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의 전쟁
토끼는 반야행성이다. 나도 반야행성이다.
밤만 되면 눈이 말똥해지고 정신이 또렷해진다. 그래서 나와 피비는 나름 수면의 패턴이 비슷했다. 나는 불면증이 심해 밤에 잠을 잘 못 잔다. 3-4시에 자면 일찍 자는 편인데, 내가 가장 숙면을 취하는 시간은 대게 5-8시 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토끼는 밤에 굉장히 활발해 진다. 새벽녘에도 굉장히 활발하다. 한창 피비를 데려왔을 때 나는 아침에 스터디를 하고 있었다. 억지로라도 잠에 들어야 해서 1-2시가 되면 피비를 케이지에 가두고 나도 잠에 들기 위해 침대 위에서 안간힘을 쓰고 있을 때였다.
다다다다다다 -
다다다다다다다다-
케이지에 넣어둔 피비가 케이지 문을 이빨로 잡아서 흔들고 있었다. 쇠가 부딪히는 소리가 어둡고 적막한 원룸 안에 굉장히 크게 울려 퍼졌다.
“피비야 하지 마!!!”
내가 벌떡 일어나 큰소리를 치자 피비가 하던 행동을 멈추었다.
‘역시 알아들었군!’ 내심 뿌듯하게 다시 누웠다. 내가 다시 눕자마자 피비는 다시 그 문을 입으로 잡고 흔들기 시작했다.
다다다다다-
다다다다다다다다-
‘날 꺼내라, 애미야!!! 당장 꺼내라 애미야!!’
그렇게 항의를 하는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이 단 몇 시간이라도 자기 위해 꺼내 주었다.
그러자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내 침대로 폴짝 뛰어 올라온 피비는 내 이불을 파바바박 긁고 뜯기를 계속했다. (*우리가 키우는 토끼는 굴토끼가 조상이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굴을 파는 습관이 남아있다.)
이불을 흙처럼 파대는 소리에 더해서 그 이불을 다시 뜯어내는 소리까지.
이불을 먹다가 잘못되면 장폐색이라는 무서운 병에 걸려 죽을 수 있기 때문에 그러지 말라고 또 피비를 말려야 했다. 피비를 들어 올려서 침대 밑으로 내려놓으면서 ‘내려가서 놀아~’하고 타일렀다.
하지만 피비는 포기라는 건 애초에 모른다는 듯 몇 번이고 다시 올라와서 똑같은 행동을 밤새도록 해댔다. 그러다가 지치면 침대 끝 어디 구석에 가서 조용해진다. 그건 거기에 소변을 누고 있다는 소리였다. 다리가 축축해졌다.
“최피비!!!!! 너 또 오줌 쌌지?”
다시 큰소리를 내자 혼내는 건 귀신 같이 알고 튄다.
“아 정말 이제 자야 하는데, 지금 몇 시간 째냐고!!!” 연신 짜증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씩씩대면서 물티슈로 피비가 오줌 눈 곳을 닦아내고 다시 잠을 청하려고 베개를 베고 누웠다.
그러면 또다시 피비가 뛰어 올라와서
파바바바박-
뜯뜯뜯-
무언가 솔루션이 필요했다. 길지 않은 나의 수면의 질이 현저히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침대 사수를 위한 첫 번째 솔루션
내 울타리 만들기
애초에 내가 피비를 가둬 키우지 않아서 피비는 우리 집 전체를 자기의 영역으로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피비를 케이지에 가두는 것은 우리가 화장실만한 공간에 계속 갇히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래서 나는 나의 침대를 사수하기로 했다. 그래서 생각한 방법은 나의 침대를 삥 둘러서 소위 바리케이트(방패막) 치기. 애완동물용 울타리를 사서 피비의 케이지를 두르는 게 아니라 나의 침대 주위로 둘렀다. 나는 종종 침대에 앉아서 텔레비전 보는 것을 좋아했는데 침대 주위로 삥-두른 울타리 때문에 그런 편리함은 사라졌지만 피비의 방해 없이 잘 수 있을 거라는 꿈에 부풀었다.
