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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iker 한영 Nov 24. 2023

도시의 공유공간에 대하여

사라지는 골목길의 아쉬움

(이 글은 신도시 건설이나 기존 골목길을 침해하지 않는 도시 외곽에 짓는 아파트와는 무관함을 전제합니다.)


골목길을 좋아하는 이유


공유공간으로서 골목길

   나는 골목길을 좋아한다. 다양한 감성을 주는 공유공간이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이 동네 저 동네를 가리지 않고 골목길을 주된 무대로 뛰어놀 수 있었던 것도 골목길이 공유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 내가 좋아하는 사직동과 내자동에 가서 오랜만에 골목길이 주는 감성에 폭 빠졌다. 오랜 시간의 흔적이 곳곳에 있고 서민의 삶이 묻어 있는 곳과 옛 건물에 들어선 자연스러운 모습의 식당, 카페, 미술관이 녹아들어 조화를 이룬다.

   각각의 개성과 다양함이 저마다의 길의 표정을 만들어내는 곳이 골목길이다. 어느 집은 담장 밖에 가지런히 화분을 놓아두고, 어느 집은 대문에 새 칠을 하고, 어느 집은 예쁜 장식을 달아 놓아 골목길을 걷는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이 채워 준다. 할머니와 산책 나온 강아지는 멀리서 다가오는 동네 아이의 발소리만 듣고도 누군지 알아차리고 꼬리를 흔든다.

   골목길은 정이 흐르고 마음이 오간다. 골목길은 수많은 다양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전해 준다.



골목길이 없어지고 있는 현실

   그러나 이 소중한 서울의 골목길들이 점차 없어지고 있어 안타깝기 그지없다.

   며칠 전 걸었던 사직동, 내자동만 해도 옛집과 골목길과 언덕 위 예쁜 가게들이 무한감성을 자아내던 동네였다. 그러나 이젠 많은 부분에서 그 아름답던 정취를 더 이상 볼 수가 없다. 아파트에 옛 골목길의 상당 부분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이미 아파트 단지가 이 지역의 절반을 잠식했고, 나머지 남은 부분도 조합 측과 서울시의 개발을 둘러싼 논란이 거세서 언제 없어질지 모를 운명에 있다. 

   많은 벤처들의 아이디어를 실현해 주던 철공소, 공구 가게들이 자리했던 을지로의 골목들을 비롯해 지금의 서울을 만들었고 상징하던 실로 수많은 골목들이 도시 재개발이라는 명분 하의 아파트 건설로 인해 지금 이 순간에도 무자비하게 없어지고 있다.



아파트에 대한 부정적 시각


폐쇄공간으로서 아파트

   아파트가 많아진다는 것은 도시의 폐쇄공간이 많아지고 그만큼 공유공간이 줄어든다는 것을 뜻한다.

   외곽의 신도시 지역은 논외로 하고, 서울과 원도시 내 대부분의 아파트 공간은 원래는 사람을 가리지 않고 모두 같이 공유하던 골목길이었다. 그러나 도시 재개발 사업 등으로 지금은 외부인의 출입을 막아서는 아파트 단지의 폐쇄공간으로 변했다. 그만큼 공유공간이 없어지고 이와 함께 삶의 다양성도, 사람 사는 정도, 우리들의 추억도, 많은 이야기도, 고유한 지역의 역사도 같이 없어졌다.

   처음 프랑스에서 선보였던 르코르뷔지에의 공동주택(아파트)이 우리나라로 전파되면서 우리나라는 아파트 열풍이 일었다. 처음 지어지기 시작한 프랑스, 미국 등 서구에서 아파트는 닭장과 같다 해서 성공하지 못했다. 자신들이 개발한 공간 효율성이 뛰어난 건축공법이지만 획일적이고 폐쇄적이라는 이유로 이내 사그라졌다. 펜트하우스 외엔 일부에 렌트용으로 있을 뿐이다.


