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iker 한영 Feb 23. 2024

따스한 공동체 마을 미아리 골목길

<골목길의 다양한 이야기 속으로> 제3편, 미아동 골목길

차도와 옛길이 종이 한 장 차이로 공존하는 곳

   젠 미아동(법정동 미아동은 관할 행정동인 삼각산동, 송중동, 송천동, 미아동, 삼양동을 이른다) 골목길을 걸었다. 마침 눈이 펑펑 오고 있어 휘날리는 눈발이 마치 살아서 춤추는 듯한 향연을 골목마다 가로등 불빛마다 다양하게 펼쳐 보인다. 그 눈발 날리는 불빛 따라 잊혀진 골목길을 걷는다.

   옛 응달말 골목길부터 걷기 시작한다. 1960년대 이후 토지구획정리사업의 영향으로 이 지역의 단독주택가가 격자형 골목을 이루고 있는 곳이 많지만 이곳은 1912년 지적도상의 길과 100년이 지난 지금의 길이 똑 같이 남은 곳이다. 100년 전 그때의 마을길을 볼 수 있는 이다.

   100년 전 길의 모습은 요즘 길과 달리 곡선으로 휘어져 있다. 곡선 길은 미적 아름다움과 개인 프라이버시를 동시에 살리는 효과를 얻는다. 한 번에 모든 보여주는 직선의 길보다 곡선으로 가려진 길에 다양성과 개성을 담을 있다. 곡선의 미를 길에 잘 활용했던 선조들의 지혜를 엿본다. 그러지 않아도 우리 선조들은 자연을 최대한 존중했다. 구릉과 장애물을 피해  흐르듯 자연스럽게,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방식으로 길을 만들다 보니 자연히 길이 곡선이 되고, 자연에 인위가 가미돼도 부감법의 아름다움이 살아나 언제나 자연과 조화를 이루었다.

   골목길은 휘어지고 돌아 다른 길과 만나고 또 어디에선 막다른 길로 끝나면서 삶의 오묘함과 저마다의 개성을 더한다. 그런데 이 오래된 골목길 바로 옆이 차들이 쌩쌩 달리는 대로변이라는 사실이 놀랍다. 과거와 현재가 종이 한 장만큼의 간격으로 공존하는 희귀한 곳이다. 차도는 과거에 큰 개천이었다. 마을 앞에 개천이 흐르는 경치 좋은 곳에 양 옆으론 소나무가 많아 항상 응달이 져서 '응달말'이란 이름이 붙었다.


응달말 길은 곡선으로 구부러져 있다.


아파트로 사라질 예정인 100년 골목

   주택가 골목 어귀의 주민 생활 골목도 닮은 꼴이다. 미아사거리역 6번 출구부터 응달말 입구까지  길임을 증명하듯 옆 도봉로와 사선으로 난 길에 이름 없는 거리 시장의 면모를 형성하고 있다. 옛 목욕탕 굴뚝과 '여관'이라고 쓴 간판도 보인다. 시간이 멈춘 지역처럼 신기하다.


100년 길에 조성된 이름없는 시장 골목


   나는 옛 것을 무조건 보존하자는 것이 아니라 골목길을 살리자는 것이다. 도시재생사업이나 가로주택정비사업 등 골목길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은 많다. 생각을 담고, 표현하고, 구현하고, 그것을 누리고 즐길 수 있는 골목길이 살아 있어야 도시가 행복해진다.

   건축학자 유현준 교수는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걷고 싶은 길은 '이벤트 밀도'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이벤트 밀도가 높다는 것은 단위 면적당 출입구 숫자가 많아 선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많다는 것이다. 우리는 강남의 대표 도로인 테헤란로 보다 신사동 가로수길을 걷고 싶어 한다. 홍대 앞 피카소 거리나 명동 거리, 신사동 가로수길의 이벤트 밀도는 35이다. 그만큼 다양한 가게와 선택지로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핫 플레이스가 되었다. 반면 이벤트 밀도 10 내외의 테헤란로는 주말에도 한산한 모습을 보인다.

   골목길이 살아있을 때 이벤트 밀도를 높이거나 다양한 모습으로 변모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이 열린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귀한 100년 전 골목길과 거리를 볼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곳은 미아재정비촉진구역이기 때문이다. 100년이 넘는 세월을 견뎌온 옛 길의 모습이 흔적도 없이 없어질 것이다. 다양한 이야기와 감성을 불러일으키던 공유 골목은 거대 울타리가 둘러 쳐진 섬처럼 폐쇄 공간으로 바뀔 것이다.


