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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비맘 Sep 23. 2020

토끼지만, 저도 말을 알아들어요!

나는 다 느껴요.



무슨 일 때문이었는지 기억이 나진 않지만 그날은 유난히도 슬펐던 날이었다.
그래서 한 자리에서 움직이지도 않고 침대에 기대 하염없이 눈물을 뚝뚝 흘리던 내가 궁금했던지 손바닥만 한 솜사탕이 뽈뽈 다가왔다. 한참을 울다가 그 솜사탕을 들어 올려서 뒤집어 얼굴을 바라보았다. (추후에 알았지만 토끼는 이렇게 배를 까고 뒤집으면 안 된다.)
당연히 본능적으로 뒤집히는 게 싫어서 발버둥을 쳐야 할 아이가 나의 눈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내 닭똥 같은 눈물의 의미를 마치 알고 있다는 듯이 나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저 바라봐주는 것만으로도 너무 위로가 되어서 더 펑펑 울어버렸다. 그 후로는 그저 피비가 내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나는 어쩐지 마음이 든든했다.
어릴 적에 매우 엄격한 집안에서 자랐다. 거기에 나는 장녀로 태어나 늘 내가 잘해야 동생들도 따라간다는 아빠 말씀을 듣고 자랐는데, 무슨 일이 생겨 울고 싶어도 우는 모습을 보이는 자체가 너무 못난 장녀가 되는 것 같고 뭔가 내가 잘못하는 것 같아 꾹꾹 참는 일이 많았다. 또 내가 어쩌다 눈물을 쏟게 되면 늘 아빠는 보기 싫게 왜 눈물을 흘리냐고 혼내시곤 했다. 그래서 사람들 뿐 아니라 가족들 앞에서도 잘 울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었는데, 피비와 있을 때면 나는 서러우면 서러운 대로 엉엉 울 수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너무나 신기하게도 피비는 나를 위로하듯 늘 곁을 지켜주었다.





2 침대를 사기 에는 새벽녘에야 겨우 잠드는 나를 피비는 아침 7-9시만 되면 내 침대로 올라와서 깨웠다. 이불을 긁고 뜯고 자기 밥 주라고 나를 줄곧 깨워서 피곤해도 짜증을 내면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내가 홍합을 넣은 라면을 먹고는  힘들다는 ‘노로바이러스 걸렸다. 장염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나를 너무나 고통스럽게 만든  바이러스는 아마도  익은 홍합이 원흉이었던  같다. 식은땀이 나고 너무나 아파서  이후로 나는 ‘안락사반대에서 ‘안락사찬성 입장으로 생각이 바뀌기까지  그날이었다. 끙끙거리면서 밤새 앓다가 문득 피비가 아침이 한참 지난  같은데도 나를 깨우지 않은  알았다. 혹시나 밤사이에 무슨 일이 생겼나 너무 놀라서 아픈 몸을 일으켜 피비를 큰소리로 불렀더니  그래도  눈이  커진   부르냐는  나를 쳐다보며 아주 얌전히 본인 케이지에 있었다.
정말 요상한 일이었다. 시계는 이미 오전 11시를 가리키고 있었는데, 내가 아픈  귀신같이 알았는지 그날은 나를 깨우지 않고 아주 얌전히 혼자 놀고 있었던 것이었다.

뭐죠? 뭔 일이죠?




그리고 피비는 어느 순간부터인지 기억은  나지만  가지 단어를 알아듣게 되었고 본인의 의사를 표현하는 법을 깨우치게 되었다. 사람들은 토끼를 키운다고 하면 토끼의 지능이 매우 낮다고 생각한다. 소통도 되지 않고 교감도 되지 않는 토끼를 키우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등의 무식한 말을 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러나 그건 우리 윗세대가 먹잇감으로 키우던 토끼의 이야기 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토끼들도 분명 사람이 사랑을 주고 키웠으면 ‘토끼가 냄새난다든지 ‘토끼는 멍청하다든지 하는 오해를 진즉에 벗었을텐데 아쉽기 그지없다.






피비는 내가 화난 목소리로 ‘이리 와’라고   엄마에게 가면 혼난다는  알았다. 그래서 이리 와라고 하면  도망을 갔다. 그리고 사료를 먹겠냐고 하면 대답을 하곤 했다. 물론  부분에 있어서 사료라는 단어를 알아들은  아니라 사료봉지 소리를 들은 거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피비는 사료가 먹고 싶으면 아니 배가 고프면 본인이 배고프다는 것을 표현하고는 했다.   위에 올라와서 입을 뻐끔거리면서 자기가 배고프다는  매우 어필하곤 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피비가 말을 알아듣는다는 것은 피비 인스타 (@choiphoebe0301)  사람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피비는 처음에는 ‘빠삐’ (사료) ‘까끼’(건과일 같은 간식)  두 단어를 구분하기 시작하다가 나중에는 상당히 많은 단어를 알아듣고 본인이 먹고 싶은 것에만 입을 뻐끔거리며 대답하곤 했다.



피비의 까끼
기지개 으랏차!!



나와 대화를   없지만 피비는 누구보다도 진실하게 나와 대화를 하고 있었고 누구보다 나의 감정을, 나의 마음을  헤아려주었다. 내가 힘들고 속상한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하소연하는 데는 바로 ‘피비’였다. 집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피비를 부르는 일이었다.

피비야~ 엄마 왔어! 엄마가 뭐하고 왔냐면, 오는 길에... 블라블라 블라”








어떤 날은 나를 매우 기다렸다는  귀를 흔들며 빙키를 하기도 했고 어떤 날은 오든지 말든지 피곤하다는  그저 누워 있기도 했고 어떤 날은 내가 장난치느라 인사도 하지 않고 부엌으로 들어가 다른 일을 하고 있으면 이상하다는  힐끔 부엌으로 들어와 괜히 얼쩡거리기도 했다.


피비를 키우면서 ‘토끼라는 동물이 이렇게 감정이 풍부하고 사람의 마음을 읽을  있는’ 생명체라는  알게 됐고, 동물이라는 것이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게 느끼고 이해하고 소통한다는  알게 되었다.




내가 뚜껑을 열어토요


피비 덕분에 나는, 세상에 작고 약한 것들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손바닥만 하던 솜뭉치가 나의 인생을 조금씩 조금씩 변화시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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