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 관리가 필수인 요즘
나인투식스의 출퇴근 근로자를 그만두고 개인사업을 시작하면서 집안일과 육아는 오롯이 내 몫이 됐다.
사업이 어느정도 자리잡힐때까지 시간적 여유가 있기도 하지만, 출퇴근 시간에 사로잡히지 않는 사람이 집에 있으면 웬만한 육아와 살림은 그 사람의 몫이 된다. 이런 점 때문에 재택근무가 더 어렵다고 하는가보다.
여튼 육아와 살림을 거의 도맡았던 친정엄마는 나의 퇴사로 완전히 물러났고, 남편도 한창 바빠지면서 육아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35개월, 7세 두 아들의 유치원 등하원, 목욕과 식사, 재우기, 청소 등 모든 일은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내가 다 해야했는데, 그 사이사이 개시해놓은 사업도 챙겨야하는, 말그대로 외롭게 혼자 고군분투하는 나날들이었다.
몸이 피곤해도 마음이 평화로우면 그냥저냥 견디는데, 사업이 잘 될까 하는 불안감 속에 휩싸인 채 아이들도 돌보고 가정도 돌보려니 나도 모르게 스트레스가 꽤 쌓이는 것 같다. 겨우겨우 아이들을 재우고 정리하고 나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려고 맥주라도 한 캔 까면 그제서야 띠띠띠 하고 울리는 현관 비번소리. 모든 전투가 다 끝난 뒤에 등장해서 나만의 시간까지 빼앗아 가는 그를 보면, 그러고 싶지 않아도 자꾸 원망이 차오른다. 늦게 들어오길 바라는건 아닌데, 방해받고 싶지도 않은, 오묘한 감정이 뒤섞인 채 그냥 애들 곁에서 잠들곤 했다.
그래도 해도해도 너무했다 싶게 남편은 육아에 등을 졌다. 바쁜 일정 속에 건강까지 나빠지며 고생했던 남편이라 나도 처음엔 무한정 이해했다. 여유가 생기면 드러눕기 바빴지 아이들을 챙길 생각을 일절 하지 않았는데, 당연히 휴식이 필요하니 나도 그런 남편이 푹 쉴 수 있게 아이들을 혼자 돌봤다. 그런데 이제 좀 바쁜게 끝나고 한가해진 것 같은데도 여전히 남편은 틈만 나면 드러누워 있었고, 드러누워서 유튜브를 보느라 핸드폰에 코를 박고 있는 모습을 보다보면 슬슬 나도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주말 저녁이었다. 또 나 혼자 저녁거리를 준비하고 한가득 상을 차리고, 늘 그렇듯 남편 먼저 먹게 하면서 첫째의 밥을 남편 옆에 같이 차리고(이렇게 하면 혼자 밥을 먹을 수 있는 첫째에게 반찬 덜어주는 정도의 도움을 주며 남편도 함께 먹는다) 나는 아직 혼자 먹지 못하는 둘째의 밥을 챙기느라 다시 주방에 갔다. 둘째의 밥을 들고 돌아와보니 아이들은 여전히 바닥에 잔뜩 어질러진 장난감을 갖고 노느라 여념이 없고, 남편 혼자 테이블에 앉아 밥을 먹고 있는데, 무려 노트북으로 영화를 보면서 먹고 있는게 아닌가!
배가 고팠을거라는건 이해한다. 그러나 둘째까지 다 먹이고 나서야 먹을 수 있는 나도 굶고 있다. 아이들을 꼭 먼저 챙기라는 뜻은 아니다. 그래도 적어도 놀고있는 아이들을 추슬러 식탁 앞에 앉혀 같이 먹도록 유도해야 하는 것 아닌가. 아이들이 별로 배고파하는 것 같지 않아서 억지로 먹이느니 어른 먼저 먹을 수는 있다. 그런데 마치 혼자 살고 있는 것처럼 영화를 떡하니 틀어놓고 혼밥을?? 이건 마치 우리 셋과 본인 사이에 벽을 친 것 같은 느낌이지 않은가. 접시 하나 나르지 않고 손 하나 까딱 안하고 아이들도 나몰라라 하고 아내가 서빙해준 음식을 혼밥하러 온 손님처럼 영화를 보며 먹는 모습에, 오랜만에 묵직한 화가 저 어디에서부터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자기.... 지금 영화보는거야..?"
"응? 아 애들 지금 먹여도 잘 안먹을 것 같아서~ 나 배고팠거든."
"................."
더이상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화는 무척 났지만 이 사람과 싸울 체력이 나한테는 없었다. 표정으로 말하고 한숨을 쉬며 돌아서는데, 난장판인 거실과 널브러져 있는 아이들이 딱 거슬렸다.
