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보다 형이 온 우주인 둘째
애초에 형제를 키울 생각은 없었다.
아니 사실 그게 내 마음대로 되는건 아니겠지만, 적어도 아기자기한 딸 하나 없이 짐승같은 사내아이를, 그것도 둘이나 키우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짐승같다는 표현이 좀 그렇긴 하지만, 정말이지 남자아이는 사람이라기보다 동물을 키우는 느낌이다. 인터넷에서 본 글인데, 여자아이한테는 오은영처럼, 남자아이한테는 강형욱처럼 하면 된다했는데, 진짜로 그렇다. 감정을 잘 살펴주고 이해해주고 그런 것 보다는 간결한 명령, 확실한 보상, 명확한 행동규칙 등이 남자아이 육아의 핵심이다.
그래서 형제 육아는 힘들다. 여자인 엄마가 이해하기 힘든, 아예 다른 종족을 키우는 기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다 이것들은 집단이지 않은가. 한 명의 다른 종족은 어찌어찌 끌고 간다 해도, 둘 이상의 집단은 그 상승작용이 어마무시하다. 마치 한마리가 울면 다 따라우는 늑대처럼, 한마리가 뛰면 영문도 모르고 따라서 내달리는 강아지처럼. 둘이 사이라도 나쁘면 융합이라도 안될텐데, 심지어 동생은 형아바라기다. 형은 동생에게 우주 최강 최고 롤모델이자 영웅, 위인이다. 형 한마디에 뛰고, 움직이고, 말하고, 웃고, 운다.
한번은 큰애만 친척집에 가서 둘째랑 오롯이 1박 2일을 보내게 된 날이 있었다. 난생 처음으로 외동놀이를 해줄 수 있겠다 싶어 우리가 다 설렜는데, 정작 둘째는 형은 대체 언제오는거냐며 내내 형만 찾았다. 길을 걸어도 여기 형아네 학교잖아. 여기 형아 도서관이잖아. 여기 형아랑 갔던데잖아. 하며 형의 흔적만 찾았다. 형이 집에 도착했을 때 그 반가운 얼굴이란! 형아~~!!! 하며 뛰어나가는데 무슨 이산가족 상봉한 줄 알았다.
그런 형이 하는 말이라면 무조건 믿는 동생이라, 늘 형의 손바닥 안에 있다. 똑같은 사탕을 줘도 형이 어 네꺼는 못생긴 사탕이다, 하면 으앙~~~ 엄마 내 사탕은 못생겼어요~~ 하면서 운다. 밑도 끝도 없는 농담에도 족족 넘어가고 형 한마디에 희비가 오락가락한다.
지난주쯤, 큰애가 장염에 걸렸다. 물만 먹어도 토하고 설사를 하길래 병원에 데려가는데, 수액을 맞을까봐 지레 겁을 먹었다. 장염에 무슨 수액이야, 그냥 약만 받아오는거야. 라고 말해줬는데 엉덩이 주사 처방이 내려졌다. 예방접종과 채혈, 수액까지는 경험이 있었으나 엉덩이 주사는 처음인 상황. 아이는 울고불고 발버둥을 쳤고, 덩치가 꽤 커져서 제압하기도 어려운 애를 간신히 붙잡고 겨우겨우 맞고 왔다.
큰애가 다 나아갈 즈음, 이번엔 둘째가 아팠다. 열이 나고 배가 아프다 해서 병원에 데려가는데, 큰애가 따라나서며 가는 내내 너도 엉덩이주사 맞을 수 있다고 겁을 줬다. 둘째는 엉덩이주사가 뭔지 모르는데, 형이 아주 실감나게 그건 아주 아픈거고, 이따만한 바늘이 엉덩이에 쑥 들어간다고 설명해줬다. 아무리 못하게 말려도 차 뒷좌석에서 소곤대면서 끝까지 협박하는 큰애. 둘째는 아직 어려서 엉덩이주사를 안놔줄거야. 그건 다 큰 너나 맞는거야. 하고 안심시켰으나 그 노력이 무색하게 둘째도 엉덩이주사 처방이 내려졌다. 영문도 모르고 주사실에 끌려가 앉았는데, 갑자기 엉덩이를 푹 찌르는 주사가 들어오자 둘째가 크게 놀라서 목청이 찢어져라 울었다. 그 옆에서 형은 좋다고 깔깔대며 박장대소를 하고 있었다. 동생이 아픈데 뭐가 웃겨! 하고 혼내니까 입을 틀어막고 몸을 들썩이며 소리 죽여 웃는 첫째. 그렇게 정신없이 진료를 보고 돌아왔다.