100년 전 마을 길(좌)이 그대로 남은 현재 길의 모습(중)과 아파트지역으로 변하게 될 모습(우)


옛 추억은 시장 골목으로만 남아

   송천동 응달말을 지나 삼각산동 솔샘시장으로 건너간다. 가는 길 삼양동사거리 근처 가게들이 삼양동이 아님에도 모두 '삼양동'이라고 쓴 간판을 걸고 있다. 그만큼 우리 삶의 추억이 소중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 삼양동사거리가 중요한 이유는 이곳을 기준으로 미아동의 북부와 남부, 동부와 서부가 나뉘기 때문이다.

   찻길을 건너 삼각산동에 들어선다. 동 전체를 갈아엎어 아파트 밀집지대인 '미아뉴타운'으로 변한 동네이다. 그 수많은 다양한 공유 길들이 거대 아파트촌 경계에서 무자비하게 끊기고 사라졌다.

   삼양동사거리 길가 언저리에 솔샘시장 골목만 간신히 남아 이곳이 삼각산동이었음을 증언하고 있다. 사방으로 통하던 길을 끊고 나서 간판을 붙이고 맛있는 거리로 소개하는 것은 자생 기능을 죽이고 나서 인공호흡기를 붙인 것과 같다. 눈발만 날리는 좁다란 옛 골목에 생과 사투를 벌이는 듯 버티고 선 가게들이 불을 밝히고 영업 중인 모습이 애잔하면서도 삶의 따스함을 전하는 마지막 골목길 풍경이 되고 있다.


삼각산동은 솔샘시장 골목길 주변부만 남았다.


미아리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옛 마을 '큰말'

   다시 찻길을 건너 '큰말'로 간다. 삼양동사거리를 기준으로 동북 방면, 지금의 송촌동 북부로 미아동 333번지 일대에 있던 마을이다. 마을의 이력은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아리에는 조선시대부터 10여 개의 자연마을이 있었는데, 큰말은 인근 마을 중 가장 큰 규모여서 '대촌', '큰말'(큰 마을)로 불렸다. 놀라운 건 1912년에 최초로 부여된 지번에 나타난 큰말의 골목길이 옛 모습 그대로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곳은 아직 100년 전의 지번과 골목길이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100년의 세월을 변함없이 유지했다는 것은 명예롭다. 과거 주변 마을과 지역 생활 문화의 중심 역할을 하며 큰말을 중심으로 주변 마을들의 도로가 발달했던 곳임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하다. 비록 1964년~1968년 수유토지구획정리사업으로 마을 중앙을 흐르던 개천과 주변 지역을 연결하던 도로들은 없어졌지만 마을 길이 지금까지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은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다.

   이 길은 100년 골목으로 보존할 필요가 있다. 큰말은 보전 사업에 손색이 없다. 유럽의 골목길 명소처럼 골목길을 석재로 재시공하고 어지러운 전선은 지중화로 정리하고 의자와 돌담으로 꾸미고 큰말의 의미를 공유하는 소통의 공간으로 공원을 설치하는 등의 노력을 통해 미아동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역사 문화 마을로 육성할 가치가 충분하다. 획일적이고 폐쇄적인 아파트촌이 갖지 못한 다양성과 공유성, 가변성으로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골목길이야말로 미래 시대의 경쟁력이다.


큰말의 100년 전 옛길(좌:1912년 지적도)이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다.(우)


도시재생사업의 애정이 녹아있는 동네

   이번엔 삼양로를 건너 삼양동으로 간다. 삼양동은 옛 모습 그대로다. 아니 주거 지역이라면 이것이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유독 옛것을 터부시 하는 한국인에겐 옛 거리가 부자연스럽게 느껴지지만 유럽과 선진국들은 옛 거리일수록 자랑스럽게 여기다 보니 사람길로 보존해 사람들이 찾는 명소가 된다.

   재개발보다 도시재생사업에 애정을 가졌던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한 달간 옥탑방 살이를 해 더 유명해진 삼양동은 60년대 북한산 기슭에 철거민, 수재민들이 이주해 살면서 형성됐다. 삼양동은 산기슭에 조성되다 보니 언덕 마을이라고 할 수 있다. 주택 골목길은 대부분 경사진 언덕길을 형성한다.


언덕마을 삼양동의 모습(좌)과 경사진 골목길(우)


언덕과 아폴론

   언덕이 시사하는 점이 많지만 시야를 넓혀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지형적 성격으로 인해 언덕은 한 삶의 변곡점으로 치환되고 수많은 감성을 불러일으킨다. 이에 따라 수많은 이야기도 생긴다.

