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천을 건너 바로 우측의 배고픈다리(잠수교)로 섬진강을 건넌다. 배고픈다리로 건너면 마치 강물 안에 입수하는 듯 실감나게강을 느끼며 걸을 수 있어서 좋다.
치천을 건너 배고픈다리로 섬진강을 건넌다.
다리 중간에서 보니 강폭은 넓지만 치천과 합류 지점인 데다 강의 경사가 완만해 퇴적층이 쌓이다 보니 강 면적의 대부분을 수풀이 차지하고 있고 섬진강은 그 사이의 좁은 수로 형태로 흐르고 있다. 바로 이런 모습이 생태가 살아 있는 자연하천의 모습이다.
섬진강이 4대강 사업에서 제외돼 자연하천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할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함을 느낀다. 천편일률적 준설과 강변 축대 설치 등으로 강의 생태를 훼손하는 일을 막고, 이처럼 항상 깨끗한 물이 흐를 수 있게 수질개선과 수량조절, 생태계 보호와 생물다양성의 확보 등 생태하천으로서 역할할 수 있는 것이 다행스럽다. 섬진강을 보면 당장 강물에 풍덩 들어가고픈 정감어린 느낌이 드는 것도 이런 이유이다.
다리를 건너면 우측의 강변으로 200m 남짓 되는 거리에 월파정이 있다. 밀양박씨의 후손들이 선조들의 유덕을 기리기 위해 1927년 세운 정각인데, 월파정 뒤쪽에 조성된 공원과 함께 누구나 나들이 장소로 이용할 수 있다. 치천이 합류하는 넓고 푸른 섬진강의 모습과 강변의 갈대밭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장소가 되고 있다. 언젠가 천담마을에 조성된 강변사리마을 캠핑장에 숙박하면서 섬진강의 풍류를 즐기러 한번 와보고 싶은 곳이다.
다리 중간에서 보는 임진강 상류의 모습(좌)과 월파정(우)
덕치면사무소 방향으로 강변의 너른 고수부지에 난 섬진강자전거길을 따라 섬진강의 풍치를 만끽하며 걷다가 역시배고픈다리인 '새마을교'로 다시 섬진강을 건넌다.
섬진강자전거길을 따라 드넓은 섬진강 고수부지를 걷는다.
2틀간 60km를 걸어도 항상 즐겁고 서로에게 힘이 돼주는 단원들
낡은 구 강진교를 건너며 흥이
덕치면 소재지 시내를 좌측에 두고 섬진강을 따라 난 자전거길로 한 굽이 돌아가면 30번 국도가 지나는 강진교가 나온다.이 다리로섬진강을 건너면 임실 첫 마을이었던 구담마을부터 걸어온 덕치면과 작별하고 강진면으로 들어선다.
바로 옆엔 옛날에 사용하던 구 강진교가 나란히 있다. 구 강진교를 인도교로 사용하기 때문인지 강진교엔 인도가 따로 없다.
오늘의 종착지인 강진면사무소를 향해 구 강진교를 건넌다.다리 난간이 추락 방지 역할보다는 경계 표시에 그치듯 난간의 높이가 무릎 아래에 올 만큼 낮고 콘크리트 재질인 난간의 군데군데가 떨어져 나가 그냥 보기에도 무지 오래된 다리임을 느낄 수 있다.
신기한 건 아무리 새 다리여도 자동차 다리의 인도를 걷기보다는 낡은 다리라도 사람 전용의 인도교를 따로 걷는 맛이 훨씬 좋고 자유롭다. 이 낡은 다리 하나를 건너는데 절로 흥이 난다. 기념으로 단체 사진도 찍는다.
이렇듯 편안하고 자유롭게 사람이 중심이 되어 걸을 수 있는 도보 전용길, 즉 차에 빼앗겨 없어진 사람길이 다시 세상에 많아져야 한다. (현재 구 강진교는 안전진단 결과 D등급을 받아 사람이 다닐 수 없게 폐쇄조치됐고 아쉽게도 철거가 예정돼 있다.)
구 강진교를 건너다 셀카로 단체사진을 남긴다.
대한민국 최초의 다목적 댐을 옆에 두고
강진교에서 섬진강을 따라 5km 남짓 더 올라가면 한국의 고난사를 고스란히 안고 서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다목적 댐인 섬진강댐이 있다. 공사기간만 25년이 걸렸다는 점이 섬진강댐의 우여곡절을 말해준다.
