."

 

 ㅌ에게 한국사람들에게 "먹는다"라는 행위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먹는다"는 말이 들어간 표현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려주고 있자니 종착역인 아헨에 도착했다.


이름을 까먹은 폴란드식 만두

 아헨에 사는 트친님에게 소개받은 폴란드 식당에서 역시나 추천해주셨던 메뉴인 폴란드식 만두를 먹었다. 겉보기는 우리나라 군만두랑 비슷한데, 만두소가 다소 달랐다. 당면, 다진 야채, 고기 등이 들어가고, 간간하게 간이 되어있는 우리나라 만두와는 달리, 이 만두는 고기만두를 시키면 정말 안에 100% 고기만 들어가 있다. 아주 빽빽하고 목 맥히게. 맛있긴 했지만 동시에 초간장이 너무나도 그리워졌다...


시청 뒤편에서 바라본 아헨 대성당

 볼거리가 그리 많지 않은 아헨에서 제일 유명한 것은 아마도, 아헨 대성당. ㅌ은 이미 가 본 곳이지만, 다행히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 하여 같이 들어가 보기로 했다. 들어가기 전에 ㅌ이 하는 말이, 입장료는 받지 않지만 대신에 안에서 사진을 찍으려면 1유로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사진값을 받는다고? 다소 황당했는데, 먼저 내부를 보고 사진이 찍고 싶어 지면 그때 돈을 내기로 하고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아헨 대성당 내부. 제 1유로 가져가세요!

 들어가자마자 나는, 제 1유로 가져가세요, 제발 가져가 주세요..!!라는 심정으로 허가증을 나눠주는 직원 분에게 1유로를 내밀었다. 그러자 직원 분이 내 손목에 허가증 역할을 하는 종이 팔찌(놀이공원에서 자유이용권 끊으면 채워주는 그런 거)를 채워주셨다. 지금은 냉담자이기도 하고, 종교가 있냐고 물으면 과거형으로 대답을 하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성당은 좋아한다. 성당이라는 공간이 갖고 있는 고요하고 온화한 분위기와 마음을 차분해지게 만드는 공기 그리고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 

 요 작은 성당에서 한참이나 머물다 나온 뒤에 ㅌ이 나에게 냉담자가 된 이유를 물었다. 사실 뚜렷한 계기라던가,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모태신앙이어서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매주 성당엘 갔었고 세례를 받았지만, 스무 살이 되고 고향을 떠나오니 자연스럽게 안 가게 되었던 것이라서. 그 이후 종교의 여러 부조리한 면들을 목도하면서 내가 다시 종교를 가질 일은 없겠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누군가가 분수대의 인형들을 댑 Dab 포즈로 해놨다.
인기가 많은 인형 분수대
분수와 소통중 

 아헨 대성당에 갔다가, 잠시 카페에 들러 커피 한 잔 마시고, 다시 할 일이 없어진 우리. 산책하듯 중심가를 이리저리 돌아다니기 시작했는데, 그러면서 깨달은 건 아헨에 분수대가 유난히 많다는 것. 그중에서도 인형 분수대가 인기가 많았다. 인형의 포즈를 바꿀 수 있어서인지 오가는 사람들이 꼭 한 번씩은 건드리고 가더라. 


 아헨 첫 방문 이후 한 달 만에 아헨을 또 갈 기회가 생겼다. 앞서 포스팅한 몬샤우에 가기 위해 근교 도시인 아헨에서 하루 숙박하기로 한 것이다. 두 번째 방문이므로 아헨 대성당은 생략하고, 아헨에 거주하시는 트친님을 만나 그분에게 오늘 아헨 일정을 맡겨버렸다. 우리는 일단 베트남 음식점에서 밥을 먹고, 와인 가게에서 Federweißer를 산 다음 시청 앞 광장에 앉아 마시는 것이었다. Federweißer는 첫 수확한 포도로 담근 햇와인으로, 가을 시즌에만 맛볼 수 있는 술이다. 사실 나는 술을 전혀 못하는(그리고 알코올 냄새를 싫어하는) 사람인데, Federweißer는 숙성되기 전 와인이라 술맛보다는 포도주스 같은 단 맛이 더 난다기에, 게다가 이 시즌에만 먹을 수 있다기에 호기심이 생겨 나도 한 번 먹어보기로 한 것이다.  

 베트남 음식점에서 배부르게 먹고 신나게 와인 가게로 갔는데, 문제가 생겼다. 와인 가게 직원 분이 말하길, 빨라도 2~3주 후에나 나온다는 것이었다. 아니 그럼 트친님들이 마셨다는 Federweißer는 무엇이란 말인가.. 약간 억울했지만 어쨌거나 팔지 않는다고 하니 빈손으로 가게를 나올 수밖에 없었다. 

 

 내가 방문한 날이 마침 Kirmes(이동식 놀이공원?) 기간이어서 거기도 한 번 들르고(독일 Kirmes 관련 포스팅을 따로 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갑자기.) Kirmes 장소 옆에 Lindt 초콜릿 아웃렛에 들러 초콜릿도 구경하고 Federweißer의 빈자리를 나름대로 알차게 채운 후 트친님과 헤어졌다. 아직 6시 반밖에 되지 않아 밖은 여전히 환했고, 아헨에 이렇게 1박을 할 일도 많지 않을 것 같아 이날만큼은 야경을 보고 숙소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중심가로 돌아가 여행자들의 오아시스 스타벅스에서 잠시 쉬며 일몰시간이 오기를 기다렸다. 이곳 여름의 장점은 낮이 길다는 것이지만 동시에 단점이 되기도 한다. 야경을 보려면 너무 오래 기다려야 하니까. 


어린이의 비극...
광장에서 헬륨 풍선을 팔던 아저씨

 해가 지기도 전에 스타벅스가 문을 닫을 시간이 되어 광장으로 나가 벤치에 앉아 어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한 아이가 하얀색 하트 모양 헬륨 풍선을 가지고 놀다가 그만 놓쳐버렸다. 광장에 앉아있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풍선으로 향했다. 근처에 있던 성인 남성이 잡아보려 했으나 풍선은 이미 어른의 키도 훌쩍 넘어 두둥실 날아갔다. 아이는 포기하지 않고 뛰어갔는데, 놀랍게도 풍선이 갑자기 내려왔다(?!) 풍선이 다시 아이의 손에 들어가자 주변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모두 박수를 쳐 주었다. 


시청 건물의 앞
시청 건물의 뒤

 해가 지는 무렵의 빛을 좋아한다. 그날의 날씨에 따라, 구름의 정도에 따라,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계속 달라지는 빛. 완연한 밤이 오기 전 잠깐 볼 수 있는 진하고 쨍한 파란색을 띠는 하늘도 좋다. 그렇게 밤이 오기 전까지 풍경도 시시각각으로 변한다. 밤의 아헨을 만나고 그냥 떠나긴 아쉬워 걸었던 길을 몇 번이나 돌고 또 돌고 나서야 나는 숙소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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