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발적인 서사, 시적이고 우아한 문체, 지적이고 독창적인 서술
오바마가 극찬했다는데 혹해서 상당한 두께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꽤 열심히 읽으며 내용을 정리하며 읽었던 흥미로운 소설.
(** 읽으면서 문체에 반해 줄거리를 요약하면서 읽었기 때문에 정리된 내용 또한 압도적으로 많다. 시간이 없어 간단히라도 스토리를 접하고 싶은 분들만 보면 좋을 것이고 가능하면 이 멋진 문장을 직접 접해 보시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작가가 젊고 훌륭한 교육을 받은 여성 엘리트라는 점은 매력 포인트다. 게다가 한 번도 본적 없는 놀라운 묘사력을 갖춘 섬세한 문체를 선보인다. 이게 요즘 미국에서 먹히는 서사 형태인가 싶기도 했다. 세련되고 고상하며 고전적인 향기도 나면서 지루하지 않고 가독성 높은 현대적인 문체. 이건 새로운 발견이다. 게다가 성적인 묘사는 인간사 많은 부분을 차지하지만 늘상 한켠에 숨겨두고 노골적으로 전면에 등장시키고 싶지 않아 음침한 구석을 보이기 마련인데, 이 작품에선 장면 묘사가 너무 노골적이어도 반감이 들기보다는 상황을 인식시키는 도구로 여겨지고 벽지같이 전체 스토리에 펼쳐지는 힘이 있었다.
하여튼, 방대하기도 하여 약간의 등장인물 지식이 필요하다. 주인공은 로토 (랜슬럿 새터 화이트)와 그의 아내 마틸드이다.
로토의 이야기는 전편 ‘운명’을 이루고, 마틸드의 이야기는 2편 ‘분노’에 담겨 있다. 로토는 인생 전체가 운명적인 만남으로 점철 되어 있다. 그리고 마틸드의 삶을 이끌어 가는 주된 동력은 분노이고. 그러니 로토의 운명이 어떻게 이끌려 갈지 조금은 상상이 되는 측면이 있다.
키가 훤칠한 22세 로토와 모델같이 늘씬한 마틸드가 메인주 5월 바닷가에서 서로 키스를 나누고 평생 서로 해로하며 사랑하는 삶을 상상하며 은밀한 결혼식 올리면서 시작된다.
로토는 1960년대 후반 플로리다주 햄린에서 부모님의 새 농장에 허리케인이 불어 닥칠 때 태어난다. 어머니 앤트워넷, 아버지 거웨인, 고모 샐리가 아이를 받았다.
아버지 거웨인은 원주민 티무쿠아족부터 온갖 혈통이 섞인 혼혈로 거구에 털이 많은 곰 같은 외모를 하고 있다. 그가 스무 살에 부모님이 자동차 사고로 다 돌아가시고 나자 부모님의 땅에서 나오는 생수를 제품으로 생산하는 공장을 지어 부를 쌓고 아내를 얻으려고 거대한 코린트식 흰색 기둥이 우뚝 선 농장 저택을 지었으나 헛수고였다.
어머니 앤트워넷은 뉴햄프셔 해안 가난한 대가족(여동생이 다섯) 출신으로 한겨울 얼어 죽을 만큼 추운 지역이어서 가진돈을 다 긁어 무작정 기차를 탔고 그 기차의 잡지에서 우연히 본 황금빛 플로리다를 보고 가진 돈으로 갈 수 있는 노선의 끝까지 갔고 히치하이크로 위키와치에 도달한다. 거기서 수족관 속 인어의 역할을 하면서도 나중에 근사한 연기자가 되기만을 꿈꾸며 살아가지만 나이 서른다섯이 되도록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다. 그러다 거웨인의 열일곱 살 여동생 샐리가 가출하여 어쩌다 앤트워넷의 물속 연기를 보고 한눈에 반해 같은 룸메이트가 된다. 거웨인이 그 집에 갔다가 앤트워넷을 보고 한눈에 반하고 샐리가 오빠의 계좌에 몇백만 달러가 있다는 소리에 일사천리로 결혼식을 올린다. 한마디로 남편은 단순한 탈출구였다는 말이다.
