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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iker 한영 May 08. 2024

워크링크 산악 50km 트레일워커

1. 비 오는 새벽 숲

도전이라는 이름의 삶


우리 삶은 도전과 새로운 시도의 연속이다. 목표가 있을 때 시도도 도전도 가능하다.


시도나 도전은 성공이 아니다. 실패할  있지만 도전해 봐야 경험이 생기고, 알게 된다. 그래서 도전은 값지고, 도전의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다.


총 고도 2,400m의 산악 50km를 제한 시간 안에 걸어야 하는 트레일워커를 만들어 매년 한두 번씩 걸은지 8년이 되었다. 이 '워크링크 산악 50km 트레일워커'는 모두에게 도전이다.


챌봉(521m)-한강봉(475m)-호명산(425m)-불곡산(466m)-천보산(336m)-천보산맥-천보산(423m)-칠봉산(512m)을 능선 따라 정상을 경유해 걷는 총 50km이고, 시간제한은 15시간 내 완주해야 한다. 쉬는 건 사치고 계속 속도를 줄이지 않고 걸어야 가능하다. 단 불곡산은 정상이 아닌 옆 둘레길을 이용한다. 중간에 천보산맥 종주팀을 합류시키기 위해 천보산맥 전까지 1부, 천보산맥 종주를 2부로 나눠 걷는다.


장담할 수 없는 트레일워커


지난해까지 9회를 완주한 나에게도 매번이 도전이다. 이번이 10회째 도전이다. 같은 코스라도 매년 나이를 먹기 때문에 매번이 새로운 시도이다. 가다가 다리가 말을 안들을 수도 있다. 몇 년 전에 갑자기 다리가 뻣뻣해져 무릎이 구부러지지 않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워낙 긴 거리를 쉬지 않고 걸어야 하는 미션이므로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자신 있던 많은 사람이 도전에 나섰다가 중도 하차했고, 4번 완주한 나의 걷기 동지 혁은 쥐가 난 다리를 끌다시피 해가며 완주에 성공한 적도 있다.


왜 그렇게까지 고생을 사서 하세요?라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다. 다만 힘들고도 힘든 내 한계에 도전할 뿐이다. 매번 내 심장을 뛰게 하는 시도를 할 뿐이다. 걷기는 그만한 가치가 있다. 에베레스트에 등정하는 분도 도전의 크기는 달라도 마음은 같을 것이다.


시간 속에 살아있다는 것


지난 5월 5일 개최된 제10회 트레일워커도 내 심장을 무한 뛰게 했다.


전날은 다리 풀기 겸 수리산 환종주 산행을 했다. 산행 후엔 결전의 내일을 위해 많이 자두려고 했다.


그런데 다른 할 일이 생겨 잠을 거의 못 자고 1부에 참가하는 일행을 합정에서 픽업하기 위해 2시 반에 일어나야 했다.


기다려주지 않는 시간은 언제나 우리가 완벽하지 않은 날것으로 살아있음을 증명하며 쉼 없이 흐른다. 이쯤 되면 그냥 예정된 시간과 맞닥뜨리는 수밖에 없다.


칠흑 속에 모인 세 사람


오늘은 이른 새벽부터 비가 오고 있다.


4시 30분 정각에 나, 혁, 오늘 처음 1부 참가한 희 이렇게 셋이 모두 모였다. 언제나처럼 희미한 네온불빛이 반짝이는 길가 ㅇㅇ 카페 간판 앞에서 셋이 같이 단샷을 남긴다.



형식을 차릴 겨를이 없다. 바로 출발이다. 카페 옆 보이지 않는 숲길을 찾아 들어선다.


매번 아무도 모르는 길의 안내자가 되어주고 있는 이 고마운 카페를 낮에 꼭 한번 들르고 싶다. 이 경로로 걷기 시작한 3년 전부터 이 생각을 했는데도 아직 한 번도 못 가봤다.


풀에 덮인 절벽 사이를 아슬아슬 통과해 챌봉 숲 깊숙이 들어간다. 이제 트레일워커의 시작이다.


