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첫날인 그제 오랜만에 새벽에 길에 나서보니 5시도 되기 전부터 차들이 도로를 꽉 메우고 있다. 사람들 참 부지런하다, 사람들 참 바쁘게 산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날마다 나를 죽이는 '바쁨'에 메여 사는 현대인들
그런데 무엇을 위한 '바쁨'일까?를 생각하면 그리 유쾌하진 않다.
어디를 그렇게 일찍 가냐고 도로에서 차들을 막아서고 물어볼 수는없으니 잘은 모르지만 주말이라도 교대제 근무나가게 오픈 준비 등 일을 하러 가거나 새벽시장 사입이나배달 배송 이사 등 물류 일을 보거나 신규 오픈 매장에 줄 서러 가거나 새로 집을 지을 땅을 보러 가거나 정말 많고 다양한 이유로 이동을 하고 있을 것이다. 또 이 차들 중 상당수는 주말이니까 지방으로 친지 방문이나 휴가나 여행을 떠나는 차들도 많을 것이다. 바쁜 이유들은 다양하지만 모두 현대문명사회가 만든 '바쁨' 들이다. 다시 말해 옛날 같으면 없었을 '이동' 들이다.
차가 없던 옛날엔 자기 거주지와 자기가 사는 지역에서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돼 도로를 이용해 멀리 이동할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뭘 하려고 해도 '멀리' 이동해야 한다. 밥을 먹으려 해도, 쇼핑을 하려고 해도, 직장에 가려고 해도, 친지를 만나려 해도 다 차로 이동해야 한다. 가족이라도 분양받은 아파트에 따라서, 직장을 따라 서로 다 멀리 떨어져 산다. 그래서 도로에 나서면 빼곡한 차들로 모두 바쁜 듯 보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모두 현대문명사회의 환경과 삶의 형태가 만든 바쁨 들이다.
모두들 바쁘긴 무지 바쁘고, 이를 위해 이동도 참 많이들 하는데 신기한 건 자기 몸을 움직이는 것은 오히려 줄었다. 옛날엔 걸어서 내 몸을 직접 움직여야 어딜 갈 수도 있고, 무슨 일을 볼 수도 있었지만 지금 시대는 내 몸을 움직이지 않고도 '이동'이나 '바쁨'을 다 해결한다.
현대문명사회를 특징짓는 '편리'가 간과한 것
몸을 움직이지 않아도 되는 시대는현대문명사회를 특징짓는 '편리'가만들었다. 즉 움직이지 않고도 일을 다 보는 '편리한 바쁨' 들이다. 일도 앉아서 하고, 일을 보기 위해 해야 하는 모든 이동도 차를 이용한다.
도로를 아무리 많이 만들어도 도로는 항상 메어지게 돼 있다. 산업문명사회에서 자꾸 새로운 가봐야 될 곳이나 가고 싶은 곳이 생기고, 분업화분절화될수록 차를 이용한 이동의 필요는 점점 더 많아지고, 또 도로가 많아져 이동이 편리할수록 차의 수요와 이용도 더 늘기 때문이다.
먼데뿐 아니라 가까운 건물 안에서도, 지하철, 백화점, 사무실, 아파트, 터미널, 어디든 엘리베이터, 에스컬레이터가 '편리'라는 이름으로 몸을 움직이지 않고도 필요한 일을 볼 수 있게 만들어준다. '편리'는 현대문명사회의 가장 중요한 장점처럼 부각돼 있다.
그러나 '편리'가 놓친 인간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불변의 진리가 내 몸을 움직이는 것이다. 즉, 내 몸을 직접 움직이는 것이 만드는 운동 메커니즘의 중요성이다. 인간 삶의 행복도를 높이고 몸의 건강을 보장하는 기제로 굳어진 운동 메커니즘은 수십만 년 간 내 몸을 직접 움직여야 생존했던 내 몸의 기억이 자연발생적으로 만든 절대적 신체 작동 원리이다. 이것을 간과하거나 무시하도록 만드는 것이 현대문명사회가 만들고 보장하는 '편리'라는 병이다.
그래서 우리는 '편리'라는 새로운 병을,어디든 갈수있고 무엇이든 할수있는 신무기처럼 알고 멀고 높은 곳에 살며 날마다 내 몸을 죽이는 '바쁨'에 익숙해졌다.일이 잘되면 영원히 살 것처럼 바삐 살았는데 지나고 보면 정 반대로, 그동안 살면서 정작 나를 살리는 일은 하나도 하지 못한 결과를맞고야만다.
모두가 가속노화의 희생양
게다가 현대인들은 내 몸을 움직이지는 않지만 '먹기'는 참 잘한다. 나이가 들어도 아무 상관없이 여전히 잘하는 것이 '먹기'이다. 현대문명이 선사한 이동의 편리로 산해진미가 내 손이 닿는 곳에 널려있다. 잘 먹기 위해 돈을 번다는 사람도 있다. 돈 벌어서 잘 먹는 일의 반복이 삶의 전부인 것처럼 산다. 그런데 잘 먹었으면 그만큼 내 몸도 건강해져야 하는데 배는 계속 나오기만 하고 내 몸은 계속 죽어가고 있다.
