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는 이름의 무게

평생을 책임진다는 것

by wisdom

얼마 전 큰애가 독감에 걸렸다.

아직 혼자 방을 쓰지 못하는 어린 아이가 혼자 독감에 걸리면 가족 4인 모두 걸리는 것 보다 훨씬 더 고난이도인데, 독방에 격리를 하지 못하니 멀쩡한 보호자 한명이 아이와 함께 들어가 수발을 들어야 하고, 형제와 놀고싶어서 기웃거리는 다른 아이를 제지해야하며, 아이들은 보통 엄마와 자는 것을 선호하는데 병수발 보호자 또한 높은 확률로 엄마이므로 감기에 걸리지 않은 나머지 아이가 잠자리에서 엄마와 떨어져야 하는 것도 설득해야 한다.


울며불며 아빠한테 이끌려 나간 둘째 아이의 울음소리를 뒤로 하고, 열이 펄펄 끓는 첫째 아이의 해열제와 체온계, 물수건을 머리맡에 준비하고 나 또한 마스크를 단단히 쓰고 옆에 눕지만 밤새 체온 체크, 해열제 투약, 둘째 아이에게 옮기지 말아야 할텐데 하는 각종 근심걱정에 밤에도 푹 자지 못한다.


이렇게 2,3일 보내면 내 체력도 말이 아니게 떨어지는데다 기침 콧물 등으로 바이러스를 내뿜는 큰애와 밀착하고 있으니 십중팔구로 나도 옮게 마련이다.


이번에도 여지없이 큰 애가 좀 나아지나 싶던 날에, 내 몸이 으슬으슬 하고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평소 잘 아프지 않는 나로서는 몸살과 두통이 독감 또는 코로나의 신호탄이라는 것을 잘 알고있던 터라, 이럴때일수록 따뜻한 것을 먹고 쉬어야 최대한 방어를 할 수 있기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있는데, 거실에서 배가 고파 칭얼대는 둘째의 목소리가 들렸다. 남편이 밥도 좀 챙겨주고 하면 좋으련만, 요리는 고사하고 그놈의 배달 어플에 나만 가입되어있다는 핑계로 음식 주문 하나 해본 적이 없다.


아픈 몸을 이끌고 거실로 나가서 다들 뭘 먹을건지 물어봤지만, 아직 기력이 없어 먹고싶은게 없는(잘 먹지도 못하는) 첫째, 원체 식욕이나 식탐이 없어 늘 너 먹고싶은걸로 결정하라는 남편, 배고프다고 소리만 꽥꽥 지르고 있는 둘째 앞에서 나 역시 입안이 까끌거려 먹고싶은 것도 없는데 무작정 배달 어플을 켜서 메뉴를 찾아보다가 서러움이 밀려왔다.


나도 몸이 아프다. 근심걱정에 속도 편치 않다. 그런데도 저들의 끼니를 챙겨야 한다니. 그 와중에도 다같이 잘 먹는 메뉴, 감기에 좋은 음식, 배달 시간과 거리까지 고려하는 내 모습을 보자니 처량했다. 나는 언제까지 저들의 밥을 책임져야 하는걸까. 아마 임종의 순간에도 난 아이들을 보며 '밥은 먹었니?' 라고 묻겠지. 끼니는 하루에 세번씩 돌아오는데, 그걸 메꾸는 큰 임무를 지닌 사람이 바로 엄마라는 존재. 아무리 슬프고 아프고 힘들어도, 끼니때가 되면 자식들의 배를 뭘로 채워야하나 부터 걱정해야해서 맘껏 아플 수도 없는 사람. 아직은 아이들이 어려 혼자 챙겨먹을 수 없으니 크면 좀 나아지겠지만, 아무리 장성했다 해도 자식이 끼니는 잘 챙겨먹었는지 걱정을 평생동안 거둘 수는 없을 것 같다.


20대 초반 무렵, 아빠의 외도 의혹으로 집안이 풍비박산이 난 적이 있었다.

정황상 외도가 의심되었으나, 진실을 캐내어 고통스러운 현실을 마주하는 것 보다 '아무 사이도 아니다'라고 극구 부인하는 아빠를 믿고 가벼운 바람기 섞인 행실이었다고 넘어가 준 엄마 덕분에 가정은 깨지지 않고 유지되었다.


