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하게 사는게 차라리 마음이 편했다
첫째아이는 초등학교 건물에 붙어있는 병설유치원에 다닌다. 학교와 같이 쓰다보니 정문, 후문, 쪽문 등 여러 출입구가 있는데, 유치원은 노란 쪽문 바로 앞에 있고 그 노란 쪽문 앞에만 잠깐 정차가 가능한 구역이 있다. 원래 어린이보호구역은 주정차금지구역이지만, 등하원 차량의 편의를 위해 학교나 유치원 앞에 별도로 지정해놓은 "5분정차가능구역" 같은것들이 있는 학교들이 많다. 다만 큰애가 다니는 학교는 그런 구역을 지정해놓지 않아 도로교통법상 주정차금지 지시를 지켜야 하는데, 길 양옆에 "노란 실선이 두줄"인 곳은 주정차금지구역이고, 쪽문 앞부터 노란 두줄의 실선이 끊어지면서 5분이내 정차가 가능한 노란 점선이 시작되는 곳이 있다. 유치원 학부모들은 주로 그 길가에 차를 잠시 정차하고 깜빡이를 켜둔 채로 아이와 내려서 쪽문으로 재빨리 들여보내곤 했다. 물론 걸어서 등하원하면 금상첨화지만 집이 멀어서 불가피하게 차로 등하원하는 경우였다.
노란 쪽문은 너무나 편리해보였으나, 코로나때문에 출입구 통제를 한다는 이유로 큰애가 입학했을 당시에는 굳게 닫혀있었다. 멀리 돌아가야하는 정문만 열어두고 출입자를 통제했기때문에, 노란쪽문 앞에 잠시 정차를 해두기는 어려웠다. 물론 5분이내 정차 가능 구역이긴 하나, 정문을 지나 유치원 건물까지 아이를 데려다주고 다시 돌아 나오는 2~3분동안 정차해두는 것과, 20~30초내로 아이를 쏙 들여보내고 빠빠이 하고 다시 차에 올라탈 수 있는 정차는 마음의 부담 차이가 컸다. 그래서 인근 주차 가능한 장소를 찾아 차를 주차하고 아이를 데리고 정문으로 다녔었다.
코로나 상황이 점차 나아지고 순차적 등교가 가능해지면서부터는, 오히려 출입 인파의 분산을 위해 노란쪽문이 개방되었다. 집 방향이 이쪽인 초등학교 아이들도 노란쪽문으로 등교를 했고, 차량으로 등하원하는 유치원 학부모들은 더할나위없이 기뻐했다. 이렇게 편리한 문을 그동안 굳게 닫아놓은 것이 서운했을 정도였다.
노란문이 개방된지 얼마 되지 않아, 마약에 취한 운전자가 차를 끌고 학교 정문으로 들어온 사건이 벌어졌다. 차량통행이 금지된 운동장으로 차가 진입하려하자 학교보안관들이 제지했고, 운전자의 행태가 이상하다고 생각된 보안관들이 경찰에 신고하자 냅다 노란문으로 탈주한 사건이었는데, 한창 등원중인 시간에 벌어진 일이라 아이들도 많았고 굉장히 위험할 뻔했다.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고 도주한 차량은 노란문을 나서자마자 몇미터 못가 벽에 들이받고 경찰에 연행되었는데, 그날밤 뉴스에도 나왔을 정도로 위험한 사건이었다.
그런 사건이 있었다는 이유로, 다시 노란문은 굳게 닫혔다. 여기서 의문인 점은, 노란문을 닫는게 과연 그 해결책이었나 싶은 대목인데, 마약사범이 학교로 차를 끌고 들어온 것 자체가 예측하기 어렵고 막기 어려운 사고였으며 보안관들의 현명하고 용기있는 대처로(차를 가로막고 강하게 제지하며 경찰에 신속하게 신고하셨다) 아무런 불상사 없이 마무리 되었지만, 다시 학교를 철저하게 통제한다는 이유로 노란문이 닫혀버렸다. 보안 인력을 추가 배치할 수 없으니 다시 정문 외에는 닫아버리겠다는 학교측의 의중은 알겠으나, 매일매일 노란문의 편리함에 감사하며 등원하던 학부모들과 아이들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이 씁쓸했다. 그래도 어쩔수없지. 안전이 제일 중요하니까. 다시 주변에 주차할 곳을 찾아 헤매고, 돌아 돌아 등원하는 나날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꽤 많은 시간이 흘러 졸업반이 되었는데, 이제는 코로나 상황도 많이 풀렸고 보안상의 이유도 많이 완화된건지, 노란문을 다시 열겠다고 공지가 떴다. 단, 등원시간인 9시 20분부터 9시 30분까지만. 그러나 좀 더 일찍 등원시키고 출근해야하는 맞벌이 부모와, 일찍 등교를 시작하는 초등학생들을 위해 9시 이전부터 노란문을 열어주었고, 9시 30분에 저 멀리서 헐레벌떡 뛰어오는 지각생들을 외면하기 미안했는지 약 9시 33분까지는 노란문이 열려있게 되었다.