그렇게 울타리를 치고 자려던 첫날밤.
피비는 짐짓 울타리를 보더니 당황한 눈치였다.
“엄마도 자야지~오늘 밤부터는 엄마 괴롭히지 말고 혼자 놀아~~” 하고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잠자리에 들었다.
잠이 막 들고... 나는 꿈을 꾸었다... 꿈에서 천둥과 번개가 내리쳤다.
쿠궁!!!!!!
“헉!!!!!!!!!!!!!!!!!!!!”
너무 놀라 눈을 떴다. 그리고 그 소리가 천둥번개 소리가 아닌 우리 피비가 울타리를 넘어온 소리라는 걸 알게 되는데 1초도 걸리지 않았다.
피비가 울타리 사이에 있는 가로 철근을 밟고 디딤대 삼아서 튀어 올라 내 침대 위로 안착하면서 도움닫기를 하자 그 힘으로 쇠 울타리가 쓰러진 소리였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 일인가.. 어안이 벙벙했다. 서칭 결과 토끼의 최대 점프력이 2m라고 한다. 침대 위로 로켓처럼 튀어 날아온 (?) 피비는 다시 이불을 긁어대기 시작했다.
파바바박-
뜯뜯뜯-
‘후훗- 엄마 이 정도로 날 막 을순 없어요^-^’
하고 피비가 웃고 있는 것만 같았다.
침대를 사수하기 위한 두 번째 솔루션
난방텐트 활용
매일 밤 피비와 사투를 벌인 던 내게, 나처럼 토끼를 키우는 친한 동생으로부터 좋은 소식을 들었다.
“언니~ 나 이번에 추워서 난방텐트 샀는데 글쎄 세상 편해~
그리고 랄라 (친구네 토끼의 이름)도 이제 침대에 못 들어와서 편하게 자요~ 언니도 사 봐요“
피비 때문에 늘 보일러를 틀고 다녀 집이 추운 건 아니었지만 난방텐트라 쓰고 방어텐트라 읽는 그런 마음으로 친구따라 난방텐트를 구입했다.
난방텐트는 침대 위의 나만의 공간을 마련해 주는 느낌이 들어서 정말 좋았다. 친구의 말대로 정말로 전기장판을 틀지 않아도 따뜻하기까지 했다. 피비를 데려온 이후로 겨울엔 보일러, 여름엔 에어컨을 주야장천 틀어두고 다녀서 냉난방비도 만만치 않은 터에 정말 꿩도 먹고 알도 먹고 일석이조의 좋은 아이디어였다.
역시 난방텐트를 처음 본 피비는 당황했다.
0-0
안그래도 큰 눈이 더욱더 커져서 요리조리 텐트를 탐방하기 시작했다.
“푸하하하!! 최피비 - 넌 이제 안녕이다~ 엄마는 여기서 아주 편하게 잘 거야!!”
고소한 마음도 들었다, 그렇게 밤마다 잠도 못 자게 날 괴롭히더니...
텐트를 사고 나서 밖에서 텐트를 긁어대며 ‘엄마, 나와!! 나오라고!!’하는 것 같은 피비의 몸짓이 보이고 소리가 들렸지만 그날은 아주 편하게 자고 일어났다. 텐트 속은 심리적 안락함마저 주고 있었다.
그 날 이후 침대 모서리 쪽에 올라와서 난방텐트로 들어오려는 피비의 노력은 가상 했지만 나는 절대 마음 약해지지 않고 나의 잠을 사수했다. 그렇게 한 3일이 지났을까...
귀가 후 당연히 보여야 할 피비가 보이지 않았다. 집도 좁은 데다 전부 막아놔서 피비가 갈 곳은 아무데도 없는데 피비가 보이지 않았다. 내가 아침에 문을 열어두고 나갔나? 자동잠금문이라 열렸다가 피비가 나가고 닫혀 버려서 애가 못 찾나...등등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혹시나 해서 열어본 난방텐트 안.
피비가 그곳에 있었다. 너무도 태연한 얼굴로-
‘여어~ 애미 왔는가?’