자본의 논리로서 아파트

   그러나 여러 부정적 측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우리나라는 아파트가 각광받고 있다. 왜일까.

   아파트는 끊임없이 상품 개발과 소비를 통해 돌아가는 자본 논리의 산물이다. 과거 정경유착의 상징처럼 탄생한 우리나라의 거대 주택건설업자들에 의해 아파트 신화가 만들어졌다. 신기루였다 하더라도 이때 투자성도 같이 어필됐다.

   문제는 이렇게 생성된 아파트 주거문화가 지금도 이어진다는 것이다. 국가에게 아파트 건설은 내수경기와 성장률을 견인하는 주요 요소가 됐고 소비자에게는 불변의 투자수단으로 자리 잡았고 건설업자들은 계속 아파트를 지어야 하고 거대 주택건설 공공기관까지 출현한 데다 자재업자, 인테리어업자 등 도시를 지배하는 자본의 논리가 옛 골목길을 그냥 놔두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그 폐해는 심각했다. 돈을 위해 지어진 아파트는 단지 집값으로 사람을 차별하고 구별하는 신 계급사회를 만들고 있다. 집이 투기 수단이 돼 평생 월급을 모아도 못 살 만큼 버블 행진을 이어갔다. 더욱이 투자수단으로써 아파트 문화가 만든 물신주의는 도시집중과 과도한 경쟁 문화, 저출산 등 한국이 안고 있는 심각한 다양한 문제와 연결돼 있다.




서울 주택문화 이대로 좋은가?


아파트공화국으로 변한 서울

   사실 우리나라엔 가수 수(2,144만 가구)보다 주택 수(2,167만 호)가 더 많다.(2020년 기준) 앞으로 저출산으로 아파트 버블 붕괴의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도 서울 곳곳에서 다양한 이야기의 산실인 골목길이 자본의 논리에 의해 실로 무자비하다는 표현이 맞을 만큼 무지막지하게 도륙당하고 있다.

   이미 서울은 아파트 공화국이나 마찬가지다. 서울 전체 면적(605.21k㎡)의 약 20%(약 125k㎡)가 아파트 지역으로 변하면서 이제 더 이상 갈 수 없고 공유할 수 없는 폐쇄공간이 되었다.

   그러나 아파트 중심의 주택정책은 멈추지 않고 있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 많아져(서울 171만 세대) 일종의 주택문화로 자리 잡았고, 그럴수록 투자수단으로써 자본논리는 강화되고, 한번 아파트 단지로 변하면 다시는 골목길로 돌아갈 수 없으므로 아파트 중심의 주택정책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나중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아파트를 짓고, 노후화되면 또 허물고 짓다가 용적률이나 분양 가구 수 등에서 더 이상 수익성이 담보되지 않는 상태까지 가서 아파트 재건축이 불가능하게 되면 나중엔 노후화된 아파트에서 더 이상 살 수 없게 되고 서울이 거대 콘크리트 지역 공동화 현상을 빚을 수 있다.  


아파트만 해법이라는 착각

   서울만 보면 총 가구수가 398만 가구에 주택 수는 378만 호이다. 20만 호가 모자란다. 이 모자라는 20만 호를 아파트 건설로만 충당해야 한다는 생각부터 잘못됐다. 아파트만이 인구과밀을 해소해 준다는 것은 근거 없는 괴변이고 착각이다.

   서울 인근 도시의 예를 들어보자. 성남 단대동의 경우 달동네를 아파트 단지로 바꾼 결과 기존에 1만 7100 가구가 있었던 곳이 아파트 1만 2500 가구로 줄었다. 4600 가구가 살 곳이 없어진 것이다. 그러나 달동네 주민의 상당수가 저소득층이어서 이보다 많은 수의 가구가 아파트 개발로 인해 아예 살던 지역을 떠나야 한다.

   수정구, 중원구 등 재개발사업을 하는 모든 곳에서 똑같은 현상이 생겼다. 그 결과 성남시 인구는 2010년 98만 명에서 4년 동안 94만 명으로 오히려 줄었다.

