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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낮은음자리 Jul 24. 2019

얼굴 없는 어린왕자가 사랑하는 장미의 크기

초등학교 돌봄교실에서 나눈 대화

매주 월요일마다 교육봉사를 하기 위해 초등학교 돌봄교실에 도착하면 2학년 반이 보이는 유리벽으로 시선이 가는데 거기에는 어쩐지 얼굴만은 그려지지 않은 어린왕자와, 얼굴 없는 어린왕자가 사랑하는 마음의 크기가 반영된 장미 그림과, 어린왕자보다 한 시간은 먼저 거기에 도착해 있었을 사막여우가 있고, 혹여나 1학년 아이들이 갈색 모자라고 생각할까 봐 염려되는 마음에 뱃속의 코끼리까지 보이도록 그려진 보아뱀을 쳐다보고 있으면 어쩐지 나는 신기하여서 얼굴 있는 어린왕자가 산다는 소행성 이름으로 된 카메라 앱으로 사진을 찍어 보는데 그러면 아이들은 내게 와 그간의 안부를 묻고 질문을 한다.


A : 선생님은 몇 살이에요?
나: 선생님 몇 살인 것 같아?
B : 으응, 응. 백 살!
C : 아냐. 마흔아홉 살!
A : 우와, 우리 아빠보다 많구나!
나: 아니야. 선생님은 스물일곱 살이야.  


A : 그럼요, 선생님! 여자친구 있어요?
나: 선생님은 여자친구 없어.
C : 왜 여자친구가 없어요?
나: 글쎄, 왜 여자친구가 없을까?
B : 으응, 응. 그건 고백을 안 해서 그래요!
A : 남자가 용기가 없어서 그래요!
C : 맞아요. 우리 엄마가 고백은 남자가 하는 거랬어요!


하는 통에 나는 무어라고 변명해 보려고 하는데 돌봄교실 선생님께서 너희들 예쁜글씨 숙제는 다 하고 떠드느냐고 야단을 치시고 나는 어차피 한 줄도 채 더 쓰지 못하곤 다시 고개를 치켜들 아이들이 잠시라도 머리를 박고 열중하는 모습을 마음에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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