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잠 Oct 12. 2021

당신에게 묻고 싶습니다.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때가, 가장 힘들었던 때가 언제였나요?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때가 언제였나요?"


  누군가 나에게 이렇게 질문한다면 나는 일단 그 사람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볼 것만 같다. 30살 넘게 살면서 지금껏 이토록 다소 오글거리고 꽤나 사려 깊은 질문을 들어본 일이 없기 때문이다. 타인의 성적이나 월급 같은 표면화된 수치 말고, 날씨나 뉴스 내용 같은 피상적인 화두 말고 '그대를 제대로 이해하고 싶소.'라는 깊이 있는 노력에서 출발하는 질문. 그래서 대답보다는 고맙다는 말이 먼저 나올 것 같다. 사실 나 역시도 이런 종류의 질문을 거의 입 밖으로 내뱉어 본 적이 없기는 하다.



  하지만 썩 괜찮은 질문의 의도와는 다르게 그 대답을 단숨에 떠올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행복이라는 감정은 아무래도 기억의 도장이 꾹 하고 박힌 거대한 인생의 사건들에서만 생겨나는 건 아닌 것 같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 대학 합격 소식이나 첫 직장의 입사 확정 소식을 들었을 때, 결혼식 날과 같은 행복의 대명사 같은 순간들을 떠올려 보면 기쁨과 걱정과 혼란스러움이 한 데 섞인 당시의 감정들은 꼭 행복으로 기억되지만은 않는다. (물론 내가 로또 당첨 같은 궁극의 행복(?)을 경험하지 못한 탓일 수도 있다.)



  내가 경험해온 행복은 조금 더 작고 소소하게 일상에 스미는 순간들이다.

  단짝 친구와 따라 불렀던 만화 주제가, 별똥별을 보겠다며 야자가 끝난 후 운동장에 누워서 느꼈던 흙냄새, 모녀가 함께한 여행지에서 카메라 프레임 안에 담기던 엄마의 웃는 얼굴, 저녁을 먹은 후 짝꿍과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하는 동네 산책...... 곰곰이 기억을 더듬어야 떠오르는 흐릿한 장면의 조각들과 그 소리, 온도, 마음 안의 간질거림들. 내가 제대로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어렴풋한 감각으로만 남아있는 제각기 다른 결들의 행복이 분명히 있다. 모든 행복은 그 순간 가장 행복하다. 그래서 행복은 '가장'이라는 수식어로 꼽아낼 수 없는 속성의 것인지 모르겠다.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때가 언제였나요?"


  하지만 질문을 이렇게 바꿔본다면 어떨까. 이것도 우리의 일상적인 대화 주제가 아니기는 하지만, 그래도 조금 더 친숙한 감은 있다. 미디어에 끊임없이 소개되는 CEO나 정치인, 연예인과 이름난 크리에이터, 대박 맛집 사장님까지 우리 시대 위인들의 성공담에는 이 질문과 눈물을 쏟는 답변이 넘쳐난다. 고난을 겪은 이의 성공은 그렇지 않은 사람의 성취보다 더 응원을 받는다. 예기치 못하게 찾아드는 힘든 순간들은 인류 공통의 것이고, 고통은 공감의 근원인 듯하다.



  힘듦에 관해서는 '가장'이라는 말이 꽤 어울린다. 심적 고통은 행복처럼 사소한 순간들에서도 촉발되지만, 마음에 깊은 고랑을 내고 잊히지 않는 굵직한 장면들이 누구에게나 존재할 것이다. 나는 10대 시절엔 학급 친구들과 잘 섞이지 못했던 중학교 1학년 때가 가장 힘들었다. 20대엔 매사에 허둥대고 고군분투하던 신입사원 1년 차 때가, 또 그다음에는 미래의 모든 것이 불확실한 채 30대를 맞아야 했던 29살의 나날들이 가장 힘들었다. 그리고 30대가 되었더니 새로운 '힘듦'이 위용을 뽐내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평범한 우리들에게 살아낸다는 것은 어쩌면 (성공 신화의 주역들처럼 과거의 고난에 대해 으리으리한 썰을 풀어낼 기회도 얻지 못한 채) 도장깨기 하듯 새로이 '가장 힘든 순간들'을 갱신해가는 일이 아닐까.



  그래서 애석하게도 첫 번째보다는 두 번째 질문이 좀 더 대답하기 쉬운 것 같다.

  하지만 어느 정도까지 솔직하게 답할 수 있느냐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나의 경우에는 극소수의 지인과 시간당 10만 원이나 받는 심리상담사 외에는 그 '힘듦'에 대해 함구한다. 엉엉 울다가도 '잘 지내?'라는 메시지를 받으면 '잘 지내지. 너는?'이라며 상큼한 이모티콘까지 보내줘야 하는 것이 이 시대의 인지상정 아니겠는가. 타인에게 부담은 줄 수 없고, 풀지 못한 감정 덩어리들을 안고 사는 나 같은 사람들 덕분에 심리상담센터와 정신과가 돈을 잘 버나보다.






  하지만 서로 다른 이 질문은 동전의 양면처럼 하나이기도 하다. 진부하지만 마음의 깊은 고랑을 다독다독 덮어주는 것은 인식하지는 못해도 먼지처럼 수없이 떠다니는 행복한 기억들의 자취이니까. 나 역시 오늘도 먼지들의 힘으로 거대한 상처와 맞서고 있다.



  그런 김에 당신에게도 한 번 묻고 싶다. 당신의 힘듦과 행복에 대해 얘기해 보자.

  하지만 부담감은 내려놓으시라. 구차한 연애사와 덕질의 즐거움 같은 지지부진한(?) 이야기라면 더더욱 환영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