그렇게 바쁘게 살며 잘 먹고 잘 입고 좋은 차 타고 사는 현대인들이지만 실상은 안쓰러운 삶이다. 내 몸이 날마다 하루가 다르게 죽어간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안타깝다. 모두들 분명 지상에서 가장 행복한 듯 보이며 사는데, 실제로는 그러는 매 순간 내 몸이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내 몸이 죽는 증거는 분명하게 나타난다. 한 해가 다르게 피로와 무기력증이 늘어난다. 자신감도, 만사 의욕도 급속히 떨어진다. 그럴수록 보상 심리가 강해져 인정욕구나 과시욕은 커지지만 실제 삶의 여건은 갈수록 힘들어지고, 새 기회는 줄어들고, 정신은 약해지면서, 그렇게 어느새 나이만 확 들고 만다. 결국 뭘 하려다가도 자포자기하게 되고, 몸은 힘들고 내 생각대로 따라주지 않는 것을 나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자위하고 말지만 실은 노화 때문이 아니라 날마다 몸을 죽이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흔히들 말하는 '가속노화'의 희생양이 되고 만 것일 뿐이다.
만약 그렇게 되기 전에 내 몸을 살릴 기회가 있다면?
내 몸을 살릴 시간만큼은 주저해선 안된다. 다른 어떤 일보다 우선해서 해야 한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사람이 가장 잘 사는 사람이고 행복한 사람이다. 사는 동안 행복하게, 잘 사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자 조건이 내 몸을 살리며 사는 것이다. 이것만큼은 살면서 결코 잊어선 안된다.
내 몸을 살리는 유일한 방법은 에너지를 계속 흐르게 하는 것이다. 모든 병은 에너지가 혈중에 쉬고 있을 때 생긴다. 에너지가 흐르는 사람은 심혈관질환과 대사성증후군에 절대 걸리지 않는다.
내 몸이 죽는 이유는 몸을 움직이지 않으므로 내 몸의 에너지의 흐름을 막기 때문이다. 먹은 만큼 에너지 소비를 안 하므로 나쁜 지방과 나쁜 콜레스테롤 수치를 높여 온갖 병을 부르는 몸을 만들기 때문이다. 에너지 대사가 원활하지 않으므로 피로와 무기력증을 달고 사는 몸이 되기 때문이다.
반면, 에너지를 흐르게 하면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모든 기관이 제 자리를 찾아가게 된다. 막히고 굳어진 구석구석이 얼음 녹듯 풀어지게 된다. 그래서 모든 기관의 기능들이 제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럼에도, 내 몸을 살리며 사는 행복한 사람들
그제 새벽같이 집을 나선 이유는 설악산에 가기 위해서였다. 예정했던 한 스케줄이 펑크 나는 바람에 올타구나 하고 갑자기 나선 길이다.
한계령에 도착했을 땐 일기예보에도 없던 비가 오고 있다. 등산로 입구엔 "기상악화, 산사태 주의"라는 전광판이 켜져 있다. 그래도 새벽같이 온 차들이 한계령 휴게소 주변의 차도까지 꽉 메우고 있다. 모두 등산하러 온 차들이다. 난 이곳에서 새로운 삶을 보았다.
산행길에서 몸을 살리고 있고, 오랫동안 몸을 살려온, 도시에서 보았던 많은 사람들과 차원이 다른 행복한 사람들을 본다. 수염이긴 멋진 노인 한 분이 혼자 지나가신다. "안녕하세요" 형식적인 인사를 건넸을 뿐이다. "네, 안전하고 즐거운 산행 하세요" 하고 정성을 다해 화답해 주신다. 몸을 살리며 산 사람들의 전형을 본 것 같다. 삶에 대한 긍정적 태도와 자신감이 뿜뿜 하셔 상대에 대한 배려와 친절함이 몸과 행동에 배어 있으시다. 요즘은 젊은이들도 참 많이 산행을 한다. 나는 자연과 가까워지고 자신의 몸을 살리는 분위기가 형성된 이런 현상이 너무 좋아 보인다. 각자 내 몸의 에너지가 끊임없이 흐르게 하는 사회는 나이 불문하고 젊고, 활력이 넘치고, 지속가능성이 보장된 사회이다.
아무리 바빠도,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내 몸의 에너지가 흐르지 않으면 불행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내 몸의 에너지가 멈추거나 막히지 않게 하라. 아침에 만보를 걸었어도 오후에, 저녁에 많이 먹었다면 다시 만보를 걸어서 혈중에 에너지가 쉬고 있지 않게 하라. 에너지가 내 몸에서 계속 흐르게 하라.
PS. 오전에 그렇게 흐리고 비까지 와 소위 '곰탕'이 됐던 전망이 오후에 맑게 개이면서 서부능선과 귀때기청봉에서만 볼 수 있는 기적처럼 황홀한 내설악, 외설악의 절경을 보여주었다. 그것은끊임없이 움직이는 기류 에너지가 보여주는 개벽의 감동까지더한 것이었다. 내 몸을 움직인 오늘 곰탕이어도 행복했을 테지만 더없이 보람 있고 행복한 하루가 되었다.
(상)서북능선 너덜지대에서 구름이 열리는 것을 반가워하는 등산객들. (중)날이 완전히 개어 내설악의 웅장한 모습이 한눈에 보인다. (하)하산길 운해로 가득찬 남설악 쪽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