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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비맘 Aug 28. 2020

토끼 피비와의 전쟁 시리즈 2탄

 아이의 잘못은 다 부모탓이오.





  평소 불면증이 심한 나는 날이 밝으면 겨우 잠이 들거나 TV를 켜 두고 자는 일이 많았다. 그러나 피비가 오고 나서부터는 작은 불 하나만 켜 두고 시간도 나름 1-2시간 정도 일찍 잠에 들게 되었다. 잠의 질이 조금 나아진 것처럼 들리지만 아침 7-9시 사이만 되면 늘 일정하게 들리는 소리에 잠을 깨곤 했다.



“파바바바바박”
“뜯뜯뜯”
“파바바바바박”

“뜯뜯뜯”




정확히 저런 소리가 난다. 피비는 내가 자고 있는 주변의 이불을 열심히 파고 잡아 물어뜯고 다시 열심히 파고 잡아 물어뜯고 있었다. 흡사 두 손으로 모레를 파 내듯이..... 그 소리가 반복적으로 이어지는데 한번 시작하면 내가 아무리 이불에서 피비를 밀어내고 밀어내도 다시 와서 그 행동을 반복하는 것이다. 그럼 아침녘에나 겨우 잠든 나는 다시 일어나는 게 정말 고역이었다.


게다가 평소 물건을 매우 아끼는 편인 나는 웬만한 물건은 잘 버리지도 않고 잘 상하게 하지도 않고 오래오래 쓰는 편이었는데 피비가 온 이후로 자꾸만 무언가 내 물건이 망가지거나 못 쓰게 되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선’ 이었다.



그중에 제일 난처하고 곤란한 것은 단연 ‘충전선’ 이었는데 당시에 애플사의 휴대폰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그 충전선은 타 회사의 5배 이상 비싸기도 하거니와 다른 선들은 끊어지면 철사끼리 잘 연결해서 묶어주고 절연테이프로 감아주면 ‘심폐소생술’이 가능한 것들이 많았는데 애플사의 것은 한번 끊어지면 그저 눈물을 머금고 세이 굿바이 인사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가난했던 취준생 시절.
나도 잘 못 챙겨 먹으면서 섣불리 토끼를 데리고 왔다. (매우 충동적이었다는 건 앞선 이야기로 추측되겠지만..) 내가 데려온 생명이니 나는 굶어도 피비는 안 굶기려 애지중지 키웠는데... 가난한 취준생이던 내게 아이폰 충전선 26000원은 너무나 피 같은 돈이었다. 아이폰은 외상이 생기면 A/S조차 되지 않는 아주 고약한 녀석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그렇게 이별한 아이폰 충전선이 쌓이고 쌓여갔다.
방금까지 충전하면서 휴대폰을 하다가 잠시 침대 위 머리맡에 두고 다섯 발자국밖에 안 되는 욕실로 향하면? 두어 발자국 뗀 후 알게 된다. 때는 늦었구나... 아 맞다! 충전선!!!’ 하고 돌아서는 순간 이미 그 친구는 피비 이빨에 씹혀 세상 하직한 후였던 일이 반복되고 있었다.





당시 내가 자주 보던 프로그램은 동물을 주제로 한 주말프로그램이었는데 문제동물들을 데려다가 보여주고 전문가가 나와서 고쳐주는 장면이 나왔다. 거기서 나온 방법을 유심히 보아 두었다가 차마 아까워서 버리지도 못하고 쌓여있는 이미 사망한 아이폰 충전선을 가지고 피비를 ‘훈련’ 시키기로 결심을 했다.

이미 그 달 생활비로 아이폰 충전선 값으로만 10만 원 넘는 돈을 소비한 나는 생활비 한도 초과였다.


뭐라도 해야 해!!!



프로그램에서 전문가가 권한 방법은 강아지가  잘못된 행동을 할 때 몸줄을 하고 있다가 잡아당기거나 커다란 소리를 내서 깜짝 놀라게 하면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거였다. 이미 유명을 달리한 충전선을 피비 앞에 두고 피비가 물려고 할 때마다 큰 소리를 내보았지만 피비는 아랑곳하지 않고 충전선을 씹었다.



이번에는 몸줄이다!




피비에게 몸줄을 채우고 다시 충전선을 피비 앞으로 둔 다음 피비가 물려고 할 때마다 몸줄을 잡아당겼다. 그렇지만 피비는 고집 센 미운 7살 아이처럼 끝까지 입 앞에 가져다주는 충전선을 물고 싶다는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훈련이 되지 않는 피비 때문에 너무나 화가 났다. 그래서 한 손으로 피비를 잡아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충전선을 피비 입에 갖다 대며 “또 물어! 또 물어!” 하고 큰소리로 혼을 냈다. 놀랐는지 고개를 휙휙 돌리며 피했지만 꼭 버릇을 고치고 싶다는 욕심에 아이를 놔주지 않고 계속해서 아이 얼굴에 충전선을 들이밀었다.
“또 물어봐, 어디!!” 하고 윽박을 질렀다. 그렇게 내 손아귀에서 벗어나려던 손바닥보다 조금 크던 피비의 몸은 영화 ‘박하사탕’의 문소리 씨처럼.. 갑자기 뒤틀리기 시작했다.
너무 놀라 내 왼손으로 꽉 잡고 있던 피비를 내 침대 위로 놔버렸다. 내 손아귀에서 벗어나 침대 위에서 3-4번 몸을 비틀며 튀어 올랐다.


