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강력한 동기부여
초등 저학년 아이와 보내는 시간 중 가장 힘든 순간은, 뭐니뭐니해도 공부시간이다.
이미 꽤 커서 밥을 먹이거나 씻기는 등의 기본적인 육아는 졸업한 지 오래다.
차려주면 알아서 먹고, 빨간 음식도 꽤 잘 먹으니 외식도 쉽고, 남자아이라 씻기는건 애저녁에 손을 떼서(구석구석 잘 닦았는지는 흐린눈 해야하지만) 혼자 아이를 돌봐야하는 날에도 힘들 게 없다.
그러나 문제는 이제 학생이니 공부를 안할 수 없다는 것.
돈을 써서 학원이나 과외에 전적으로 일임하면 평화롭겠으나, 현실은 마냥 교육비에 무한 출혈을 할 수 없는 상황이고, 아직은 어린 저학년 아이를 쉴틈없이 학원으로 돌리는 것도 안쓰럽다.
고학년쯤 되면 나름 끈기가 생기고 집중력이 높아질테니(아닌가...??) 공부시키기가 지금만큼 어렵지는 않을 것 같은데(제발 그래주길!), 지금은 어디 정신이 너른 들판 한복판에서 점프하고 있는 망아지를 억지로 데려다 앉힌것처럼 도무지 차분하게 공부를 할 수 없는 상태다.
어떻게 앉히는데까지는 성공했다 해도, 집중력 있게 공부를 하는건 쉽지 않다. 친구들은 다 학원을 다니는데 나만 못다닐까봐 걱정하는 아이들, 숙제를 해가지 않으면 불안해서 숙제부터 끝마치고 노는 아이들도 있다던데, 다 남의 집 애들 얘기일 뿐. 우리 애는 너 이럴거면 학원 관둬라, 숙제 다 때려치워라 라고 하면 오예! 그래도 돼? 하며 튀어나가서 레고를 조립하는 애다.
그래서 그런 협박은 통하지도 않고, 빨리 다 하고 놀으라고 해도 세월아 네월아 하기싫어 못하겠어 징징징 하며 머리를 쥐어뜯고만 있다. 몇 페이지 되지도 않는거, 후딱 해버리고 평화롭게 놀면 얼마나 좋을까. 해야만 끝난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그렇게 고통스럽게 미루면서 혼나기만 하는걸까.
하루는 신나게 종이비행기를 접는 아이에게 이제 그만 접고 이리 와서 영어숙제를 하라고 했다. 이것만 접고, 이것만 접고를 한 10번 외칠때까지 기다렸지만, 빨리 숙제하고 자야하는 시간이 점점 다가오는데 언제까지 기다려줄 수 있단 말인가. 결국에는 소리 빽 질러서 책상에 앉혔다.
"너무 힘들어~ 하기싫어요~ 어려워서 못하겠어요~"
"빨리 하고 놀면되잖아."
"빨리 하기가 어렵잖아요~ 힘들어요 배고파요 졸려요~"
"그럴 시간에 빨리 해."
"어휴~~~"
"혼나기 전에 빨리 해라."
이런 대화를 무한반복하고, 빨리 하라는 말을 백번씩 하며 고함치고 혼내고 속터지고 환장할 것 같은 시간을 보내는 와중, 아이는 좀 전에 봤던 종이비행기 접기 동영상 얘기를 주절주절 했다.
"엄마 근데 아까 종이비행기가 사과를 뚫었어요. 그게 가능해요?"
"무슨 소리야. 딴소리 말고 집중해."
"종이비행기를 뾰족하게 만들어서 진짜 세게 날리면 뚫을 수 있대요."
"알았으니까 집중해."
"엄마 근데 나 호일로 종이비행기 접어서 사과 뚫을 수 있는지 해보면 안돼요?"
"............"
이미 종이비행기가 사과를 뚫는 장면만 머릿속에 가득한 애한테 집중해라, 문제풀어라, 단어 써라 한들 귀에 들릴까. 내 목만 아프고 나만 화가 나지 않을까? 내 노력의 방향이 잘못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좋아. 그럼 숙제 빨리 끝내고 호일로 종이비행기 만들어서 귤에 날려보자!"
"진짜????? 해도돼??"
"응. 엄마도 궁금해. 사과는 호일로는 안뚫릴 것 같은데 귤은 될거같아."
"오예!!!!"
그리고 아이는 무서운 속도로 숙제를 해치우고 호일을 가지러 주방으로 뛰어갔다.
어처구니 없고 터무니 없는 실험이지만, 귤이 터져서 바닥도 좀 더러워질 테지만, 듣고 무시하기 딱 좋은 아이의 제안을 숙제를 조건으로 수용해줬다. 나한테 딱히 손해일 것도 없지 않은가. 숙제를 해치울 수 있다면!
이후로도 종종 아이의 도파민을 활용해 공부시간을 견뎌냈다. 연산을 지독히도 싫어하는 아이에게 곱셈 연산 문제집은 늘 진도가 영 안나가는 골칫덩어리인데, 저렇게 풀어보지도 못하고 버리느니 한 장이라도 재밌게 풀어보자 싶었다.
"땡땡아. 오늘은 곱셈 연산을...."
"아우~~~ 싫어요~~~"
"아니 잘 들어봐. 엄마랑 대결하는거 어때??
"어떻게요??"
"엄마 한장, 너 한장 해서 빨리 푸는 사람이 참참참 먼저 하기!"
참참참 먼저하기 같은 시덥잖은 조건이지만, '대결' 이라는 단어에 이미 도파민이 치솟기 시작한 아들은 그게 시덥잖은 줄 모르고 덤벼든다. 그러니 뒤의 조건은 별거 아닌걸 걸어도 된다.
"근데 어떻게 한장씩 풀어요?"
"이렇게 찢으면 되지!"
하고 나는 책 한장을 부욱 찢었다. 이미 그 행위에서도 콧구멍이 벌름거리며 기뻐지기 시작한 아이.
준비, 시! 작! 과 동시에 아이는 책에 코를 박고 맹렬하게 풀어보지만, 내가 아무리 봐준다 해도 아이보다 늦게 풀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아이는 힐끔 힐끔 내 속도를 보느라 더욱 더뎌진다. 보다 못한 아이가 애닳아 하길래, 엄마는 거꾸로 풀게! 하고 문제지를 휙 돌려 거꾸로, 반대로 숫자를 쓴다. 약간 느려질 수 밖에 없으니 아이는 그 틈을 타 신나게 내달린다. 그렇게 순식간에 연산 한장을 해치우고 기쁘게 참참참을 했다.
숙제를 위해 간단한 미끼를 던지고, 도파민에 절어 덥석 물어버리는 아들을 지켜보기만 하면 되니, 어거지로 앉혀서 잔소리 하는 것 보다 백만배 편하고 빠르다.
몇살까지 먹힐런지 모르겠지만, 오늘도 현명하게 미끼를 던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