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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iker 한영 Jul 27. 2023

우리는 지금 화성에서 사는가

85. 5R 10일차_9th:<임실편>6.김용택 시인의 생가

6. 김용택 시인의 생가


 마루에서 섬진강 내다보는 마을

   섬진강을 다시 한구비 도니 김용택 시인의 생가가 있는 진메마을이 보인다. 진메마을은 두류봉의 북쪽 끝 산자락에 강을 따라 일자로 옹기종기 모여 사는 자그마한 마을이다.

   산과 산이 마을과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어 장산長山마을이란 이름을 얻었는데, 순우리말로는 긴뫼마을로 부르다 진메마을이 되었다. 집의 마루에서 코앞의 섬진강의 아름다운 풍경을 내다볼 수 있을 만큼 섬진강과 하나 된 마을이다.


섬진강 시인 김용택

   마을 가운데에 돌담이 둘러쳐진 김용택 시인의 생가로 들어선다. 시인은 이 집에서 나고 자라고 교편생활을 하고 시인이 된 만큼 시인의 상징과도 같은 집이다.

   김용택 시인은 모더니즘이나 이념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정서적 균형과 언어적 절제 속에 섬진강을 배경으로 농촌의 삶과 농민들의 모습을 정감 있게 시에 담아냈다.

   그러면서도 완전히 서정성에만 머물지 않고 농민의 일상, 현실의 각박한 변화와 농촌의 퇴락을 비판과 풍자의 시선으로 지켜보기도 한다. 그는 시적 언어의 소박성으로 토속적 농촌의 전통적 가치를 울림 있게 전달하고 새로운 현대적 변화를 연결하는 감응력을 발휘하므로 독자적인 시 세계를 만들고 있다.


돌담이 둘러싼 김용택 시인 생가가 방문객을 위해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다.


관란헌에서 회문재로

   시인이 집에 앉아 섬진강을 바라보며 시를 썼다고 해서 집 이름을 '물결을 바라보는 마루'라는 뜻의 관란헌觀瀾軒으로 지었다. 아마도 시인은 퇴계선생의 도산서원에 있는 휴식공간인 '관란헌'이란 마루에서 이름을 차용한 듯하다. 퇴계는 학생들이 공부하다 잠시 쉴 때 그곳에 앉아 낙동강 물을 바라보라고 관란헌이라고 지었다. 지금도 이 지역의 강변사리마을 소개 사이트엔 시인의 집을 관란헌으로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가보니 관란헌 이름 대신 회문재回文齋라는 새 현판이 붙어 있다. 시인이 다시 진메마을로 돌아와 살면서 '오래된 글쟁이가 객지 생활을 뒤로하고 다시 돌아온 곳'이란 뜻으로 회문재로 바꿨다고 한다.

   그러나 시인이 회문재에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생가인 회문재 뒤쪽에 양옥으로 살립집과 서재를 새로 짓고 살고 있다. 회문재는 전시 관람용으로 공개하고 있다.


회문재 앞에서 방명록을 쓰고 나서


시인의 마음을 느끼다

   회문재 앞에서 볼 때 돌출된 왼쪽 1칸이 시인의 서재이다. 큰 창문이 양쪽으로 활짝 열려 있고, 창문 앞엔 별도의 툇마루도 딸려 있다. 창문 어귀의 방 안엔 방명록을 올려놓은 작은 상이 놓여 있다. 방문객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숨소리를 들으려는 시인의 마음이 느껴진다. 방 안엔 시인의 손때 묻은 책이 사면에 빼곡하다.

   양쪽으로 여는 유독 큰 두 쪽의 창문에서 시인의 마음을 느낀다. 원래 한옥의 창문은 외부와 소통하는 창구이다. 방 안의 나와 밖의 마을 사람들과 주변, 자연환경이 일체화되는 역할을 창문이 한다. 시인은 이 큰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섬진강을 바라보고, 마을사람들과 격의 없이 소통하며 자연과 주변에 활짝 열린 마음으로 시상을 떠올렸으리라.

   이곳에 왔으니 나도 정성 들여 방명록에 마음을 남긴다. "시인님처럼 아름다운 섬진강을 보며 상류로 올라가는 길에 잘 쉬어갑니다."라고 생가를 공개해 준 데 대한 감사 인사를 썼다.

   단원들과 기념사진을 남긴 뒤 시인의 집을 나선다. 진메마을의 오랜 역사와 함께 한 마을 앞 노거수 느티나무가 마지막 배웅을 해 준다.



진메마을 앞의 정자목인 느티나무 보호수 아래에서



7. 한국인의 치유와 힘의 근원


치천을 보며 아픈 기억이

   진메마을을 나와 섬진강으로 흘러드는 치천 하구 위에 놓인 자전거전용다리를 건넌다. 하천은 지역의 경계가 없이 흐르며 우리 국토 전체를 윤택하게 만드는 혈관과 같다. 이 치천을 거슬러 올라가면 발원지인 순창의 북쪽 구림면에 이른다.  