   역시 아파트 개발 사업이 많았던 수원의 경우엔 2016년 119만 명에서 2019년 120만 명으로 겨우 1만 명이 늘었다. 흥덕, 광교 등 기존에 아파트가 없던 지역에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건설되었고, 성남 같은 위쪽 지역에서 내려오거나 지방에서 올라온 이주민들로 그나마 늘어난 것일 뿐이다. 즉 수원의 경우에도 도시 내에서 기존 골목길을 없애고 아파트를 짓는 방식의 도시 재개발로 인구가 는 것이 아니다.

   더욱이 도시 재개발에 의한 아파트 건설의 득실을 단지 인구 숫자만 놓고 따질 수가 없다. 개발이익의 과도한 사유화, 저소득 계층의 주거안정 훼손, 사회적 통합 저해, 무분별한 전면 철거 재개발로 인한 장소성, 역사성의 상실, 지나친 수익 중심 개발에 따른 공공성 결여 등 실로 많은 문제점을 도시 재개발 사업에 따른 아파트 건설이 안고 있기 때문이다.


공유공간이 줄어드는 것의 폐해

   많은 문제 중 내가 가장 아쉽게 생각하는 것은 삭막함이다. 공유공간이던 골목길이 사라지는 만큼 서울의 상당 부분의 이야기가 사라지고 기능적 편리성만 넘실거리는 도시로 변하고 있다. 그럴수록 다양성과 따뜻한 사람 사는 정이 없어지고 반목과 차별이 늘어나고 있다.

   골목길이 살아 있을 때 기대할 수 있는 다양한 모습을 연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사라지고, 우리 모두의 추억을 만들어주고 소통하던 장이 사라지므로 결국 공유할 공간이 없어진다는 것은 우리 삶의 한 부분을 잃는 것과 같다. 삶의 행복은 공유와 소통을 통해 얻어지는데 그만큼의 기회가 없어지는 것이다.

   특히 공유면적의 축소가 만드는 폐해가 심각하다.  예를 들어 우리는 아파트 단지 안에서 즐길 거리를 찾지 않는다. 결국 우리가 찾아가는 곳은 공유공간인 골목길이다. 폐쇄공간이 늘고 공유공간이 없어진다는 것은 같이 누릴 서울의 면적이 그만큼 축소된다는 뜻이다. 인간의 삶은 주거공간만으로 영위되는 것이 아니다. 면적이 축소되는 만큼 공유공간의 인구밀도가 높아지고 그만큼 삶의 환경이 각박해지고 경쟁이 심화된다.

   그렇지 않아도 도시집중 현상이 심각한 문제인데, 아파트 건설로 공유공간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어 문제가 더 심화되고 있다. 공유공간이 좁아지면 한정된 공간 자원 안에서 경쟁은 더 심화될 수밖에 없다. 인구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토머스 맬서스가 “도시의 인구밀도가 높아지면, 한정된 자원을 가지고 경쟁이 심해지고, 이는 생존경쟁을 위한 저출산으로 연결된다.”라고 지적한 것을 곱씹어야 한다.


골목길 보존 급선무

   아직 남은 골목길이라도 따뜻한 사람 사는 공간으로 남겨둬야 한다.

   주택을 짓는 일은 골목길을 보존하면서도 수요와 필요에 따라 자연발생적이 되게 해야 한다. 당국은 소방로 확충 등 안전시설과 도시기반시설, 사회간접시설을 확충하면서 주택 건설의 제도적 정책적 지원만 제대로 하면 된다. 도시재생사업도 좋은 방법이다.

   그렇게 하므로 획일적 폐쇄공간이 아닌 공유공간으로서 골목길을 보존하면서도 동네마다 다양한 개성을 가진 변화를 만들어갈 수 있다. 다양한 사람들이 만나고 많은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공유공간이 늘어날수록 서울이 사람 살만한 행복한 도시, 다양성과 활력이 넘치는 좋은 도시가 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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