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언제까지 어리숙한건가요....?
큰애 1학년 때 같은 반 여자친구들 중에 수아, 초아 라는 아이들이 있었다.
안면인식장애가 있는 나로서는 어른이고 아이고 잘 알아보지 못하는데, 두 아이가 키도 굉장히 크고 생김새도 비슷하게 생겼고 엄청난 단짝이어서 항상 붙어다니니까 저 멀리서 키 큰 둘이 걸어오면 오 수아 초아구나. 라고 알 수는 있었으나 각자 한명씩 나오면 수아인지 초아인지 알 수가 없을 정도로 두 아이의 느낌이 비슷했다.
우리 애는 남자애라 그닥 친구들 얘기를 하지 않아서 잘 몰랐는데, 수아 초아는 굉장히 유행에 민감하고 리더십이 있어서 여자아이들은 학기 초부터 그 애들을 잘 따랐던 모양이었다. 여기저기서 수아 초아가 스타일이 좋더라, 자기 애가 전화번호를 얻고 싶어해서 카톡을 깔아줬다, 초아만 우리애랑 친해져서 수아가 조금 삐졌다더라 등등 어린 여자아이들의 솜사탕같이 귀여운 일상들이 들려왔다.
2학기에 접어들어서도 여전히 수아 초아는 훤칠하고 늘씬한 자태를 뽐내며 팔짱끼고 하교를 했다. 여전히 그 둘을 구분할 수 없었던 나는 어쩜 저렇게 생긴것도 비슷하고 이름도 비슷하고(흔한 이름도 아닌데) 성격도 잘 맞아서 단짝이 된 친구들이 있을까, 둘은 천생연분 같은 운명인걸까 하며 감탄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와 얘기를 나누다 수아 초아 이야기가 나왔다.
"그래서 수아 초아는 어쩜 그렇게 닮았을까? 친구들끼리 참 신기하다 그치?"
"엄마, 걔들 쌍둥이에요."
"엥????? 진짜?????"
그러고 보니 꼭 닮았고 이름도 비슷하고 항상 같이 다니는데, 왜 쌍둥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걸까? 애초에 왜 그 생각을 하지 못했는지 새삼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 쌍둥이야? 왜 몰랐지....?"
"엄마 몰랐어요?"
아이는 더 어이가 없다는 듯이 날 쳐다봤다. 나는 어안이 벙벙해져서 아... 내가 왜 몰랐지, 왜 그랬지... 만 되풀이했다.
며칠 후 같은 반 엄마들을 만나는 자리가 있어서 수다를 떨다가 생각나서 말을 꺼냈다.
"아참, 수아랑 초아 쌍둥이라면서요? 저는 항상 둘이 너무 닮았고 이름도 비슷한 친구들끼리 어떻게 저렇게 절친이 되었는가 너무 신기했는데, 쌍둥이였더라구요~"
"네? 걔들 쌍둥이 아닌데?"
"네??? 저희 아이가 둘이 쌍둥이라고..."
"김수아, 이초아 잖아요. 쌍둥이 아니에요~"
".......??????!!!!!!!"
그러고보니 학기초에 왜 둘이 쌍둥이가 아님을 알 수 있었는지 기억이 났다. 학기 초에는 반 명부같은게 종종 알림에 뜨니까 아이들 이름을 알 수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 성 까지는 기억이 나지 않고 이름만 종종 들려오니까 나중에는 이름만 남아서 성이 가물가물해지는거다. 성까지 같았다면 쌍둥이일거라고 추측했을텐데, 성이 아예 다르니 쌍둥이라는 생각은 한번도 하지 않을 수 있었는데 아이 때문에 헷갈려버린 상황. 아니 그런데 얘는 같은 반 친구들과 거의 1년을 보내고 있는데 왜 둘을 쌍둥이라고 생각하고 있단 말인가?
"땡땡아. 너 왜 수아 초아 쌍둥이라고 했어? 둘이 쌍둥이 아니라잖아."
"네? 둘이 쌍둥이 맞아요!"
"무슨소리야~ 둘이 성이 다른데!"
"성이 뭔데요?"
이럴수가.... 성이 뭔지도 모르는 애가 성이 다르니 가족이 아니라는 것을 어찌 알겠는가. 어리숙한 아이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웃음만 나왔다.
좀 크면 나아지겠지 싶지만, 남자 아이들은 확실히 또래 여자아이들보다 어리숙하다. 며칠 전에 지인에게 있었던 일인데, 놀이터에서 아이와 놀고 있는데 어떤 5학년 남자애가 다가와서 전화기를 좀 빌려달라고 했단다. 가만 보니 발에 꼬치용 꼬지가 박혀있는 채여서, 너무 놀라서 물어보니 바닥에 꽂혀있던 꼬지를 밟았는데 신발 밑창을 뚫고 발바닥에 박힌 상황이었다.(위에서 점프를 한 모양이다ㅠ) 지인은 너무 놀라 전화기를 건네줬고, 아이는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아이 : "엄마..? 닭꼬치를 먹다가 이쑤시개가 꽂혔어."
