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iker 한영 Feb 07. 2024

평범한 옛 주택가의 원형 청파동 골목길

<골목길의 다양한 이야기 속으로> 제1편, 청파동 골목길

찬 바람 불어도 따뜻했던 골목길


  제 청파동 골목길을 걸었다. 걸었다기보다 이 골목 저 골목을 무슨 탐험하듯 휘젓고 다녔다.

   바람이 불고 눈발이 날리고 있는데 왠지 푸근하고 따뜻하다. 며칠 전 금호동 골목길을 걸을 때 봤던 벽에 스프레이로 칠한 '철거' 만큼 삭막했던 골목길과는 정반대였다. 사람 사는 냄새 때문이다.

   난간에 메어놓은 자전거 위로 눈이 소복이 쌓이는 풍경이 따뜻하다. 담 옆에 놓아둔 화분들, 고무다라들, 자투리 공간에 심은 나무, 단차를 극복하기 위해 놓은 철계단, 낮은 기와지붕 위에 소복이 쌓인 눈, 예쁘게 꾸민 가게 창문, 좁은 골목일수록 환히 불 밝힌 가로등, 가로등 불빛에 반사된 하얀 눈발들의 향연, 이 모두가 마냥 따뜻함을 주었다. 어디서 이런 풍경을 또 볼 수 있을까.



뮤어우즈 숲의 나무 위에서 보면 이런 느낌일까


   살고 있는 사람의 개성이 살아있는 다양한 집들을 보며 골목길을 걷다 곳곳에 아직 키 낮은 지붕의 옛집들이 보이면 진귀한 화석을 만나듯 반갑다.

   지대 높은 고갯마루를 향하다 지붕 위에 다락방처럼 올린 일본식 옛 가옥이 보인다. 골목길마다 모두 새 집을 짓고 재개발도 하지만 공사 장비가 도저히 들어올 수 없는 이런 높고 외진 곳엔 아직 100년 전에 보았을 집이 있다.

   한 사람이 지나가기도 힘든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니 골목 사이 뒤로 도시의 불빛과 거대 빌딩들이 마치 다른 행성 같이 보인다. 영화 혹성탈출에서 유인원들이 뮤어우즈 숲의 나무 위에 올라 저 멀리 인간이 사는 도시를 바라보던 장면이 생각난다.

   그런데 난 이곳이 끌린다. 이곳엔 사람이 있고 삶의 냄새가 있어서일까. 도시의 차들을 위한 큰 찻길과 길가를 메운 높은 빌딩들엔 사람이 살 수 없다. 땅과 자연길은 다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도배돼 길을 깨서 파지 않으면 나무 한그루 심을 수 없다. 그런 생명과 생태작용이 사장된 공간에서 우리 인간이 살고 있다. 유인원들이 경멸하던 도시인간이 바로 우리들이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도 그런 마음으로 세상을 굽어보지 않았을까.


    그런데, 이 높고 좁은 골목에도 가로등 불빛이 환하게 비추고 있다. 그리고 그 골목 끝에 생각지도 못했던 광장처럼 넓고 전망대처럼 확 트인 공간이 나온다. 신기한 이곳에선 모든 게 내려다보인다.

   아, 드디어 도시와 사람이 분리된 게 아니라 하나가 되어 있다. 불빛 찬란한 저곳도, 지붕마다 하얗게 눈 덮인 이곳도 줄기차게 흩날리는 눈발 속에 하나가 되어 있다. 산에 오른 것도 아닌데 세상을 모두 품을 것 같은 마음의 벅찬 감동이 인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도 그런 마음으로 세상을 굽어보지 않았을까.

  그래, 때로는 부감법이 우리 삶에 필요하지. 그것을 항상 누릴 수 있는 높은 곳, 미국이었다면 가장 부촌이고 값비싼 주택에 내주었을 이곳이 따뜻한 골목과 100년 전 가옥이 채우고 있다는 것에 반전된 행복감이 생긴다.