통, 통, 통...
너무나 놀란 나는 피비를 그저 바라보고 있었는데, 사지가 뒤틀리면서 침대 위에서 몇 번 튀어 오르던 피비가 갑자기 아무런 움직임 없이 멈춰 누워버렸다.

죽은 건가...?
아니... 죽인 것인가.....?

그 순간...

너무나 미안했다. 난 초등학교 때부터 공황장애를 앓았는데 그 기저의 가장 큰 요인은 ‘죽음’에 대한 공포였다. 그래서 죽는 장면, 죽은 것들에 대해서는 더욱 극심한 공포를 느껴 죽은 무언가를 보거나 만지거나 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 순간에는 그저 하염없이 이 토끼에게 미안했다.
싫다고 고개를 이리저리 피하던 애를 그저 나 편하자고, 길들이겠다고, 나는 토끼가 가뜩이나 스트레스에 취약하다는 걸 알면서도 그런 훈련을 강행했고, 그래서 이 아이가 이렇게 사지가 뒤틀려서 죽은 것이었다.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이왕 가더라도 이렇게 사지가 뒤틀린 채 보내는 건 안 될 것 같았다. 울면서 아이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이 모든 행동은 아이가 통통통 튀어 오르다 멈추자마자 바로 한 행동이었다. 저 많은 생각이 아이가 죽었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한순간 뇌리를 스쳤고 난 아이를 주무르면서 연신 사과를 했다.

“미안하다... 미안해.. 정말 미안하다”

이제 고작 같이 산 시간은 1달도 안 되었던 때라 큰 슬픔보다는 그저 큰 죄책감이 나를 덮치고 있었고 그런 죄책감으로 이 토끼를 연신 주물러주었다.



놀라서 근육 긴장으로 사지가 뒤틀렸지만 다행스럽게 바로 주물러서 아이의 근육이 풀려서 살아 난 듯 하다.. ( 사진은 다른 때지만 종종 저렇게 서운하면 서운한 얼굴을 하며 본다)



한 2-3분이 지났을까?
피비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직 사지가 조금 불편한지 두 손과 두발이 가로로 벌어지며 허우적거리는 모양새긴 했지만 힘을 줘서 일어났다. 그러더니 정신을 차려 날 보자마자 황급한 발걸음과 손걸음( ?)으로 필사의 노력끝에 도망을 쳐 책상 밑으로 숨어들었다.


한달..


피비가 다시 내게 와서 애교를 부리고 서로 친해지기까지 꼬박 한 달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그 시간 전에는 평소 좋아하던 사료를 주려고 손바닥 위에 사료를 보여주며 ‘피비야~ 피비야~ 빠삐 먹자’하고 부르면 사료 소리를 듣고 달려오다가도 ‘아차, 날 죽이려던 무자비한 사람’ 하고 떠오르기라도 한 듯 달려오던 방향을 급하게 드리프트를 타며 급 방향을 돌려서 도망치기 일쑤였다. 내 근처에는 오지도 않겠다는 듯 4면인 집의 벽면으로만 절벽 타기 하듯 다녔고, 5-6평 밖에 안 되는 그 좁은 집에서 어떻게든 나를 피해보겠다고 요리조리 피해 다녔다.






그 후 카페를 통해 얻은 이야기로는 ‘토끼는 나쁜 일은 절대 잊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고 했다. 정말 그런 것도 같은 게 친구가 본인의 토끼를 두고 해외여행을 훌쩍 다녀오면 해외여행 다녀온 날만큼 정확하게 본인에게 다가오지 않고 새침을 부렸다고 한다.

피비를 한 번 죽일 뻔 한 뒤로.. 아니 피비가 나에게 다시 한번 더 죽음의 트라우마를 주지 않으려고 기를 쓰고 되살아나 준 그 이후로 나는 내 생각을 고쳐 먹었다. 그리고 지금도 변하지 않은 생각이자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생각이다.

반려동물의 잘못은 결국은 사람인 주인의 잘못이다.


내가 애초에 충전선을 포함 모든 선들을 피비 입이 닿지 않는 곳에 뒀어야 한다.

내가 애초에 피비가 리모컨 버튼을 뜯는 걸 알았으면 뒤집어 놨어야 하고,

내가 애초에 전선 같은 건 피비가 물지 못하도록 다 가려놨어야 하는 거였다. 원래 우리나라에 있는 토끼는 대부분 ‘굴토끼’ 종을 개량한 거라 굴을 파는 습성 때문에 이불을 파고 뜯뜯 하는 건 본능이라는 걸 이해했어야 한다.


피비가 파박 뜯뜯해서 내가 집고 꿰매서 쓰다 포기한 쇼파와 베개 이불.. 반면 태연한 얼굴의 피비 :)





그 후로 피비가 내 명품지갑, 내 포터블 DVD, 내 노트북, 내 새 가방 끈, 내 새 신발 등 무수히 많은 내 물건을 파괴하고, 나에게 재산상의 손해를 입혔지만 나는 어떠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었다. 그런 것들을 뜯어 먹고 아프지 않은 것만도 감사한 일이었다. 그러면 늘 스스로에게 세뇌시키듯 말하곤 했다. 내 뇌에게 다시 한번 잘 기억하라고...




“그래 거기 둔 내 잘못이지 피비 네가 무슨 잘못이겠니.... 내가 죽일 ㄴ이지 뭐 우리가 어긋날 때면... 전부 내 탓이지 뭐..마치 죄인인 것처럼.... (feat. 다이나믹듀오 ‘죽일놈’)”










이 글을 읽고 만약 이제 토끼를 키우면서 생길 수 있는 전쟁이 모두 끝났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토끼를 매우 만만하게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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