이 말만으로는 어떤 상황인지 잘 알수가 없다. 닭꼬치가 아니라 근처 푸드트럭에서 파는 닭강정이었고, 찍어먹는 꼬지에 찔린건데 보통의 이쑤시개보다는 큰 꼬지였다. 이렇게만 들으면 보통 우리가 아는 그 작은 이쑤시개를 닭꼬치에 꿰어먹지는 않으니, 닭꼬치를 먹다가 이쑤시개는 왜 등장하는건지, 닭꼬치에 꽂았다는건지, 아니면 어디에 이쑤시개가 꽂혔다는건지(보통 신체에 꽂혔다는 생각은 하기 어려우니까) 알 수가 없다.
엄마 : "응? 무슨소리야? 어디에?"
아이 : "한강롯데아파트..."
엄마, 지인 : "???????????????"
이쑤시개는 처음에 한강롯데아파트 바닥에 꽂혀있었던 건 맞지만, 아이 엄마에게 중요한 정보는 그 이쑤시개가 아파트 바닥에서 아이 발바닥으로 옮겨갔다는 정보일텐데 도무지 주요정보를 전달하지 못하는 아이.
보다 못한 지인이 전화를 받아서 상황설명을 해주고 119를 불러서 근처 대학병원으로 이송했다 한다.
얼마 전에는 날씨가 너무 추워서 차로 등교를 시키는 길에 근처 사는 친구 남매도 함께 태워갔다.
동생들끼리 친구라 늘 묵묵히 인사만 하고 조용히 가던 6학년 오빠가 그 날은 웬일인지 입을 열었다.
"너네, 학교 본관 3층에서 4층 올라가는 계단이 비뚤어진거 알아?"
"아니? 모르는데?"
"거기 도서관 윗쪽 계단, 비뚤어져있어."
"엥??"
이 무슨 뜬금없는 소리인가 싶어서 그냥 아이들끼리 하는 농담이겠거니 하고 흘려듣다가,
문득, 학교가 작년에 안전진단 D등급을 받았다는 게 생각났다. 안전진단이 이렇게 나올때까지 학부모들에게 공지 한번 없다가 뒤늦게 알려져 공분을 사고 부랴부랴 철거에 들어간다고 했던 그 건물이었다.
그런 건물의 계단이 비뚤어졌다니, 붕괴 징조 같은게 생긴건가? 갑자기 등골이 서늘해져서 나도 물어봤다.
"계단이 비뚤어졌다고....? 언제부터 비뚤어진건데...?"
"그건 모르겠어요. 여튼 비뚤어져있어요."
"최근에 비뚤어졌어....? 아님 너 입학했을때부터 비뚤어져있었어?"
"아 저 입학했을때도 비뚤어져있었어요."
아, 그렇다면 붕괴 조짐으로 건물이 뒤틀린건 아니겠구나. 하긴 아무리 붕괴된다 해도 벽에 금부터 가겠지 계단이 뒤틀릴 수나 있겠는가 싶어 안도했으나, 내가 너무 긴장된 목소리로 말했는지 동생 아이들은 바짝 겁에 질려 어떤 무서운 학교괴담의 진실을 파헤치는 표정이 되어있었다.
"형... 계단이 어떻게 비뚤어졌는데....?"
"암만 봐도 비뚤어졌어~"
어떻게 비뚤어졌는지 구조나 모양을 설명해 줄 줄 알았는데 암만 봐도 비뚤어졌다니, 무려 곧 중학생이 될만큼 큰 아이인데 설명이 이게 뭔가. 그러나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이따가 점심시간에 연결통로에서 만나서 같이 보러 가자는 약속을 하는 세 아이들. 참으로 해맑았다.
그런데 어디 어린 아이들, 학생들만 어리숙한가. 다 큰 남자어른도 어리숙하기는 마찬가지다.
남편과 연애시절, 그 때는 남자들은 스킨케어 같은걸 잘 하지 않는 시대이기도 했고 남편이 워낙 그런거에 관심도 없어서 바디로션 하나로 얼굴부터 발까지 바르는 사람이었는데, 내가 미스트를 얼굴에 뿌리고 있으니 꽤나 신기했는지 유심히 보며 다가왔다.
"그게 뭐야?"
"이거? 미스트? 얼굴 촉촉해지라고 뿌리는거야."
"오, 뿌리면 촉촉해져? 나도 뿌려줘봐."
"알았어. 눈감아!"
칙칙칙!!
"으악!!!!!!"
왜 비명을 지르지? 하고 쳐다보니 어버버 한 얼굴로 눈은 여전히 감은 채 허우적 거리고 있었다.
"왜그래?"
"입에 다 들어갔어! 퉤퉤!"
"아니.... 입을 왜 벌리고 있어? 닫아야지!"
"눈 감으라고만 했지 입 닫으라고는 안했잖아!"
세상에.... 얼굴에 뿌리는건데 눈 감으라 했으면 입도 다물어야지 왜 벌리고 있는것인가. 눈 감고 입 닫고 숨도 쉬지말고 움직이지말고 모공을 열고 있으라고 했어야 했단말인가. 다 큰 성인 남성인데 어디까지 하나하나 알려줘야 하는걸까.
요즘에도 남편은, 형부는, 친구 남편들은, 아이 친구 아빠들은 주구장창 어리숙해 부인들의 원통 터지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새해에는 아들도, 남편도, 수많은 아빠들도 좀 더 의젓해지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