앤트워넷으로부터 기대했던 사랑이 좌절되자, ‘거웨인은 오랫동안 꾹꾹 삼켰던 모든 사랑을 로토에게 모조리 쏟아부었다.’ 샐리는 헌신적 유모 노릇을 했고 앤트워넷은 천재처럼 키우려 했고 로토가 두 살일 때 저녁에 읽어 준 동시를 아침에 완벽하게 암송하자 모두는 기대감에 가득 차게 된다.
평화롭고 행복하던 일상을 보내던 중 갑자기 거웨인이 사망하고 앤트워넷은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된다.
(멋진 표현 하나!)
‘절대 뛰는 법이 없는 그 여인은 하얗게 질린 채 비명을 지르며 하강하는 새처럼 한달음에 달려오고 있었다.’
‘마침내 그녀는 커다란 과일처럼 쩍 벌어졌다. 아기 레이철이 씨앗처럼 툭 떨어져 나왔다.’
기대감을 모으던 토르는 바닷가에서 만난 11학년인 마이클, 쌍둥이 그웨니와 콜리와 어울리며 방탕한 생활을 하고 해변가들 돌아다니다가 그웨니와 처음으로 섹스를 나누던 순간 파티장에 불이 나 철장 신세를 지고 춥고 음울한 뉴햄프셔 기숙학교에 보내진다.
친구 콜리는 로토를 진정한 친구로 생각하고 로토도 그를 보며 ‘그이 투박함, 외로움, 돈에 대한 순수한 허기를 보며’ 아버지를 떠올렸다.
기숙학교에서 그는 범블퍽(Bumblefuck, 외딴곳이라는 의미의 속어) 파이라는 별명을 얻는다. 그리고 추수감사절이나 크리스마스에도 집에 돌아갈 허락을 받지 못한 채 외로움에 몸부림친다. 성적은 우수했으나, 우울감으로 늘 자살을 생각했다.
영문학 수업에 ‘덴턴 스래셔’라는 교사가 대리 담임으로 들어와 멋진 시를 낭독하며 아이들을 한 숨에 침묵시키는 걸 본 순간 본인이 살아갈 길을 발견한다.
던텐은 손으로 사각 상자 모양을 만들어 아이들 얼굴 앞에 들이대고 ‘비극’, ‘희극’은 관점의 문제이지 차이는 없다며 로토에게 연극의 세계를 보여준다.
(이 말은 사실 이 소설의 주제와 맞닿은 거 같다.)
‘마침내 로토는 이 세상에서 살아갈 유일한 길을 찾은 것이었다.’
그는 연극과 에이트 조정선수에 참여하면서 그럭저럭 살아가지만, 여전히 세상은 쓸쓸하게 여겨졌다. 그 불량 친구들이 여전히 고향에 있기에 그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학생처장실 서랍에서 슬쩍 보았던 권총으로 자살하겠다는 심정으로 밤에 몰래 들어갔다가 뜻밖에도 벽에 걸린 보트 뱃머리에 목을 맨 젤리 롤을 발견한다.
슬픔에 겨워 어둠 속 정원에 있는 토르를 발견한 너무도 나약한 덴턴은 그의 아픔에 슬픔을 견딜 수 없어 그의 눈물을 멈추게 할 요량으로 오럴 섹스를 한다. 그게 그의 눈물을 멈추게 하고 그를 여기서 도망가게 해 줄 변명거리가 될 것이기에.
‘이 아이와 함께 이곳에 영원히 붙들려 있게 될 거야.’ 라며 괴로워 하지만, 그런 자기희생을 감당한다.
이에 울면서 안뜰을 달려 나가는 로토를 우연히 본 새뮤얼 해리스는 ‘어찌나 우울하게 지내는지 그 푸른 슬픔이 무지갯빛처럼 영롱해 보일 지경’이라 그가 틀림없이 자살할 것이라 여겨 그를 방에 끌어당겨 자초지종을 듣고 진정시킨다. 여름방학이 되자 상원의원인 자기 아버지의 메인주 여름 별장으로 그를 데려가 최상류 사교모임을 경험시키고 새뮤얼의 어머니는 좋은 옷과 음식으로 자신감을 불어넣어주었다. 이러한 경험 덕분에 로토는 여유로워졌고 웃음을 되찾았고 의연하고 당당해졌다.
‘새뮤얼은 그들의 우정이 이어지는 긴 세월 동안 자신의 친구를 바라볼 때마다, 자신이 얼마나 큰 기적을 이뤄냈는지, 그가 어떻게 로토를 다시 살려냈는지 보게 될 것이다.’