자연이 내 준 길


비에 젖은 풀들이 다리에 닿자 물기가 금세 옷을 뚫고 살갗을 축축이 적셔온다. 원시의 빽빽한 밀림에 어느새 친 거미줄이 앞선 내 얼굴과 머리에 달라붙는다.


걷기는 자연이다. 나를 자연에 내던진 것이고, 자연은 내게 길을 내준 것이다. 그 외엔 무엇도 바랄 게 없다.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거나 아무 상관이 없다. 오직 자연 그대로 수용하는 것만 있을 뿐이다.


곧이어 가파른 오르막이 이어진다. 이 오르막은 좀 특별하다. 경사가 절벽 수준으로 급한 데다 길마저 거의 남아있지 않다. 경사가 급해 빗물이 빠르게 흐른 골이 파이고 나뭇잎이 골을 메우면 걸을 수 있는 바닥이 별로 남지 않는다. 비마저 내리고 있어 미끄럽다.


이런 길이 좋아?


그럼에도 올해는 지난해, 그리고 지지난해보다 좀 낫다.


"길이 좋습니다"  


혁이 말한다.


작년의 길 상태를 모르는 희는 '이런 길이 좋아?'라고 의아해할 것이다. 항상 모든 말엔 말하지 않은 비교 대상이 숨어있다. 그걸 공유하면 대화를 할 수 있다.


"그러게 이번엔 좋네. 작년엔 비가 많이 온 뒤라 길이 많이 안 좋았었지"


거의 1km가량 이어지는 캄캄한 급경사의 길 아닌 길을 쉼 없이 오른다. 속도는 트레일워커의 생명이다. 혁이 뒤를 바짝 따라붙는다. 요즘 혁의 체력은 최고조에 올라 있다.


그 뒤를 희가 따라붙는다. 첫 시작부터 계속되는 급경사에 많이 놀랐을 것 같다. 그러나 희는 지리산종주를 하루에 끝낸 저력이 있는 사람이다. 믿고 맡긴다. 그러고 보니 우리 모두 지리산종주 팀이다. 혁과 난 두 번이다.


덤덤했던 첫 봉우리 챌봉


드디어 챌봉에 올랐다. 환호성은 없다. 예전엔 "정상이야" 소리쳤겠지만 마음으로 느끼면 된다. 앞으로 넘어야 할 많은 봉우리가 있기에 챌봉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다.


혁이 비 오는 속에서도 챌봉 이름과 셋이 다 나오게 단샷을 찍어준다.



챌봉(521m)은 해를 가릴 만큼 높다 해서 차일봉, 또는 양주에서 제일 높다 해서 제일봉으로 부르다 미군이 챌봉으로 발음하면서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백두대간의 석개산(북한 지역)에서 갈려져 한강 이북의 산줄기를 형성한 한북정맥(옛 산경표에 나타난 한반도 13정맥 중 하나)에 속한 봉우리이기도 해 이 첼봉에서 남쪽으로 사패산, 북한산으로 산줄기를 이어간다.


우리는 한북정맥의 북쪽 방향인 한강봉으로 향한다.


오감으로 느낀 새벽 숲


예전 같으면 지금쯤 이 능선을 걷다 보면 먼동이 터오고 해가 떠오르는 것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비 오는 새벽이라 아직 사방이 캄캄한 밤이 계속되고 있다.


눈으로 안되면 우리에겐 오감이 있다. 이 산 능선을 가득 메우고 있을 가장 아름다운 신록을 눈이 아닌 코와 살갗으로, 그리고 가슴으로 느껴본다.


나중에 들으니 희는 이 숲길이 좀 더 길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자신의 표현대로 희는 '빗물을 가득 머금은 달큰한 숲 속 공기'의 새벽 숲을 만끽하고 있었다.


챌봉과 한강봉 사이의 보이지 않는 숲길을 오감으로 느끼며 걸었다. 보였다면 이런 모습의 숲길이었을 것이다. (위 사진은 지난해 4.30. 9회 트레일워커 때 같은 숲길을 찍은 것)


그렇게 챌봉에서 2km의 능선 숲길을 걸어 한강봉으로 오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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