씁쓸했던 단 한 가지 이유


   청파동, 푸른 언덕이 있는 동네는 말 그대로 파란 꿈이 영글고 있었다. 이 언덕 위의 골목들 사이에 청파 초등학교와 배문고등학교가 조용히 숨어 있다. 아니, 같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날이 밝으면 재잘대는 아이들 소리가 이 골목길을 메울 것이다.

   사람 사는 지극히 평범한 동네의 모습을 마치 관광하듯 돌아보아야 하는 시대가 됐다는 것이 한편으론 씁쓸하다. 그만큼 아파트의 위협이 많기 때문이다.

   아파트촌으로 변한 서울은 참으로 기형적 도시의 모습이다. 처음 프랑스에서 선보였던 르코르뷔지에의 공동주택(아파트)이 우리나라로 전파되면서 우리나라는 아파트 열풍이 일었다. 처음 지어지기 시작한 프랑스, 미국 등 서구에서 아파트는 닭장과 같다 해서 성공하지 못했다. 자신들이 개발한 공간 효율성이 뛰어난 건축공법이지만 획일적이고 폐쇄적이라는 이유로 이내 사그라졌다. 펜트하우스 외엔 일부에 렌트용으로 있을 뿐이다.

   그러나 서울은 예외다. 효율적이지도 않고 기존 주택가보다 많은 인구를 수용하지도 않는데도 아파트 천국을 이루고 있는 것은 편리성, 익명성, 투자성 때문이다. 자본의 논리가 '사람'을 삼킨 모양새 속에 우린 많은 부분을 잃고 살아가고 있다. 서울과 원도시 내 대부분의 아파트 공간은 원래는 사람을 가리지 않고 모두 같이 공유하던 골목길이었다. 그러나 도시 재개발 사업으로 지금은 외부인의 출입을 막아서는 아파트 단지의 폐쇄공간으로 변했다. 그만큼 공유공간이 없어지고 이와 함께 삶의 다양성도, 사람 사는 정도, 우리들의 추억도, 많은 이야기도, 고유한 지역의 역사도 같이 없어졌다.



변해도 여전히 아름다울 수 있는 이유


   청파동은 그래도 우리의 희망이다. 일본식 주택과 한옥, 서민형 주택들이 어우러지며 "20세기 집 박물관"으로 불렸던 청파동이었는데 다행히도 아직 그 골목길의 원형이 광범위하게 남아 있다. 더러는 재개발 현수막이 나붙긴 했지만 그래도 많은 부분 재개발을 포기하거나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 소중한 삶을 가꾸는 터전이 되고 있다.

   걷다 보면 좁았던 골목이 넓어지고, 넓었던 골목이 다시 좁아진다. 넓게 차가 다닐 수 있는 길로 확장한 개량 골목과 옛 골목이 조화를 이루고, 새 빌라, 다가구주택들과 옛집들이 어우러져 있다. 이것은 나쁘지 않다. 세월이 가는 대로 집도 길도 환경도 변할 수 있으니까. 그러나 이렇게 변하는 것은 지형과 골목들과 추억들이 그대로 연속되는 것이다. 아파트처럼 무지막지하게 산을 허물고 지형을 바꾸고 높디높은 획일적 닭장촌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막다른 골목처럼 보이는 좁디좁은 골목도 가보면 꺾어지고 휘어지면서 다른 골목길과 연결돼 있다. 가파른 언덕과 집을 짓느라 축대로 생긴 단차는 개개의 집 앞에서 여러 형태의 계단으로 변주되고, 올라선 곳에선 다시 갈라지고 합치기를 반복하며 입체적인 구성미를 만들어낸다. 지중해의 산토리니나 부산의 감천마을 같은 아름다움의 입체적 구성미와 다를 바 없다.



   골목과 골목을 이으며 배회하듯, 미로 찾기 하듯 다니다 보니 어느새 충정로역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이다. 마지막 남은 옛 독박골에서 기찻길 건널목을 건너 다시 익숙한 불빛 찬란한 도시 복판에 내려섰다. 그럼에도 골목길이 또 부른다. 다시 치킨이 기다리는 골목길 어느 한켠을 향해 발길을 옮긴다.



매거진의 이전글 임금이 정한 동네 연희동 골목길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