2학년 추수 감사절 직전 갑자기 콜리가 찾아와 그웨니가 약물 과다 복용으로 죽었다고 알려준다.
로토는 그 소식에 ‘베이지색 리놀륨 바닥이 바다로 변하더니 파도가 밀려와 로토의 정강이를 때리고 또 때렸다.’라고 표현할 정도로 충격에 휩싸인다.
그는 그웨니를 책임을 지기로 했던 그 약속을 콜리에게 한다. ‘ “내가 돌봐줄게.”
그는 콜리에게 돈을 주고 기숙사에 재워주고 수업을 도강하게 해 준다. 사람들은 로토를 사랑하는 나머지 그 사실을 감춰준다.
‘세상이 위태로운 곳임을 로토는 이미 배워서 알고 있었다. 한순간 몹쓸 계산에 휘말리면 뺄셈의 대상이 되어버린다. 누군가는 어느 순간 죽겠지만, 누군가는 살아야 한다!’
‘그리하여 여자들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도시로 놀러 가고, 나이트클럽에서 폴로셔츠를 입은 채 땀을 흘리고, 세기 중반의 모던한 커피 테이블에 코카인을 줄 맞춰 쏟아 놓는다. 부모들은 집을 비운다.’
새뮤얼이 부러워 눈알을 굴릴 정도로 로토는 여러 여자애들과 어울린다. 그럼에도 뉴욕 주에 있는 유명 사립대학 바사 칼리지에 입학허가를 받았다. 다른 모든 파티를 다 눌러버릴 멋진 파티가 열릴 것이므로.
그는 대학이라는 원더랜드로 가자 두 달 만에 남근의 마스터 ‘호그마이스터 Hoagmaeister’ 라는 별명을 얻는다.
‘영혼을 섹스에 헌납했다고 생각했다. 그는 고대의 사티로스(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반인반수의 괴물로 술의 신 디오니소스를 쫓아다니며 광란의 축제를 즐기기로 유명하다)처럼 살다 죽을 것이다. ‘
파티에서 저 멀리 나타난 빛나는 매력의 소유자 마틸드를 보자 그는 첫눈에 반했다.
그녀를 보자 ‘순식간에 그는 새사람이 되었다. 그의 과거는 사라졌다. 그는 무릎을 꿇고 마틸드의 손을 잡아 그의 심장에 갖다 댔다. 그가 그녀를 올려다보며 소리쳤다. “나와 결혼해줘!”
‘하나의 문이 그의 뒤에서 닫혔다. 그리고 다른 문이, 더 좋은 문이 활짝 열렸다.’
그 둘은 결혼해 지하의 넓은 아파트를 빌려 친구들과 집들이를 한다. 광란의 파티를 하던 중 벨이 울리고 공항에서 미아가 될뻔한 로토의 여덟 살 여동생 레이철을 데리고 중년부부가 구해 데리고 온다. 이렇게 극적으로 그 둘의 인생에 레이철이 등장하고 고비고비마다 구원의 손길을 펼친다.
그리고 그 지하 아파트에서 마틸드와 로토는 위태하기는 해도 7년이나 함께 결혼생활을 유지한다. 로토는 여전히 뚜렷하게 자신이 할 만한 일을 찾지 못하고 연극에서도 자질이 없음을 깨닫는다. 그 많은 친구들은 서서히 사라지고 이제 남은 친구들은 콜리, 다니카, 수재나, 새뮤얼이 각자 혼자가 되어 로토의 집 새해 전야 파티에 왔다. 이 날의 파티는 두고두고 그들의 기억에 남는 멋진 하루였다.
그들은 이 모임에서 가족 같은 유대관계를 느끼며 각자 헤어지고 로토는 마틸드가 잠든 후 그녀가 자신을 버릴 것 같다는 절망적인 생각으로 밤새 노트북에 뭔가를 두드리고 잠이 든다. 그것을 발견한 마틸드는 그의 재능을 발견하고 놀라워한다. 그것은 희곡이었고 그 이후 매년 놀라운 희곡을 발표하며 ‘랜슬럿 새터화이트’라는 이름으로 유명인사가 된다. 그러다가 그는 어느 순간 슬럼프에 빠져 다시 절망감에 힘들어하고 있을 때 마틸드가 그를 오페라 공연장으로 데려가고 거기서 토르의 정신을 번쩍 들게 할 만한 작품을 보게 된다. 그는 다시 오페라 작품을 쓰고 싶다는 열망에 그 작품을 작곡한 레오 센이라는 작곡가와 연락을 취해 함께 작품을 구상하기로 약속하고 11월 한겨울 삼 주 동안 자연주의를 표방하는 산골 깊은 예술가 마을에서 함께 지내며 작업하기로 한다. 뜻밖에도 레오는 스물여섯의 가냘픈 청년이었고 로토는 이미 결혼생활을 17년이나 한 마흔 중년이었어도 죽이 잘 맞았고 의기투합하며 작품 구상에 몰두한다.