어떻게 된 일인지 알 길이 없었다. 굳게 잠긴 텐트지퍼를 열고 들어가서 다시 지퍼를 잠겄을 리 만무하지만 우연일 거라고 생각하고 그날은 그렇게 지났다.
며칠 후,
잠을 자는데 또 꿈을 꾸었다.
우주 같은 곳을 떠다니는 내 손에 외계인이 무언가를 쥐어 주었다. 물컹하고 이상한 느낌.
“아아악!!!”
놀라서 소리를 치며 깨었다.
“으아아악!!”
꿈에서 보다 더 놀랐다.
내 손 밑으로 피비가 얼굴을 스윽 들이밀고 있었다.
내가 난방텐트를 산 며칠 동안 피비는 어떻게 저 난공불락을 쓰러뜨릴 것인가를 연구한 것 같았다. 그리고 내가 우연일 거야 라고 생각했던 날 마침내 피비는 텐트 안으로 들어가는 데 성공한 것이다. 나가는 길은 찾지 못해서 텐트 안에서 갇혀 있었으나, 한번 알게 된 길을 절대 잊지 않는 똑똑한 토끼인 피비는 그다음 날 밤 내가 잠든 틈을 타 다시 한번 그 밑으로 얼굴을 수~욱 잡아넣은 것이다.
난방텐트는 바닥이 뚫려 있는 구조인데, 침대 밑에서 안쪽으로 손을 집어넣으면 넣을 수 있다. 그걸 피비가 우연히 머리를 집어넣다 알게 된 것 같다고... 추정만 할 뿐... 어쨌건 난방텐트 5일 천하는 그렇게 끝이 났다.
최후의 솔루션
2층벙커침대 구입
결국 나는 피비가 올라오지 못할 곳으로 가야만 했다. 피비의 짐과 나의 짐이 늘어나면서 집이 좁아진 탓도 있고 겸사겸사 2층 철제 침대를 맞춰서 잠자리를 2층으로 정했다. 피비가 계단을 타는 토끼가 아닌 이상 올라올 수 없는 높이로 올라가서야 나는 편하게 잠을 잘 수가 있었다. 이 방법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2층 침대에서 피비를 내려다보면 사다리 앞에서 나를 꼭 기다리는 것 같이 앉아 있을 때가 많아서 마음이 약해진 나는 2층 침대를 사고도 근 6개월 정도 2층에 올라가지 못하고 1층에서 잤다. 1층에서 자면 피비가 이불을 뜯기 때문에 나는 1층용 이불 (뜯어도 되는 저렴하고 싼 이불), 2층용 이불(내가 좋아하는 무늬, 돈을 좀 지불해도 덮었을 때 편한 이불)을 따로 두고 살았다. 지금도 피비는 아침에 내가 일어나서 사다리를 내려가면 기뻐서 빙키를 한다.
(*빙키 - 토끼가 기뻐서 펄쩍 뛰어오르고 뛰어올라 돌고 하는 행동, 토끼의 기분이 상당히 좋을 때 하는 행동)
한 번씩 자기 전에 내려다보면 사다리 근처나 내가 누워 있는 머리맡 밑으로 누워 있는 모습이 보이면 짠하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나를 기다리는 피비가 고맙기도 하고 그런 날들이었다.
잠의 전쟁에서만큼은 누가 승자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저 글을 쓸 때만 해도 피비가 4살이었는데, 이 글을 다듬으며 다시 쓰는 지금은 피비가 7살이 넘었다. 피비는 6살 즈음부터는 내가 내려와서 자더라도 이불을 뜯거나 이불에 오줌을 누는 일이 현저하게 줄어들었고 내가 내려와서 자면 내 베개맡에 자기도 자리를 잡고 누워서 우리가 함께 자는 일이 종종 있었다.
피비가 나이가 들어 철이 들어가는 일은 나에게는 편리한 일이었지만 또 한 편으로는 우리 피비의 시간은 살아온 날보다 살 날이 얼마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는 걸 나는 조금 늦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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