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 동기부여하기

동기부여 자체가 안되는 아이도 있다는 것을

by wisdom

큰애의 유치원 첫 상담때였다.

아이의 첫 교육기관 생활이 어떤지 너무 궁금하던 차였는데

선생님의 첫마디,


"어머니. 놀이 영역에도 천재가 있다면 땡땡이가 바로 놀이천재일거에요."

"네...?"


아이는 놀잇감을 가지고 아주 다채롭게 놀이를 한다고 했다. 남들은 생각하지 못했던 방법으로 창의적으로 놀기도 하고, 새로운 방향으로 놀이를 추진하기도 하는 등 노는 분야에 있어서는 천재적으로 끝내주게 잘 노는 모양이었다.

어차피 공부는 때 되면 알아서 한다 주의라, 어릴때는 당연히 감각을 동원하여 즐겁게 노는게 최고라고 생각하긴 했다. 그래도 그렇지, 노는거에 있어서는 천재적인 수준이라니, 살다 살다 이런 수식어가 붙는 아이는 처음봤다.


유치원 연령의 아이는 기본 교육과정이 '놀이' 라고, 그래서 놀이를 잘 하는것이 이 시기에 아주 중요하고, 그걸 그렇게 잘 해내는 아이라는데 나쁠것이 뭐가 있겠는가. 더 즐겁게 놀기를 응원할 뿐이었다.


그러나, 아이가 커 가면서 학습은 필요하긴 하다. 유치원 기간 내내 노는것에만 집중했다가는, 학교에 가서 갑자기 한글, 수학, 영어 등을 배우면 당황스러울 수 있다. 심지어 요즘은 모두가 눈에 불을 켜고 학습을 하는 분위기인데 우리아이만 알파벳도 모르고 있으면 그걸 어찌 따라잡겠는가. 발달 과정에 맞게 잘 키우는것도 중요하지만, 혼자 세상물정도 모르고 있다가는 까막눈 취급을 받을 터였다.


그래서 어정쩡하게 이도 저도 아닌 가치관을 갖게 되어버렸다. 이건, 비단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많은 부모들이 겪는 혼란일테다. 미리부터 학습을 시키고 싶진 않지만, 사회 분위기가 그러하니 안할 수도 없고. 학습 뿐인가. 아이들과 자연 속에서 뛰놀고 한적하게 살고싶지만, 그렇다고 미친듯이 치솟는 부동산 시장에서 서울의 아파트를 팔아 시골의 넓은 마당있는 주택을 샀다가는 벼락거지를 면하지 못하게 된다.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알뜰살뜰하게 저축하며 살고싶지만, 누군 주식으로 얼마 벌었다더라, 코스피가 얼마라더라 하는 소리를 들으면 가만히 예금만 하고 있는게 멍청한 사람으로 보이는 요즘 세상. 나는 나만의 속도로 살고싶은데, 사회가 그냥 놔두지 않고 불안감을 부추긴다. 그렇다고 그런 분위기에 휘둘리지 않을 만큼의 깡도 없으니, 그저 갈대처럼 이 학원 저 학원 들여다보고, 부동산 사이트를 들락거려보고, 수중의 몇 안되는 돈으로 유망하다는 주식 두어주 사놓고 오늘도 커피 한잔 값 벌었음에(그래봤자 미실현수익) 기뻐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아이도 애매모호하게 학습을 시켜왔다. 한국말도 못하는 애를 어륀쥐 라고 발음하게 할 생각까지는 없지만, 적어도 아이 엠 어 보이, 디스 이즈 언 애플 정도는 말할 수 있어야 하니 남들 다 한다는 파닉스도 시켜보고 웬만한 평판의 대중적인 영어학원도 보냈다. 잘 하지는 못해도 어느정도 따라가길래 그래 이정도만 하면 됐다 싶었는데, 문제는 수학이었다.