한겨울 추위에 떨며 온갖 고뇌에 홀로 몸부림치던 레오가 드디어 작품 ‘디 안티고나드 The Antigonad’의 주역인 ‘고’의 아리아를 완성하고 들려주기로 한날 그는 다시 20대의 젊었던 때의 활기와 열정을 되찾는 듯한 마음으로 달떠 몸을 구석구석 단장하고 먹을거리를 챙긴다.
‘ 그의 내면에서 무슨 일인가가 일어나고 있었다. 열리기만 하면 그를 태워버릴 용광로가 안에 있는 것만 같았다. 마틸드조차 알지 못하는, 의식되지 않은 어떤 비밀들이.’
하지만 그의 열열한 기대와 달리 작품은 두려움이 가득하고 지나치게 달콤하고 아프고 떨고 있었다.
랜슬럿은 배가 떠난 해변에 혼자 남은 심경으로 자기 숙사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는 마틸드가 있는 그들의 집으로 돌아갔고 그들의 사랑이 여전함을 확인했다.
그리고 어느 날 신문 기사에서 레오가 12월 겨울바다에 빠져 익사한 기사가 실린 것을 보고 로토는 엄청난 충격에 빠져든다.
그때 마틸드가 ‘ 계단 꼭대기에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웃지 않는 표정으로 진지하게, 빨간 드레스를 입고서 칼날처럼.’
‘“메리 크리스마스!” 그녀가 깊고 맑은 목소리로 명랑하게 외쳤다. 그는 뜨거운 난로 위에 손을 내려놓았을 때처럼 움찔 놀라 물러섰고, 그녀는 거울 속의 그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느리고, 느리게 내려왔다.’
(오페라 원고 중),
‘ 고는 혼자예요, 그녀가 노래한다. 죽지 못하는 고는 죽은 세상에 살고 있다. 이보다 더 지독한 운명은 없다. 고는 혼자다. 혼자 살아 있다. 유일하게 살아 있는 존재.’
친구 내털리의 유고작 전시회를 틈타 콜리는 우연을 가장해 마틸드를 떼어놓고 그녀가 로토와 결혼하기 전 갤러리 사장 에어리얼과 그녀가 사 년간 애인 사이였다는 사실을 밝히고 로토는 아연실색한다.
‘ 두 사람의 위대한 사랑은 상해버렸다. 그가 얼마나 격분했던가. 분노가 그의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덮어버렸다. 지난 한 달 동안 그는 그녀 옆에 머물지 떠날지 사이의 가느다란 선 위에 서 있었다. (...) 이십 년 동안 그는 눈처럼 순수한 여자, 슬프고 외로운 여자를 만났다고 생각했다. 그는 그녀를 구원했다. (...) 누군가의 정부였다. [비극, 희극. 그건 오로지 관점의 문제다. ]
로토는 막연한 공포로 두려움에 빠질 때마다 그의 곁에서 미소 짓는 마틸드를 보며 편안한 안도감을 느낀다. 이러한 안도감은 내면에 잔존하는 공포로부터의 도피이지 진정한 평화와 편안함은 아님을 화려함은 없으나 자식을 낳았을 수는 있었을 것이다. 어느 삶이 나았을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로토는 바다의 파도가 자신의 고뇌를 씻어 줄 것이라 기대하며 바닷속으로 들어가 몸을 맡긴다.
‘작은 가위가 탁 오므려 닫히는 소리. 아찔한 그 아름다움을 가슴에 새길 시간도 거의 없이, 그 순간이 왔다. 헤어짐의 순간이.’
/분노/
마흔여섯 결혼 23년째일 때 랜슬럿 새터화이트는 익사한다.