"둘다 안일어나!!! 밥 먹는 시간이라고 도대체 몇번을 말해야해!!! 장난감은 아무도 치우지도 않고!!! 니들 이렇게 어지르기만 할거면 장난감 다 갖다버릴거야!!!!! 빨리 정리하고 식탁에 앉아!!!!!!!"
갑자기 떨어진 벼락같은 호통에 아이들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고, 남편은 조용히 노트북을 닫고 큰 애의 숟가락에 밥을 담기 시작했다.
남편에게 향해야 하는 화가 엉뚱하게 아이들에게 폭발해버렸다. 갈 곳을 잃은 화가 나약한 아이들에게 터져버린게 못내 미안했지만, 난 한참을 씩씩거린 뒤에 겨우 진정할 수 있었다.
그로부터 얼마 뒤 또 주말 아침이었다. 늘상 그렇듯 주말 아침에 눈을 뜨면 남편은 화장실로 직행해서 세월아 네월아 앉아있고, 나는 아침밥부터 한다. 아직 기저귀를 떼지 못한 둘째의 묵직한 기저귀를 갈고, 눈 뜨자마자 활기가 넘치는 첫째의 장난과 수다를 받아주고, 국을 데우고 밥을 차려 아이들을 먹인다.
스스로 먹게 해야하는건 알지만 아침시간이 너무 길어지는걸 막기 위해 두놈 다 입에 떠넣어주곤 하는데, 그날따라 매트 위 장난감을 갖고 노느라 영 식탁에 앉질 않았다. 또 그러면 안되지만 노느라 정신없을때 입에 넣어주면 무의식중에 잘도 받아먹으니까, 나 편하자고 밥그릇을 바닥에 두고 나도 같이 앉았다. 매트 위에서 두 아들은 재밌게 놀고 있고, 남편은 여전히 변기 위에 앉아있다. 괜찮아. 입에 밥 넣는게 어려운 일도 아니고, 애들도 잘 받아 먹으니까.
그러나 그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장난치면서 뒷걸음질 치던 둘째의 발에 걸려 밥을 말은 국그릇이 엎어졌다. 매트 접히는 부분 사이사이와 바닥까지 국과 밥알이 퍼져나가면서 스며들었다.
"어머 어머 어머어머!!!!! 얘들아 비켜!! 어머어머 다 쏟았어!!!"
혼비백산한 나는 혼자 괴성을 지르며 아이를 들어 옮기고, 국그릇을 집어들고, 물티슈를 빛의 속도로 뽑아들어 바닥과 매트를 닦았다. 그 순간, 국그릇을 바닥에 놓고 먹인 내 잘못이라는 생각보다 0.1초 빠르게 남편에 대한 화가 불같이 밀려왔다. 주말에 눈뜨자마자 육아하는 사람 따로 있고, 변기에서 신선놀음 하는 사람 따로 있는거야? 왜 내가 주말까지 혼자 육아하느라 아등바등 해야 하는거야? 변기에서 볼일만 빨리 보고 나와서 애들 밥을 먹여야지, 저기서 왜 또 유튜브 보면서 한시간째 앉아있는거야!!!!!
이 화가 남편에게 폭발해서 "화장실에서 빨리 안나와???!!!!" 라고 외치려는 찰나, 화장실에서 키득키득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이구~ 괴성만 들으면 무슨 큰 일이 난 줄 알았네~"
문틈 사이로 남편이 빼꼼 얼굴을 내밀고 낄낄거리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너무 가감없이 소리를 질러 나도 그게 좀 우스웠던 참이었다. 같이 웃음이 터진 나는 남편과 함께 깔깔대며 웃어버렸다.
그러고보면 자꾸 방향을 잃는 화는 결국 나 때문이었다. 나의 마음이 불안정해서 쉽게 고되고, 짜증이 많이 쌓인다. 그런 것들이 화풀이 대상을 자꾸 찾고 있는 느낌이다. 싸울 힘이 없어 만만한 상대를 찾고, 불같이 쏘아댄다. 잘못된 걸 알면서도 스트레스가 쌓이는 걸 어쩌지 못해 이러고 있다. 스트레스라는게, 받지 말아야지, 하면 안받아지겠는가?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더 나아지려고 노력해야한다. 버들꽃같은 새끼들에게 쓸데없이 화를 내지 않기 위해, 매우 얄밉지만 그래도 내편인 남편에게, 불안정한 이 시기도 잘 이겨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줄 가족들인데 내 스트레스의 희생양으로 만들지 말 것. 오늘도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