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글을 쓸 것인가. 어떻게 쓸 것인가.
문학/비문학을 막론하고 수많은 사람이 글을 쓰고 있거나 쓰고 싶어 한다. 거의 매달 있는 것 같은 공모전이 아마추어 작가들 뿐 아니라 잠재적 작가들을 유혹한다.
글을 올릴 수 있는 다양한 온라인 플랫폼이 있어서 인지 이제 등단 여부는 별로 개의치 않는 것 같다.
등단한 지 10여 년이 지났고 수많은 문학상을 받았으며 방송에도 얼굴이 종종 보이는 나름 유명 작가도 인세 수입이 연 1억이 안 되는 척박한 우리나라 글시장을 감안하면 신기한 일이다. (인세 수입보다 문학상 상금이 더 많은 해도 있었다고 들음)
아마추어 작가들은 금전적 수입의 추구보다는 취미나 사회적 활동, 사회적 영향력에 매력을 느껴서 글을 쓰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다.
학교 다닐 때 손으로 써서 내던 과제가 처음으로 반듯한 활자로 프린트된 것을 보고 뿌듯했던 기억이 난다.
글의 품질이 일정 수준이 넘어야 활자화되던 시절의 기억이 남은 사람들은 활자화된 자기 글이 마치 일정 품질 이상으로 인정받은 것 같은 느낌을 줘서 뿌듯할 것도 같다.
어떤 글을 어떻게 써야 더 많은 사람들이 읽을까 하는 가장 원초적인 고민에 대하여 나름의 고민을 공유하고자 이 글을 쓴다.
비문학 영역의 글쓰기 기준이긴 하지만 그냥 이야기이던, 사진이던, 영상이던 다른 콘텐츠도 위 도식으로 구분 가능할 듯하다.
X축은 글쓰기의 소재나 대상이 얼마나 희소/희귀하거나 새로운 것인가가 될 것이고 Y축은 글내용에 담겨 있는 필자의 독특한 관점, 통찰력의 깊이쯤 되겠다.
OK영역은 신변잡기, 일상생활 기반 에세이쯤 되겠다. 영상으로는 브이로그 정도.
그냥 출근하고 먹고, 자고, 영화 보고, 음악 듣고, 싸우고 차 마시고 화해한다. 장소 배경도 집이나 직장 근처 고 출연진도 주변 사람이며 특별한 이벤트라고 해 봐야 생일날 보톡스 주사 맞는 정도로 소소하다.
일단 시작할 수 있고 지속적으로 제작이 가능하다.
그래서 흔히들 이 영역에서 시작한다. 블로그나 여러 글쓰기 플랫폼에서 제일 흔한 자기소개가 ‘에세이스트’이더라.
당연하게도 재미가 없다.
초기 반짝하는 기간이 지나면 개인적 일기와 구분이 어려워진다.
글솜씨가 뛰어나거나 영상미가 있는 콘텐츠라면 조금 낫겠지만 셀럽이 제작하거나 출연하는 것이 아니면 일반 사람들의 흔한 이야기를 계속해서 읽거나 볼 사람은 별로 없다.
일상 생활을 소재로 해서 에세이 형태로 꾸준히 읽히는 글을 쓰시는 분들이 대단한 이유이다.
이 영역에서 콘텐츠를 계속 만들다 보면 본인도 이를 인지하고 시사점이나 의미부여를 위해 노력하게 되는데 그러다 자칫 자의식 과잉이나 의미과잉 부여 콘텐츠가 되어 손 오그라드는 콘텐츠가 되기 쉽다.
이 영역은 해외 여행기, 극한직업류, 최신 뉴스나 기술적 진보 등을 다루는 콘텐츠이다.
몸 좋은 남녀 보디빌더분들의 피트니스, 홈트레이닝 영상 및 관련 글, 또는 미인이거나 특정 부위의 신체 발육이 좋은 분들이 조금 덜 입고 피아노를 치거나 승마하는 것도 비슷한 의미의 ‘희귀’한 부분이다.
엽기적 배우자나 특이한 주변 사람 소개, 불륜, 이혼, 사고, 특정 분야의 전문지식 등 어쨌든 희소하고 드문 경우를 다루는 콘텐츠는 다 이 부류로 볼 수 있다.
희소성을 갖추기만 했다면 그 이후 콘텐츠 제작은 쉽다.
1차적인 ‘사건이나 현상’에 2차적인 시사점이나 의미부여가 약해도 희소성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소구 하기 때문이다. 그 희소성만 잘 활용해도 독자를 끌어들이기가 가 쉽다.
(단어의 정의상 당연하게도) 그 ‘희소’ 성이 어렵다.
선원이 배를 타고 나가는 것만큼의 큰 이벤트가 자주 있기는 어렵다.