   우리나라엔 화랑의 언덕이 있었고 로마엔 팔라티노 언덕이 있었다. 폭풍의 언덕, 골고다언덕, 므레쎄 언덕 등 이야기도 많다. 언덕은 세상을 바꾸고, 지난한 삶이 배어있지만 새 희망을 바라보게 하는 땀과 에너지 충전이 함유된 장소다. 어찌 보면 빛, 이성, 예지, 정화를 상징하는 아폴론과 닮았다. 그래서 우린 햇살이 비치는 언덕길을 손잡고 걷는 행복한 순간을 상상한다.

   "언덕은 늙은 어머니의 어깨와 같다/마음이 외로워 언덕에 서면/가슴을 치는 슬픈 소리가 들렸다/언덕에선 넓은 들이 보인다/먹구렁이처럼 달아가는 기차는/나의 시름을 싣고 가버리는 것이었다" 윤곤강은 시 <언덕>에서 늙은 어머니의 어깨를 떠올렸다. 어려서 무한 의지처였던 어머니의 늙어진 처진 어깨에서도 시인은 시름을 잊고 희망을 본다.


삼양동의 조망 쉼터 공원들과 조망 풍경. 마을과 수락산, 불암산이 한 눈에 내다 보인다.(오늘은 눈오는 날이라 안보인다.)


언덕을 일상으로 향유하는 마을

   그래서 언덕 골목골목 구석구석에 숨은 빛과 꿈을 찾아 눈이 쏟아져 내리는 삼양동 골목을 누비고 다녔다. 언덕 동네에서 찾은 '삼각산 마을마당'은 주민들의 마음을 엿볼 수 있게 한 결정체 같은 곳이었다. 어린이 클라이밍 놀이터와 키움 센터,  노인을 위한 경사면 엘리베이터와 무장애길이 같은 공간에 배려와 어울림으로 융합돼 있다.

   경사진 골목길에 "SOS, 가족지킴이집" 간판이 붙어 있는 슈퍼까지 마을 공동체의 따뜻함이 삼양동 전체에 녹아있는 느낌이다. 삼각산 기슭에 옛부터 소나무가 많았던 삼양동 마을은 '소나무협동마을'로 너무 아름답게 보전되고 있었다.

   언덕 마을의 특장점을 살려 자투리 땅이든 넓은 축대 공간이든 곳곳에 전망 쉼터가 설치돼 있다. 언덕에 올라 세상을 조망할 수 있다는 것만큼 설레는 것이 있을까. 멀리 넓게 바라보이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 속에 나의 현재를 같이 비춰 보고 꿈과 호연지기를 키우게 하는 기묘한 기능을 수행케 한다. 그것을 일상처럼 즐기고 느끼게 하는 것이 언덕 마을이고 이곳 삼양동이다.


'소나무협동마을'로 마을 공동체를 가꾸고 있는 삼양동의 단면을 보게 해 준 '삼각산마을마당'과 이웃지킴이 '가족마트'


펑펑 눈 오는 까닭에 자연 속으로

   산자락 마을 삼양동은 북한산과 하나인 듯 자연스럽게 연결돼 있다. 눈이 펑펑 나리는 저녁에 자연으로 행하지 않을 수 없다. 자연은 거짓이 없다. 눈 내리면 내리는 대로 눈이 쌓인 모습을 그대로 정직하게 품어준다. 어느새 길과 나무와 온 세상이 하얀 눈 속에 파묻혔다.

   눈 오는 오늘 아무도 찾지 않았던 것 같은 숲길을 자연이 내 준 길 위에 최초의 발자국을 만드는 기분으로 걷는다. 순백의 눈꽃이 시야를 가득 메운 숲 속에서 뽀드득뽀드득 발 딛는 소리만 가슴을 두드린다.

   숲길을 내려서니 마침 마을버스 10번이 기다리고 있다. 미아역까지 가는 삼양동 거리가 당장 버스에서 내려서 걷고 싶을 만큼 정겹다. (삼양동은 골목길이 살아 있고 '이벤트 밀도' 가 높다 보니 미아사거리 다음으로 버스가 많이 정차하는 곳이기도 하다.) 버스 정거장 이름이 페리카나, 김밥천국 등 서민의 생활 추억과 옛 동네의 정서가 가득하다. 결국 미아역 한 정거장 전에 내려 전과 막걸리를 파는 가게에 들어가 눈 오는 날 가장 황홀한 추억을 만들었다.

   

삼양동은 북한산 숲길과 자연스럽게 이어진다.(좌, 중) 삼양동 솔매로의 막걸리집 실내에서 본 창밖 거리 풍경(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