원래 섬진강 상류엔 섬진강댐 전에 1929년에 완공된 운암댐이 있었다. 섬진강 옆엔 산외면에서 발원해 김제평야를 적시고 황해로 흘러드는 동진강이 흐르는데 너른 곡창지대에물을 다 댈 수 없어 옆의 섬진강에 운암댐을 쌓고 정읍 칠보면으로 내려보내 동진강 유역의 농업용수로 이용한 것이 섬진강 댐의 시초이다.일제의 쌀 수탈을 위한 방편이었다.
그러다 욕심 난 일제가 식량 증산과 발전소의 필요로 1940년부터 섬진강댐을 운암댐 위치보다 2km 아래에 짓기 시작했다. (현재 운암댐은 섬진강댐 안에 그대로 수몰됐다.) 그러나 태평양전쟁으로 중단되었고 광복 후 1948년 다시 공사를 재개했지만 한국전쟁 발발로 다시 중단됐다.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서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의해 다시 기공해 4년 후인 1965년 12월 마침내 준공됐다.
섬진강댐은 격동기의 시대상을 그대로 반영하며 한국 경제성장의 단면을 보여주는 한국 최초의 다목적 댐으로 남아있다.섬진강댐으로 인해 섬진강이 남해 광양만으로 흘러가는 원래의 물줄기 외에 5.2km의 수압 터널을 통해 정읍의 동진강으로 나뉘어 흘러 발전 (칠보수력발전소 최대출력 30,480kW)을 하고, 호남 평야지대와 서해의 계화도 간척지(약 40km2)등 농업용수로 쓰이고, 총 유하량의 80%를 저수할 수 있어 홍수의 피해를 줄여주는 등 다목적 역할을 하고 있다.
미국 라스베가스 사막 한 가운데에,1920년대 대공황을 겪던 미국 경제를 부흥시키는 계기가 된 후버댐을 감동적으로 본 적이 있어서 한국의 경제 부흥기에 역할한 섬진강댐을 단원들과 같이 가보고 싶었지만 제대로 하루를할애하기 위해 나중에 따로 날을 잡아 가기로 했다.
섬진강 댐이 만든 인공 호수 옥정호는 산이 감싸 안은 듯한 풍경으로 백두산 천지를 연상시키고 사진 작가들에게 각광받는 붕어섬과 옥정호의 풍광을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호수 둘레의 '물안개길' (13km)은 찾는 이들을 누구나 할 것 없이 매료시킬 것이다.
이 섬진강 물길 따라 5km 거슬러 올라가면 섬진강댐에 이른다.
생태자연과 전통문화의 보루 강진면
강진교를 건너 갈담천 둑방길을 따라 1.3km쯤 걸어가면 강진면 소재지이다. 면소재지이지만 산간 협곡의 좁은 면적에 간신히 둥지를 튼 모습이다. 임실의 다른 지역이 남부내륙형 기후구인 반면 운암호가 있는 운암면과 강진면은 해발고도가 높은 산지로 고랭지기후를 보인다. 이 때문에 양봉이 많이 행해지고 약초는 전북 도 생산량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우리나라 생태 자연의 보루로 역할하고 있는 셈이다.
강진면은 한국 전통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지역이기도 하다. 면소재지 북편엔 역시 협곡에 필봉문화촌과 작은도서관이 있는 필봉농악전수관이 소리소문 없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 강진면 필봉리의 좌도풍물굿은 100여 년의 전통을 갖고 있는호남 좌도 농악의 대표적인 풍물굿이다. 그중에 정초에 집집을 돌면서 뜰볼비(밟이)굿을 하고 나서 날을 잡아 마당에서 밤을 지새우며 벌이는 판굿이 유명하다. 문병란(1935∼2015)의 시 「꽹과리 소리 한평생」, 김용택의 시 「당신이 밟고 간 모든 길 위에 굿소리 들립니다」, 양진성·양옥경이 엮은 『임실필봉농악』 등에서 협화의 세상을 꿈꾸는 필봉농악의 세계를 볼 수 있다. 이곳의 임실필봉농악은 현재 국가무형유산(1988년 중요무형문화재)으로 지정돼 있다.
천혜 자연 속 고향의 향수 간직한 강진시장
면 소재지 초입에 전통시장인 강진시장이 있다. 시내의 시장들에 밀려 있긴 하지만 임실군의 6개 오일장 중 하나로 운암·강진·덕치면으로 이어지는 임실의 서부 산간지대의 중심 시장이라고 할 수 있다. 섬진강을 끼고 있어 일제강점기 중반부터 시장이 형성 돼오다 1965년 강진시장으로 개설된 역사를 갖고 있다. 당시에 인근 섬진강댐 공사로 이주민들 일부가 이 지역에 들어와 살면서 1980년대 말까지 우시장, 대장간이 형성됐을 만큼 성황을 이루었다.