제작자가 어쩌다 그 ‘희소’한 상황에 처했을 때 그걸 소재로 글을 쓰던, 영상을 찍을 수는 있지만 콘텐츠 제작을 위해 그 희소성에 접근한다는 것은 ‘프로’가 아니면 쉽지 않은 일이다.
라노벨에 SF류, 이 세계 물이 많은 것이 우연이 아니며 많은 작가들이 연차가 될수록 역사소설이나 여행기들을 쓰게 되는 경우가 흔한 이유이리라.
이 영역은 ‘희소성’이라는 Unfair Advantage가 없는 보통 사람이 의도적으로 시도하기에는 조금 어려운 접근 방식 되겠다.
매년 같은 땅, 같은 흙에서 같은 방식으로 농사를 짓지만 농부는 매년 새로운 열매를 맺는다.
힘들고 지겹지만 경이롭다.
단조롭고 지루한 일상생활이라는 흙에서 보석을 찾아내는 일이다.
소재가 주변에 많다.
평범한 만남,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소소한 이벤트, 사소한 삶의 에피소드.
상당한 내공이 필요하다.
다양한 경험, 풍부한 독서, 사물의 본질을 꿰뚫는 시각 등을 연마하며 성숙된 사고체계를 갖춘 후 평범한 데서 비범함을 찾는 일을 꾸준히 해야 한다.
역시 어려운 길이다.
법륜 스님은 즉문즉설이라는 형태로 보통 사람의 평균적인 고민을 듣고 그 자리에서 자기만의 시각으로 답을 주며 웃음과 깨달음을 준다.
주변을 둘러보라, 이런 역량이 되는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를.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글이 될 가능성이 높다.
새롭고 신기함을 보여주는 데다가 그것을 대신해서 해설 및 소화, 게다가 교훈까지 줄 수 있다면 독자에게 재미와 뿌듯함을 줄 수 있는 콘텐츠가 될 것이다.
이 글은 일본어 좀 하는 사람도 잘 몰랐던 ‘승자조, 패자조’라는 일본어 표현의 기원에 대한 설명에서 출발하여 일본이 2차 세계 대전에서 패전한 것을 안 믿는 사람들이 왜 1970년대초까지 존재했었나를 풀어 이야기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과거 사건의 단순 기술을 넘어 가짜뉴스의 폐해, 인간의 연약함,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갈등, 정보버블, 역사적 과제와 교훈 등 그 이면의 현상까지 해석하여 Wow! 영역의 좋은 글이 될 수 있었다.
문장력과 학식이 뛰어나고 주관이 뚜렷했던 연암 박지원이 해외여행, 그것도 당시 세계적 첨단 선진국 중 하나였던 청나라를 여행하며 지동설 등의 최신 과학지식과 첨단 과학 기술을 접하고 기록했다. 실용적 학문이나 기술연구를 멸시하고 중화주의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조선 지식사회와 한족 지식인을 비판하며 자기 존재의 탐구까지 시도하였다.
이것은 연암의 뛰어난 관찰력+기록덕후적 성격뿐 아니라 현지인들과의 필담을 통한 토론을 하며 자기의 시각으로 해석 및 수용할 수 있었던 그의 탁월한 역량이 있었기에 가능했으리라.
조선사회가 몰랐던 최신문물의 소개에다가 박지원의 통찰력을 바탕으로 한 해석과 맛깔난 글솜씨까지 더했으니 당시 지식인 사이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 수밖에 없었으리라 싶다.
열하일기에서 조선이 몰랐던 청의 발전된 모습을 소개하자 수많은 학자들과 선비들도 충격을 받았고, 오랑캐라도 배울 것은 배우자는 풍조가 생기는 등 당시 조선지식인 사회에 큰 영향을 끼쳤고 그래서 그 많은 조선시대 중국여행기인 조천일기나 연행일기 중 거의 유일하게 지금까지 널리 읽히게 된 것 같다.
그래서 16년 동안 못 받은 임금을 받으려고 일종의 명세서 내지 사유서 형태로 쓴 하멜표류기는 신기한 동양의 모습을 서양 사회에 평면적으로 전달한 기행문으로 Oh! 영역에 머물지만 열하일기는 Wow! 영역에 있다고 평가할 수 있는 것이다.
상당한 내공과 희소함의 조합은 희귀하다.
OK나 Aha 영역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양산할 여건이 되는 사람이 소수 일 수밖에 없다.
위와 같은 분류와 난이도에 따라 어떤 글을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한 접근 방법이 도출된다.
→ 초기부터 독자의 눈길을 끌기 쉬우니 즉시 글쓰기를 시작할 것. 지속적 글쓰기를 통하여 그 희소함을 기록하기 시작하며 문장력을 가다듬어 독서와 성찰로 내공을 쌓아 Wow! 영역에 도전한다.
→OK영역에서 글쓰기를 시작하되 Aha! 영역으로 일단 성장하여 언젠가 ‘희소'함을 만나 Oh! 영역으로 도전할 기회를 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