여기서부터 나의 딜레마가 시작되었다. 대충 노란문을 이용할 수 있는 시각은 9시 33분까지. 노란문으로 등원을 하면 둘째아이와 함께여도 잠깐 내려서 큰애만 들여보내면 되니까 별로 불편할 것이 없다. 그런데 9시 33분을 넘긴다면? 그렇다면 주차할 곳을 찾아 헤매고, 두 아이를 데리고 정문을 거쳐 유치원까지 걸어서 큰애를 넣고 둘째와 다시 차에 올라타서 둘째네 어린이집에 데려다줘야한다. 걷기 싫어해서 안아줘야 하고 툭하면 떼 쓰는 35개월 둘째를 그렇게 끌고다니면서 걸어다니기는 내가 너무 힘들다. 그렇다면 9시 33분이 넘고 노란문이 닫힐 것 같으면 둘째부터 등원을 시킨 뒤 큰애랑만 단촐하게 주차하고 정문을 거쳐 유치원을 걸어가면된다.
이제 아침마다 나는 혼란에 빠졌다. 등원예상시간이 몇시인지에 따라 누굴 먼저 등원시킬지가 결정된다. 집에서는 9시 22분에는 현관을 나서야, 9시 26분에는 시동을 걸어야 9시 33분까지 안전하게 노란문에 도착한다. 항상 출근도 초를 재가며 했던 나로서는, 말썽꾸러기 두 아들을 등원준비 시켜서 집을 미리미리 나서는게 너무 힘든 미션이었다. 어찌어찌 준비를 해도 9시 18분까지 양치도 안하고 있는 큰아들을 보면, 9시 20분인데 기저귀에 응가를 하는 둘째를 보면, 9시 23분인데 장난감 하나는 쥐고 가야겠다고 고집부리는 둘째를 보면 피가 거꾸로 솟을 지경이었다. 빨리빨리, 오늘도 노란문 닫혀, 지금 치카하지 않으면 노란문 닫혀, 뭐? 지금 나가야하는데 헤어스타일을 만져야한다고? 뭐? 노란 빠방이 어디있냐고? 지금 나가야하는데 그걸 어떻게 찾아!
이렇게 아침마다 애들을 재촉하고 고함을 지르고 빨리빨리를 외치며 시동을 걸기까지 나의 예민함은 극도로 심해진다. 어떻게든 26분에는 시동을 걸기 위해 극한의 신경질을 내가며 애들을 몰아세우다가, 시동을 거는데 27분인게 확인되는 순간, 맥없이 노란문을 포기하게 된다. 그래, 오늘은 둘째부터 등원을 해야겠다. 그때부터는 치솟았던 화가 가라앉으면서 마구잡이로 소리지른걸 후회하게 된다. 아이들이 무슨 죄인가. 경주마 궁둥이 차듯이 몰아세워왔다가 그 작은 궁둥이들이 안쓰러워지면서 아이들에게 사과를 한다. 오늘도 엄마가 너무 화를냈지? 미안해. 둘째부터 가자. 첫째야 조금 더 늦어도 괜찮겠니? 오늘 날씨가 아주 좋네. 저 빨간 낙엽좀 봐.
그런데 아이들 입장에서는 이 무슨 지킬앤하이드 또는 야누스의 얼굴 같은 상황이겠는가. 괴물같이 화내던 엄마가 갑자기 온화해지며 다정하게 말을 건네는데, 굉장히 혼란스러울 것 같았다. 차라리 노란문이 선택지에 없었던 때가 나았다. 아침마다 이렇게 전쟁을 치르지 않았었는데, 그냥 둘째먼저 등원시킨 뒤 큰애와 하늘도 보고 나무도 보면서 조잘조잘 이야기하면 걸어갔었는데, 비록 조금 지각하는 날들이 더 있었지만, 그래도 우리의 아침은 평화로웠는데. 조금 편리해져보겠다고 우리 셋은 매일 아침을 지옥처럼 보내고 있었다.
편리함을 편리하게 이용하지 못하는 내가 가장 큰 문제다. 아침마다 화내지 않고, 편리한 문이 열려있으면 열린대로 이용하고, 닫히면 닫히나보다 하고 마음을 내려놓고, 아이들에게 변덕스러운 엄마로 보이지 않도록 부단히 노력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