하지만 넘어가줬다 해도 엄마의 삶이 지옥으로 바뀐건 변함이 없었다. 남편에 대한 신뢰가 깨졌으니 무엇도 믿지 못하고 괴로운 상상만 더해지는 삶이었다. 괜찮은 척 지내보지만, 엄마는 시시때때로 울화통이 올라오고 눈물이 나고 어디 말할데가 없으니 우리를 붙잡고 하소연하곤 했다. 화가 치밀어 올라 남편한테 퍼부어봐도, 아무사이 아니라는데 왜 그러느냐, 언제까지 그럴거냐, 믿음이 없으면 나더러 어쩌라는거냐 등 갈수록 아빠도 짜증을 냈다. 외도 의혹에 대한 이런식의 마무리는 이런 결론을 가져올 수 밖에 없다. 처음에는 엄마가 안쓰러웠으나, 끝날 줄 모르는 엄마의 괴로움 토로는 우리 모두를 지치게 했다. (그러니 끝까지 외도를 부인할 심산이라면 배우자를 영원히 위로해줄 각오를 해야한다. 아니면 깔끔하게 인정하고 헤어지던가!)


그 때 언니와 나는 휴학을 하고 공시, 임용고사를 준비하는 수험생이었다. 공부도 괴로운데(사실 열심히 하지도 않았지만) 엄마 아빠는 하루가 멀다 하고 싸우고, 엄마의 눈물바람과 하소연도 들어줘야 하고, 이대로 이혼하시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과, 우리도 다 컸는데 발목을 붙잡지는 말아야지 하는 생각이 뒤엉킨 채 우리도 편치 않은 시간을 보냈다.

그 시절 우리 루틴은, 엄마 아빠가 출근하시고 나면 느지막히 일어나서 독서실을 가고, 공부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며 시간을 때우다가 퇴근하는 엄마를 기다려 엄마 차를 타고 집에 가서 저녁을 먹는, 보람이나 생산성이라고는 1도 없는 일과였다.

그 날도 여느때처럼 지루하게 시계만 쳐다보며 엄마 연락을 기다리고 있는데,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엄마 전화가 오지 않았다. 이상해서 전화를 걸어보니 연결이 되지 않는다는 안내멘트 뿐. 무슨일이지 하고 하염없이 기다리다 기다리다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왔다. 엄마는 집에도 없었고, 한참 시간이 흐른 뒤 밤 10시쯤 되어서 엄마가 집에 들어왔다. 도대체 연락도 안되고 지금까지 어디 있었던거냐 물었더니, 그냥 다 짜증나고 우울해서 집에 오기는 싫은데 갈 데는 없어서 영화관에 가서 아무 영화나 한 편 보고 왔다고 했다.


"그래도 연락은 했어야지! 우리가 계속 기다렸잖아!"

"너네도 다 컸는데 뭐. 그냥 알아서 집에 오면 됐잖아."

"아니 그래도 어딜 간다 말을 해줘야 안 기다리지! 우리가 굶고 있었잖아! 사람이 배가 고프면 더 예민해지는거 몰라?"

"................"


엄마는 별 대꾸 없이 짜증 섞인 표정으로 방에 들어가버렸고, 남은 우리만 씩씩대면서 배고픈 저녁을 보낸것에 대한 분노를 표출했다.


이제 와 돌이켜보니, 엄마는 지옥같은 시간을 견뎌내며 고군분투 하고 있는데 우리는 거기다 대고 배고픔 타령이나 했던게 생각할수록 미안하다. 엄마가 갑자기 연락두절이 되고, 뒤늦게 나타났지만 고작 영화를 보러 간 일탈이었던게 안쓰러웠어야 했는데, 그리고 진짜 아무 일 없이 무사히 돌아와준걸 고맙게 여겼어야 했는데, 연락 없이 사라져서 우리를 배고프게 만든게 굉장히 죄인 것처럼 굴었다. 엄마 어디갔었어? 그랬구나, 속이 상해서 고작 간 데가 영화관이야? 우리한테 연락하지. 좀 더 좋은데로 같이 갈걸! 기분 전환하러 다음에 여기 가볼래? 연락이 안되서 걱정했잖아. 엄마는 우리한테 너무 소중해. 힘들어도 같이 잘 이겨내자 엄마. 이렇게 말했어야했는데, 배고픈데 우리 밥 안챙기고 어디간거냐고 화를 냈던게, 두고두고 후회가 된다. 엄마가 아프던 말던 배고파 배고파! 하고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6살과 다를바가 없지 않은가.


그래도 감기 기운을 떨치고 주섬 주섬 준비해서 6살 둘째에게 밥을 먹이고, 그 오물오물 먹는 입을 보고 있자니 아픈것도 잊고 웃음이 나왔다. 자식이 잘 먹기만 해도 행복해지는게 부모 마음이라, 엄마도 그날 마음 아프고 서운한 한 켠에도 애들 굶긴게 아주 작은 가시처럼 걸렸을테다. 어떤 풍파 속에서도 끼니때가 되면 자식부터 생각이 안날래야 안날 수가 없는 엄마의 삶. 앞으로 수십년동안 남아있을 그 삶을 묵묵히 살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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