1학년 내내 더하기 1~더하기 9에 갇혀있던 학습지 센터는 열받아서 관둬버리고, 저학년은 아직 수학학원에 보낼 필요는 없고 집에서 봐주면 된다길래 문제집 몇권 사서 집에서 풀게 하는데, 이게 참 맘대로 되질 않았다. 영어학원 숙제가 늘 있다보니 월수금 영어숙제, 화목 수학 문제집, 이렇게 규칙을 정해놔도 어제 못다한 영어 숙제를 오늘도 하게 되고, 또 학교도 나름 과제들이 있으니 어느날은 독서장 써야하고, 일기 써야하고, 어느날은 친구들과 놀다보니 늦어졌고, 어느날은 외식하다가 산책하고 돌아오니 잘 시간이고 등등의 이유로 강제성 없는 수학 자율학습은 늘 뒷전이 되어버렸다. 그러다가 문득 저 구석에 먼지 쌓인 문제집을 부랴부랴 다시 펴서 풀어보라 하면 지루하다, 재미없다, 숙제도 아닌데 왜 해야하냐 징징대기 투성이고. 그래도 꾸역꾸역 두자릿수 덧셈 뺄셈을 하고 있노라면 친구들은 이미 세자리수 하고 있다 하고.....


그래도 어찌저찌 끌고왔지만, 복병은 구구단이었다. 이건 도무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외워야 하는데 느릿느릿 더하고만 있다. 배수 개념이니 사실 더하기를 거듭하는게 맞긴 하지만, 툭 치면 나오는 속도가 되려면 외워야만 한다. 더하지 말고 외워! 라고 말해보지만, 머릿속에서 더하고 있는 애의 뇌를 어찌하겠는가. 더하기를 거듭하다보면 언젠가 외워지겠지만, 당장 단원평가를 봐야하는 학교 진도 속도를 맞춰갈 수가 없었다. 다른반은 선생님 앞에 나와서 외워보고, 틀리면 다시 돌아가서 연습하고 다시 나와서 통과받을때까지 반복한다고 하던데, 우리반은 그런것도 없었는지 아이가 영 외우지를 못했다.


시간은 야속하게 흘러 곱셈 단원평가 날이 다가왔다. 그래, 어차피 더하기를 거듭하면 답은 나오게 되어있으니까, 시간이 좀 부족하긴 하겠지만 아예 못풀진 않겠지. 아직까지도 구구단을 못 외운 아이를 담임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조금 부끄럽긴 했지만 저마다 속도가 다른걸 어찌하겠는가.


단원평가 결과가 나온 날, 아이의 시험지를 봤다. 20문제 중 3개를 틀려왔는데 구구단을 못외운 아이 치고는 열심히 했다 싶었다. 모든 문제의 여백에 7,14,21,28,35,42 이런식으로 깨알같이 적혀있었는데 귀엽기도 하고, 재빨리 쓰느라 또 얼마나 고생했을지 안쓰럽기도 하고.


"땡땡아. 잘 풀었네! 고생했어. 그런데 구구단을 외우면 이렇게 쭉 쓰지 않고도 문제를 풀 수 있으니까, 앞으로 더 열심히 외워보자."

"엄마, 그런데 구구단 잘 할 필요 없어!"

"응? 무슨소리야?"

"우리반에 구구단 마스터가 있거든? 구구단을 젤 잘하는 한명을 마스터라고 정했는데, 걔는 거꾸로도 외우고 2배속으로도 외워!"

"와 대단하네!"

"그런데 걔는 단원평가 10개 틀렸어요."

"엥...? 왜? 마스터인데 왜 그렇게 많이 틀렸어?"

"곱하기는 잘 했는데, 곱하고 나서 더하거나 빼는 문제를 다 틀렸대요. 구구단 마스터도 나보다 훨씬 많이 틀렸으니까, 구구단 마스터해봤자 소용 없는거잖아요! 그러니까 구구단 잘 못해도 돼요!"


왜 하필 마스터는 곱셈만 잘하고 덧셈뺄셈을 못해가지고...... 동기부여하려고 마스터 칭호를 준 것 같은데, 오히려 동기를 빼앗아가버렸다. 아이는 천진난만하게 구구단을 잘 할 필요가 없다는 확신을 가진 듯 한데, 이걸 또 어찌 돌려놔야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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