분노의 장은 로토가 죽은 후 혼자 남겨진 이후 비로소 시작된 마틸드에 대한 이야기다.
그녀는 오렐리로 프랑스 브르타뉴 지방에서 1968년 5월 혁명 중 잉태되었다. 어머니는 교육을 전혀 받지 못했고 시장에서 생선을 팔았으며 아버지는 한 마을에서 열두 세대 동안 산 집안 출신으로 석공이었다.
오렐리는 새로 태어난 동생에게 관심을 뺏기자 시기심으로 네 살일 때 한 살인 남동생이 한 살일 때 동생이 계단으로 향하는 것을 그냥 지켜만 보다가 아기가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고 목이 부러져 죽는다.
부모님은 그녀가 동생을 밀쳐 죽였다고 생각하고 그녀를 할머니 집으로 보내고 다시는 그녀를 찾아오지 않았다. 그녀는 분노로 비명을 지르고 욕실 거울을 깨 부쉬고 부엌 유리잔도 다 깨부쉈다. 달래다 안된 할머니가 커튼 끈으로 침대에 묶어 두고 이에 그녀는 손톱으로 할머니 얼굴을 할퀴는 몸부림을 몇 달간 지속한다. 그러다 서서히 잊어간다.
‘늑대가 몸을 돌려 그녀의 가슴속에 자리를 잡았고, 거기서 크르릉 크르릉 소리를 냈다.’
그녀는 지속적으로 모든 가족으로부터 분리 또는 겪리 되는 삶을 살게 되고 가난과 극도의 무관심과 냉정함 속에 고통받으며 자라난다. 그런 그녀는 이제 진정한 안식처라 믿었던 로토를 잃은 상실감에 몸부림친다. 그 상실감을 누르고 살기 위해 오로지 강렬한 성욕만이 그녀를 물밖으로 밀어 올린다. 그녀는 로토를 통해 자신이 이루고자 한 바를 성취하려고 애썼고 로토를 지극히 성심을 다해 사랑하였으나 아기를 얻을 수는 없었다. 레이철의 딸을 안은 순간 아기를 갖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혔지만 자신은 그럴 자격이 없다고 믿는다. 그것이 자신에게 스스로 내린 형벌이라면 너무 가혹했다.
‘지금 이 과부의 욕망은 그것과는 정반대였다.’
‘과부. 이 단어는 그 자체를 연소시킨다. 자기 자신을 연소시킨 실비아 플라스는 말했다.’
그러고 보니 이 이야기는 실비아 플라스의 삶과 닮았다. 단지 그녀가 천재적인 작가였고 자살한 건 그녀였지만. 이 소설엔 실비아 플라스로부터 흘러넘치는 향기가 가득하다.
후반부의 이야기는 주로 마틸드가 고통에 몸부림치면서 자살 직전의 심리적 상태로 닥치는 대로 아무나 하고 섹스를 하며 사막 같이 막막한 심정을 잠재우는 내용으로 채워진다.
그러다 롤런드라는 젊은 청년이 로토의 죽음을 애도하러 찾아왔을 때 그와의 한차례 섹스 이후 갑자기 자신의 심정을 고백하기 시작한다.
“더 젊었을 때 불임시술을 받았어요.” (...) “이 세상에서 내 유전자가 필요한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니까요.”
다들 짐작하겠지만, 그녀는 결코 만만한 어린 시절을 보낸 게 아니었다. 삶의 고비고비마다 구원의 손길은 있었지만, 그 손길은 그녀를 더 궁지에 몰아넣어 외롭게 사투하며 생존 무기를 갈고닦으며 무감각한 강철 심장을 만들어 나가는 길로 인도했다. 외할머니 어머니 삼촌 그리고 4년 대학 등록금을 조건으로 열차에서 우연히 만나 동거하기로 맘먹은 에어리얼이라는 남자에 이르기까지( 그 나이가 열여덟 살이었다 ).
“어떤 감정도 일어나지 않을 거예요. 우리는 로봇 같은 사이예요.”
그렇다. 그녀에게 세상이 요구하는 것은 감정이 없는 로봇 역할이었다. 살아오는 내내.
그리고 그녀가 어떻게 그녀의 분노를 표출하는지를 과거와 현재를 한 층씩 쌓아 올리며 그녀가 그럴만하다고 지지하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섬세한 묘사들로 나머지 몇백 페이지가 가득 채워지는 것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