지금은 17개 점포의 작은 전통시장으로 명맥을 유지하지만, 교통이 좋아 장날(2,7일)이 되면 인근 순창, 정읍 지역에서도 상인들과 소비자들이 오는 오일장이다. 바로 옆에 강진 터미널이 있고 강진교 옆으로 전주-남원을 잇는 4차선 고속화도로(27번 국도)와 15·30번 국도도 이곳을 지나는 매우 편리한 교통 입지를 갖고 있는 것이 산지로서는 보기 드문 장점이다. 사방이 산지로 둘러싸이고 섬진강과 갈담천이 고요히 옆을 흐르는 천혜의 자연경관 속에 고향의 향수를 느낄 강진장이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 천만다행이다.
유구한 역사답게 강진시장엔40년이 넘는 할매국수집이 있는데 국수만 주문해도 돼지머리 수육을 서비스로 제공해 준다. 특히 국수가 전통방식으로 임실의 깨끗한 자연 속에 태양열 자연 건조로 말려 쫄깃하고 부드러운 중면이다.TV'생방송 오늘저녁'에 방송되고 탤런트 고두심도 다녀간 임실의 맛집이다.
국수만 주문해도 돼지머리 수육을 주는 강진시장 할매국수집
국토종주를 이어지게 만든 원동력
강진시장을 지나고 갈담교를 건너 마지막 골인 지점인 강진면사무소를 코앞에 두고 잔뜩상기돼걷는다. 면소재지 골목길이 한 시골 마을길 처럼 소박하고정겹다.
앞에나무 기둥이 높이 솟은 이채로운 옛 종탑이 보인다.땡땡 종을 울리며 어서 오라고 부르는듯, 2틀 동안 수고했다고 응원해 주는듯 하다. 바로 옆에 벽돌조로 깔끔하게 지어진 강진교회의 종탑인 듯 한데, 현재 사용하지는 않는 옛 상징으로 남아있는 것 같다.
드디어 오늘 걷기의 종료 지점인 강진면사무소에 도착했다. 어제 34km에 이어 오늘 28km를 걸어 5회 차 이틀간 총 62km를 걸어왔다. 한마디로 감개무량이다.
마칠 때가 되면 몸은 지칠 대로 지치지만 단원들의 마음은 시종 즐겁다. 서로를 배려하며 하나 되어 걷는 모습 속에 아무리 지치고 힘들어도 힘이 난다. 혁이는 어제 잡힌 물집이 다시 잡혔지만 내색도 없이 시종 해피바이러스를 전한다. 서로를 생각하며 함께 걷는 이런 분위기가 우리의 국토종주를 이어지게 만드는 원동력인 것 같다.
5회차 종료지점에 높은 장대에 설치된 종탑이 어서오라고 반긴다.
5회 차의 가슴 벅찼던 시간들을 아로새기다
어제오늘 지나온 길들로 가슴이 벅차다. 사람길 국토종주가 아니면 맛보지 못할 순간들이 이어졌다.
어제 담양 소방서 앞에서 시작해 담양의 상징 죽물시장과 국수거리를 지나 담양 제일의 관광지 죽녹원과 재난 대비 행정의 표본 관방제림, 도전의 모범 메타세쿼이아 길을 걸어 순창으로 들어왔다. 호남정맥을 넘으며 호남의 승지 못지않은 아픔을 겪은 순창에 깊은 동조를 느끼고 한국의 맛을 지켜낸 전통고추장 민속마을과 정조 개념을 일깨운 홀어머니산성을 지나 처음 섬진강을 만난 감동과 채계산 옆 감성 깊은 적성강에 취하고 이상적인 국토의 모습을 그려 본 고원리 들판과 옛 적성진 터의 숙소에서 하룻밤을 보낸 숱한 놀라운 경험들이 어제 하루에 있었던 일이다.
오늘 만수탄 변의 명당처를 걷고 수만 년 하천 침식의 절경 장군목과 요강바위를 지나 기대했던 순창과 임실의 경계인 섬진강 물에 잠긴 옛 징검다리를 건너 임실로 들어왔다. 김용택 섬진강 시인이 가장 아름다운 물굽이로 꼽은 섬진강변에 자리한 오지마을 구담·천담·진메 마을을 지나며 티 하나 없는 자연마을의 향취에 취하고 섬진강 상류의 자연하천의 풍치를 즐겼던 5회 차 국토종주의 감동이 가슴 깊이 남았다.
벅찼던 5회 차는 끝났지만 임실과 진안고원의 마냥 설레는 길을 만날 6회 차가 벌써부터 기대된다. 서울로 돌아가는 차 안은 모두 잠에 빠져 조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