   그런데 이 물길이 시작되는 구림면엔 아픈 기억이 있다. 순창 구림면은 회문산 봉우리들과 노령산맥의 한가운데 있는 해발 500~600m의 산지이다. 치천이 흐르며 평야지대를 만들어 경작지를 확보한 산속의 분지 지형을 이뤄 마을이 협곡에 숨어 있듯 형성돼 있다.

   정유재란 때 일본군이 전라도 지방의 곡창지대를 확보하기 위해 순창을 공격해 들어올 때 군민들이 피신해 들어갔던 지역인데, 일본군은 이곳까지 따라 들어가 학살 만행을 저질렀다. 그 피를 한정 없이 흘려보냈을 치천을 건너자니 가슴이 아프다.


치유의 근원 한국의 자연

   그러나 그 때의 처절한 아픈 흔적은 지금 그 어디에도 없다. 지금 이렇게 아름답고 지극히 순연한 자연이 그날의 아픔을 잊게 해주고 치유해 주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의 강산에 대한 감사를 더하게 한다. 우리는 그렇게 대대로 자연과 더불어 치유받으며 살아왔다.

   숱한 외침과 고난으로 우리 강토마다 아픔이 절절히 배어있지만 또 극복하고 이겨내고 승화하며 어느 민족보다 흥이 많은 정서를 키워낼 수 있었던 것은 이 순결하게 아름다운 한국의 자연과 자연을 닮은 회복력 덕분이다. 그렇게 우린 이 자연과 더불어 모든 고난과 아픔을 이겨내고 서로를 보듬고 안아가며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들어냈다. 이 아름다운 강토는 곧 나 자신이었고, 국난을 당할 때마다 어느 민족보다 큰 희생과 단합의 힘으로 지켜낸 이유였다.


지금 우리는 화성에서 사는가

   그런데 지금은 또 위기이다. 지방에 골고루 인구가 분포하며 자연과 함께 살던 옛날과 달리 자연과 동떨어진 도시라는 공간에서 사는 지금은 사람들이 자연의 치유 능력을 잃고 말았다. 때마다 치유가 돼야 서로 이해하고 감싸 안을 내적 힘을 기를 수 있을텐데 도시에서 서로 경쟁하며 치열하게 살다 보니 마음이 각박해지고 작은 것에도 툭툭 감정이 터진다.

   지금 우리는 어디에서 살고 있는가. 자연을 허문 자리에 매머드 도시가 들어서서 수도권에만 인구의 절반 이상이 몰려 사는 나라가 되었다. 전국 인구의 95% 이상이 자연을 허물고 들어선 도시에서 사는 조건을 만들어놓고 있다.

   이 땅에 한민족이 대대로 살아온 수천 년 이래로 처음 있는 일이다. 지구에서 살다가 화성에 이주해서 사는 것도 아닌데, 마치 그렇기라도 한 것처럼 지금 우리는 옛날과 전혀 다른 삶의 환경에서 살고 있다.

   도시에서 사람들은 느끼고 즐기고 나누는 존재가 아니라 소득을 위한 수단으로 피 튀기는 경쟁의 장에 내몰려져 있다. 그 안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낙오자, 도태자를 감싸 안을 공동체적 연대나 시스템조차 없이 끝간데 없는 앞으로만 질주하고 있다. 지역마다 개성 있는 자연 환경그에 맞는 사람들을 품고 기르던 마을 공동체의 역할, 국토의 균형적 이용과 다양한 기능의 지역사회의 역할을 잃은 지 오래다.


자연 보존에 우리의 미래 달려

   최소한 이제는 어떤 명분으로도 우리의 이 아름다운 자연을 더 이상 허무는 일은 없어야 한다.

   도시화는 저출산의 한 원인이기도 하다. 극심한 경쟁사회에서 사람들은 누구보다 잘 키울 자신이 없는 한 아이 낳는 것을 포기했다. 또한 도시 생존 습관과 도시의 비대화가 부른 지구온난화와 기후 재난, 생태 파괴 등 많은 국토의 위기에 당면해 있다. 그 결과 인구가 줄고 그토록 열심히 만든 광활한 도시마저 잿빛 폐허로 남을 수 있다. 

   도시는 성장의 상징이지만 환경 파괴의 산물이기도 하다. 인간은 그 안에서 영구적일 수 없다. 자연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이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이다. 도시 집중이 아닌 지역마다 사람들이 퍼져서 살고, 지방 문화와 전통과 함께 우리의 정체성이 살아나고, 자연이 보존된 초록 환경 속에서 영구한 행복을 누리며 살아야 한다. 지금을 사는 우리와 국가가 어떻게 방향을 설정하고 행동하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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