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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피쉬 Mar 18. 2024

오늘은 흙내음 좀 맡아봤어요

강화도 15일째

  거처가 있는 강화도 읍내에서 양사초등학교까지는 20분 정도 걸린다. 읍내를 벗어나 송해삼거리를 지나고 나면 그때부턴 오가는 차들이 확 줄어든다. 차가 없다 보니 여기저기 둘러보다 자세히 보고 싶어 잠시 도로 위에 정차해도 사고가 나지 않을 것 같다. 물론 이런 행동은 절대 해선 안 되겠지만 상상하는 것만으로 유쾌하다. 도시의 주인은 빌딩과 자동차 같은데 그곳에서 사람은 지구의 정복자 같은데. 산아래 모여 앉은 키작은 집들은 잠시 엉덩이를 붙이고 휴식을 취하는 소박한 여행자를 떠올리게 한다. 하늘을 직선으로 토막 내는 고층빌딩이 없는 이곳, 강화도에서는 하늘이 우주와 잇닿는 거대한 통창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양사초 앞  마을 덕하리


덕하리 풍경




  아이들이 교실에 들어가고 나면 다시 차를 몰고 읍내로 돌아오는데 오늘은 그냥 가기 아쉬워 주변 마을 좀 둘러봤다. 교문을 지키는 아저씨에게 학교 앞 하천의 이름이 무엇인지 여쭸더니 이름은 모르겠고 원래 작은 개울이었다고 한다. 주변 농지에 물을 대기 위해 규모를 키웠나 보다. 논두렁을 거닐며 이 하천을 덕하천이라 부르면 어떨까 했는데 세상에나, 진짜 이름이 덕하천이었다. 하하! 집으로 오는 길을 평소와 다르게 이강교차로가 아닌 철산삼거리 방향으로 갔다가 덕하천'이라 쓰여있는 푯말을 보았 것.


주변에 차가 없어 느리게 운전하면서 찍었답니다




양사초 앞 덕하천 모습





  초록이 올라오지 않은 3월의 강화도. 새싹 올라오고 꽃피기 시작하면 환장할 정도로 예쁘겠지만 지금이라고 안 예쁠 리가. 어디 하나 도려낼 이 없다. 위험하고 보기 흉하다고 도시에서 사라지는 전봇대마저 운치를 더하는 정물 같다. (저기 신도시에는 전봇대가 없는 대신 타워크레인이 즐비하다는.)


입학식때만 해도 살얼음이 있었는데 이제 다 녹았다



  오전 9시에 아이를 등교시키고 논두렁을 거닐 수 있는 건 호사일까? 나는 혼자 미소 짓는다. 오늘 산책하며 들이쉰 흙내음이 얼마나 향긋했는지 자랑하고 싶은데 사진으로도 문장으로도 전달하기 힘들다. 미세먼지 수치만 보면 도시랑 차이가 없는데 아니야, 공기가 다르다고. 벼를 베어내고 다시 모내기를 할 때까지 놀고 있는(?) 논은 스산한 줄만 알았는데 오늘 보니 여기도 그림이다.




  강화도 주민들에게 이곳은 치열한 삶의 터전이고 유토피아가 아니란 걸 안다. 강화도에 도착해서 짐을 풀자마자 아래층 세대로부터 층간소음 항의를 듣고 나는 혼쭐이 났다. 부랴부랴 매트를 구해서 바닥에 깔고 매일 애들에게 뛰지 마라고 소리치고 다.  이삿날이 아니라 아이들이 처음 학교에 간 3월 4일을 기준점 삼아 오늘은 강화도에서 15일째. 15일이 지나서 이제 숨 좀 고르고 '나는 강화도에 살고 있다'고 운을 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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