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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비맘 Aug 03. 2020

단 3개월 만이야!

친구에게 선물해버린 작은 토끼


과외수업을 하러 가는 길에 엄청난 중압감이 나를 억눌렀다.

살아서 밖이 궁금해서 두발로 서서 이리저리 보려고 노력하는 이 손바닥보다 작은 토끼가 ‘생명’이라는 중압감.

생명을 책임진다는 것은 생각보다 커다란 문제였다. 분명 돈 2만 원은 내 주머니에서 나왔는데 과외하러 걸어가는 길에 친구에게 대뜸 그 아이를 ‘선물’해버렸다.


생각해보면 이 작은 토끼가 내 가족이 되기 전에 나는 너무도 동물에 대해 생명에 대해 무지한 사람이었다.


“이거 니 선물이야! 너 외로움 많이 타잖아~ 그래서 산거야”


친구는 의외로 간단하게 ‘좋다’고 했다.

그렇지만 본인이 지금 고시원에서 생활을 하고 있으니 3개월만 우리 집에서 키워주면 본인이 3개월 후에 데려가겠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중압감이 가벼워지는 듯했다. 단 3개월만 맡아주기로 하자 홀가분한 마음까지 들었다.


“그래 좋아! 나 일단 과외 수업하러 들어가야 하니 얘 좀 보고 있어!”




종이 쇼핑백에 담긴 손바닥 만한 작은 생명을 데리고 들어갈 만한 카페가 없어서 친구는 동네 공원에서 슬며시 아이를 꺼내 두었다고 한다. 그랬더니 ‘겁이 많으니 데려가서 어두운 곳에 1주일 동안 두고 건드리지 말라던’ 토끼 할머니의 말이 무색하게도 이 작은 아이는 냉큼 쇼핑백에서 나와서 겁도 없이 뽈뽈뽈 돌아다니기 시작했다고 한다.


겁이 많아서 안 움직일 거라던 할머니의 말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그 공원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고 한다. 이 어른 손바닥보다도 작은 생명체는 겁이 나서 포복자세(몸을 다 펴지 못하고 잔뜩 움츠려서 기어가는 자세)를 하면서도 그 큰 공원을 대차게 돌아다녀서 내가 과외수업을 하는 2시간 내내 친구가 진땀을 뺐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과외를 마치고 다시 친구를 만나 귀가를 하려고 보니 토끼가 종이백에는 들어가고 싶어 하지 않는 듯해서 당시 입고 있던 내 패딩 호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고개를 빼꼼 내밀기는 했으나 크기가 쇼핑백보다는 맞아 보였고 당시 3월이었는데도 추웠던 날씨 탓에 그 편이 이 작은 토끼도 따뜻할 거라 여겼다.



그런데 당장 아이의 집과 음식이 없었다.

토끼 파는 할머니가 토끼 15000원 토끼 밥 5000원에 판매를 하셨다면 가지고 있던 2만 원으로 딱 해결을 했을 텐데 죽어도 이 갈색과 하얀색이 섞인 아이는 2만 원을 받겠다는 할머니 때문에 토끼 밥을 살 수가 없었던 우리는 인터넷 서칭을 통해 대형마트를 가면 토끼 밥을 살 수 있다는 걸 알아냈다.
가까운 곳에 청량리역에 큰 대형마트가 있었다. 거기도 작은 플라스틱 장 안에 토끼를 판매하고 있어서 토끼에게 필요한 용품을 사겠다고 하니 매우 아는 척을 하며 그 점원은 몇 가지 권해 주었다.



토끼 이갈이에 필요하다는 미네랄 스톤, 토끼에게 먹여야 한다는 사료 한 통, 아기 토끼의 주식이라는 알팔파 그리고 물통.  순식간에 토끼 값보다 더 비싼 4만 원가량을 소비하고 나오는 길에도 내내 그 토끼는 내 호주머니 안에서 고개를 빼꼼 빼꼼 내밀기 일쑤였다.



아이의 나이가 궁금했는데 토끼 할머니는 이 작은 아이가 3개월짜리라고 했다. 거기 있던 그 아이만 하던 작은 아이들 모두 3개월짜리고 더 이상 크지 않는 미니토끼라고 연신 입에 침을 튀기며 사람들에게 토끼를 사가라고 하셨다. 아무것도 모르던 나는 그저 그런가 보다 했는데, 친구는 인터넷에서 ‘토끼 카페’를 검색해서 토끼 사진을 올리고 이 아이는 몇 살이고 무슨 종이냐고 카페 회원들에게 질문을 던져두었다고 했다.

사진 속 핑크 옥수수 모양이 미네랄스톤으로 토끼 이갈이용이라고 하지만 실제 토끼에게는 좋지가 않고 피비는 거들떠보지도 않았었다.



더치, 라이언헤드, 드워프 생소한 단어들이 나열되기 시작했고 많아봐야 3주, 끽해야 2주 정도 된 아주 아기 토끼라는 댓글들이 우수수 달렸다. 또한 아기 토끼는 6개월까지가 아기 토끼인데 그즈음에 가장 많이 폐사한다는 이야기도 우수수 달렸다. 그런 지하철 같은 곳에서 판매하는 아이들은 특히나 젖도 제대로 안 먹이고 엄마에게서 떨어뜨려 판매하는 거라 더 폐사율이 높다는 무시무시한 엄포도 늘어놓았다.


단 3개월만 키울 거지만 6개월 안에 죽는 경우가 많다는데 하필 내가 맡아두고 있는 3개월 안에 토끼가 죽으면 너무 낭패 아닌가. 그리고 아이가 2-3주가 아니라 할머니 말대로 3개월짜리라고 하더라도 내가 맡아줄 3개월이 지나야 만 덜 죽는 나이라는 6개월이 지나는 것이었다.



조금은 덜어졌던 중압감이 다시금 나를 덮치기 시작했다. 더 이상 크지 않는다는 말에 동네 다이소에서 구입한 3000원짜리 박스 안의 연신 두발로 서서 궁 금해 하는 토끼를 바라보며 이 토끼가 내 집에 있는 동안에는 죽지 않고 잘 커주기만을 바라고 바랄 수밖에 없었다.




스트레스에 취약하다.


라는 말도 토끼에 대해 찾아본 정보 중에 가장 많이 들리는 말이었다. 스트레스 각종 병균 음식 등 안 취약한 게 없는 나약하고 어린 작은 생명체를 단 3개월만 맡아주기로 한 것조차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나 때문에 이 작은 아이가 죽으면 어떻게 하나.. 그 죄책감을 떨쳐 버릴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래 단 3개월이지만 내가 최선을 다해서 널 키워주마. 절대 내 옆에서는 죽지 말아 줘.



그렇게 이 작은 솜뭉치와의 임시 동거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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