병원에 다녀와서도 둘째는 영 나아지지 않았다. 열이 계속 나고 처져있었다. 보다 못해 다시 병원에 데려갔는데, 이번엔 또 가는 내내 형이 넌 이제 수액을 맞을거라고 겁을 줬다.(큰애가 방학이라 떼놓고 가질 못한게 한이다!) 수액은 엉덩이주사보다 더 큰 바늘로 찌르는거야. 무지무지 아픈거야. 이따만한걸 팔에 꽂고 엄청 아픈거야.
문제는 엉덩이주사의 경험이었다. 형이 떠들어댈 때는 그게 뭔지도 모르니까 별로 겁이 안났는데, 막상 맞고나니 형 말이 다 진실이었다! 무지막지한 바늘이 정말 엉덩이를 마구 쑤시고 너무 아프지 않은가. 형이 먼저 겪었던 어떤걸 말로만 듣다가, 직접 겪으니 형 말이 다 옳았던 상황. 형에 대한 무한 신뢰의 상황에서, 이번에는 수액이라는 더 무서운게 있다고?
야속하게도 이번엔 B형독감 진단이 나왔고, 수액 처방이 내려졌다. 의사의 입에서 수액 이라는 단어가 나오자마자 둘째는 새파랗게 질렸다. 의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괴성을 지르며 발버둥을 쳤다. 수액 안맞을래요! 수액 싫어요! 주사 놓지마세요!!! 아이는 온힘을 다해 거부했는데, 체구가 작은 만5세임에도 그 힘이 굉장해서 의료진과 합세해서 겨우겨우 붙들었다. 팔을 잡히지 않으려 악을 쓰며 우는데, 아이의 눈동자를 보니 거의 패닉상태였다. 어떤 말을 해도 들리지 않는 상황. 억지로 수액을 놔야 하는건가 싶었지만, 치료를 위해서 어쩔 수 없으니 모두가 고생고생해서 겨우 혈관을 찾고 바늘을 꽂았다.
바늘을 꽂고 나면 이제 약만 연결하면 되니 상황 종료임에도, 아이는 계속 패닉상태의 얼굴로 혼이 나간채로 주사 싫어요! 놓지마세요! 를 외치고 있었다. 이제 다 끝났어. 바늘 꽂았다니까? 이거 봐봐, 이제 약이 다 들어가기만 기다리면 돼. 아무리 설명해도 아이는 무언가가 더 남아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형이 알려준 알 수 없는 존재의 공포가 여기서 끝날리가 없다고 생각한 듯 하다. 그렇게 난동을 피웠는데 바늘 들어가는건 생각보다 짧게 끝났으니, 그럼 다음은? 또 바늘 찌를거지? 지금은 안 아픈데 뭔가 더 아픈게 남아있는거지? 그럼 바늘 뺄 때 엄청엄청 아픈거지? 그 뒤에 남은게 아무것도 없다고 아무리 알려줘도 믿지 않았다. 수액을 다 맞고 집에 왔는데도 아직도 끝나지 않았을거라고 확신해서, 주사 부위에 붙여놓은 스티커를 떼는게 어마어마하게 아플거라고 굳게 믿고있다. 그래서 이틀이 지난 지금까지도 스티커를 못 떼고 있는 상태다.(잘 때 몰래 뗀다는게 나도 같이 잠드는 바람에 매번 잊어먹고있다;;)
형이 뭐라고, 이렇게 강한 신뢰를 보내는가. 큰애한테 농담으로라도 '우리가 없으면 이제 네가 동생의 보호자야.' 라고 하지 말랬는데, 첫째가 갖게 되는 부담 때문에 하지 말라는 말이지만, 사실 둘째한테는 하늘과 같은 소중한 형이다. 나도 자매로 자랐는데, 언니를 그렇게 하늘처럼 여겼던가. 동생을 이렇게 형아바라기로 만든건 놀이천재 형이랑 노는게 너무나도 재미있어서겠지만, 여튼 사이좋고 끔찍하게 좋아하는 형제관계가 싸우고 미워하는 사이보다 낫다. 크면서 점점 틀어지고 경쟁하고 결국 말 한 마디 섞지 않는 무뚝뚝한 형제가 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의 이 화목한 형제를 기억하며 지낼 수 있겠지. 비록 나는 열렬하게 내달리는 맹수집단을 키우느라 목이 다 쉬어간다 할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