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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iker 한영 Jul 07. 2023

가재 잡고 물장구치고 놀면 어떠리

84. 5R 10일차_8th:<임실편>4.한국인의 정의 근원

4. 한국인의 정의 근원


오직 자연을 벗한 천담마을

   이제는 천담마을로 가는 길이다. 섬진강물이 원통산 밑으로 혀처럼 길게 돌아 흐르는 끝머리에 작은 경작지를 소중히 가꾸며 사는, 주변이 온통 산과 강으로 둘러싸여 오직 자연을 벗한 천담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천담이란 이곳이 물이 돌아 흐르는 곳이라 못처럼 깊은 소가 많아 붙여진 이름이다.


3년 전 가을의 추억

   천담마을을 향하니 3년 전 가을 초입에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생각이 난다. 그때는 김용택 섬진강 시인의 집이 있는 진메마을에서부터 구담마을을 지나 장구목까지 지금과 반대 방향으로 걸었었는데 그때 천담마을을 들어서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요즘 보기 힘든 장작을 쌓아둔 집들이 보이더니, 길가에 감이 익어가는 감나무, 밤이 탐스럽게 벌어진 밤나무, 익을 대로 익은 대추나무에 열매들이 가득하고 길에 떨어진 밤과 대추도 한가득이었다. 이곳 마을 주민들은 저걸 매번 줍기가 번거로워 한꺼번에 주우려고 놔뒀나 싶을 정도로 신기했다.

   어디서도 쉽게 볼 수 없는 시골 오지마을의 이 정겨운 풍경에 도취되다 못해 내 고향의 밤 대추 마냥 떨어진 대추를 줍고 밤도 한 개씩 주워 까먹었던 기억이 난다.


아름다운 사람들이 사는 곳

   그런데 그때 더 기억에 남는 것은 이곳 주민들의 친절이었다. 천담마을길을 들어서는데 마을을 나오던 한 승용차가 우리를 보자 한참 전 먼 곳에 미리 차를 옆으로 비켜 세우고 우리가 다 지나갈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이 길은 정겨운 시골길이자 따뜻한 마음이 새겨진 포근한 마음길이다.

   진메마을에서도 그랬다. 마을에서 만난 모든 분들이 묻기가 미안할 만큼 친절하게 대해 주고, 우리가 가기 전까지 꽁꽁 닫혀 있던 김용택 시인의 서재도 열어주고, 마을 어느 집은 마당 안 수돗물에 손수건도 적시고 물도 담아가게 해 주셨다.


한국인의 정의 근원

   무한히 퍼가도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한국인의 인심의 근원이 이런 시골이었다. "퍼낸다고 마를 강물이더냐"라던 김용택 시인의 <섬진강 1> 싯구절이 오버랩된다. 아마도 맑고 순한 자연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있는 이곳 자연마을들이 인정 많고 소박한 우리네 시골의 대표성을 가진 곳이 아닐까 싶다.

   우리네 시골은 이렇게 따뜻한 정을 품고 이웃과 나누며 수백 년 수천 년을 대대로 살아온 한국인의 정의 근원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느 시골에 가도 이 순한 마음을 이어갈 어린이의 울음소리가 끊긴 지 오래다.

   이젠 어른들의 모습도 잘 보이지 않는다. 지금 시골을 지키고 계신 어른들이 한분 두 분 떠나시고 나면 우리네 시골은 텅 비고 만다.

   시골이 살아나야 우리의 전통이 살고 우리의 마음과 정신이 살고 한국의 정체성이 살고 우리나라가 살아날 수 있는데 시골 마을마다 소멸의 위기 앞에 선 조용한 모습에 안타까움이 앞선다.



5. 가재 잡고 물장구치고 놀면 어떠리


처음 본 강변사리마을 캠핑장

   이번엔 3년 전처럼 마을을 통과하지 않고 마을을 돌아 흐르는 강과 논밭 사이의 강둑길을 따라 멀리 돌아서 걷는다. 정겨운 마을의 모습과 섬진강의 모습을 양 옆으로 보며 걷는 힐링로드다.

