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잠 Oct 12. 2021

닭다리 집착자

둘째는 어떻게 또라이가 되는가?

  신혼부부의 달달한 주말 저녁, 나름 심혈을 기울인 요리 초보의 선정 메뉴는 닭볶음탕이었다. 다정하게 닭다리와 닭날개를 나눠먹고, 닭가슴살만이 양념 속을 뒹굴자 짝꿍의 가벼운 투정이 들려왔다.

  "난 퍽퍽살 싫어해. 자기가 먹으면 되겠다."

  누가 들어도 악의 없는 단순한 취향 고백이었다. 하지만 내 안에서 알 수 없는 분노가 들끓었다.

  "내가 더 싫어해. 안 먹어! 퍽퍽살 안 먹는다고!!"

  예상치 못한 내 거친 언행(?)과 짝꿍의 불안한 눈빛이 교차하며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졌다.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지만 그는 내가 또라이라 생각했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 나는 닭다리 집착자다.(그리고 퍽퍽살 혐오자다.)







  이 극단적(?) 취향의 출발점은 내가 둘째라는 데 있는 것이 분명하다. 나에게는 연년생인 언니와 7살 어린 남동생이 있다. 언니는 당차고 똑똑했으며, 동생은 집안의 모든 어른이 기다리던 사내아이였다. 그리고 우리 집은 대부분의 가정이 그러하듯 경제적으로 그다지 넉넉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의 출발점은 조금 달랐다. 첫 아이인 언니는 친척들의 축하 속에 꽤 많은 돌반지를 선물 받고 첫 생일을 보냈다. 곤룡포를 두른 남동생은 온갖 지인에게 넘치도록 돌반지를 선물 받아 열 손가락에 다 끼고도 반지가 남았다. 그리고 나의 첫 생일에 반지를 선물한 사람은 엄마가 유일했다. 둘째 딸의 포지션은 명확했다.

그렇기에 자라나면서 나는 둘째로서의 생존 방식을 정해야 했다. 적절한 반항과 철저한 마이웨이로 나의 존재감을 드러내거나 손이 안 가는 순둥한 아이로 묻어가며 나의 존재감을 감추거나.(실제로 둘째들이 매우 독립적이거나 혹은 매우 이타적인 성향을 보인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는 사실을 최근에 알았다.) 애석하게 타고나기를 소심도 병인 양 싶은 나는 자연스레 후자를 택했다. 나까지 내 욕심과 내 주장을 펼치면 안 그래도 가여운 엄마가 말라죽을지도 모른다는 직감이 초딩 때부터 왔던 것이다.



  가끔 엄마나 아빠는 먹성 좋은 우리를 위해 늦은 저녁 치킨을 시켜주셨다. 5인 가족에게 닭 한 마리는 귀엽기 그지없는 양이라 엄마, 아빠는 입도 대지 않으셨(정확히는 못 하셨)다. 그리고 테이블에 남은 자는 셋, 닭다리는 두 개였다. 소리 없는 눈치게임은 늘 나의 멘트로 끝이 났다.

  "둘이 다리 먹어. 난 다른 것도 좋아해."

  나의 취향은 닭가슴살이나 닭날개로 성실하게 감춰졌다. 그때의 나는 사실 그 상황이 별로 부당하다고 느끼지 않았다. 엄마, 아빠에게 중요한 것은 세 남매의 평화였고, 한발 빠른 양보가 전투에서 패배하거나 포기를 강요당하는 것보다 편했다.






  닭다리를 멀리한 지(?) 어언 20여 년 가까이가 지난 어느 날, 독립해 각자 살던 우리 세 남매는 우연히 치킨 앞에 마주 앉게 되었다. 방금 배달 온 따끈한 치킨이 모습을 드러내자 언니가 내 앞으로 닭가슴살을 밀어주며 말했다.

  "자, 많이 먹어. 너 이거 좋아하잖아. 내 대학 동기 중에도 너처럼 닭가슴살만 먹는 특이 식성인 애가 있어. 걔 보니까 네 생각나더라."

  나는 몰랐다. 오랜 시간 이어진 배려는 상대방이 알 수 없다는 것을. 참을성의 차이가 취향의 차이로 둔갑되기도 한다는 것을. 퍽퍽살을 씹기도 전에 목이 막혀왔다.



  그리고 남동생이 말을 받았다.

  "누나, 사실은 나 닭다리보다 닭가슴살 더 좋아해. 크니까 취향을 알겠더라고."

  순간 머리가 띵했다. 습관이 된 나의 배려는 대체 누구를 위한 양보였을까.






  10대 시절, 나는 어른이 된 내 모습을 종종 상상했다.

  커리어 우먼인 내가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온다. 일하느라 고생한 스스로를 위한 보상으로 나는 혼자서 도저히 다 먹을 수 없는 양의 음식들을 배달시킨다. 피자, 치킨, 족발과 같은 음식들이 한 상 가득 차려지고 나는 애니메이션에 나온 도적 두목처럼 호쾌하게 닭다리를 뜯는다.

  그때그때 상상의 포인트는 달랐지만, 뭐 대충 이런 모습이었다.



  내 힘으로 돈을 벌게 된 후에 상상 속 만찬을 실제로 차린 일은 없었지만, 나는 작은 사치를 부리곤 했다. 치킨을 시킬 때면 몇 천 원을 추가해 닭다리로만 구성된 메뉴를 시킨 것이었다. 8개의 닭다리를 눈앞에 두고 찬찬히 씹으며 비로소 나는 취향을 펼칠 수 있는 어른이 되었음을 실감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서른이 넘은 이제야, 나는 닭다리에 대한 나의 집착 어린 애정을 누구에게도 참지 않고 발산하는 건강한(?) 어른 또라이가 되었다. 치킨 박스가 개봉되면 7살 조카만큼 망설임 없는 스피드로 닭다리 하나를 쟁취하고, 손님을 집으로 초대할 때는 손님 수보다 더 많은 개수의 닭다리를 사다 요리한다.

  그래도 세상에 공짜는 없고, 잃은 만큼 또 얻었다. 내가 떠나보낸 닭다리들이 내 소심한 성정 위에 차곡차곡 쌓여 그래도 눈꼽(?)만큼은 나를 좀 더 나다운 사람이 되도록 돕는 것 같다. 갸륵한 둘째 딸에서 거침없는 닭다리 집착자로 거듭나기 위해 오늘도 나는 나 스스로와 대화 중이다.



  혹시 주변 사람 누군가가 닭다리에 유난히 집착하는가?

  그렇다면 한 번쯤은 심도 깊은 호구 조사나 세심한 과거 탐색이 필요할는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이전글 당신에게 묻고 싶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