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기간 내내 빠뜨리고 오면 불안해서 견디지 못하고 집에서 멀리 벗어난 게 아니면 다시 돌아가 꼭 챙겨 나와야 했던 것. 나의 에어팟.
내가 에어팟을 좋아하는 이유는, 첫째, 작아서 어디에나 쏙 넣을 수 있고 둘째, 나의 에어팟 케이스가 매우 마음에 드는 상태이며(물론 뚜껑을 잃어버려 온 동네를 후비고 다녔지만 결국 발견하지 못한 첫 번째 케이스보다는 못하지만) 셋째, 이 셋째가 메인인데 바로 노이즈캔슬링 때문이다. 아이들의 학원을 기다리느라 들를 수밖에 없는 그 말도 안 되는 카페. 진짜 말도 안 되는 인테리어에 오래된 건물이라 에어컨은 없고(물론 그래서인지 엔틱한 무드의 철제 선풍기가 모든 테이블마다 놓여있지만) 아무리 좋은 원두 썼다지만 4500이나 하는 아이스아메리카노에 쿠폰도 없는 그곳을, 난 동선과 주어진 시간의 제약 때문에 매번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 오호통재라.. 그곳에서 날 살리는 건 노이즈캔슬링이다.
노이즈캔슬링은 참으로 어마어마하다. 그곳이 어디라 해도 가득한 잔나비 무드를 만들어 주니까. 기분이 영 시원찮은 날 털썩 주저앉아 에어팟을 꽂고 음악어플을 켜고는 노래를 고를 때면 벌써 두근두근해진다. 자 준비됐어, 하며 휴대폰 속 세모버튼을 꾹 누르면 어느덧 그곳은 꽉 차게 내 세상이다. 없을 땐 어떻게 했을까.. 이 꽉 찬 나만의 세계를 더 일찍 못 누리고 있었다는 게 아쉬울 정도이다.(난 노이즈캔슬링이 있는 이어폰유저로서는 꽤 후발주자이니까)
노이즈캔슬링을 만들어낸 사람은 단언컨대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노이즈캔슬링은 반주를 이루는 한 땀 한 땀의 실이 어디서 들어가고 어디서 나오는지 느끼게 하며 어떤 텍스쳐의 실을 사용되어 짜여지고 있는지 만져보게 한다. 보컬이 어디서 쉬어가고 어디서 쏟아내는지 들여다보게 하고 얼마만큼의 호흡과 감정으로 곡을 꾸려가고 있는지 엿보게 한다.
한창 빠져있는 잔나비의 노래 중 ‘그 밤 그 밤’이라는 노래는 곡의 도입부가 보컬의 짧은 날숨으로 시작한다. 잘 들리지도 않는 데시벨인 데다가 특히 전주가 시작되기 전의 아주 찰나의 순간이라 놓쳐지기 쉬운 1초 남짓의 그 날숨을 굳이 넣은 이유. 난 그것이 이 노래의 색깔을 보여주기 위한 애피타이저라는 생각이다. ‘자 이 노래는 이런 감정으로 꾸려가는 곡이에요. 준비되었다면 같이 가볼까요.’ 같은 그 1초. 누군가가 그 1초를 나랑 같은 마음으로 느껴준다면 아마 분명 나는 사랑 비슷한 것에 빠질지도 모르겠다. 분명. 그건 내가 쉽사리 쏟아져버리는 ENFP라서 그럴지도 모르고, 아직은 몽글몽글이 많이 남았고, 그렇게 아주 늙지만은 않았다고 말하고 싶은 반증 같은 것 일 수도 있다.
집중하다 보면 어깨가 굽어지는 나쁜 습관을 가진 나는 필라테스를 1년 정도 한 이후에서야 나에게 그런 습관이 있다는 걸 알았다. 습관에 대해 알게 된 후부터는 작업을 하거나, 책을 읽는 등의 집중이 이어지는 활동 중엔 꼭 한 번씩 정신을 차리고 어깨를 연다. 그날도 에어팟은 잔나비의 노래만을 연거푸 불러대고 있었다. 어깨를 펴느라 고개가 젖혀졌는데 그때 약간 에어팟이 움직인 건지, 신체구조상 그 자세에서는 약간 달팽이관이 움직인다던가의 변화가 있었는지, 절묘하게 그 타이밍에 노래의 구성이 그러했는지 아직도 확실하게는 모르지만 아무튼 뭔가 그 순간의 내게 들려온 음악이 순간 달랐다. 엄청나게 큰 공명이 있었고 안 그래도 몽글몽글했던 무드를 한층 더 깊게 했다. 그 순간의 감동이 너무 좋아서 몇 번이나 다시 고개를 내렸다 젖혔다를 반복했다. 어디선가 누군가 나를 보고 있었다면 기괴했을지도. 고개를 내렸다 젖힐 때면 분명 난 웃고 있었을 테니까. 그렇지만 당신은 분명 이 글을 읽고 나와 같은 액션을 취해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나와 같은 표정을 짓게 될 겁니다. 그건 어쩔 수가 없을 겁니다. 그것이 바로 노이즈캔슬링의 힘입니다. 여러분!!!
나는 골전도 이어폰을 끼는 남자와 살고 있지만 말이다. 세상은 참 아이러니 투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