   강을 돌아가는 끝머리에 3년 전에 왔을 때는 못 봤던 강변사리마을 캠핑장이 있다. 강변사리마을이란 이곳 섬진강변에 있는 물우리, 일중리, 장암리, 천담리의 네 개 리를 지칭한다.

   상류의 섬진강물이 산악 지형의 깊은 골짜기를 돌고 돌아 흐르는 강변에 자리한 자연마을의 소박한 정취와 인심을 느끼며 청정 자연 속에서 쉴 수 있는 캠핑장이 조성돼 있다는 것이 반갑다. 한편으론 사람들이 너무 많이 와 자칫 이곳 주민의 삶이 방해받거나 이 섬진강변의 청정 자연이 훼손될까 우려도 된다.  


시골 정서와 청정 자연 만끽할 최적의 장소

   마침 화장실이 급했는데 깨끗한 시설을 이용하고, 너른 데크 위의 피크닉 테이블에서 여로의 피로를 녹이며 쉬어본다. 그러고 보니 이곳 마을들은 올 때마다 고마움과 포근함을 느꼈던 우리네 고향 같은 곳이다.

   캠핑장은 깔끔하게 단장된 모습인데 조성된 지 얼마 안 되서인지, 아니면 지금 5월이어서인지 아직 인적이 없다. 이곳은 캠핑 시설은 물론 글램핑 시설이 참 잘 돼 있는 것 같다.

   이곳에서 청정 자연과 벗해 숙박하면서 주변의 김용택 시인의 고향집 관란헌과 구담마을의 당산 전망대도 가보고, 맑고 아름다운 섬진강에서 다슬기도 잡으며 시골 정서를 맘껏 느낄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인 것 같다. 주변에 장산마을에서 구담마을까지 약 5Km의 '걷고 싶은 길' 산책로도 잘 조성돼 있다.


강변사리마을 캠핑장의 글램핑 시설(좌), 캠핑장 내 피크닉 시설에서 여유로운 휴식 시간(우)


언제나 걷고 싶은 섬진강변길

   논 옆의 정겨운 시골길이 마을로 들어가는 유일한 길이다. 이 마을길을 옛 생각을 하면서 걸으며 천담마을과 작별하고 다시 섬진강을 따라 걷는다.

   왼편엔 산림이 우거지고 오른편엔 청정한 섬진강을 벗 삼아 걷는 참 아름다운 강변 길이다. 길가엔 김용택 시인의 시비들이 걷기 여행자들의 벗이 되어 주고, 조금 더 가니 섬진강의 아름다움에 오롯이 빠져들게 하는 전망대가 맞아 준다.


청정 자연에 묻힌 섬진강. 강변에 쪽배가 한가롭게 떠 있다.
섬진강변 곳곳에 김용택 시인의 시비가 서 있다.(좌) '걷고 싶은 섬진강길'을 걷는다.(우)


가재 잡고 물장구치고 놀면 어떠리

   이곳에서 바라보는 섬진강은 강이라기보다는 가재 잡고 물장구치고 놀던 시골 개울 같은 정겨운 모습이다. 이 같은 섬진강에 어찌 반하지 않을 수 있으랴. 강 안의 즐비한 돌들과 수풀들, 강가의 이름 모를 풀들이 모두 한아름씩 이야기를 안고 기다려준 친구 같다.

   "해 저물면 저무는 강변에/쌀밥 같은 토끼풀꽃/숯불 같은 자운영 꽃 머리에 이어주며.."라고 이어지는 섬진강 시인의 <섬진강 1> 싯귀가 들려오는 듯하다. 당장 강 안으로 뛰어들어가고 싶은 마음을 달래고 다시 길을 이어간다. 이틀 60km를 걸어야 해서 어제 33km를 걸은데 이어, 오늘은 27km를 걷고 서울로 올라가야 한다.


섬진강변의 전망대. 청정한 섬진강이 시골 개울처럼 정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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